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85화 (385/634)

385.

왜일까.

대체 무슨 이유로 오늘 PWA는 위클리 쇼의 오프닝에서 드류 맥킨마이어와 같은 사나이를 내세운 걸까.

간단한 이유였다.

그가 지난주 쇼에서 보여준 모습이 팬들의 뇌리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AK가 실제 부상으로 쓰러지자 보여준 매너 있는 모습은 분명히 실제 드류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었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안 그래도 요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드류라 다들 기대하는 것이었다.

운이 좋았다.

‘원래 이럴 예정은 아니었지만.’

AK의 부상이라는 현실을 현재 드류가 처한 각본과 절묘하게 섞어내면서 스토리가 훨씬 더 풍부해졌다.

이런 각본에 대해서 내 설명을 들은 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어떻게 경기 중간에 그런 디테일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거냐?”

“AK의 부상은 사고였는데.”

“그걸 단 한순간에 생각했다고?”

다들 날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연스러웠다.

드류 맥킨마이어가 어떤 식으로 커리어를 보내고 어떤 때 가장 큰 반응을 얻었는지 이미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캐릭터를 기반으로 생각했을 때는 분명 드류가 AK를 돕는 것이 올바른 흐름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AK가 입원한 병원에서 일요일 아침에 촬영된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먼저, 가죽 재킷에 청바지 차림의 드류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Waaaaaaaaaaaaaaggggghhh!!]

환호를 보내는 팬들.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그 모습은 마치 할리우드의 아이콘처럼 느껴졌다.

좀 오버해서 제임스 딘?

일반인들 사이에서 그는 확실히 거대한 체격이었고, 천천히 걸어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만으로 그림이 됐다.

그리고 두 남자가 만났다.

AK 스타일스.

드류 맥킨마이어.

목적은 병문안.

쾌유를 기원하는 꽃다발을 건네고.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나눴다.

마치 스포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내 인사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드류. 그 등에 대고 AK가 슬쩍 물었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냐.]

[…….]

[네가 원래 이런 짓을 할 놈은 아니었잖아? 드류 맥킨마이어.]

그것은 방송을 보고 있는 관객들도 내심 느끼고 있던 부분일 터였다.

그랬다.

이전까지만 해도 드류 맥킨마이어는 ‘Chosen one’ 다시 말해 ‘선택받은 자’로 건방진 신인 악역이었다.

일단 경험을 쌓게 하고자 WWF에서 쓰던 캐릭터를 계속 사용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건방진 신인 악당이었던 드류의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답은 없이, 드류는 방을 나섰다.

그렇게 여운을 남긴 채 끝난 백스테이지 세그먼트.

이후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각각의 선수들이 링에 나와 자신의 실력을 뽐냈고 그런 와중 회사에서는 메인이벤트 경기를 계속 홍보했다.

드류 맥킨마이어 VS 대니얼 라이언.

싱글 매치.

* * *

대니얼 라이언은 훌륭한 선수였다.

비록 키도 작은데다가 ‘비교적’ 볼품없는 외모를 자랑했지만 그런 건 정말 아무 상관도 없을 정도였다.

드류 맥킨마이어는 생각했다.

그가 이 업계에서 이루어온 것들은 정말로 대단했으며, 더군다나 팬들도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도전자다.

그래야만 했다.

이제는 그 사실을 충분히 느꼈다.

경기의 중반부.

초반부터 엎치락뒤치락하던 경기는 대니얼 라이언에게 주도권이 갔다.

그리고 팬들은 175센티미터의 대니얼이 2미터 가까운 드류를 몰아붙이는데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대니얼에게는 그동안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수많은 강자들을 쓰러뜨려온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었다.

팬들에게 아무런 드라마도 보여주지 못하고 건방진 신인에 불과한 드류가 야유를 받았던 건 당연했다.

안타깝지만 그건 악역으로서도 성장하는 게 아니었다. 신은 그 부분을 꼬집으며 드류에게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그건 본인에게도 알맞았다.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Dainel Ryan!!]

짝! 짝! 짝짝짝!

[Dainel Ryan!!]

짝! 짝! 짝짝짝!

[Dainel Ryan!!]

짝! 짝! 짝짝짝!

대니얼 라이언은 위대한 선수다.

그것을 모두가 인정했다.

하지만.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그들은 드류에게도 챈트를 보내주며 두 사람을 함께 응원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드류 맥킨마이어는 선수로서 그다지 이렇다한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Waaaaaaaaaaaaaaggggghhhh!!]

팬들의 환호 속에 이어지는 경기.

대니얼 라이언을 믿고서 날린 헤드벗, 글래스고 키스가 안면에 꽂혔다.

