374.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바트는 머리에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어 던졌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해설을 통해 신나게 나를 조롱할 생각이었던 그는 이제 분노하고 있었다.
고의 선공과 하디의 반격으로 인해 당연하다는 듯 트리플 스렛처럼 된 경기, 거기에서 내가 승리를 거뒀다.
뜻대로 풀리지 않은 상황에 바트는 씩씩거리며 링 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걸 제지했다.
“워, 워워. 안 돼. 영감. 이곳은 관계자가 아니면 올라와선 안 되거든.”
거기에 순간 모두가 의아해했다.
굳이 따진다면 바트 맥센은 이곳의 관계자……일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쇼를 통제하는 인물이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꿋꿋했다.
“지난번 그 친구처럼 석고로 얻어맞아서 박살 나고 싶지 않다면 거기 서서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
“…….”
“들어봐. 바트. 재밌는 이야기니까. 내가 왜 당신이 관계자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건지 가르쳐주도록 하지.”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철제 계단을 통해 링 위로 올라오려던 바트가 꿋꿋이 거기에 계속 서있어서 나는 그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옛날부터 하던 생각인데. 난 결국 프로레슬링이 ‘증명’이라고 보거든.”
그렇기에 어디까지나 자격이 있는 자만이 여기 올라올 수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 서서 기회를 받거나.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면서.
자기 자신을 증명한다.
그로서 팬들이 인정한다.
그것이 프로레슬링의 본질.
“그게 지금까지 내가 해온 거야. 하지만 당신 스스로를 잘 돌아보라고.”
바트 맥센은 어떻게 했나?
나를 인정하기 싫다는 이유로 온갖 치졸한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관객 난입 사건을 근거로 날 해고하려 들었고 이후 WWF 팬들을 선동해서 묻어버리려고 했지.
그리고 상황이 변해 그게 통하지 않게 되자, 팬들이 내게 보내는 열기가 비정상적이라며 말을 바꿨다.
단지 내가 모두를 속이고 스스로를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포장해서 기회를 얻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바트는 내가 업계에서 사라져야 할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말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물론 이 인간들이 좀 멍청하기는 해. ACW 같은 구린 쇼를 계속 봐왔으니까.”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개중에는 자조도 섞였을 터였다.
좋아.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에서 나는 팬들이 확실히 넘어왔음을 깨달았다.
이 각본은 내 것이고 더 나아가 여기에 있는 팬들 모두는 나를 따랐다.
나는 증명했고,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나를 지지하고 있지. 그건 분명 옳은 선택이야. 뭘 좀 아는군. 버밍엄. 나도 인정해주지.”
나는 자연스럽게 오늘 쇼가 열리는 알라바마 주 버밍엄의 이름을 꺼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환호가 나왔다.
[Yeeeeeeeeeeeeeeaaaaahhhh!!]
그리고 내 이야기는 그런 팬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삼아 계속 이어졌다.
“이 소리가 들려?! 수많은 팬들이 신이라는 남자를 인정하고 있다고! 당신 생각과 달리 난 이미 탑 가이야!”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힘차게 팔을 펼쳐들었다.
그래.
나는 증명해왔다.
오늘 경기.
어제의 경기.
지난주의 경기.
지난달의 경기.
작년의 경기.
지금까지의 내 모든 경기에서.
내가 이 비즈니스에서 이 정도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뿐만이겠어?”
선수들도 그랬다.
나는 그렉, 테이커, 헌터와 같은 레전드들과 붙어 훌륭하게 결과를 냈고, 나아가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왔다.
“오늘도 봐! 모두들 당신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게 드러났지!”
사모아 고가 보여주었다.
바트 맥센의 명령대로 핸디캡 매치를 치르는 대신, 잭 하디를 공격하고 경기를 트리플 스렛으로 만들었다.
비겁한 방식으로 날 패는 게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기고 싶은 선수라는 것을 팬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랬다.
모두가 날 인정하고 있었다.
“그쪽만 빼고, 바트. 그래서 당신은 이 링 위에 올라와선 안 되는 거야.”
[Waaaaaaaaaaaaaaggggghhh!!]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그들의 소리가 내게 주어지고 있는 기회와 반응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서있던 바트는 이윽고 마이크를 쥐고 내게 물었다.
“내가 널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 당신은 이제 퇴물이거든.”
나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훌륭한 사업가였던 젊은 바트 맥센은 이제 다 늙어 빠진 호랑이가 되어서 ACW 같은 병신 쇼에도 밀리고 있지.”
[Waaaaaaaaaaaaaaaaggghhhh!!]
“이제야 모두들 인정하는 모양이로군.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이 회사를 이끌어 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돌연.
