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86화 (386/634)

386.

핀 발로.

얼마 전 드디어 몸을 담고 있던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와 계약이 끝나고, 그는 현재 PWA로 건너온 상태였다.

그 계약에는 일본 프로레슬링 쪽에서 레전드급 선수로 예우를 받았던 베이다가 참가해서 도움을 주었다.

애초에 일본 프로레슬링과 관련되어 최근까지도 반쯤 자문가로서 활약했던 베이다이니만큼 접촉은 손쉬웠다.

그렇게, 내가 드류와 함께 픽한 핀 발로라는 카드가 PWA로 넘어왔다.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링 사이즈에 적응하는 훈련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준비 중이었다.

일본이나 멕시코에 비해 북미의 링 사이즈는 좀 더 커서 적응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실수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핀 발로라는 선수에 대해서 다들 평가를 내렸는데.

일단 티파니.

“어, 괜찮을까요?”

바쿠.

“……테크닉은 쓸 만한데.”

그렉 하트.

“일단 발음부터 교정해야겠는데.”

그 외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핀 발로라는 남자에게 딱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직 단 한 사람.

베이다만이 껄껄 웃으며 핀 발로라는 남자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저 자식, 요즘 놈들답지 않게 제대로 된 놈이야! 피에 미친놈이지!”

“응? 그게 무슨…….”

“일본에서 워낙 잔혹한 경기를 펼쳐서 붙은 별명이 ‘피의 귀공자’였지.”

일본 놈들 감성이 참 묘해.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피의 귀공자’라니 어딘가 좀 오그라든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다들 그런 설명을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식으로 ‘커버’를 친 건가.”

“게다가, 동양인들은 아무래도 키가 작으니 그쪽에서도 먹혔던 거겠지.”

“……?”

바쿠의 악의 없는 인종차별.

거기에 피식 웃은 내가 말했다.

“그렇군요.”

“아, 신. 그게 아니라.”

“이 동양인 놈들아.”

“…….”

다들 피식 웃었다.

그중에서 베이다만이 나와 키가 비슷했지 나머지는 몇 센티씩 더 작았다.

그런 베이다도 선수 생활 동안 누적된 척추 부상,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키가 줄어든 상황이었고.

거기다, 현역들과 비교해도 나는 꽤나 키가 큰 편에 속하는 레슬러였다.

어쨌거나.

“일단 베이다. 그 친구, 일본에서 하던 식으로는 레슬링 못 합니다.”

“뭐, 왜?”

“여기는 심의가 있으니까요.”

일본이 심의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미국 쪽 텔레비전 시장이 잔혹성 부분에서는 보다 더 엄격했다.

그래서 베이다가 바라는 대로의 잔혹한 레슬링은 펼치기 힘들 터였다.

그렇다면 장점이 무엇인가?

핀 발로라는 선수의 장점은?

“기믹이라고 했지?”

“그런데, 일본 쪽 방송을 봤을 때는 그냥 단순한 악역처럼 느껴지던데.”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

“확실히. 지금 다들 느끼시는 부분들이 전혀 틀린 말들은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설명을 시작했다.

핀 발로.

키는 180센티미터.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키.

하지만 여기에서 정말 현격할 정도로 그 평가를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다.

체중이 크루저웨이트 급이었다.

각본상으로는 86kg이지만 실제로는 73kg쯤 되는, 정말 마른 체격이었다.

거기다 아일랜드 출신으로서 그 특유의 발음 때문에 마이크 워크에서 불리한 부분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난 핀 발로를 골랐다.

나.

대니얼 라이언.

드류 맥킨마이어.

쟈니 에이스.

이상의 걸출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잇는 마지막 픽으로서.

“그 친구 기믹이 가진 특별함은 ‘중요한 무대’에서만 발휘가 되거든요.”

“……어떻게?”

“일단 본인에게 직접 들어보죠.”

나도 그건 확인을 해야만 했으니.

아직까지 핀은 그 ‘특별한 기믹’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생각은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따라서 만약 그쪽이 아이디어를 보여준다면 일이 더 빨리 진행될 터였다.

그렇게 우리들의 부름을 받고 회의실로 온 핀 발로는 내가 전생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젊은 모습이었다.

핀 발로는 WWF에서도 활동했고, 그때도 그 특별한 기믹으로 말미암아 유니버스 챔피언까지도 등극했었다.

그럼에도 나이가 많았고, 작은 남자를 신용하지 않는 바트 맥센의 성향으로 인해 크게 중용 받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눈앞의 핀은 젊었고, 자신의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 멋진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어, 안녕하십니까.”

“그래, 핀. 우리가 지금 자네를 여기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기믹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혹시 생각해둔 게 있나?”

