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95화 (395/634)

395.

경기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내가 러셀을 끝장내기 위해 일어선 순간, 상대 사이드에서 코디가 올라와 그 앞을 가로막고 나를 상대했다.

태그 규칙이 없는 태그 매치.

마치 킹스 럼블 같다가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레슬 임페리움에서 가장 큰 대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싸움의 양상은 치열했고, 서로 팁 캡틴을 떨어뜨리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코디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러셀과의 치열한 싸움으로 지쳐있던 나는 검지를 뻗어 놈을 가리켰다.

Bang.

그와 함께 등장하는 것은 바로 우리 쪽의 신인 선수 드류 맥킨마이어였다.

신인 대 신인의 대결.

쿠웅-!

락 업으로 격돌한 두 사람은 마치 서로 뿔을 세운 소처럼 치열하게 서로를 밀어붙이며 힘을 겨뤘다.

물론 덩치가 훨씬 큰 드류가 코디를 몰아붙였고, 그 둘이 링 코너로 빠진 틈을 타 다음 선수들이 들어왔다.

러셀 측에서 C.M. 펑크.

우리 쪽에서 핀 발로.

[Uoooooooooooooohhhhhh!!]

관객들이 열광했다.

핀은 명실상부하게 오늘의 링 서바이벌에서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는 슈퍼스타 중 하나였다.

그 워-페인트는 잘 먹혔고 왜소한 체격을 도리어 스페셜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킥 대결을 펼쳤다.

펑크가 다짜고짜 머리를 노린 라운드 하우스 킥을 휘둘렀지만 핀이 그것을 피하며 반대로 드롭킥을 날렸다.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펑크.

그 뒤를 추격하는 핀.

하지만 다음 순간.

뻐억-!

억지로 우겨넣듯이 터진 라운드 하우스 킥. 여기에는 핀도 순간 큰 충격을 받은 듯 로프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선수들이 계속 올라왔다.

[Waaaaaaaaaaaaaaagggghhhh!!]

링 위에 환호가 휘몰아쳤다.

그런 가운데 선수들은 그간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다들 빛나고 있군.’

실제로 그랬다.

물론 내가 이들을 키워내진 않았다.

지금 링 위의 선수들은 분명 생애에 어떤 식으로든 한 번씩은 빛나게 되는, 말하자면 재능이 있는 자들이니까.

하지만.

그 재능이 빛나기 위한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내가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만큼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사실에 깊은 긍지와 기쁨을 느끼며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틈을 노렸다.

러셀 하트 역시도 그랬다.

뻐억!

빠악!

퍼억!

쫘악!

콰앙-!

온갖 타격음과 함께 링 안의 선수들이 마구 뒤엉켜 계속 싸움을 벌였다.

이제는 상대를 가리지도 않았다.

마치 고대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오는 마지막 전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선수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경기가 경기로써 성립하고 있었다.

상대의 팀 캡틴을 노린다.

동시에 우리 캡틴을 보호한다.

그런 명확한 메인 줄기가 있기 때문에 라이트 팬들도 어렵지 않게 이 경기의 흐름을 따라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참으로 절묘한 밸런스였다.

만약, 지금 이 시점에서 러셀과 나의 위상이 예상보다 오르지 못했다면.

그리고 우리 선수들의 실력과 카리스마가 팬들을 설득하지 못했더라면.

분명 무너졌을 것이다.

PWA의 멤버들이 신을 보호한다.

WWF의 멤버들이 러셀을 보호한다.

그런 스토리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 보호를 받는 선수가 팬들에게 어떻게 여겨지는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오늘, 증명되었다.

러셀과 나는 그런 선수들이었다.

링 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선수들의 위상을 드높여주고 한 경기의 중심에서 이끄는 우두머리들.

또한 선수들 역시도 러셀과 내게 팬들이 보내는 성원에 뒤지지 않도록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해주었다.

거기에 팬들이 반응을 보였다.

[Fight Forever!]

짝! 짝! 짝짝짝!

[Fight Forever!]

짝! 짝! 짝짝짝!

[Fight Forever!]

짝! 짝! 짝짝짝!

이 싸움이 영원하기를.

극찬에 가까운 뜻을 가진 챈트.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어어어!”

링 중앙에서 고와 드류가 충돌했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에게 팬들의 시선이 꽂혔다.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고에게 한 번 패배를 경험하고 쓸개를 씹는 각오로 단련을 했던 드류.

그 의지에 고가 서서히 밀려났다.

“큭……!”