바트 맥센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순간 나를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네가 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내가! 이 바솔로뮤가! 늙어 빠진 호랑이라고?!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하나 확실히 해둬야 할 게 있다! 신!!”
바솔로뮤 케이브 맥센.
바트의 풀네임이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환되었다.
모두가 바트에게 빨려들어갔다.
“아무리 늙어빠졌어도 나는 호랑이야. 하지만 여기 이놈들은 참새에 불과하지. 고작해야 참새들이 조잘대는 소리에 호랑이가 신경이나 쓸 것 같나?!”
중세 귀족처럼 외친 그가 내 경고를 가볍게 무시하고 링 안으로 들어왔다.
[Booooooooooooooooooooo-!!]
“닥쳐! 너희들이 원하는 건 하나도 줄 생각이 없으니까! 나는 오직 나를 위해서 이 비즈니스를 만들어왔단 말이다!!”
그 몸에 숨어 있던 악마가 나왔다.
나는 미소가 지어지려는 걸 참았다.
사탄, 벨페고르, 루시퍼, 리바이어던, 아스모데우스, 마몬, 바알제붑까지.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죽게 만든 남자에게 깃들어있던 악마가.
나타났다.
바트 맥센의 등 뒤로 떠올랐다.
나의 도발로 인해서.
나를 죽이기 위해.
“내 감이 틀렸다고? 퇴물이 되었다고? 그런 건 애초부터 계산의 대상이 아니었다! 신, 나는 언제나 그랬어!!”
바트는 사악하게 설명을 해나갔다.
“내가 만든 이 비즈니스를 보고 꿈에 젖은 애새끼가 내 밑으로 들어와서, 죽을 만큼 이용당해서 내게 돈을 벌어다 주고,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어냈다고 착각하는 꼴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바트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관객들은 야유조차 보내지 못했다.
그렇다.
결국 모든 건 이 남자의 산하다.
프로레슬링은 결국 이 남자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다 주기 위해 존재한다.
모두가 등을 돌려도.
프로레슬링이 남아있는 이상.
이 남자는 이긴다.
바트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절대 틀리지 않았어! 그렉 하트! 락콜드 스티비 스틴! 디 캐스켓-테이커! 숀 시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내가 재능을 보고 발굴해낸 선수들이지!!”
하지만.
“거기에 넌 절대 포함되지 않는다! 신! 너만큼은! 내가 정말로 증오하는 너라는 이름의 개새끼만큼은 절대로!!”
“그거 참 놀랍군.”
나는 어이가 없어 대답했다.
하지만 그게 바트 맥센이었다.
그는 언제나 이 링 위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계속해서 전권을 휘둘러왔다.
패배해도 결국 승리하는 존재였다.
락콜드에게 스터너를 맞아도, 볼썽사납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더라도 결국 그 시청률의 보상은 바트에게 이른다.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를 망가뜨리고, 수많은 단체를 도산시킨 악마가, 저 자본주의의 괴물이 모든 것을 가져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 괴물에게 맞서던 선수들은 나이가 들거나 몸이 망가지며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갔다.
그리고 이제 그 앞에 내가 서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계속해서 서있는 프로레슬링의 괴물이.
아이러니하게도.
꽤나 멋진 기분이었다.
락콜드부터 시작해 지금껏 수많은 선수들이 그에게 맞서 계속 싸워왔다.
하지만 바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증오를 표시한 인물이 바로 나라니.
“우리 사랑스러운 회장님께서 날 이토록 증오하시다니. 이거 재미있는데.”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내가 거물임을 인정하는 것 같잖아.”
“아니, 착각이다. 너는 절대로, 무슨 수를 써도 이 업계의 탑이 될 수 없어.”
“그래? 그렇다면 난 꼭 그걸 당신에게서 인정받고 말아야겠는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바트 역시도 나를 따라서 웃었다.
저건 각본에 없던 미소였다.
그러므로 나는, 바트가 지금 우리의 감정선에 흥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 이렇게 나오셔야지.
“그 어떤 놈도 나서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증명해주는 수밖에 없겠군.”
“이거 원, 괜찮겠어? 그런 노구로.”
“나쁘진 않군. 너야말로 괜찮겠나? 신. 넌 지금 호랑이의 앞에 서있는데.”
[Uoooooooooooohhhhh……!!]
팬들이 경악해 내는 소리와 함께.
우리 둘의 경기가 결정되었다.
In The Summer Suplex.
You And Me.
One On One.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엄청난 환호가 들려왔다.
* * *
마지막 반응은 좀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경기장의 팬들은 바트 맥센과 내가 직접 일대일 경기를 가지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환호가 나온 걸로 봐선 다들 그게 기분 좋은 반전으로 느낀 듯했다.
예상하지는 못했으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스토리.
‘나쁘지 않군.’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으나.