“자네가 PWA에서 쓸 기믹 말이야.”

“…….”

각자 한마디씩 이야기하는 게 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우리의 모습이 어디의 집단지성체처럼 느껴졌다.

핀도 좀 당황한 듯했다.

“어, 옙. 글……쎄요.”

“편하게 말해도 돼.”

“음, 이게 미국 스타일이군요.”

“딱히 미국 스타일은 아니고. 그냥 PWA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

바쿠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랬다.

일반적으로 인디 단체를 제외하고는 캐릭터나 기믹을 회사에서 짜주었다.

물론 선수도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건 고참들의 경우고 신인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쇼의 균형을 위해 회사 쪽에서 기믹을 통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해야 기믹의 저작권을 회사 측에서 가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기믹 저작권을 딱히 행사할 마음이 없었다. 그것은 선수를 회사에 묶어두기 위한 짓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물어봤다.

“핀.”

“옙.”

“네 캐릭터야. 걱정 말고 말해봐.”

“그러시다면…….”

핀이 잠시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

“락커룸 좀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녀석은 고등학교 시절에 썼을 법한 낡은 공책을 들고 왔다.

긴장한 듯한 얼굴이 인상적으로 녀석은 우리를 보며 확실하게 말했다.

“어, 일단 비웃지 말아주십시오.”

“그야 물론이지.”

“무슨 기믹이기에 그래?”

“제 내면의 악마를 꺼내는 겁니다.”

“……?”

“응?”

다들 의아해했다.

하지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기믹 자체는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모양이군.

그걸 일본 쪽에서 짬이 차자 아이디어를 내서 선보였던 거고 말이다.

“이렇게, 말이죠.”

그럼에도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자 꽤나 필사적이었는데.

“……어.”

핀 발로는 그림을 못 그렸다.

그것도 더럽게.

개발새발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그림을 보고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와중에 핀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디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는데.

“어, 저는 인간은 누구나 악한 면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잔혹하고 강렬한 부분이요. 사람들은 이걸 두려워하면서 이걸 악마라고 부르는데…….”

“그, 그렇군.”

“저는 이런 내면의 악마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정말로 잔혹해질 수가 있다는 거죠.”

“재패니즈 망가를 보고 따왔나?”

바쿠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는 설정이었지만 핀 발로는 당황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오히려 마벨 코믹스 같은 곳에 나오는 캐릭터에서 따온 겁니다.”

“너무 만화적인데.”

“그, 그런가요.”

“이게 그 특별한 기믹인가? 신.”

그렉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핀의 그림만 봤을 때는 좀 만화적으로 보였지만 해석의 여지에 따라서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설정이었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잔혹함을 페인팅으로서 표현하는 아일랜드의 선수.

그게 바로 핀 발로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지.

물론.

“…….”

“으음.”

일단은 그걸 보여줘야겠지만.

* * *

내면의 악마를 불러낸다.

얼핏 듣기에는 유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유치함을 유치하지 않게 포장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었다.

다들 의심은 했지만.

이미 핀 발로의 기믹이 어떤 것인지 심상을 공유하고 있던 나는 곧바로 그에게 도움이 될 사람을 초청했다.

케이트 로낙스.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로, 우리와 협업하며 선수의 로고나 경기복을 많이 디자인해왔다.

PWA에 도착해 핀의 아이디어를 들은 그녀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면의 악마를 드러낸다고요?”

“예, 옙.”

“재미있네요. 디자인 레퍼런스는 지금 여기 보여주신 게 전부인가요?”

역시 전문가다웠다.

대부분은 핀의 못 그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디자인적인 지식이 있는 만큼 케이트는 곧바로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다 떼놓고서 생각하면 핀 발로의 ‘데몬’ 기믹은 크로우 같은 프로레슬러들이 자주 하는 페이스페인팅의 확장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었다.

바디 페인팅에 가깝달까?

그렇기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서 매주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생겼지만.

데몬 폼이 워낙 멋있다 보니 오히려 그로 인한 희소성이 생겨날 정도였다.

핀 발로의 아이디어를 들은 케이트가 즉석에서 데몬 디자인을 시작했다.

“이런 느낌은 어떨까요.”

검은색과 붉은색 톤을 중심으로 해서 얼굴에 악마처럼 페인팅을 하고 턱 부근에 사납게 이빨을 그려 넣는다.

“일단 얼굴은 이런 느낌?”

“아주 멋진데요.”

“이건 이빨이죠?”

단박에 만족하는 핀과 달리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내가 알고 있는 디테일에 대해서 확인을 했다.

“예, 악마의 이빨을 표현한 거죠.”