쩌억-!

하지만 대니얼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야아앗-!”

고함과 함께 날아드는 킥.

퍼억-!!

그게 복부에 꽂히고 드류는 순간적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걸 느꼈다.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다시 날아드는 킥.

쩌억-!

관자놀이에 꽂히는 킥을 맞은 드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끼며 그대로 앞으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이어지는 핀 폴.

1, 2……!

겨우 벗어났다.

“허억, 허억.”

드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긴 머리가 시야를 어지럽혔고 팬들의 환호 속에 그는 어떻게든 이 경기에서 이기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이기고 싶다.

저 남자로부터.

그렇기에 자연히 표정이 일그러졌고 드류는 투지에 가득찬 얼굴로 반대편의 대니얼 라이언을 노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다가왔다.

이어지는 건.

무자비한 스톰핑이었다.

쿵-! 쿵! 쿵쿵! 쿠웅-!!

팔을 붙잡고 당긴 상태에서 일부러 머리를 노리고 집요하게 밟아대는 기술. 보다 악역에 가까운 무브였다.

머리가 마구 흔들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드류는 기가 꺾이지 않고 대니얼을 노려보았다.

그건 실제 감정이었다.

이기고 싶었다.

신과의 경기에서 깨달았다.

현실과 각본의 드류 둘 모두.

이 업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거대하고 잘생긴 외모는 분명히 쉽게 가질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었다. 드류는 그것을 절절히 느꼈다.

그럼에도.

이기고 싶다.

더 위로 올라가고 싶다.

그런 드류의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졌고 자연스레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그로서 팬들은 조금씩 드류의 등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기 시작했다.

그의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개중에는 신도 있었다.

‘이 업계에서 뭘 이루고 싶은 거냐?’

한 달 정도 전, 그와 경기를 치르면서 들은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솔직히 좀 놀랐었다.

한창 경기를 치르고 있는 도중에 상대에게 그런 질문을 받게 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드류는 이렇게 대답했다.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그 마음에 변화는 없었다.

신처럼 한 시대를 이끌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이 ‘거대한’ 사내를 쓰러뜨려야만 했다.

대니얼 라이언.

“이야압-!”

특유의 째지는 기합과 함께 달려온 대니얼이 그대로 드롭킥을 날렸다.

콰앙-!

그에 맞고 코너까지 튕겨져 날아간 드류는 턴버클에 강하게 충돌했다.

“커헉?!”

비명이 절로 나오는 통증.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가는 드류를 보고 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반대편의 대니얼 라이언이 피니시 무브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러닝 니.

신과 같은 기술.

하지만 신이 상반신을 든 채 무릎을 드는 ‘니 리프트’ 형식을 취하는 것과 달리 대니얼 라이언은 상반신을 눕히며 날아가는 차이가 있었다.

PWA로 이적한 이후로 여기 맞은 상대는 모두가 쓰리 카운트를 내주고 말았던 흉악하기 그지없는 기술.

특히나 안면을 인정사정없이 까버리는 대니얼 특유의 악바리 같은 기술 시전이 팬들을 납득하게 했다.

그 기술이 나오려고 했다.

반대편 코너에 등을 대고 있던 대니얼 라이언이 드류 맥킨마이어를 향해서 그대로 돌진해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에 맞선 드류 맥킨마이어의 피니시 무브는 사실 ‘퓨처 쇼크’라는 건방진 이름의 기술이었다.

미래를 책임지고 세상을 놀라게 할 남자! 드류 맥킨마이어의 피니시 무브!

그런 의미로 바트 맥센이 붙여주었던 기술의 이름이 바로 퓨처 쇼크.

상대방의 양팔을 붙잡고 몸을 다리로 묶은 상태에서 들어가는 DDT는 확실히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드류 맥킨마이어가 점차 회사의 관심을 잃게 되면서 퓨처 쇼크라는 이름은 조롱의 뜻으로 변했다.

결국 OVW로 다시 내려간 드류는 계속해서 그 기술에 바트가 붙여줬던 퓨처 쇼크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팬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었다.

Chosen One은 죽었다.

WWF의 미래를 책임질 남자였던 드류는 바트 맥센의 푸시라는 날개가 꺾인 채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면에서.

한참을 쓰러져 있던 그는.

PWA에 와서 드디어 깨달았다.

미래는 결정되지 않았다.

이제부터 만들어나가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는 ‘검’을 쥐었다.

이름하야.

‘클레이모어’.

스코틀랜드의 전통 검.

달려오는 대니얼에게 맞서 힘껏 들어 올린 드류의 오른발이 그대로 검이 되어 안면을 강하게 걷어찼다.

