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
[ACW와 PWA의 재결합이 암시되다!]
[할리우드 로건과 신의 회동 포착!]
[WWF와 PWA의 관계를 집중 조명!]
[비밀스러운 미팅 당시 신과 로건이 입고 있었던 옷의 총 합계 금액은?]
[PWA 출신의 이 사내는 충격적인 배신을 겪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신의 새 연봉의 추산치는?]
그 후 일주일 동안 나온 뉴스 기사는 거의 대부분이 쓰레기에 가까웠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주주들이 들고 일어났다.
신과 로건이 타코를 들고 함께 찍힌 사진 하나로 WWF가 요동칠 정도였다.
“어째서 저걸 나가게 둔 겁니까!”
“억만금을 주고 데려와서 저 짓을 하게 놔둘 겁니까?! 선수 통제 못해요?!”
“지금 언론 보도 막아요! 당장!”
다들 그렇게 소리치는 가운데, 바트 맥센은 가장 먼저 신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로건과 함께 촬영한 사진은 나에 대한 시위라고 받아들이면 되겠나?”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그게 아니라면 딱히 그런 사진이 나가도록 둘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자의식과잉도 병이에요.]
“그럼 뭔가? 왜 갑자기 로건하고 만난 거지? 난 자네 파트너야. 숨기지 말고 있었던 일을 모조리 말하게.”
그리고 나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언론 쪽에 퍼지지 않은 사실을 하나 이야기하겠다.’라면서 말을 꺼낸 신은.
[그쪽에서 계약을 제안해왔습니다.]
자신이 ACW로부터 제안을 받은 계약 내용을 숨기지 않고 낱낱이 이야기했다.
거기에서 일단 좀 안심이 됐다.
물론, 그 내용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쌓아온 사업가로서의 감이 하나를 말해주었다.
신은 떠나지 않는다.
대신, 이걸 빌미로 삼을 생각이다.
그렇기에 바트는 일단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한 뒤 전화를 잠시 끊었다.
그리고 경기장에 모여 있던 중요 선수들을 불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실제로 바트 맥센은 정말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주로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선수들의 의견을 신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모인 것은.
러셀 하트와 랜스 오튼이었다.
숀 시나는 광고 촬영으로 인해 현장에 오지 않아서 부를 수가 없었다.
물론 시나는 자기 의견이 각본에 영향을 미치는 걸 싫어해서 불렀어도 그냥 적당히 웃으며 빠져나갔을 테지만.
그리고 그건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바트 맥센이 평소에 주로 의견을 묻던 건 트리플H 같은 고참이라서 딱히 자신들이 온 이유를 모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트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신이 WWF vs PWA로 가자는군.”
“…….”
“그럼 그렇게 하죠. 보스.”
“근거가 있어서 하는 소리인가?”
침묵을 지키는 러셀에 비해서 오튼은 너무나도 쉽게 답을 내놓았고, 바트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어보았다.
오튼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뇨?”
“………….”
“근데 뭐, 간단한 사실 아닙니까. 지금까지 그 자식 말대로 했으니 다 잘 됐는데 이번에도 믿어보는 거죠.”
어쩌면 그게 가장 쉬운 답이었다.
하지만 바트는, 마음속으로 다시는 오튼을 부르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현장의 선수들이 직접 보고 겪은 근거에 의거한 답을 원하고 있었다.
러셀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러자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그는 바트에게 좀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곳이 제가 있을 자리인가 싶군요.”
“자네가 아니면 누가 있어야겠나.”
바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러셀 하트는 이제 명실상부 WWF의 현역 메인 이벤터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설명을 하자 또 잠시 고민하던 러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씀드리죠.”
“……그래, 그래.”
“저는 신의 의견대로 하는 편이 좋아 보입니다. WWF vs PWA로 말이죠.”
“자네도?”
“예.”
“근거는 뭔가?”
“이번 대립을 통해서 팬들에게 욕을 먹은 건 오직 회장님뿐이었으니까요.”
“……? 그게 어째서지.”
“저희는 아니지 않습니까.”
랜스 오튼.
그리고 숀 시나.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는 선수가 두 명이나 있는데 저희가 쉽게 밀릴까요?”
“자네는?”
“전 악역이잖습니까.”
러셀이 미소를 지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역시 화려하고 멋진 경기력으로 팬들의 리스펙트를 받는 악역답지 않은 악역이기는 했다.
