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94화 (394/634)

394.

이건 모두 각본이었다.

그렇기에 이 남자, 코디 로스는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보란 듯이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고 말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각본대로 로비에 처음 등장한 순간 나온 팬들의 반응으로 인해 말이다.

‘이 정도라고?’

이 정도의 열기를 모은다고?

팬들의 반응이 이렇게까지?

같은 생각을 세 번이나.

그 정도로 놀라웠다.

서있는 것은 오직 신뿐이었다.

알고 있다.

‘리턴’.

고전적인 테크닉으로, 보통 선역이 위기의 순간 일어서서 자신을 몰아붙이던 상대를 쓰러뜨리는, 사람의 심리를 절묘하게 캐치하는 기술이었다.

이걸 정말로 잘 사용한 선수가 존 마이클스로, 그렇기에 그는 작은 체구로도 회사의 탑 가이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건.

현장에 있기 때문일까.

‘그보다 더 대단한데…….’

코디는 어안이 벙벙해져 생각했다.

신은 제대로 서있는 것도 아니었다.

구식 포마드 헤어컷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고 근육질의 몸은 거의 넘어가기 직전에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극적으로 느껴졌다.

그 주변에 쓰러진 러셀 하트, C.M. 펑크, 사모아 고, 드류 맥킨마이어, 대니얼 라이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조연으로 느껴졌다.

코디 로스는 전설적인 프로레슬러였던 아버지, 더스티 로스에게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 자식은 괴물이야. 만약에 네가 같이 경기를 하면 녀석의 리드에 따라라.]

그때 코디는 어이가 없어서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었다.

[뭐, 그래봤자 프로레슬링이잖아요? 적당히 주먹 주고받다가 기술 쓰고 피니시, 끝. 이거 아닙니까?]

[아니야.]

더스티 로스는 말했다.

그의 이명은 ‘아메리칸 드림’.

노동자들의 영웅.

꿈을 이룬 자.

그가 말했었다.

‘남자는 인생에서 언젠가 자신의 영혼을 입증하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

더스티 로스에게는 그게 프로레슬링이었다. 그곳에서 결국 인정받았다.

그리고 신에게 있어서도 그게 바로 프로레슬링이었다.

그는 프로레슬링을 통해서 꺾이지 않는 자신의 영혼을 입증하고 있다.

더스티 로스는 그렇게 말했고.

그 아들은 그 말이 뜻하는 의미를, 바로 이 순간 완벽하게 이해했다.

‘미쳤군.’

코디는 곧바로 신을 향해 움직였다.

한 박자 늦은 타이밍이었다.

카메라는 이미 그를 비췄고, 아마 이 일로 러셀에게 죽어라 혼이 날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코디는 신에게 매료되어 그를 향해 힘껏 펀치를 날렸다.

그게 턱에 꽂혔다.

뻐억-!

하지만 신은 버텨냈다.

“……?”

코디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각본과는 달랐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에서 펀치를 날리면서 신이 쓰러지고, 관객들 사이에서 쟈니 에이스가 나와야 맞았다.

그렇게 싸움의 포커스가 두 사람에게 돌아간 상태에서 계속해서 경기가 진행이 되는 게 원래 그림이었다.

하지만 신은 쓰러지지 않았다.

[Uooooooooooooooohhhhh……!]

경악을 금치 못하는 관객들.

그 앞에서.

회사 측에서 심어둔 관객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남자, 쟈니 에이스는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한 대 더 쳐, 멍청아!’

아무리 각본이 있다고 해도, 신은 경기 도중 관객들의 반응이나 자신의 상황에 따라 디테일을 바꿨다.

그리고 코디가 순간 놀라 그 디테일을 따라가지 못한 순간, 신은 순간 눈동자를 부릅뜨며 ‘명령’을 내렸다.

‘어서 쳐!’

자신은 쓰러지지 않는다.

고작 이 정도 공격에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눈으로 그것을 드러냈다.

“큭……!”

코디가 또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쩌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마침내 넘어가는 신.

코디는 손을 덜덜 떨 정도였다.

흥분했다.

지금 상황에 순식간에 몰입한 그는 곧바로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Uooooooooooooooohhhh!!]

쟈니 에이스가 나타났다.

두 선수가 맞붙기 시작했다.

모든 선수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끙끙 앓고 있는 가운데, 사실 오늘 이 부분이 가장 걱정스러운 파트였다.

코디 로스는 아직 부족한 선수였다.

열 명 중 가장 적은 반응을 얻고 있는 선수였고, 아버지의 후광 아래에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코디는 반응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른 선수들이 만들어왔던 열광적인 반응에 편승해 스스로도 마리오네트처럼 마구 팔을 휘두를 정도였다.