쩌억-!!

[Uoooooooooooooohhhhhh-?!]

깜짝 놀라는 팬들.

2미터에 달하는 드류의 싱글 레그 드롭킥에 맞은 대니얼의 몸이 그대로 뒤로 반 바퀴를 회전했다.

쿠웅-!

그리고 떨어졌다.

드류의 핀 폴이 이어졌다.

마지막 순간에 나온 멋진 반격기.

거기에 팬들은 환호를 보냈고 심판이 세는 카운트를 함께 외쳐주었다.

[1……!]

[2……!]

[3……!!]

땡땡땡!!

[Waaaaaaaaaaaaaaaaggghhhh!!]

팬들의 어마어마한 환호 속에 경기가 종료되었고 드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위로 번쩍 들었다.

“오오오오-!!”

자신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지금의 승리를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거기에 호응해주는 관객들.

뒤를 이어 자리에서 일어선 대니얼이 드류의 등을 툭툭 두들기면서 그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드류 맥킨마이어는 예전과 달리 더 이상 ‘Chosen one’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지금,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이 그때보다 더 강하게 팬들의 호응을 얻고 있었다.

* * *

WWF에서 자주 사용하는 ‘구린 부킹’ 중에서 단연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킹은 바로, 남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Bully’ 스타일 악역이었다.

물론 그것도 잘만 쓴다면 미드 카더 정도의 악역에게는 좋은 역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Bully 기믹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건 하이틴 드라마가 아니니까.

프로레슬링이란 무엇인가?

이 쇼에 존재하는 각각의 요소들이 최종적으로 가리키는 건 어디인가?

영광이다.

명예다.

그 상징물이 바로 ‘챔피언’이었다.

바로 그것이 팬들의 호응과 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가치를 지니고 만들어진 ‘프로레슬링’이었다.

그런데 악역이 쇼에 나와서 자신보다 약한 선수들을 괴롭히기만 한다면 팬들이 과연 몰입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악역을 누군가 때려잡으면서 선역을 띄우는 건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Bully형 악역과 거기 당한 약한 선역의 위상은 나락으로 빠지고 마는 것이었다.

드류가 바트에게 받았던 ‘Chosen One’이라는 기믹도 그와 비슷했다.

게다가 드류 본인의 성격과 정반대라는 점도 있어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와 다른 기믹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 선택은 정확했다.

“드류의 반응이 많이 올라왔더군.”

“확실히 지금이라면 링 서바이벌에 내보낼 멤버로 포함시켜도 되겠어.”

다들 드류를 그렇게 포함했다.

10월 3주차 쇼가 끝나고.

원래 계획보다 1주 빠르게 우리는 그를 턴 페이스 시키는데 성공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느냐?

“일단 드류의 경기 자체가 꽤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죠.”

PWA로 이적해온 이후 그래도 어느 정도 승리를 챙겼던 드류였지만.

일류 선수들과의 경기에서는 항상 패배했다. 그 시작이 바로 나였다.

자기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던 드류였지만, 결국 패배했고 그것은 그 변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승리에 목말라하던 드류는 대니얼과의 경기에서 다시 한 번 패배하고.

“여기에서 예기치 못했던 일이지만 AK가 대니얼이 원래 맡기로 했던 역할을 대신 맡아주었죠.”

드류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역할로.

Chosen One에서 흙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이 그렇다고 울부짖던 남자.

그는 나나 대니얼 같은 일류들과의 경기를 거치며 PWA에서 깨달았다.

비겁한 승리에는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AK에게서 얻을 수 있었던 승리를 거절하면서 팬들로부터 자신이 변했음을 확실히 보여주었고.

결국 대니얼로부터 승리를 따냈다.

“지금이 훨씬 낫군.”

“이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AK가 링 서바이벌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딱히 좋지는 않지.”

“그 부분도 어떻게든 해야죠.”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거기에 그렉이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WWF 팬들에게 어필할 선수가 또 있을까?”

“딱 한 명 있습니다.”

“누구?”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PWA 크루에서 생각하고 있는 링 서바이벌의 멤버는 다음과 같았다.

일단 팀 캡틴으로 신.

대니얼 라이언.

드류 맥킨마이어.

AK 스타일스.

쟈니 에이스.

이렇게 다섯 명을 데리고 WWF로 갈 거라고 생각했으나, AK의 부상으로 그 계획이 어그러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AK 이외에 한 명이 더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가 누구냐.

“핀 발로입니다.”

“……뭐?”

다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핀 발로라니.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얼굴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그는 드류처럼 드라마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WWF에 어필을 할 수 있는 기믹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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