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96화 (396/634)

396.

경기가 끝난 뒤, 백스테이지.

심판의 부축을 받아서 돌아온 나를 바트 맥센이 맞이했다.

“신.”

“……영감.”

“잘했네. 정말 잘해줬어.”

그가 날 끌어안는 순간이었다.

“윽?!”

나는 강항 흉통을 느꼈다.

바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나?”

“어, 아닌 거 같은데요.”

나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뒤를 따라서 들어온 러셀 하트 역시도 어깨 쪽에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거기다 나머지 선수들 역시 성한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다들 여기저기 크고 작게 다친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격렬한 싸움이었다.

무대가 무대였으니까.

백스테이지 난투극으로 시작되어 링까지 이르러 결국 막을 내린 서사시.

그 승자는 WWF가 되었다.

바트가 길을 비켰다.

“신…….”

“원하시는 대로 해드렸습니다.”

“알지, 알아. 일단은 구급차를 부를 테니 다 같이 병원으로 가게나.”

“예, 예.”

이 영감이 날 걱정해주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동료들과 함께 병원으로 간 나는 예상했던 대로 왼쪽 늑골에 금이 갔다는 판정을 받았다.

러셀은 오른쪽 어깨가 탈구되었고, 나머지 선수들도 각자 다양한 부위에 부상을 입어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러셀과 나는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진통제를 맞고 나서야 좀 쉴 수 있었다.

몽롱한 감각과 더불어 몸이 뜨거워지는 통증 속에서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고 하는 바로 그때였다.

러셀이 말을 걸어왔다.

“이기겠지?”

“뭘?”

“ACW.”

“글쎄다.”

솔직히 말해서.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ACW의 프로파간다가 잘 먹히는 계층도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의 승리였다.

나는 확신했다.

“로건을 이긴 거야.”

“당연한 결과잖아. 그쪽은 늙고 제대로 경기도 못 뛰는 영감들인데.”

“그런 영감들에게 져왔지만.”

“그건…….”

“결국 프로레슬링은 드라마고 쇼야. 그런 의미에서 nWo가 가진 파워는 정말로 막강하지. 프로레슬링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크게 말이야.”

그 카리스마와 상품성은 진짜였다.

업계 전체, 업계의 역사를 통틀어서 첫 번째로 손꼽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왜 우리가 이긴 거지?”

“그건 뭐, 당연하잖아.”

증명해낸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선수들임을.

동시에.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스테이블의 특성상 드라마가 뻔해지고, 그렇기에 적당히 치고 빠져야만 하는데 불행히도 nWo는 그러지를 못했다.

……그런 복잡한 이유로 인해서 이긴 거지만, 이긴 건 이긴 거니까.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었다.

진통제의 몽롱한 감각 속에서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감각을 즐겼다.

이때가 참 기분이 좋았다.

지금쯤 각지의 미디어에서는 우리들의 활약을 기사로 쓰고 있을 테고 다음 날 아침부터 기사로 쏟아내겠지.

어둡고 고요한 밤.

내일 아침을 기대하는 시간은 더디게 느껴졌으나 정말 기분이 좋았다.

바로 그때였다.

“신.”

“……또 뭔데.”

“우리 말이야.”

러셀이 또 말을 걸어왔다.

자기도 아파서 진통제 맞고 끙끙 앓고 있으면서 대체 뭐하자는 것일까.

순간 그렇게 생각한 나였으나 이어진 녀석의 말을 듣자 조금 솔깃했다.

“내년 레슬 임페리움에서 붙게 될까?”

“글쎄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생각은 했다.

확실히 이번 레슬 임페리움이 가장 적절한 무대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러셀도, 나도.

계속해서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증명되었다.

우리 두 사람의 대결은 하나의 시대를 상징할 정도로 큰 매치 업이었다.

그렇게 될 터였다.

모두가 그 승자를 기대하겠지.

“문제는…….”

눈썹을 찡그리는 러셀.

“거기에 뭔가 걸 수 없단 거지만.”

“…….”

“그렇잖아? 벨트가 걸린다면 바트 맥센은 분명 나를 이기게 할 테고.”

그건 공정한 승부가 아니다.

러셀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렇겠지.”

“그렇다고 테이커가 그랬던 것처럼 슛을 할 수도 없지. 이후 네 집권기가 엉망진창이 될 테니 말이야.”

그 말이 맞았다.

챔피언십은 달성된 그 순간뿐만 아니라 이후의 집권기도 무척 중요했다.

그렇기에 만약 우리가 또 슛을 걸어서 내가 챔피언 벨트를 따낸다고 한들.