그렇기에 러셀은 자신했다.
“이번 링 서바이벌의 콘셉트를 WWF vs PWA로 잡는다면 분명 세간에서 엄청난 화젯거리가 될 겁니다.”
“어떻게 확신하나?”
“팬들 간에 싸움이 벌어질 테니까요.”
그리고 그게 시청률을 상승시킨다.
“으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욕을 먹은 건 오직 바트 맥센뿐.
선수들은 별개였다.
그럼에도.
“그렇다면, 먼저 반응을 보지.”
바트 맥센은 마치 일류 체스 선수가 말을 옮기듯 신중하게 갈 생각이었다.
* * *
WWF로부터 요청이 하나 왔다.
“러셀을요?”
[그래, 그쪽 쇼에 출연시켜서 반응을 한번 봤으면 하는데. 괜찮겠나?]
이건 또 무슨 소리인 걸까.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굴렸다.
일단.
‘무슨 반응을 보자는 거지?’
그 답은 금방 나왔다.
“WWF의 선수가 PWA 쇼에 출연했을 때 팬들 반응이 궁금하신 거군요.”
[바로 그거네.]
“각본은?”
[링 서바이벌에 대한 암시.]
“반응이 그쪽 마음대로 안 나오면?”
[리부트.]
“거 참 안일한 프랜차이즈군요.”
보통 영화가 망하면 자주 그러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팬들 반응이 우리 쪽의 예상하고 다르게 나오면 자네가 모든 책임을 지는 거야.]
“예, ACW 같은 구린 쇼에 가서 제 실수를 만회하면 되겠군요.”
[그렇게 나오긴가?]
“좀 유치하긴 하군요.”
나는 빙긋 웃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게 현실인 것을.
ACW는 직접 큰 위약금을 지급해서라도 날 데려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일단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바트 맥센이 이걸 알게 된 시점에서 우리 둘 사이의 상하 관계는 역전되었다.
왜냐면 바트도 결국 돈을 바라보고 일을 진행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양쪽이 원하는 건 승리.
그리고 나는 양쪽 모두가 원하는 필승 카드였고, 그 사실이 지금의 상황을 흥미롭게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어쨌든.
그쪽의 의도는 잘 알겠다.
그리고 함께 일할 파트너가 러셀이라면 솔직히 무서울 것은 없었다.
반응은 우리의 의도대로 나오겠지.
WWF 팬들은 그쪽에 붙고, ACW 난민 + PWA 팬들은 우리 쪽으로 온다.
그렇게 되면 분명 단체 간에 멋진 라이벌리가 형성되면서 앞으로 우리가 전개할 각본에도 도움이 되겠지.
“그러면 일단, 반응을 좀 보죠.”
나는 제안에 동의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9월 2주차.
러셀 하트가 PWA에 도착했다.
싸구려 트럭에서 내린 녀석이 주차장을 가로질러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렇게 마주한 게 무척 오랜만이군.
커리어 초창기부터 꾸준히 함께해온 내 영혼의 파트너이자, 경기를 뛸 때만큼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상대.
나는 다짜고짜 욕부터 날렸다.
“돈도 많이 버는 놈이 뭔 그런 똥차를 몰고 왔냐? 좀 좋은 거로 빌리지.”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차종이라.”
“취향이 고상하시구나.”
저걸 올드 패션이라고 하던가?
어쨌거나 차의 곡선이 유려하게 빠진 게 보기 아주 좋은 모습이었다.
“렌트 비용도 아끼고 싶었고.”
“……그럼 내 말이 맞잖아.”
“나 돈 없어, 인마. 너랑 다르게 연봉도 적고 요새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서 부치는 돈도 많아졌단 말이야.”
“뭐야. 단체 장사가 안 돼?”
“영 적자라더라고.”
“그렇다면 언제 우리 둘이 가서 경기 한번 뛰어줘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해준다면 고맙고.”
러셀이 피식 웃었다.
그제야 우리는 포옹을 나눴다.
녀석과는 무척 오랜만이었고.
솔직히 함께 일할 수 있어 기뻤다.
그나저나 하트 던전이 적자라니.
나중에 바트에게 말해서 지원금 책정이나 파트너십 사업 같은 걸 벌여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군.
아무리 그래도 하트 패밀리는 프로레슬링 역사의 산증인과 같은 가문이라 계속 존속했으면 좋겠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티파니가 기다리는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러셀은 티파니와도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이야. 티파니.”