지난 경기의 결과가 뒤집혔다.

고를 순간 밀어내면서 거리를 잡은 드류가 그대로 클레이모어를 날렸다.

쩌억-!

호쾌한 한방.

고의 거체가 쓰러졌고 지켜보던 팬들은 드류에게 큰 환호를 보내주었다.

[Waaaaaaaaaaaaaaaaagggghhh!!]

지난 결과를 멋지게 뒤집으며 두 사람의 라이벌리가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시사하는 극적인 장면이었다.

이어서 브로큰 와이엇이 기괴한 비명과 함께 핀 발로의 머리를 잡았다.

[U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리버스 STO.

자신의 옆에 선 상대의 머리를 붙잡은 상태에서 회전하며 바닥에 정면으로 충돌을 시키는 위험한 기술.

그것을 브로큰 와이엇은 자기 종교의 선지자라고 칭하며 이렇게 불렀다.

시스터 아비게일.

투콰앙-!

거기에 당한 핀 발로가 그대로 링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와이엇 역시도 순간 기력이 다해 자리에 쓰러졌다.

뒤를 이어 순간 기력을 쥐어 짜낸 펑크가 대니얼을 어깨 위에 들쳐 멨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술은.

GTS.

빠가악-!

어깨에 들쳐 멘 상대방을 앞으로 던지며 니 킥을 먹이는 피니시 무브.

[Waaaaaaaaaaaaaaaggggghhh!!]

그렇게 다들 복수에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코디에게 안타까운 패배를 맛봤던 쟈니까지도 자신의 피니시 무브 스타십 페인을 성공시켰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팬들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른 링.

러셀과 내가 다시 서로를 마주했다.

슬슬 경기는 막바지.

서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상태에서 러셀이 먼저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락 업을 거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뒤로 돌아와 내 허리를 붙잡고 힘껏 머리 위로 뽑아 들었다.

순간 시야가 크게 돈 직후였다.

투콰앙-!

저먼 수플렉스 ‘홀드’.

저먼 수플렉스로 상대방을 꽂아버린 상태에서 그대로 자세를 굳히고 핀 폴로 연결하는 고난이도의 기술.

[1……!]

[2……!!]

어떻게든 벗어났다.

[Yeeeeeeeeeeeeeeaaaaahhhh!!]

환호를 보내는 팬들.

직후, 러셀은 나를 완전히 끝장내겠다는 듯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갔다.

하트 슈터와 함께 녀석의 양대 피니시 무브 중 하나인 슈팅스타 프레스.

그걸 사용하려는 걸 본 팬들은 분위기가 최고조 된 상태에서 모조리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집중했다.

나는 저먼 수플렉스 홀드에 맞은 여파로 자리에 꼼짝 없이 누운 상태.

다른 선수들도 제각각 링 사이드에 엎어져 날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이외에는.

“크아악……!!”

[Yeeeeeeeeeeeeeaaaaahhhh!!]

팬들의 환호가 귀를 스쳤다.

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대로 러셀을 향해 힘껏 달려들었다.

그리고 로프를 밟고 뛰어올라.

“큭?!”

놀란 녀석의 어깨 위로 다리를 휘감고는 그대로 몸을 뒤쪽으로 던졌다.

슈퍼 프랑켄슈타이너.

[Uooooooooooooooooohhhh-!!]

경악하는 팬들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그대로 러셀을 저 멀리 내던졌다.

그리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허억, 허억…….”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바닥을 나뒹군 러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죽었나 싶은 과격한 기술과 광경이었지만 나는 믿었다.

녀석은 완벽하게 낙법을 쳤을 터다.

왜냐면 싸움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쓰러지지 않는다.

이 정도는 이겨낼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러셀이 천천히 일어섰고, 나 역시도 거기에 맞춰서 일어나 우리 두 사람은 다시금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남은 건 하나.

이 녀석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그 기술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싸움은 격렬한 피니시 무브 공방전으로 이어졌다.

팬들도 그것을 기대했다.

나는 러셀을 반대편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돌아오는 녀석의 앞에서 일부러 안티크라이스트를 사용할 자세를 취하며 긴장감을 더 끌어올렸다.

[Uooooooooooooooohhhhh……!]

경악하는 관객들.

그 앞에서 러셀을 번쩍 들어 올린 나는 그대로 옆으로 몸을 회전하며-!

“크헉?!”

그 순간 내 다리에 목이 휘감겼다.

헤드 시저스 휩.

러셀은 그런 식으로 내가 안티크라이스트를 쓰지 못하게 기술을 봉했다.

