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78화 (378/634)

378.

상황은 몇 주 전으로 돌아간다.

섬머 수플렉스에서 어떤 식으로 경기를 가질지 고민하고 있던 날이었다.

나는 마이클스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오, 신. 오랜만이군.]

“존, 잘 지냈어요?”

[애 키워본 적 있나?]

“예? 아뇨?”

[육아는 지옥이야. 아내에게 잘해.]

“……어, 옙.”

[아내는 잘못하지 않아.]

“그, 그렇군요.”

이건 또 전생의 나는 알 수 없었던 인생의 다른 부분이라 좀 당황했었다.

어쨌든.

그 후로 존과 나는 바트와 내가 얼마 전에 했던 링 세그먼트에 대해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솔직히 좀 마이클스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무척 인상 깊게 본 모양이었다.

[락콜드도 그러더군.]

“락콜드 스티비 스틴이요?”

[그래, 네가 나오는 쇼를 매번 챙겨 보고 있다는데. 티셔츠도 샀다고 하고. 할인 쿠폰 받은 걸로 말이야.]

……돈도 많은 양반이.

[어쨌든 뭐 그래. 솔직히 고마워.]

“전 딱히 한 게 없는데요.”

[팬들이 날 기억하게 해줬지.]

“…….”

거기에서 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존 마이클스는 쓸쓸한 은퇴를 했다.

그렉 하트에게서 벨트를 이어받아 차세대 메인 이벤터로 역할을 받았던 그.

하지만 바트는 그에게 시나처럼 재미없는 선역 역할을 맡기려 들었고, 실패하자 가차 없이 다른 선수로 대체했다.

그게 바로 락콜드였다.

물론, 당시의 존 마이클스가 백스테이지에서 정말 그 누구도 상대하기 싫어하던 개망나니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과도한 스케줄과 챔피언으로서의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동시에 안타까웠다.

그렇게 1차 은퇴를 한 뒤 종교와 가족의 힘으로 극복하고 돌아온 것이 바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마이클스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러지 않았다.

거기에서 약간의 부채의식을 느꼈다.

혹시 내가 훌륭한 선수의 앞날을 자의든 타의든 망쳐놓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물어보았다.

“두렵진 않으십니까?”

[뭐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진다는 사실이요.”

[두렵지.]

“돌아오려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너 같은 놈들을 보니 내 시대는 이제 끝났구나 싶어서.]

마이클스는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건 좀 표현이 이상하군. 이렇게 말하지. 그렉하고 레슬 임페리움에서 경기를 가졌지? 기억하고 있나?]

“예, 잊을 수 없는 순간이죠.”

[그때 왠지…… 나도 잘 넘겨줄 수 있던 것 같아서 말이야. 선수로서의 존 마이클스라는 남자를.]

그래서 그만두었다.

이제는 우리들의 시대라는 사실을 나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거기에 하나 더.

[인생은 철로가 아니야. 대양을 헤엄치는 거지. 그러니까 나는 지금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 무척 마음에 들어.]

“…….”

[아 물론, 육아는 지옥이지만. 아내에게 잘해. 절대로 말 거스르지 말고.]

아니, 저 결혼 안 했는데요.

그렇게 말하려던 나는 이내 피식 웃으며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 것이었다.

“분유 값이나 벌어 가시죠.”

나는 마이클스의 말을 듣고 반대로, 우리가 이야기한 걸 증명하고 싶었다.

마이클스가 어떤 남자였는지.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실수였다.

[HBB! HBB! HBB! HBB! HBB! HBB! HBB! HBB! HBB! HBB! HBB! HBB!]

팬들이 이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보여줄 거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순간 반응을 빼앗겼을 정도였다.

키는 나보다 더 작고, 현역 선수가 아니었기에 체격도 말랐다.

하지만 그 카리스마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디테일이다.

링 위로 올라오는 타이밍.

카메라에서 비스듬히 돌아서는 동작.

릴렉스한 자세, 살짝 눌러쓴 모자.

그리고 스윗 친 뮤직.

완벽했다.

‘이게 재능인가.’

이런 디테일은 교육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거의 10년 정도를 현역에서 물러난 채 지냈는데도 이런 카리스마라니.

이게 아이콘 급의 재능인가.

“자, 일어나.”

양철 쓰레기통을 옆으로 치워낸 마이클스가 곧바로 내게 손을 뻗었다.

바트는 이미 그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물러나있는 상태였고, 나는 비틀거리며 그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Yeeeeeeeeeeeeeeeaaaaaahhhhh!!]

환호가 쏟아졌다.

거기에서 나는 연기를 시작했다.

“마이클스, 여긴 어떻게?”

“나는 바트를 잘 아니까.”