그 주먹을 받아낸 쟈니는 안면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순간,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신은 확실히 그 봉화를 넘기고 갔다.

‘반응’이라는 이름의 봉화를.

그렇기에 쟈니는 곧바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온갖 아크로바틱한 무브들로 코디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디 역시 밀리지는 않았다.

신에게 받은 기세를 바탕으로 호쾌하고 투지가 넘치는 공격을 해왔다.

그럼에도 쟈니 에이스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 버텨내며 코디를 몰아붙였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쟈니 에이스는 비운의 에이스였다.

GCW 시절에는 슈퍼스타였던 그였지만, 메인 쇼에 올라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회사에 중용 받지 못했다.

그리고 비웃음을 받았다.

자버라고.

재능이 없다고.

쓸모가 없다고.

그렇기에 기회를 잡아, 어떻게 해서든 그 말이 틀렸다 인정받고 싶었다.

이건 그걸 위한 싸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다.

빠악-!

코디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넣고.

녀석이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시점에 맞춰 그대로 옆에 서있는 뚱뚱한 관객의 얼굴을 확인했다.

시선이 마주쳤다.

회사에서 심어둔 알바였다.

“후우……!”

심호흡을 한 쟈니는 그대로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관객의 ‘배’를 밟고 그대로 힘껏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Uoooooooooooooooooohhhh!!]

경악을 금치 못하는 관객들.

쟈니는 공중에 상태에서 앞으로 한 바퀴 돌며 그대로 코디를 크게 덮쳤다.

콰앙-!

바닥에 나뒹구는 두 사람.

바로 거기가 신호였다.

화면은 빠르게 전환되었다.

그리고 아까 전에 선수들이 나온 출입구를 통해 주차장에 처박혀 있던 두 사람이 뒤엉킨 채 모습을 드러냈다.

핀 발로와 브로큰 와이엇.

문이 벽에 부딪히는 날카로운 파열음을 들은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그렇게 보안요원들이 미리 만들어둔 길을 따라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이 다시금 합류하며.

무대 위에 열 명이 모두 모였다.

그 모든 건 다음 각본을 위해.

경기의 중반부가 반쯤 흘러가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선수들이 링에 나서는 순간이 찾아왔다.

“크하아악-!!”

와이엇은 거의 악을 써댔다.

하지만 핀은 심호흡조차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카리스마에 팬들은 순식간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싸움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하나둘씩 일어섰다.

가장 처음에 일어난 건 두 빅맨, 바로 사모아 고와 드류 맥킨마이어였다.

그 뒤를 이어 C.M. 펑크와 대니얼 라이언도 일어섰고 그렇게 다 같이 혼란 속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링 서바이벌의 전통적인 난투극.

[Waaaaaaaaaaaaaaaggggghhh!!]

팬들의 환호를 보내는 가운데, 모두가 그렇게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각자 이유가 있다.

여기에 서서 싸워야 할 이유가 있다.

온갖 화려한 기술들이 오가는 가운데, 제각각의 선수들이 마구 뒤엉키며 태그 팀 무브까지도 터지는 상황.

팬들의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나와 러셀은 그 아래에서 좀 떨어진 채 누워 있다가 이내 서로를 확인했다.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천천히 일어섰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팬들이 우리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그런 가운데, 나와 러셀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잠시 서있었다.

내게 달려드는 고를 드류가 힘껏 막아냈고 나는 러셀을 향해 다가갔다.

녀석의 등 뒤에는 문이.

“하아, 하아…….”

“슬슬, 힘에 부치시나 봐?”

“신, 너야말로.”

러셀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잖아?”

“물론이지.”

나 역시 웃었다.

경기는 이제야 제대로 시작된다.

그렇게 봐도 이상할 건 없었다.

벌컥, 문이 열리고.

그 안의 열기가 나왔다.

[Yeeeeeeeeeeeeeeeaaaaahhhh!!]

이제야 경기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다들 만신창이였다.

우리 쪽 다섯 명.

상대 쪽 다섯 명.

다들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러셀 하트가 경기장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들 깊게 심호흡을 하고.

자신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나의 이름을 외쳤기 때문에.

나는 도망치기는커녕, 지금 눈앞에 펼쳐진 지옥불길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앞의 러셀 역시도.

우리는 곧바로 엉겨 붙었다.

내가 러셀의 몸을 밀어내며 관객석 안으로 들어서자 15만 관객들의 성원이 순간 몸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Yeeeeeeeeeeeeeeaaaaahhhh!!]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문을 열고 전투를 새로운 장으로 편성한 것은 러셀이었지만, 그 위에 올라서서 처음으로 검을 들어 올리는 영광을 누리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는 최대한 큰 소리로 외쳤다.

