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
2009년 9월 14일 월요일.
모닝커피를 한 잔 들고 회사로 출근한 나는 곧바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움직이기 쉬운 저지로 갈아입고 나오자 체육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새벽 여섯 시.
루틴을 다시 돌릴 때였다.
근육을 키우기 위한 운동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하자면 섬세한 방법을 선호했다.
중량을 비교적 낮게 치기도 했고.
러셀도 비슷한 방식을 선호했다.
결국 우리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근육이 커버리면 몸이 움직이기 불편해져 경기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시나는 힘을 쓰는 파워 하우스 계통인데다가 스스로도 그쪽을 선호해 고중량으로 운동하는 편이고, 루틴도 비교적 빡빡하게 짰다.
그처럼 우리는 제각기 가진 스타일이나 방식에 따라 다르게 운동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말했듯 섬세한 스타일이었고, 일주일 단위로 끊어서 거기에 오전과 오후를 구분 지었다.
월요일 오전에는 하체부터.
레그 익스텐션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운동 강도를 올리는 게 포인트였다.
운동에만 신경을 쏟았다.
이 삶에 감사하기 때문이었다.
몸이 한차례 크게 망가진 경험을 하고 회귀해서인지 이상하게도 몸이 잘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행복했다.
근육이 붙고 힘이 충분히 있으며, 원하는 대로 기술을 쓸 수 있다는 게 말이다.
앞으로도 부디 큰 부상이나 문제없이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그걸 기원하는 듯한 운동.
그렇게 새벽의 스산한 체육관 공기가 몸에서 나는 열기로 채워질 즈음.
“오늘도 1번이구나.”
바쿠가 체육관에 도착했다.
그때부터는 속속들이 다른 선수들이 체육관에 도착했고, 각자 아침 운동을 마치는 동안 나는 휴식을 취했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수분을 보충한 뒤, 집에서 싸온 음식들로 배른 조금 채우고 한숨 잤다.
그리고 누군가 깨워 일어났다.
“선배님.”
보통은 드류 맥킨마이어였다.
녀석은 우리 락커룸의 막내였고, 따라서 이런 자잘한 심부름들을 맡았다.
“고마워, 드류.”
하품을 하고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정신을 깨우고 나면 선수들 전원이 참가하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링 트레이닝이었다.
먼저, 서른 명으로 구성된 PWA 로스터에서 세 개의 팀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A팀은 그렉 하트와.
B팀은 바쿠와.
C팀은 베이다와.
각각의 링 프로듀서들과 함께 링으로 올라가 기초 훈련이 개시되었다.
나는 C팀이 되었다.
그리고 그게 불행이었다.
낙법 위주로 진행되는 기초훈련으로 땀을 빼고 난 뒤, 각각의 링 프로듀서들은 다음 훈련을 진행했는데.
“쟈니, 좀 더 높게 뛰어봐. 걱정은 하지 말고. 내가 받아줄 테니까.”
A팀의 그렉 하트는 선수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봐주며 평가하는 편이고.
“아프냐? 너무 아프면 이 기술은 안 쓰는 게 좋겠지만. 아쉽구나. 네가 선보였던 기술 중에 가장 멋졌는데.”
바쿠는 잘 구슬리는 편이었고.
“좋아! 신! 컴 온!!”
베이다는 잘 흥분하는 편이었다.
“…….”
“뭐해? 일단 덤벼!”
이 양반.
회삿돈으로 요새 심장 관련 질환도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는데다가 체중도 많이 감량해서 기운이 넘쳤다.
내일 당장 현역으로 복귀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기운을 되찾은 베이다가 요새 은근히 날 보면서 먹잇감을 보듯 입맛을 다신다는 부분이었다.
나로서는 오싹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이 실제가 되었다.
콰앙!
터엉!
퉁!
베이다는 날 몇 번이고 던졌다.
“크하하하! 역시 넌 최고야!!”
그러면서 기뻐했다.
아니, 이해는 한다.
프로레슬링은 결국 합의 예술.
기술 하나를 시전하더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주느냐가 무척 중요했다.
훈련 내용에도 이 기술을 받아주는 동작, 다시 말해 ‘셀링’이 들어갔는데.
그런 면에 있어서 내가 완벽하게 해주니 옛날 생각도 나고 기쁜 거겠지.
문제는 그러면서 C팀 소속의 다른 선수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거였지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베, 베이다. 여기까지 하죠.”
“아, 또 너무 오래했나?”
“예, 슬슬 넘어가죠.”
“어, 조금만 더 하면 안 될까? 너와 하면 나도 배우는 게 좀 있어서.”
“……지금 배워서 뭐합니까.”
그렇다고 베이다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자각이 없는 녀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훈련을 하면 왠지 모르게 눈이 돌아가버린다는 모양이다.
‘나한테 페로몬 냄새라도 나나.’
