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
그렇게.
각각의 선수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최악의 타이밍에 최악의 형태로.
제각기 Face To Face를 했다.
[Uooooooooooooooooohhhhhh!!]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드디어 올 게 왔다.
PWA가 WWF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서 왔다. 두 팀이 결국 맞붙는다.
그 준비는 모두 되어있었다.
드류 맥킨마이어 VS 사모아 고.
핀 발로 VS 브로큰 와이엇.
대니얼 라이언 VS C.M. 펑크.
쟈니 에이스 VS 코디 로스.
그리고.
신 VS 러셀 하트까지.
[Waaaaaaaaaaaaaaaaaaggg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팬들의 반응은 정말 열광적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현재 러셀과 나는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더 높은 위상을 쌓아온 상태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링 서바이벌의 대립이 시작된다기에는 어딘가 정적이었다. 그처럼, 화면에 나오고 있는 러셀과 나는 딱히 ‘인사’를 하지 않고 있는 상대였다.
우리들만의 인사.
다시 말해, 다짜고짜 주먹을 주고받는 야만스러운 행위를 이야기했다.
나는 그 대신 미소를 지었다.
러셀 역시도 웃었고 우리 둘은 그대로 옆으로 돌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우리 둘을 비췄다.
WWF에 소속된 선수들 몇몇이 나를 발견하자 순간 적대시하며 싸우려고 들었으나 러셀이 그것을 제지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거기에 선수들이 물러났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뭐야. 러셀. 언제부터 이 락커룸의 통제자가 된 거야? 헌터가 떠나고 나니 남은 선수가 너밖에 없었나?”
“굳이 그런 건 아니고. 너 같은 놈과 그 친구들을 상대하는데 굳이 다 같이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이야, 무서워라.”
“그래, 긴장 좀 해야 할 거야. 신.”
러셀이 입장로 커튼 앞에 섰다.
그리고 커튼을 슬쩍 걷어주었다.
[W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성 속에 나보고 먼저 나가라는 듯이 권유를 하는 러셀 하트.
거기에 피식 웃은 나는 딱히 그 권유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입장로 위.
나와, 곧바로 따라 나와 옆으로 붙은 러셀을 보고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나와 러셀은 나란히 선 채 마치 태그 팀으로서 입장하듯이 링에 올랐다.
팬들의 목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음악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Yes 챈트를 보내며 우리 둘의 페이스 투 페이스에 반응을 보여주었다.
나는 전율을 느꼈다.
각본이 맞아떨어졌다.
이전처럼 습격이라는 행위 대신, 약속했던 대로 우리는 여기서 만났다.
각자 군단을 이끌고.
그렇게 각자 마이크를 하나씩 손에 쥔 우리는 곧바로 대화를 시작했다.
딱히 복잡할 건 없었다.
러셀이 먼저 물었다.
“무척 비루한 팀원들이군. 신.”
“무슨 소리야? 최고들만을 뽑아왔는데. 보는 눈이 영 맛이 갔군. 러셀.”
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하긴, 날 이기지 못하고 도망친 두 놈을 팀원에 넣은 시점부터 영 선택이 잘못된 것 같기는 하지만.”
“고와 펑크를 말하는군.”
[Boo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쏟아졌다.
팬들이 ‘펑크’에 반응을 해서 놈을 디스한 내게 야유를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죽지 않고 받아쳤다.
“지금 내가 Chicago Made를 깠다고 이러는 거야? 엿이나 먹지 그래!”
[Boooooooooooooooooooooo-!]
“너야말로 무슨 헛소리야? 신.”
러셀이 그들의 대변자가 되었다.
“네가 알던 두 사람은 잊으라고. 그래야만 졌을 때 충격이 덜할 테니까.”
[Uoooooooooooooohhhhh!!]
“아무래도 여기 있는 팬들은 우리가 널 이긴다고 확신을 하는 모양인데!”
러셀이 분위기를 가져가려고 했다.
팬들의 반응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오며 어떻게든 내 기를 꺾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나는 재치 있는 한마디로 다시 분위기를 끌어왔다.
“확신은 우리 둘이 경기가 잡혔을 때 내가 이기는 걸 확신이라고 하지.”
[Yeeeeeeeeeeeeeeeeeeaaahhh!!]
풉.
아, 실수했다.
“…….”
러셀이 순간 황당한 듯 날 보았다.
아니.
제기랄.
팬들이 순간적으로 내게 다시 환호를 보내주는 반응이 어쩐지 좀 재미가 있어서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이걸로 하나는 확실해졌다.
팬들은 이런 우리의 대립에 딱히 선과 악을 구분 지어서 생각하지는 않았다. 양쪽 모두에게 응원을 보냈다.