“러셀~. 잘 왔어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두 사람.
“하여간, 둘이 끈끈하다니까. 이 안에서 둘이 이야기하는 거 다 들려요.”
“서로 죽이지 못해 사는 사이지.”
나는 낄낄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우리들은 곧바로 일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알고 봤더니 범인은 러셀이었다.
“네가 바트를 설득했다고?”
“그래, 아무래도 일이 이런 쪽으로 흘러가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녀석이 피식 웃었다.
“실제로도 그렇잖아?”
“그리고 그게 자연스럽지.”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말이다.
프로레슬링은 드라마다.
그렇기에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엮이면서 계속해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부분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는.
신이 바트 맥센에게서 승리를 거두고 굴욕을 주면서 끝났다.
그로써 신의 위상은 전보다 한층 더 올랐다.
바트는 반대로 위상이 내려갔고.
선수가 아니라 딱히 상관은 없지만.
어쨌든 그러면 이제 다음 질문.
여기에서 어떻게 될까?
그런 내 질문에 러셀이 대답했다.
“거기에 누군가 불만을 가져야지.”
“누구?”
“러셀 하트.”
자신만만한 모습에 미소가 나왔다.
그래.
바로 그거다.
* * *
2009년 9월 9일 수요일.
여름이 한발 물러서는 시점이었지만 트럼프 아레나는 평소보다 훨씬 더 거대한 열기에 휩싸인 상태였다.
내 귀환 때문이었다.
광고 후 내가 돌아온다는 광고가 나갔고, 그때부터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이름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바트 맥센과의 오랜 대립이 끝난 이후에 이어진 귀환.
그것을 내 절대적인 지지자인 PWA 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입장이 시작되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ggghhhh!!]
나는 마치 개선장군 같았다.
고대 로마의 시저와 같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해적선 모양을 한 개선문 아래를 지나 링으로 올라갔다.
거세게 폭죽이 터져 올랐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평소에는 입장할 때 폭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나였지만 오늘은 개선식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상황이 달랐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함성을 보내는 가운데, 나는 마이크를 쥐고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들 그대로군!”
[Yeeeeeeeeeeeeeeaaaaahhhhh!!]
“환영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뭐, ‘Pirates’답게 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어.”
팬들이 다시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해적.
상대는 스페인의 무적함대.
그 수장을 직접 부수고 돌아왔다.
팬들이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WWF와 우리는 실제로는 협력 관계였지만, 적대하고 있는 상황을 연출해 이런 식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있었다.
말인즉슨, 과거 로건과 nWo가 그랬듯이 WWF에서도 우리 쪽으로 선수를 보낼 때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연출을 썼다.
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온 나를 팬들이 최대한 환영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모든 건.
이 남자의 등장을 위해서였다.
갑자기 천장의 조명이 툭 꺼졌다.
“응?”
순간 의아해 돌아본 나는 해적선 위의 초대형 스크린에 뭔지 알 수 없는 영상 하나가 재생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릴라 포지션 안.
우리 쪽 선수 몇몇과 링 프로듀서들, 직원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Uoooooooooooooohhhhh……!]
팬들이 놀라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서있는 건 한 남자.
어둠 속에 서있던 그가 천천히 움직였고, 시스템을 총괄하는 컴퓨터 앞으로 가 마우스를 몇 번 달칵거렸다.
이어지는 건.
날카로운 기타 리프.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Waaaaaaaaaaaaaaaaggghhhh!!]
그 음악을 알아차린 팬들이 모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러셀 하트.
자신의 삼촌인 그렉 하트마저도 망설임 없이 박살 낸 그가 커튼을 걷고 입장로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등장.
……이라는 듯 연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입가가 씰룩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거의 모든 대립에서 나는 언제나 도전자의 입장에 있었다.
그렉, 테이커, 헌터까지.
모두가 내가 올려다봐야만 하는 레전드들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내가 애송이가 아니라고 설득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러셀 하트.
내 커리어 초창기부터 계속해서 함께해온 그 녀석이 링으로 올라왔다.
젠틀한 와이셔츠에 청바지 차림.
싸우러 왔다기에는 넉살 좋은 미소.
미소를 지은 녀석이 마이크를 받아 내 앞에 섰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잘 지냈냐?”
좋아.
한번 팬들의 반응을 봐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