콰앙-!

반대편으로 나가떨어진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끼며 바닥에 뻗었다.

그사이 러셀은 다시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갔고, 이윽고 나를 향해 초승달 무늬를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슈팅스타 프레스.

그걸 러셀은 크레센트라고 했다.

[Uoooooooooooooohhhhh!!]

투콰앙-!!

작렬하는 기술.

하지만 내가 타이밍 좋게 옆으로 휙 구른 덕에 기술은 자폭기가 되었다.

“그헉?!”

고통에 몸부림치는 러셀.

겨우 그 공격을 회피한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러셀을 향해 다가갔다.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 당겨,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로프 반동 후 돌아오는 러셀.

나는 안티크라이스트를 사용하기 위해 팔을 벌리고 녀석을 맞이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가 안티크라이스트만 사용하면 되는 바로 그 순간. 옆에서 생각도 못한 불청객이 우리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바로 코디 로스였다.

[Boooooooooooooooooooooo-!!]

오늘 처음으로 터져 나오는 야유.

그도 그럴 것이, 이로써 러셀과 나의 승부가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게 옳은 길이었다.

코디는 악역으로서의 스토리를 얻었고, 러셀과 나의 위상도 유지가 되었다.

더군다나 이건 링 서바이벌.

그렇기에 이런 결말을 맞이하는 게, 오히려 이야기적으로 맞는 길이었다.

왜냐면 이건 러셀과 나의 일대일 승부가 아니라 ‘팀 신’과 ‘팀 러셀’ 간의 5대5 승부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팬들은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레슬 임페리움을 손꼽아서 기다리게 될 터였다.

코디는 내 허리를 뒤로 꺾은 뒤 머리에 팔을 휘감고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뛰어올라 회전하면서 피니시 무브를 시전했다.

크로스 로스.

상대방의 안면을 회전을 더해 지면에 충돌시키는 플랫라이너류 기술.

투콰앙-!

“러셀! 빨리!!”

기술을 시전한 직후, 코디는 내 팔을 붙잡고 러셀을 향해 소리쳤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 서있던 러셀이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갔다.

난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표정.

역시 녀석도 같은 생각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하지만 그렇기에 보다 흥미로웠다.

팬들이 이 이야기를 지켜봐야 할 이유가 더 생기는 셈이었다.

신과 러셀.

둘이 붙어서 이기는 것은 누구인가.

그런 궁금증을 남기며.

[Uoooooooooooooooooohhhhh!!]

러셀의 크레센트가 내게 작렬했다.

투콰앙-!!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충격.

그와 함께 이어지는 핀 폴.

누군가 도우러 올 것인가.

팬들의 시선이 링을 맴돌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0분이 넘게 경기장 전체를 누비며 혈투를 벌인 만큼,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1……!]

[2……!!]

[3……!!!]

땡땡땡!!

그렇게 경기가 종료되었다.

[Waaaaaaaaaaaaaagggghhhhh!!!]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깊은 환호 속에 러셀 하트의 테마는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니 내 옆으로 굴러서 떨어져 나간 러셀 하트가 나와 머리를 맞대고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

“신.”

“……왜 인마.”

“멋진 경기였다.”

“지랄.”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보통 이런 때는 시답잖은 농담 한마디 건네면서 웃는 게 미덕 아닌가.

하지만 녀석은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지금 우리들이 만들어낸 결과에 감격을 금치 못하는 눈치였다.

“악당이 울지 마라.”

나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멋진 밤이었다.

우리가 만들어냈기에 더더욱.

* * *

그렇게 경기가 끝났다.

고릴라 포지션에 있던 바트 맥센은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옛날 같군.’

자신이 키워온 슈퍼스타들이 링 위에서 최고의 경기를 펼치고 반응을 얻었던 바로 그 순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놈들 모두가 떠나고, 그는 뭔지 모를 적적함에 사로잡힌 채로 경기들을 지켜보았다.

알고는 있다.

캐스켓-테이커가 일평생 프로레슬러로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현실의 그는 평범한 남자였다. 절대로 데스밸리 출신으로 한 번의 죽음을 겪고 돌아온 장의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알고는 있음에도 마음 한구석에 치미는 감정을 참아내고 있었는데.

‘바로 이거였군.’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

[Waaaaaaaaaaaaaaagggghh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그 외에도.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들이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을 목청껏 소리쳐댔다.

그런 장관을 눈앞에 보고 있던 그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직원들은 모두가 그걸 황당해 그런 바트의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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