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81화 (381/634)

381.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누구야! 러셀!”

나는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원래 계획과는 조금 달랐지만 몰입도를 깨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어?”

나는 지금 짓고 있는 이 미소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러셀에게 우정을 보이며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뺨을 어루만졌다.

[Uoooooooooooooooohhhhh!!]

경악을 금치 못하는 팬들.

간단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금기였다.

남자와 남자 간에는 더 그러했다.

나는 눈앞에 서있는 러셀의 뺨을 소년을 만지듯 아주 천천히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상대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사랑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어가며.

그건 분명한 모욕이었다.

하지만 러셀은 미소와 함께 그런 내 손을 밀어냈다. 단순한 행동이었지만 거기에서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뒤를 이어.

쫘악-!

녀석이 내 뺨을 힘껏 후려쳤다.

[Uooooooooooooohhhhh?!]

팬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웃었다.

오히려 러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이크를 드는 녀석.

“못 보던 새에 능청만 늘었군. 신.”

“넌 그대로인데. 변한 게 없어.”

나는 싱긋 웃으며 받아쳤다.

“몸소 이런 누추한 곳까지 와줬다는 점에서…… 꽤 많이 바뀐 것 같은데?”

[Booooooooooooooooooooo-!!]

이어진 러셀의 대꾸에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러셀은 악역.

그런 반응을 받아도 괜찮았다. 그렇기 때문에 놈은 지금 PWA에 오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PWA의 적인 WWF 소속의 선수.

거기에 더해.

내 라이벌로서.

“그래서. 무슨 일이야? 입단 테스트가 보고 싶다면 내가 아니라 티파니에게 이야기하는 게 빠를 것 같은데.”

“그건 아니고. 오랜만에 너와 한판 붙고 싶어서 말이야. 근데 아무도 비켜주지 않아서 좀 거칠게 해버렸지.”

녀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거기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Uoooooooooooooohhhh……!!]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이 싸움을 원하기 시작했다.

신 VS 러셀 하트.

러셀 하트 VS 신.

우리 두 사람이 만들어온 스토리가 이토록 커다란 기대를 갖게 하다니.

나는 강한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마치 태도 불량 시대의 락콜드 VS 바트 맥센이나 더 팍 VS 트리플H 같은 환상적인 라이벌리처럼.

그들 못지않게.

러셀과 나.

두 사람의 현역 선수들 역시도 멋진 라이벌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우리 두 사람의 경기를.

하지만.

“……그러려고 했는데. 막상 와보니 마음이 식었어. 이런데서 대체 뭐하는 거야? 고등학교 체육관도 아니고.”

[Boooooooooooooooooooooo-!]

다시 야유가 쏟아졌다.

러셀 하트는 PWA를 완전히 얕봤다.

그리고 이걸 보고 있는 WWF 팬들은 큰 통쾌함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WWF 소속의 선수가 PWA와서 자신만만하게 제 할 말을 하고 있으니까.

그것을 의도한 링 세그먼트였다.

물론 나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체육관이면 어때? 결국에 내가 있는 곳이 최고의 무대인데.”

[Yeeeeeeeeeeeeeeeeaaaaahhhh!!]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네가 그걸 빌미로 도망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러셀. 우리 크루들을 박살 낸 대가는 치러야겠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모두가 내 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러셀은 전혀 기가 죽지 않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전개했다.

“난 네가 한 대로 돌려줬을 뿐인데?”

[Boooooooooooooooooooo-!!]

“아니, 정말이야. 다들 멍청하게 야유부터 보내지 말고 말 좀 들어봐.”

“들을 필요가 있겠어? 결국에는 내가 WWF에서 깽판을 쳤다는 거잖아?”

[Yeeeeeeeeeeeeeeaaaaaahhhhh!!]

“맞아, 신. 이해는 해. 넌 그런 식으로 관심을 끌어야 하는 거겠지. 그게 아니면 이런 작은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애들 장난이나 쳐야 하니까.”

러셀은 우리를 계속 비웃었다.

“하지만 너는 결국 선을 넘더군.”

“내가?”

“그래, 뭐…… 솔직히 네가 바트하고 싸우거나 말거나 내 알 바는 아니지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더군.”

WWF를 차지하겠다.

러셀은 거기에 불쾌감을 느꼈다.

“왜일까? 나는 왜 그런 헛소리가 불쾌해서 여기를 찾아오게 된 것일까?”

녀석이 내게 다가왔다.

“간단해. 이 말이 하고 싶었어.”

기어오르지 마라.

러셀은 결국 그 말을 입에 담았다.

나를 완전히 깔보는 표현이었다.

[Booooooooooooooooooooo-!!]

“적당히 해둬.”

“싫다면?”