곰이나 호랑이가 환장하는 거.
그게 아니라면 베이다가 저렇게 눈이 돌아갈 이유도 딱히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음 선수가 올라갔다.
“오호, 너로군.”
베이다의 눈이 다시 빛났다.
대니얼 라이언이었다.
베이다 같은 빅맨과 비교하자면 거의 꼬마나 다름없는 작은 덩치였다.
하지만 베이다는 그를 인정했다.
그리고 대니얼 역시도 보여주었다.
자신이 어떤 남자인지.
“크하압!!”
두 사람이 맞붙기 시작한 링 위.
대니얼은 베이다의 파괴력에 밀리지 않고 그와 대등하게 공방을 펼쳤다.
지금은 WWF에 있는 사모아 고와 같은 그라운드 테크니션 스타일.
하지만 두 사람의 덩치 차이가 있기에 대니얼 라이언은 조금 더 몸을 던지는 경기 방식을 사용했다.
킥커 스타일이 혼용되었다고 해야 할까.
드롭킥부터 시작해 온갖 킥으로 베이다를 계속해서 공격했다.
뻐억-!
그 소리는 살벌하다 싶을 정도.
그런데 반대편의 베이다는 껄껄 웃으며 공격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좋아! 대니얼! 최고다!”
베이다가 그를 극찬했다.
그 뒤로도 이름을 불린 선수들이 링 위로 올라가 베이다와 직접 상대를 하며 훈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렉이나 바쿠와 달리 베이다가 일일이 선수들을 상대하는 걸 지켜보는 맛이 있기는 했지만.
드류 맥킨마이어가 링으로 올라가자 나는 그쪽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허, 너로군.”
베이다가 노골적으로 웃었다.
그는 현재, 드류를 ‘수염 난 애송이’ 취급하면서 마구 굴려대고 있었다.
딱히 틀린 평가는 아니었다.
실제로 드류는 이번에 회사 측의 권유로 수염을 길렀고, 아직까지는 자신을 증명한 적이 없는 애송이였으니.
어쨌든 그로 인해 드류가 베이다에게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예, 옙!”
잔뜩 긴장한 드류는 훈련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고, 실수가 나올 때마다 베이다는 마구 호통을 쳐댔다.
“야야! 낙법 제대로 안 쳐?!”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더!!”
올해 2년 차 신인인 것을 감안하고 보자면 실력 자체는 평범한 정도인데.
그런데도 몇 가지 문제로 인해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문제가 나타났다.
“대니얼!”
얼마 후, 드디어 체력이 다한 베이다가 대니얼을 링으로 불러내고 아래로 내려가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대니얼 라이언 VS 드류 맥킨마이어.
키 175cm와 198cm의 대결.
물리적으로 성립할까?
그렇기에 섬세함이 필요했다.
격투기에는 실력의 공정함을 보기 위해 체급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그런 개념이 비교적 희미한 편이었다. 헤비웨이트와 크루저웨이트로 구분 짓는 정도?
뻔한 말이지만.
이게 결국 드라마기 때문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증명되듯이 체격의 크고 작음은 극적인 드라마 요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아이러니했다.
클리셰와는 다르게, 크기가 작은 대니얼이 더 제왕적인 면모를 풍겼다.
신인인데다가 아직 팬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 드류는 도전자였고 말이다.
물론 이건 여기에서뿐이었고, 링 위에서의 드라마는 드류가 대니얼을 크기로 깔보는 구도가 만들어졌지만.
‘과연 그게 맞는 것일까.’
나는 그런 고민을 하면서 링 위에서 벌어진 참극(?)을 계속 지켜보았다.
“자! 드류! 한 번 더!!”
“옙!”
기술 시전을 리드하고 있는 대니얼과 필사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드류.
‘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이번 주에 경기를 갖는 것으로 드류의 캐릭터를 좀 변화시켜볼까.
* * *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고릴라 포지션에 서있던 드류 맥킨마이어는 그런 고민에 순간 휩싸였다.
“드류! 준비해!”
“얼타지 말고!!”
“예, 옙!!”
오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백스테이지의 크루들이 만날 때마다 오늘 경기에서 잘 따라가라고 말하는 통에 화장실을 계속 들락거렸다.
신과의 경기.
얼마 전, 섬머 수플렉스에서 역사를 세운 남자와의 매치.
솔직히 말해 긴장을 안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
스코틀랜드에서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만으로 미국에 건너온 드류는, 그럴 마음조차도 먹지 않았다.
……단지 오늘이 아닌 다음 달 정도에 경기를 가졌다면 마음의 준비가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 신이 다가왔다.
특유의 검은 복장에 선글라스.
그가 알던 동양인들과는 다른 이 남자는 무대 위에서 태양처럼 빛났다.
하지만 링 아래에서는 조용하고 사근사근한 성격에 가까워서, 그 두 갭이 나름대로 드류를 편하게 했다.