“제기랄, 한 방 먹었군요.”

“그렇지?”

그가 미소를 지었다.

이 드라마 속의 나는 마이클스의 난입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역시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여기 온 것이었다.

그리고 바트는 자신이 언제나 그랬듯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날 무너뜨리려 들었고, 보다 못한 그가 나섰다.

바로 그런 스토리였다.

우리는 동시에 돌아보았다.

스윗 친 뮤직을 맞고 쓰러진 케인과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 바트 맥센.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팬들의 챈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상황은 반전되었다.

우리가 서서히 다가가자 바트 맥센은 볼썽사납게 케인을 버리고 일어났다.

“자, 잠깐만 이러지 마!”

“난 이러고 싶은데.”

“제기랄! 너희 전부 고소……!”

바트가 하는 개소리를 더 듣지 못하고 나와 마이클스는 함께 킥을 날렸다.

쫘악-!!

더블 슈퍼 킥.

거기에 맞은 바트의 몸이 넘어갔다.

[Yeeeeeeeeeeeeeeeeaaaaahhhh!!]

팬들의 환호가 쏟아지는 가운데, 날 돌아본 마이클스가 미소를 지었다.

“잘하는데?”

“전설에게서 이어받았으니까요.”

그게 바로 눈앞의 남자였다.

싱긋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긴 마이클스가 그대로 링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역할은 여기까지.

아무리 그가 전설이고 팬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한들, 지금 이 링 위에서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건 나였다.

거기에 선역이었으므로 이쯤에서 환호를 넘겨주고 빠지는 게 이치에 맞았다.

그렇게 마이클스가 내려간 링.

“후우.”

심호흡을 한 나는 팬들을 돌아보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내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마이클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주도권을 되찾은 나는 그대로 경기를 끝내는 대신 잠시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케인 맥센이 일어서는 것을.

[Uooooooooooooooooohhhhh……!]

팬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마이클스의 스윗 친 뮤직에 당한 녀석은 일어서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을 향해 질주하는 경기.

그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투를 벌여온 나도 이미 만신창이였다.

그럼에도 기다렸다.

굳이 경기를 끝내지 않고.

링에 난입한 케인을 끝장내고 마지막에 바트 맥센까지 완전히 끝내면서 이 경기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게 내가 선택한 방식이다.

“후우.”

솔직히 좀 열이 받았거든.

나는 곧바로 케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Waaaaaaaaaaaaaaaaaggggghhhh!]

팬들의 환호 속에 케인과 나는 투지를 불태우며 그대로 난타전을 벌였다.

주먹과 주먹이 오가고.

서로 지지 않기 위해 각각 한 대씩을 주고받으며 케인과 나는 링을 돌았다.

그리고 이내 뒤엉켰다.

“큭?!”

태클을 걸어서 케인을 넘어뜨린 나는 그대로 힘껏 주먹을 내리찍었다.

뻐억-!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케인.

그 상태에서 숨을 몰아쉰 나는 케인의 머리를 겨드랑이 아래에 끼웠다.

그리고 벨트를 붙잡고는 온 힘을 다해 지면에서 녀석을 그대로 뽑아들었다.

[Uooooooooooooooooooohhhhh!]

팬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지면에 누워 있는 상대방을 힘으로 뽑아드는 자세를 일컫기를, 데드리프트.

그렇기에 이건.

데드리프트 스냅 수플렉스.

투콰앙-!!

허리를 튕겨서 뽑아든 케인을 반대로 내던진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시작이라고!”

[Yeeeeeeeeeeeeeeeaaaahhhhhh!]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나는 링 밖으로 도망치는 케인의 뒤를 쫓아가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위상의 차이를 보여주는 경기 양상.

케인은 나와 헬 인 어 셀 경기를 치른 이후 그대로였지만, 그와 반대로 나는 지금까지 계속 사투를 벌여왔다.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싸움.

디 캐스켓-테이커.

캡틴 로건.

트리플H.

그리고 아래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C.M. 펑크나 사모아 고에게 맞서서.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단련했고 그 결과가 이렇게 보여지고 있는 것이었다.

쩌억-!

안면에 꽂히는 헤드벗.

“끄헉?!”

케인이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녀석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나는 잠시 링에 몸을 기댔다.

심호흡.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가 계속 이어졌다.

모두가 나를 바라고 있다.

이 경기의 마지막에 걸맞은 멋진 스팟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물론.

나는 이미 복선을 깔아두었다.

아나운서 테이블 앞.

아까 그 안에 설치된 각종 방송 장비들을 다 빼둔 상태라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케인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 나는 녀석의 안면에 펀치를 날렸다.

퍼억-!

그렇게 다시 녀석의 정신을 좀 빼두고 아나운서 테이블 위에 눕히자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다시 링으로 돌아갔다.