“이걸 기다리고 있었겠지?!”

내 말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경기장 내에서 채 열 명도 되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다들 내게 환호했다.

[Yeeeeeeeeeeeeeeeeeaaaahhh!!]

전 세계에서 모인 팬들이 내가 팔을 펼치고 힘차게 무어라 외치는 제스처만으로도 그런 큰 환호를 보냈다.

경기장은 내 거다.

나는 충족되는 자아를 느꼈다.

내가 과거, 수많은 전설들을 보며 이 링 위에서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고 다짐했던 것처럼 되고 있었다.

이 반응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내가 위대한 선배들에게 받은 선수로서의 위상이 폭발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누군가 도전해왔다.

바로 C.M. 펑크였다.

퍼억-!

뭔가에 얻어맞았다.

중심을 잃고 넘어져 바닥을 나뒹군 내 뒤에서 펑크가 계속해서 공격을 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대니얼이 그걸 막았다.

경기의 양상은 그렇게 되었다.

각자 팀 캡틴을 보호하려고 들었고, 러셀과 나는 그 중심에서 주먹을 주고받으며 링을 향해서 내려갔다.

팬들은 완전히 미쳐서 날뛰었다.

이상할 건 없었다.

방금까지 스크린을 통해서 보고 있던 선수들이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난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러셀의 뒤를 쫓아 링 쪽으로 움직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팬들의 우렁찬 함성 속.

카메라는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예정했던 대로 멀리에서 찍고 있겠지.

15만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보내고 우리가 링을 향해 내려가는 장면을 멀리서 찍으며 큰 화면으로 보여줄 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만큼 한계였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고 있는 러셀.

놈도 같은 생각이리라.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링 앞이었다.

지면을 박차며 달려 나간 나는 그대로 러셀에게 힘껏 드롭킥을 날렸다.

퍼억-!

거기에 맞은 충격으로 녀석이 바리게이트를 넘어갔고, 나 역시도 뒤를 따라가 우리는 링 사이드로 나왔다.

고개를 들자 주변이 더 잘 보였다.

계단을 내려오며 각기 다른 위치로 흩어졌던 선수들이 한데 모여들었다.

링 사이드에 모인 우리를 보고 팬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웃었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우리에게 큰 기대를 보내는 팬들.

그런 호응에 응하듯 나와 러셀은 동시에 링 위로 올라가 서로를 마주했다.

이제 포커스는 우리에게로 왔다.

어느덧 다른 선수들은 모조리 링 사이드에 뻗어버린 상태였고, 그런 와중 움직일 수 있는 건 러셀과 나뿐이었다.

링 위에 올라선 우리는 예열 과정도 없이 곧바로 주먹을 주고받았다.

[Waaaaaaaaaaaaaaaaggggghhhh!]

팬들의 응원 속에서 나는 투지로 불타는 러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될까?

이 정도라면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녀석을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러셀은 내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뻐억-!

헤드벗.

이후, 입술을 질끈 깨문 나는 그대로 뒤쪽으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

슈퍼 킥.

쫘악-!

앤 러닝 니.

쩌억-!!

안면에 꽂히는 연속된 피니시 무브.

러셀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링에 이르러 끝나는가.

이 경기는 링에 이르러서 끝나는가.

다들 그런 기대를 하면서 내가 러셀을 곧바로 커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다 이제 막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러셀의 어깨가 땅에 닿은 것을 확인한 심판이 카운트에 들어갔다.

[1……!]

[2……!!]

이제 끝이다.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하나라면 몰라도, 러셀은 이 두 가지 콤보를 맞고서 일어선 적이 없었다.

그러니……!!

바로 그때였다.

내 아래에 깔려 있던 러셀이 어깨를 머리 위로 들어 커버에서 벗어났다.

[Uoooooooooooooooooohhhhh!!]

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슈퍼킥 앤 러닝 니 콤보.

내 이 기술을 맞고서 일어선 선수는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걸 러셀이?

러셀 하트가?

그 위에서 튕겨져 나온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잠시 러셀의 얼굴을 보았다.

어깨를 든 상태 그대로 몸을 뒤집은 녀석이 나를 희미한 눈동자로 보았다.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걸로는 끝나지 않아.”

“이 자식.”

“그렇잖아? 응? 신. 그렇지?”

빌어먹을.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이 환호성을 듣고 있자니 그랬다.

확실히 러셀은 내 슈퍼 킥 앤 러닝 니 콤보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났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단 하나뿐.

내가 이 녀석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기술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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