“네가 회사를 떠난 이후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닫게 해줘야겠지.”

“재미있는데. 지금 해보던가.”

“미리 말해뒀지만 이런 누추한 곳에서 할 마음까지는 없어서 말이야. 게다가, 너에게는 미운 정도 있고.”

마지막 경고다.

그렇게 말한 러셀은 마이크를 내던지고 링 아래로 내려갔다. 그 등에 팬들이 마구 욕설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소리쳤다.

“러셀! 잠깐 기다려봐!!”

[Waaaaaaaaaaaaaaagggghhh!!]

“기왕 여기까지 오셨는데 경기라도 보고 가면 어때? 특등석으로 준비해줄 테니 말이야. 그러는 게 좋을걸?”

왜냐하면.

“여기 있는 개자식들이 너희의 그 잘난 회사를 박살 내버릴 테니까!”

[Yeeeeeeeeeeeeaaaaahhhhh!!]

그 말에 날 돌아보는 러셀.

그리고 이어.

중지 하나를 내 얼굴을 향해 치켜든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팬들이 러셀에게 다시금 야유를 보냈고, 나는 그런 가운데 생각했다.

‘반응이 이렇게 잘 나온다면 PWA VS WWF의 카드는 확정적이겠군.’

분명히 그렇게 될 터였다.

* * *

그로부터 이틀 뒤.

금요일 밤의 랙다운에서는 러셀 하트의 귀환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Booooooooo……!]

압도적인 환호와 아주 약간의 야유.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분석이 가능할 테지만 내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현장의 팬들이 WWF의 기존 팬들과 ACW 난민들로 나뉘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악역인 러셀이 야유를 받는 거라 딱히 나쁘진 않은 상황이었다.

선역이 야유를 받으면 문제가 심각해지지만 악역은 환호를 받아도 된다.

물론 장기적으로 환호를 받게 된다면 턴 페이스라고 하여 선역으로 캐릭터 변화를 꾀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렇게 되면 또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받던 환호가 줄어든다는 말이지.’

바트 맥센 같은 사람은 이런 현상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나는 어느 정도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악당이 드물게 좋은 짓을 하면 응원을 보내지만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면 흥미가 식는, 뭐 대충 그런 심리지.

러셀이 딱 그런 경우였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팬들이 녀석에게 보내는 환호는 ‘간만에 착한 짓 좀 했구나!’에 가까웠다.

러셀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뭐야. 다들 반응이 왜 이래?]

[Waaaaaaaaaaaaaaaggggghhhh!!]

[아하, 그렇군. 너희들 모두 수요일 밤의 그 이상한 고등학교 쇼를 볼 정도로 시간이 넘쳐나는 놈들이로군.]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환호는 계속 이어졌다.

일단 러셀이 직접 보여준 게 있으니 관객들은 자신들이 욕을 먹더라도 그 행동을 배드애스하게 여기는 것이다.

러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이참에 확실히 해두지. 너희들도 알겠지만 나는 딱히 바트 맥센을 위해서 PWA에 간 게 아니라고.]

그런 식으로 확실히 차이를 두고.

[신 그놈하고는 나름대로 미운 정이 들었으니 나름의 배려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내가 자신이 한 경고를 무시하고 다시금 WWF로 돌아온다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그게 올바른 방식 아니겠어?]

[Waaaaaaaaaaaaaaaagggghhhh!]

환상적인 반응이었다.

더 이야기할 것도 없었다.

그런 내 생각에 동의하듯 바트 맥센도 쇼가 끝나자 곧장 연락을 해왔다.

[자네 생각대로 가지.]

그렇다면 남은 건.

11월 말의 링 서바이벌을 위해 각각 남은 2개월 동안 팀을 꾸리는 것.

[다섯 명이 한 팀으로 여성부 한 팀과 남성부 한 팀이 붙는 계획이네.]

총 두 경기.

말인즉슨 우리는 여성 선수 다섯과 남성 선수 다섯을 선발해야 했다.

“천천히 조율해보죠.”

거기다 그 스토리도 필요했고.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대략적인 계획이 모두 갖춰져 있는 상태였다.

‘챔피언십을 보유하고 있는 시나와 오튼은 아마 그쪽으로 빠질 테고.’

그렇다면 일단 첫 번째로 싸울 팀은 팀 신과 팀 러셀으로 편성이 되겠지.

여성부 팀은 리키타를 중심으로.

다들 그런 부분까지는 별 무리 없이 계산에 두고 있을 터였다. 그것이 사실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남은 선수들은 각자 어떤 이유로 선발하고 제거 매치에 참가시킬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와 PWA가 각자 회의를 거쳐 나오는 결과물을 추려내 다시 이야기를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열린 PWA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PWA에서 고 다음으로 펑크와 큰 퓨드를 맺었던 선수가 누구였죠?”