거기에서 기존 WWF 팬들은 WWF를, 나와 PWA를 응원하는 팬들은 우리 쪽에 좀 더 마음을 쓰는 것이지.
‘나쁘지 않아.’
나는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아무래도 정곡을 찔려서 화가 나셨나? 넌 나한테 안 되잖아. 러셀 하트.”
“무슨 소리야. 나한테 예전에 당했던 사실은 기억에서 지워버린 거냐?”
[Uooooooooooooooooohhhh……!]
분위기가 점차 과열되어갔다.
러셀과 나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다시금 Yes 챈트.
Yes……! Yes……! Yes……!
기다릴 수 없다.
지금 여기에서 한판 붙어라.
그런 의지를 담은 팬들의 의견이 우리 두 사람을 향해 사납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아직 그럴 때는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Waaaaaaaaaaaaaaaaagggghhhh!]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환호.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먼 곳인데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쿠당탕-!!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거구의 두 사내가 관객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모아 고.
그리고 드류 맥킨마이어.
관객석 출입구로 튀어나온 두 사람이 뒤엉켜 마구잡이로 공격을 해댔다.
고의 해머링 연타에 맞서 드류가 허리를 젖혔다 힘껏 헤드벗을 날렸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팬들이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반대편 출입구에서는 핀과 와이엇이 모습을 드러냈고 경기장 입장로 옆에서는 펑크와 대니얼이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쟈니와 코디까지.
우리를 빼고 4대4.
링 서바이벌에서 가질 경기 스타일에 대한 암시를 하면서 여덟 명의 선수들이 링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Waaaaaaaaaaaaaaagggghhh!!]
환호가 점차 커졌다.
다들 바리게이트를 넘어와서 링 주변에서 계속해서 난투극이 이어졌다.
거기다 점차 섞여들었다.
마치 물이 색소에 침착되듯이.
[Yeeeeeeeeeeeeeeeaaaaahhhh!!]
팬들의 환호와 각자 싸우고 있던 멤버들이 뒤엉키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링 위에 서있던 러셀과 나는 꿋꿋하게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슈퍼 멋진데.”
내가 살짝 속삭이자 녀석이 웃는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 * *
그렇게 모든 쇼가 끝난 뒤.
락커룸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막내’가 준비한 캔 맥주를 크게 들이켰다.
꿀꺽, 꿀꺽.
다들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팬들의 반응이 좋고, 우리들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었던 세그먼트였다.
그 누구도 약하지 않다.
당하는 쪽은 없다.
그러므로 분명.
링 서바이벌은 죽여줄 것이다.
그걸 보여주는 세그먼트.
게다가.
“실력이 좀 늘었군. 애송이.”
“가, 감사합니다!”
분위기도 좋았다.
뺨을 힘껏 얻어맞은 대가로 가장 먼저 맥주를 받게 된 고는 드류의 솜씨가 늘었다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확실히 오늘 좋았지.’
거기다 끝나고 난 뒤에는 말도 안했는데 이렇게 멋진 준비를 해두다니.
확실히 좀 적응한 것 같았다.
물론, 이렇게 매번 맥주를 샀다가는 녀석 지갑 사정이 걱정되니 오늘 맥주는 경비 처리를 해주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남은 맥주를 가볍게 처리하고 있자니 러셀이 다가왔다.
“신.”
“러셀. 멀쩡해 보이는데.”
“……실제로 뭐 안했잖아?”
“그러게.”
우리는 피식 웃으며 캔을 부딪쳤다.
대립의 시작은 정말로 멋졌다.
드류가 맥주를 많이 준비해둔 덕에 직원이고 선수고 가리지 않고 지나가다가 한 캔씩 던져주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기왕 얻어먹었으니.’라고 말하기에는 낯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다들 우리의 대립을 칭찬해주었다.
“너희 둘의 카리스마가 돋보였어.”
“카메라 구성하는 게 빡셌지만.”
각본팀장의 말에 영상팀장이 쓴웃음을 지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최고였지만.”
다섯 명의 선수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제각각 다른 위치에서 만나 링으로 모여서 싸우게 되는 구성.
이전까지 링 서바이벌 대립에 없었던 특별한 세그먼트였던 만큼, 사실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게 내가 노리던 바였다.
각 선수들이 각각 상대할 선수를 정하고 마구 뒤엉켜 싸우는 걸 보여줘서 이 대립이 시사하는 바를 암시한다.
그렇다.
우리는 링 서바이벌에서도 이런 식으로 각자 떨어져서 경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각자 서로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 팀 캡틴을 찾아 핀 폴을 따내면 경기에서 승리하는 규칙.