“그럼 턱 밑부터 쇄골 부분까지 입을 벌린 듯이 표현해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말한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레퍼런스가 될 자료를 찾았다.

마벨 코믹스에 나오는 심비오트 캐릭터들의 얼굴과 흡사한 느낌이었다.

특히 놈들이 입을 벌리고 포식자로서의 이빨을 드러냈을 때 같은 느낌.

실제로 저작권 쪽으로 희미했던 일본 프로레슬링에서는 이런 코믹북 캐릭터들을 많이 따라했다고 했지.

“오, 딱 이런 느낌입니다.”

“……잠깐만요.”

케이트가 다시 스케치를 이어갔다.

턱에서부터 쇄골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송곳니와 혀까지도 그려 넣었다.

그리고 가슴 부분 전체에 검정색을 칠하고 마치 심비오트가 몸을 잠식해나가는 것처럼 얇은 선을 그렸다.

‘이거지.’

그렇게 완성된 데몬 발로.

심비오트 스타일의 디자인에서 붉은색 라인을 그려 넣으면서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도 자연스럽게 피해갔다.

“멋지네요.”

“바로 이겁니다.”

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전문가의 솜씨로 멋지게 포장되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예, 지금 작업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이요?”

“예, 사람들이 ‘내면의 악마’를 불러내는 설정을 잘 이해를 못해서요.”

물론, 설명이 좀 부족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기믹의 카리스마를 확실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그 완성품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봐야만 했다.

“좀 걸릴 텐데.”

“말리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예, 여러 번 덧대어 발라야 하니까 아무래도 그런 시간이 좀 걸리겠죠.”

“저희 선풍기 많이 있습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작업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핀이 레슬링 기어를 갖춰 입었고 그 상반신에 케이트가 붓질을 해나갔다.

일단은 라인을 잡는 게 먼저였다.

디자인을 신중히 확인하며 붉은색, 검정색, 하얀색을 각 위치에 칠했다.

검정색은 베이스라인.

하얀색은 이빨 모양대로.

붉은색은 악마적인 느낌이 나도록.

그리고 말린 뒤, 색을 여러 번 칠해서 덧입히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점심쯤부터 시작된 작업이 완성되어가는 동안 나는 핀과 케이트의 옆에서 작업을 계속 지켜보았다.

핀은 마른 체격이었지만 데피니션은 확실하게 좋은 남자였다. 복근도 선명했고 가슴 근육도 좋은 형태였다.

비록 어깨가 좁고 키가 작다는 단점이 존재했지만, 그걸 커버하기 위해 지금 이렇게 페인팅을 하는 거였다.

내가 아는 핀 발로가 나타났다.

나는 싱긋 웃으며 물었다.

“……핀.”

“예, 신.”

“링 서바이벌에서 만약 데몬 폼으로 데뷔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냐?”

“어, 제, 제가요?”

순간 당황하는 핀.

그럴 만도 했다.

핀 발로는 일본 쪽에서나 유명한 선수였지, 북미 쪽에는 하드코어 레슬링 팬이 아니면 아는 이들이 드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완성되어가는 데몬을 본 나는 생각했다.

‘100% 먹힌다.’

드류 맥킨마이어와 정반대였다.

이 남자의 ‘데몬’ 기믹은 정말로 센세이셔널 했고, 우리가 잘만 포장한다면 반드시 반응이 폭발할 터였다.

그걸 위해서는 일단 팀원들과 확실히 지금 이 심상을 공유해야만 했다.

하지만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재미있군.’

다들 모르는데, 나 혼자 쩐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이라니.

마치 지하 연구실에서 지구를 멸망시킬 폭탄을 제조하는 미친 과학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끄응.”

첫 작업이라 그런지 케이트의 붓질은 생각보다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저녁을 넘어서, 다들 일을 마쳤지만 퇴근을 미뤄가면서까지 각자 위치에서 작업이 끝나는 걸 기다렸다.

그리고.

오후 9시를 넘겨서야 핀 ‘데몬’ 발로의 바디 페인팅이 완성되었다.

그 결과물을 본 케이트와 나, 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야…….”

“정말 잘 어울리는데요.”

“감사합니다. 케이트.”

싱글벙글 웃는 핀.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 이야기했다.

“웃지 마.”

“예?”

“내면의 악마를 드러낸 남자가 웃는 건 말이 안 되지. 혀도 내밀지 말고. 되도록 입을 다물고 있어.”

“아, 그게 확실히 낫겠네요.”

핀도 동의를 했다.

완전히 새까만 얼굴이라서 입을 벌리면 어딘가 좀 카리스마가 떨어졌다.

좋아 그러면.

이제 이 작품을 보여주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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