바트는 다음 날 각본에서 내가 지게 할 양반이었다.

분명히 그럴 터였다.

“나 참……. 아직까지도 동양인 월드 챔피언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니.”

“뭐, 정확히는.”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챔피언이 되면, 자신이 만들어온 프로레슬링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는 거겠지.”

즉, 근거를 가진 주장이 아니라. 주장을 하기 위한 근거라는 뜻이었다.

속으로는 아마 내가 월드 챔피언에 오르고 한 시대의 주인공이 되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주제에.

그걸 인정해버리면 프로레슬링이라는 꿈에 빠져서 살아온 바트 맥센의 70년이 무너지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슬슬 움직여야지.”

“어떻게 하려고?”

“티파니가 움직이고 있어.”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내가 어째서 WWF와 계약하고는 타도 ACW를 가치로 걸고 움직였는가.

그 이유 중 하나가 이 회사에서 나의 상품성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ACW와 nWo는 WWF를 한동안 완전히 발라버렸던 위험한 적들이었다.

그들이 크게 활약할 때 WWF의 주가는 현상 유지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나날이 상승해 업계 전체의 파이 자체는 태도 불량 시대나 황금시대를 이미 아득히 넘어섰음에도 그러한 결과가 발생했다.

거기서 불만을 갖는 건 누구일까.

“주주들이지.”

그리고 그런 이들의 앞에 PWA와 우리가 나타나 다시금 WWF가 ACW를 추월하는 상황을 만들어준다면?

“분명히 내 지지자가 되어줄 거야.”

물론 WWF는 회장이 발행주의 60% 이상을 소유하고 있던 기업이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바트 맥센이 원하는 대로 운영해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옛날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아니지.”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업계의 성장과 맞물려서 WWF라는 프로레슬링 회사는 더 거대해졌다.

그렇기에 회사를 위해 발행주를 더 늘렸고, 그것은 바트 맥센 개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발행되는 주식의 대부분을 매입해 최대한 확보해두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확보한 지분율은 10% 정도.

그로 인해 바트의 지분율은 45.8%까지 하락했다.

여기에 든 금액이 꽤 컸으나, 티파니와 나는 망설이지 않고 투자를 했다.

결국, 우리가 매니지먼트 사업과 주식 투자를 통해 돈을 번 진정한 이유는, 이 업계를 지배하고 싶기 때문이었으니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그리고 다 늙어서는 시대에 뒤처진 늙은이가 되어서 꼰대짓 좀 하려고.

‘그래도 누구처럼은 안 하겠지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

뭐, 어쨌든.

이걸로 대결 구도가 성립되었다.

스스로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지금은 나 스스로가 지금 이 업계에서 아이콘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

혼자 힘으로 판매 지표가 널뛸 정도로 강한 팬층을 이끌고 다니는 남자.

ACW에 실망하고 나온 팬들과 PWA의 팬들을 흡수한 내가 바로 그랬다.

그렇기에 다들 지지해줄 터였다.

또한 티파니가 지금껏 거둬온 사업적인 성과가 바트 맥센 쪽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어줄 터였다.

이제야 상황이 갖추어졌다.

즉.

“슬슬 맞설 때라는 거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거기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러셀이 이윽고 손을 내밀었다.

“그럼, 챔피언이 되어 기다리지.”

“야, 아주 시건방을 떠는데?”

많이 컸다. 이 자식.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러셀의 손을 맞잡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 * *

WWF 링 서바이벌은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같은 시기에 개최된 ACW의 ‘World War III’를 아슬아슬한 차이로 따돌리며 업계 1위를 재탈환해냈다.

여기서 고무적인 부분은, ACW 역시도 최강의 패를 준비했다는 점이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와 다른 스포츠계에서 활동하는 온갖 스타들을 다 끌어와 페이퍼뷰를 진행했다.

WWF에게 자신들이 밀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이 약점이 되었다.

“팬들은 프로레슬링 선수들을 보러 오지 할리우드 배우들이나 농구 선수들을 보러 오는 게 아니거든요.”

티파니 맥센은 웃으며 말했다.

일종의 프리 토크였다.

프로레슬링 업계 사람을 만나는 자리이니만큼 이런 식으로 대화를 터둬야만 향후 이어갈 이야기가 편하니까.

거기에.

‘존 로이타스’는 쓰게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존 로이타스.

WWF의 2인자.

그 옆에도 WWF의 임원들이 함께 해, 그들은 비밀스러운 회담을 가졌다.

그것도 뉴욕의 S&T 사무실에서.

티파니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지금쯤 ACW는 분명 난리가 났을 테죠. PWA가 WWF와 일한다고 아주 생난리를 피우던 게 엊그제면서.”