“그것도 물론 어려우시겠지만.”
“제기랄, 어쩔 수 없군.”
영상팀장이 쓰게 웃었다.
“같이 고민해달라고. 신. 네 실력은 믿고 있으니까. 솔직히 은퇴하면 이쪽으로 와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야.”
“무슨 소리야. 신은 각본으로 와야지. 지금 이 녀석 아이디어로 뜬 선수가 대체 몇 명이라고 생각해?”
“그냥 지금처럼 다 해줬으면 하는데. 이 친구만 있으면 일이 잘 풀려.”
“왜 다른 단체로 간 거냐!”
“……가, 감사합니다.”
벌써 취하셨나들.
하지만 이해는 한다.
신이 난 거겠지.
직원들은 선수들과 달리 100% 이 일에 꿈을 가진 이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오랫동안 경력을 쌓으며 해온 일이고, 그게 좋은 성과를 낸다면 당연히 기분이 좋겠지.
그나저나.
방금 두 사람의 발언은 좀 위험했다.
러셀이 그걸 알고 킥킥 웃었다.
“회장님밖에 없네. 회장님.”
나는 대답하는 대신 쓰게 웃었다.
뭐, 이 모든 레슬링 콘텐츠를 통제하는 역할이라면 바트 맥센이 현재 맡고 있는 회장직밖에 없기는 했다.
물론 다른 회사였다면 ACW의 데릭 비숍처럼 부사장직만 되더라도 한 쇼를 이끌어나가기에는 충분했지만.
여기는 ‘바트 맥센’이라는 미친놈이 지배하는 도시였고, 거기에서 총괄을 맡으려면 그를 쓰러뜨려야만 했다.
‘재미있군.’
그들이 그걸 의도했건 아니건.
현재 다른 회사에 소속된 내가 이들로부터 최고라는 평가를 듣게 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평가와 멋진 세그먼트는 나 혼자서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카메라 동선부터가 그랬다.
프로레슬링에서 카메라워크는 거의 대부분이 기획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선수를 찍을 때.
기술을 찍을 때.
모두가 철저하게 계산을 해두었다.
그런 카메라워크 또한 프로레슬링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였다.
그렇게 해야만 팬들에게 프로레슬링이 가진 ‘액션 드라마’로서의 박력을 더 강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한편.
‘가짜로 때리는 게 티가 덜나니까.’
그런 부분은 WWF가 아직까지도 업계 최고였다. 그렇기에 다들 내가 말하는 것들을 이해하고 도와주었다.
그로 인해.
멋진 드라마가 펼쳐졌다.
그 중심에 서있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앞으로 남은 4번의 쇼.
10월 1주차 수요일의 PWA.
10월 2주차 월요일의 버닝콩.
10월 2주차 수요일의 PWA.
10월 3주차 월요일의 버닝콩.
각각의 쇼에서 오늘 출연했던 선수들이 경기를 진행하면서 링 서바이벌의 대립을 높여갈 생각이었다.
분명 잘 먹히리라.
* * *
내가 그런 식으로 선수들 개개인의 대립에 초점을 둔 이유는 간단했다.
그로 인해 각각의 선수들이 갖는 드라마가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링 서바이벌이 끝나고 난 뒤에는 다시금 각각의 선수들이 대립을 해나갈 텐데, 그때를 위한 준비인 셈이었다.
예를 들자면.
링 서바이벌 대립이 끝난 후에도 브로큰 와이엇이 PWA로 넘어와 핀 발로와 대립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양 단체를 오가며 선수들의 대립을 진행시킨다. 바로 그것이 내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각 단체를 응원하고 있는 팬들이 상대 단체의 쇼에도 관심을 가지고 봐주겠지.
그걸 기대하며 경기가 진행되었다.
10월 1주차 수요일의 PWA.
대결의 1차전은 사모아 고와 드류 맥킨마이어의 싱글 매치.
자신과 사이즈가 맞는 고를 상대하게 된 드류는 경기 시작 전부터 꽤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좀 격려를 해줬다.
“드류.”
“아, 선배님.”
“긴장되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고는 강한 남자니까.”
실력도 완벽하고, 좋은 상대였다.
“그러므로 네가 아무리 세게 헤드벗을 날려도 가볍게 받아줄 거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차게 대답을 한 드류가 기합을 넣고는 고와의 경기를 위해 나아갔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반응은 오늘 있었던 경기 중에서 최고로 압도적이었고, 팬들은 고와 드류 모두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었다.
결과는 사모아 고의 승리.
하지만 분명 두 사람 다 많은 것을 얻으며, 우리는 그렇게 링 서바이벌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