“드류.”
“아, 선배님.”
“너무 겁먹지 말고. 내가 리드하는 대로만 따라와.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드류.
그리고 신이 먼저 링으로 나갔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그 테마곡 아래에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팬들의 환호. 드류는 몸에서 이는 전율을 느끼며 모니터를 체크했다.
링에 오른 그가 재킷을 벗고는 특유의 껄렁한 태도로 마이크를 잡았다.
[누구든 나와보라고…… 같은 말은 안 하겠어. 솔직히 말해 내가 급이 있잖아? 누가 됐던 내게 맞서서 싸울 용기가 있는 놈이 나왔으면 좋겠군!]
[Yeeeeeeeeeeeeeeeaaaahhh!!]
“…….”
마이크워크가 저런 내용이었나.
드류는 불길함을 느꼈다.
어머니의 스카치 파이가 그리웠다.
하지만 때는 찾아왔다.
“드류! Go!”
음향팀장의 외침과 함께.
백파이프의 멜로디가 이어졌다.
그와 함께 이어지는 북 소리.
[쿠구구쿵쿠궁……!]
영화 터미네이터의 오프닝처럼.
천천히 심호흡을 한 드류는 눈앞의 커튼을 걷고 링을 향해서 나아갔다.
회사의 방침에 따라 바꾼 복장은 검은색의 긴 노 슬리브 코트와 경기복.
신화 속에 나오는 전사를 연상케 하는 큰 키와 남자답게 잘생긴 외모는 분명히 스타로서 잠재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은 아직 애송이였다.
그렇기에 팬들의 야유를 들은 드류 맥킨마이어는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Booooooooooooooooooooo-!!]
너에게는 자격이 없다.
그렇기에 나오는 야유.
드류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그러자니 신이 커버를 쳤다.
“뭐야. 뭐. 음악 좀 꺼봐. 꺼.”
재치 있는 커버.
드류가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자 링 위에 서있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류 맥킨마이어? 뭐야. 저놈은. 바트 맥센이 미래의 WWF 챔피언이라면서 소개했던 유망주 아니야?”
“…….”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무것도 아닌 꼬마가 수염까지 길렀군. 멋진데.”
드류를 비웃으며 조롱하는 신.
그런 가운데, 드류는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행동의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마치, 지금 위에서 자신을 계속 조롱하고 있는 신이 명령을 한 듯했다.
입을 다문 채 링으로 올라간 드류.
두 사람이 마주보았다.
[Uooooooooooooohhhhhh……!]
거기에서는 또 환호가 나왔다.
드류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텔레비전 앞과 트럼프 아레나의 관객들이 보기에는 자연스러웠다.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198센티미터라는 거대한 키의 드류와 188센티미터인 신의 만남.
페이스 투 페이스.
근육질에 마초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두 사람의 대면은 그것만으로도 팬들이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프로레슬링은 결국 쇼다.
그렇기에 외모가 무척 중요했다.
덩치는 커야 하고 근육은 많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모르는 사람이 척 보기에도 깜짝 놀랄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은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재능이었고, 하지만 그렇기에 드류 맥킨마이어를 옥죄는 사슬과 같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어쩌지?’
백스테이지의 친절했던 선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눈앞에 있는 것은 당장 자신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야수.
그리고 그 동작을 능히 실현할 수 있는 실력과 위상을 가진 괴물이었다.
“…….”
“…….”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두 사람이 침묵하는 가운데.
팬들의 챈트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링 안은 완전히 콜로세움이었다.
신이 마이크를 들었다.
“뭐라도 말을 좀 해보지 그래.”
그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드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원래 이런 계획은 없었다.
경기장에 입장하고, 신이 마이크를 들고 드류를 불러내며 시작되는 경기.
그 정도 러프함이 전부였다.
OVW나 WWF 때와는 달랐고, 드류는 그런 PWA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팬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럼에도 경기는 계속 가져서 반응이 계속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이 멋진 페이스 투 페이스도 결국은 상대가 신이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
그런 상황 속에서 신은 노골적으로 대답하라는 듯 시간을 끌었고, 팬들의 반응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드류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이를 어쩌지?’
고민 속에서 더듬거리며 손을 뻗었지만 신은 마이크를 빼앗겨주지 않고 그대로 뒤로 당겨서 망신을 주었다.
그러더니.
쫘악-!
힘껏 뺨을 날렸다.
“윽?!”
갑작스러운 상황에 순간 놀라 물러난 드류는 팬들의 얼굴을 발견했다.
웅성거리는 그들의 모습과 지금 얻어맞은 충격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어질 행동은 당연했다.
“우어어어어!!”
신의 안면을 노리고 날린 박치기.
글래스고 키스.
쩌억-!!
터프한 드류의 반격을 보고 순간 놀란 팬들이 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