“그, 그러게 말입니다.”

“통쾌하지 않나요? ACW는 지금 울면서 어떻게든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겠죠.”

그런데 하는 게.

“고작 프로레슬러 순위 발표?! 졸렬한 것에도 정도가 있지! 푸하하하!”

“…….”

“…….”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티파니의 앞에서 임원들은 서로를 보며 생각했다.

제 아비와 똑 닮았다.

“어쨌거나. 크흠.”

한바탕 그 야성을 드러낸 뒤에 곧바로 이성을 되찾는 듯한 액션을 취하는 그 말투까지도 똑같이 빼닮았다.

“왜 저희 회사가 S&T인지 아세요?”

“그, 글쎄요.”

“원래는 제가 메인이니 T&S를 걸자고 누가 그랬는데…….”

여기서 말하는 그 누구는 신이었다.

그가 사업 쪽은 티파니가 우선이라면서 뻔뻔하게 말했던 것이다. 정작 투자 아이디어는 자기가 다 내면서.

아무튼 간에.

그런 상황에서 티파니가 T&S로 회사명을 정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TMA 같으니까.

캐나다의 그 프로레슬링 단체.

그래서 S&T로 갔는데.

“그런데 알고 봤더니 S&W랑 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더군요. 성명권 소송이 참 귀찮은 문제인데. 후후.”

“하하하…….”

“마음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임원들은 영혼 없이 웃었다.

그들 모두가 지금 티파니가 어려운 선택을 종용하기 위해 자신들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모두가 알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신과 티파니, 다시 말해 S&T는 지금 이들에게 거래를 제안하고자 했다.

그것도.

이들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그렇기에 임원들은 모두가 가시 방석 위에 앉아있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저희 쪽에 붙으시지 그래요?”

이런 식으로 갑작스러운 순간에 훅 치고 들어오는 것도 딱 바트의 스타일이었다.

“…….”

“……음.”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셔야죠.”

“역시 신을 챔피언으로?”

“예.”

“그렇, 습니까.”

“혹시 몰라서 덧붙이는데.”

티파니는 확실히 해두었다.

“제가 그 사람을 회사의 간판스타로서 밀고자 하는 건 그 상품성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다들 아시죠?”

“예, 예. 물론입죠.”

“누가 신을 의심하겠습니까.”

그건 솔직한 의견이었다.

티파니 맥센과 신의 개인적인 관계에 이런 푸시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신을 월드 챔피언으로서 미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이 되기 때문이었다.

바트 맥센의 독재가 끝났다는 상징.

그리고 티파니 맥센의 목적은 옛날에도, 지금에 이르러서도 단 하나뿐이었다.

선수들의 복지 향상.

에디 비테레로의 죽음 앞에서 무력하게 눈물을 쏟았던 과거를 기억하는 그녀는 이제 싸울 준비를 마쳤다.

이제 한 발자국 남았다.

“모든 건 회사를 위함이죠.”

“알고는 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회장님께서 아직 건재하신데 가능한 일이려나 싶군요.”

“주주들 동의는 받아놨어요.”

티파니는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WWF의 좋은 파트너인 미스터 로널드 트럼프를 비롯해, 신의 상품성을 인정하고 그를 밀어주자는 의제에 찬성표를 던진 주주들의 목록과 서명이에요.”

물론, 전체 의결권의 50%를 넘기는 수치였다. 이거라면 확실히 바트 맥센에게 요구할 수가 있었다.

슬슬 인정하라고.

이걸 시작으로 차근차근 회사를 바꿔나간다.

바로 그것이 현재 신과 티파니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었다.

고민에 빠진 WWF의 임원들.

그 앞에서 티파니는 선택에 조금 더 큰 도움을 주기 위해 말을 덧붙였다.

“이미 50%가 넘는데도 당신들에게 이런 제안을 한 이유가 뭘까요?”

“그건…….”

고민에 빠진 임원들.

확실히 그랬다.

그들은 WWF라는 회사의 사업부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재들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자 하는 바트 맥센의 욕심으로 인해 주주들 사이에서 가진 힘은 미약했다.

그런 이들에게.

어째서.

티파니 맥센은 자신의 편에 설 것을 지금 종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여러분을 살려드리고 싶어서죠.”

“…….”

“…….”

“여러분은 유능해요. 솔직히 제가 모르는 분야에서 앞으로 많은 도움을 바랄 수가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기에.

버리는 선택은 피하고 싶다.

티파니 맥센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 자리의 사람들은 그 웃음만은 바트 맥센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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