“어? 글쎄…….”

바쿠가 일단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거기에 그렉이 대답했다.

“대니얼 라이언이겠지.”

“아, 맞아. 그 친구겠군.”

“그 녀석은 악바리 근성이 있지.”

“그럼 둘을 붙이면 되겠죠.”

“고는?”

“고는 아마 이번에 그쪽 내부 팀끼리 벌이는 경기에 참가할 겁니다.”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몇 년 전까지 링 서바이벌은 ‘브랜드 대전’이라는 콘셉트를 내걸었지만.

ACW에 대항하기 위해 슈퍼스타들이 버닝콩과 랙다운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면서 브랜드가 유명무실해졌다.

그로 인해 브랜드 대전이 아니라 각본을 통해 팀을 꾸리고 그 팀들이 맞붙는 형식으로 변화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터였다.

그쪽에서 내부 대립을 거쳐서 두 팀이 싸우는 경기가 하나. 그리고 팀 신과 팀 러셀이 맞붙는 경기가 하나.

위민스 제거 매치가 하나.

그리고 각각의 챔피언십.

“그렇게 구성이 되겠죠.”

대충 여덟 경기쯤 되려나?

제거 매치가 워낙 시간을 많이 잡아먹으니 페이퍼뷰 방영 시간은 광고를 합쳐 네 시간을 조금 넘기게 되겠지.

긴 시간이었지만 팬들은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메인이벤트인 팀 신과 팀 러셀의 경기를 기다릴 터였다.

“그러니까.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킬 정도로 멋진 경기를 보여줘야죠.”

“그러면 선수 선발이 중요하겠군.”

“펑크와 대니얼처럼?”

“예, 두 사람은 실제로 경기력도 좋은 편이고. 퓨드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좋은 매치 업이 될 겁니다.”

마치 나와 러셀이 그랬던 것처럼.

다들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하나 더.

“퓨드로 맺어져 경기에 나갈 친구들 이외에도…… 우리가 이곳에서 완성해낸 선수들 역시도 보여줘야겠죠.”

그를 위해 내밀 카드가 있었다.

드류 맥킨마이어.

상대는 누구라도 좋다.

녀석은 우리 PWA가 내밀 카드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진 놈이었으니.

아, 물론 나 다음으로.

* * *

대니얼 라이언에게는 절대 숨길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키’였다.

레슬러라기에 너무나도 작았다.

신발 벗고 측정했을 때 175cm. 신고 측정해야 겨우 180을 넘기는 키.

거기다 타고난 골격도 큰 편이 아니라 근육을 불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때로는 있는 법이었다.

그런 놈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서는 드라마가.

그것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의지가.

그렇기에 녀석은 작은 키로 월드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마치 현대의 레이 미스테리우스 같은 느낌으로.

하지만 그 외에는 완벽했다.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애초의 팬들의 기대를 받을 수 없었을 터였다.

녀석은 키가 작다는 점 외에는 정말로 완벽한 레슬러였다.

쇼맨십과 퍼포먼스, 연기력과 경기력. 디테일까지.

모든 부분이 거의 만점이었다.

키와 덩치를 타고 나지 못해 그 고생을 했다는 게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삶은 공평하지 않다.

우리가 그런 삶에 맞서서 할 수 있는 건…… 포기하거나, 맞서는 거지.

그리고 여기 그런 대니얼 라이언와는 정반대되는 성향의 남자가 있었다.

그 이름은 드류 맥킨마이어.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 남자는 일단 젊었고, 키는 198센티미터에 젊었을 적의 존 마이클스 같은 미모를 지녔다.

하지만 여기에서 수염을 기르면 남성미 넘치는 외모가 되어 프로레슬러로서의 카리스마도 갖출 수 있었다.

즉, 겉으로 봤을 때 딱 프로레슬링 챔피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다 부족했다.

스코티쉬 억양은 미국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몸도 프로레슬러라기보다는 모델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그뿐이랴.

마이크워크는 젬병에, 경기력은 부족했고, 기술 구사력도 아직 모자랐다.

더군다나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너무 착했다.

아니, 착하다 못해 호구였다.

프로레슬링 업계는 정글과 같은 곳이다. 가만히 누구 말만 들어주다가는 평생 스타가 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청년은 너무나도 순진했고, 그 때문에 많은 손해를 입으며 선수 생활을 했다.

녀석이 좀 더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알고 적극적으로 남자다운 모습을 보였다면 더 나은 커리어를 보냈으리라.

물론 그렇다고 해도 타고난 재능이 어딜 가지는 않아서, 적응기를 거친 이후에는 월드 챔피언이 되었지만.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건.

나는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두 사람이 좋은 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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