[Uoooooooooooooohhhhh……!]

탑 턴버클 위로 아득바득 올라가, 그대로 케인을 향해 힘차게 몸을 던졌다.

다이빙 엘보우 드롭.

허공으로 뛰어오른 나는 그대로 아나운서 테이블 위에 누운 케인을 덮쳤다.

투콰앙-!

충격으로 붕괴하는 테이블.

[Waaaaaaaaaaaaaaaaaagggghhh!!]

그걸로 케인은 완전히 녹다운되었다.

문제는 나도 그렇단 거지만.

“끄응…….”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아, 제기랄. 또 그거다.

격렬한 운동 이후에 오는 갑작스러운 퓨즈다운. 그게 정신을 건들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내려가지는 않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아직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즈음, 나는 누군가 내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바로 바트 맥센이었다.

손에는…… 다시 철제 의자를 들었다.

[Boooooooooooooooooooooo-!!]

쩌억-!

그대로 일격이 들어왔다.

어깨를 들어 올려서 막아낸 나는 어떻게 해서든 버티고 일어서고자 했다.

하지만.

퍼억-!!

계속된 일격에 다시 주저앉았다.

“쓰러져라, 좀!!”

“…….”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냐!!”

퍽! 퍽! 퍽!

아프다.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통증이었다.

하지만 바트 역시도 한계였다.

“끄윽…….”

의자를 연이어 휘둘러대던 그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나는 견뎌냈다.

시선이 교차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경기의 마지막 순간에 걸맞게 우리는 모든 걸 쏟아냈고 나는 감정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바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시체더미 속이군.”

“……후.”

바트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이다.”

그리고 동의했다.

다들 혼을 불태워가며 싸운.

그리고 싸웠던 전장.

누군가는 빛이 났을지언정 결국 그 빛은 바래고, 남아있는 것은 한 남자뿐.

“이래서 아직 죽지 못하는 거야!”

바트가 껄껄 웃었다.

각본에는 없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 역시도 각본은 순간 잊어버리고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

웃음소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트 역시도 일어섰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무시하고 곧바로 링으로 올라가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마지막 혈투가 시작되었다.

퍼억!!

바트의 주먹이 내 뺨에 꽂혔다.

그걸 버텨내고 반격.

턱을 노리고 주먹을 날렸다.

뻐억-!

주춤거리며 물러선 바트 맥센이 그대로 내게 달려들어 머리통을 붙잡았다.

“크윽?!”

이마의 상처를 쥐어짜내는 바트.

[B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의 야유 속에서 강한 통증을 느낀 나는 그대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하지만 다음 순간.

다리를 힘껏 들어 올린 뒤, 그대로 앞으로 몸을 던지며 헤드벗을 날렸다.

쩌억-!

“끅?!”

피가 튀었다.

이제 겨우 상처가 아물었을 터인 바트의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곧바로 그 팔을 잡아당겼다.

순간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바트.

그리고 반대편 로프에 몸을 맡기고, 그 반동을 통해 다시 내게 돌아왔다.

난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기술을 위해.

안티크라이스트.

[Uoooooooooooooooooohhhhhhh!!]

바트의 다리 사이와 어깨에 팔을 두르고 힘껏 뽑아든 나는 그대로 달려오는 힘을 이용해 반대편으로 돌았다.

바트가 뜨는 힘이 너무 강해서 힘을 이용해 억지로 그 자리에서 버텨냈다.

그리고 순간 자세가 완성되었다.

바트를 거꾸로 들어 올린 나.

그 상태에서 힘껏 뛰어오르자 우리 두 사람의 몸이 역십자의 형태를 그렸다.

반역의 상징.

기존 질서의 파괴.

프로레슬링 업계의 재정립.

언더독으로 태어난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할 각오로 만들어낸 기술.

바로 그것이, 이 업계의 창조주나 다름없는 존재에게 꽂히는 순간이었다.

투-콰앙-!!

[Waaaaaaaaaaaaaaaaagggghhh!!]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바트와 함께 바닥을 나뒹군 나는 그대로 그 몸을 잡고 핀 폴에 들어갔다.

[1……!]

[2……!!]

[3……!!!]

땡땡땡!!

피로 얼룩진 링 벨이 울렸다.

경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Yeeeeeeeeeeeeeeeeeaaaaahhhh!!]

팬들의 환호 속에 내 테마가 흘러나왔고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바트가 내게 이야기했다.

“날 이겨서 기쁘겠구먼.”

“……나쁜 기분은 아니군요.”

“즐겨두게나. 각본이 아니라면 절대로 겪어볼 수 없는 일일 테니 말이야.”

“하.”

그냥 져주는 법이 없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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