바트 맥센은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쇼가 끝난 뒤, 늦은 밤.
다시 그 사무실로 불려간 나는 독거노인 재활 프로그램의 지도사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그와 대화를 나눴다.
“아니, 그래서. 뭐가 문젠데요.”
“나한테 왜 그런 말을 시킨 거냐?”
“디테일은 영감님이 맡으셨잖아요.”
나는 그렇게 지적했다.
바트가 방금 세그먼트 중간에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악역으로서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 이야기한 순간이었다.
사실 그때, 바트는 자신이 악역이니 아무 말도 못 하고 나에게 열폭하다가 당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해왔는데.
내가 그걸 거절했다.
그리고 부탁했다.
카리스마를 보여달라고.
“뭐, 그건 그렇다만.”
“이게 현대적인 드라마죠.”
악역도 강한 모습과 신념을 보인다.
솔직히 누군가는 거기에서 바트 맥센의 모습을 보고 배드애스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또 다른 의미의 정답이고.
“흐음……. 현대적이라.”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저희 두 사람의 실제 드라마가 들어갔잖습니까?”
동시에 프로레슬링의 역사를 두고 봤을 때 해석할 여지도 있고 말이다.
이야기의 깊이가 더해지고.
그걸 이해하는 쪽은 더 몰입하고.
아니더라도 그 나름대로 해석을 더해서 분명 이 이야기를 즐길 터였다.
“확실히 그랬지.”
바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와 나의 드라마가 들어있다라. 맞는 말이구나. 실제로 넌 나를 죽이기 위해서 다시 이 단체에 기어들어왔고.”
“……ACW를 쓰러뜨리기 위해서죠.”
“하하하, 입에 침이나 발라라.”
“그러는 그쪽도 진심을 이야기하신 거 아닙니까? 저를 인정할 수 없다고.”
“아니, 나는 오히려 널 인정한다.”
바트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천만이나 주면서 계약할 리도 없지. 넌 좋은 선수야.”
그러므로 부디 이 대립을 통해 ACW의 추격에 도움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바트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번 대립이 단순하게 선수와 기업주 간의 대립 그 이상의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쨌건 계속 WWF에 출연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PWA 소속의 선수다.
그렇기에 반골의 이미지가 쌓이고 그걸 이용해 계속해서 업계 내에서 내 캐릭터를 만들어나갈 생각이었다.
지금 이 현실을 반영해서.
* * *
이후.
WWF 측에서 제안을 하나 해왔다.
그날은 나와 바트 맥센이 경기 계약식을 가질 예정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바트가 디테일 하나를 주문했다.
바로 나와 바트가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를 번갈아 진행하면서 ACW에서 넘어온 시청자들이 계속 랙다운을 보도록 붙잡아두자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타당한 생각이었다.
현재, WWF 랙다운의 시청률은 내가 나올 때를 제외하면 썬더와 비등하거나 조금 더 밀리는 상황이었다.
딱히 그게 문제될 건 없겠다 싶었던 나는 그들의 제안에 응했고 영상 몇 개를 촬영하면서 한 주를 보냈다.
그리고 금요일.
2009년 8월 2주차의 랙다운.
쇼가 시작되고, 얼마 전처럼 카메라에 복도를 걸어가는 내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 랙다운의 인터뷰어가 그런 내게 다가와 질문을 해왔다.
[안녕하세요. 신 선수. 오늘 바트 맥센과의 경기 계약식이 있다고 하던데.]
[아, 그렇지.]
[경기 방식이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힌트를 주실 수 있을까요?]
[글쎄.]
화면 속의 내가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바트 맥센은 노인이잖아? 그래서 내가 눈을 가리고 싸우자고 제안을 해봤는데 싫다더라고.]
[그러면……?]
[그 영감쟁이도 물러서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그래서, 정말로 심플한 경기 방식을 준비해왔어. 재미있을 거야.]
[어, 그래서요?]
[나머지는 바트에게 물어봐.]
그렇게 말한 뒤 자리를 뜨는 나.
어깨를 으쓱하는 인터뷰어의 모습을 끝으로 팬들의 궁금증을 자극한 뒤, 그대로 다음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해서 팬들이 바트가 나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기다리도록 만든다.
‘나쁘지 않군.’
여기서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바트 맥센은 프로레슬러가 아니다.
훈련은 좀 받았다지만 어디까지나 근육질의 일반인에, 나이를 먹은 노인.
그런 그와 지금 한창 젊을 대로 젊은 내가 동등하게 경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규칙이 어울릴까.
여기에서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룰이라는 점이었다.
기본적으로 싱글 매치.
하지만 거기에 바트 맥센이 자기가 불리할 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규칙을 한 가지씩 추가한다.
그 정도는 하지 않고서야 바트가 나에게 대적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