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
링 서바이벌이 끝나고 다음 날.
나와 러셀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경미’했기 때문에 곧바로 버닝콩에 출연해 애프터 쇼 각본을 수행했다.
사실 별건 없었다.
링 위.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어제 링 서바이벌의 여파 때문인지 오프닝부터 팬들의 반응이 엄청났다.
그런 엄청난 반응 속에서는 아무리 러셀과 나 같은 베테랑이라고 해도 솔직히 감정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제의 각본은 선악을 넘어선, 말하자면 일종의 경쟁이자 파티였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딱히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링 위에 서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링 서바이벌에서 입었던 부상과 그날 병원에서 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짜낸 대화들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부상은 좀 어때. 신.”
“나? 나쁠 건 없지.”
갈비뼈에 금이 간 것에는 일단 붕대를 감아두었고 또한 셔츠를 입어둔 상태였기에 딱히 티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러셀은 아니었다.
어깨에 부목을 감아둔 녀석의 모습은 확실히 부상을 입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난 여유롭게 이야기했다.
“너야말로 러셀. 상태가 엉망인데.”
“말이 거칠게 반항을 해서 말이야.”
여기에서 말하는 말(馬)은 나다.
“고삐를 매는데 고생을 좀 했지.”
“정확히 3초 동안 말이야.”
“그래, 그리고 그게 우리 팀 러셀의 승리를 결정지어줬지. 고작 3초지만 너희들은 내게서 그걸 빼앗지 못했고.”
[Wa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제의 패배자는 나였고, 그건 러셀과 그 팀원들의 위상을 크게 높여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팀원들의 위상이 낮아졌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왜냐면 정말 치열한 경기 끝에 승패를 결정지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건 다음의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우리와 그날 참가한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 말이다.
이들이라면 멋진 스토리, 격렬한 경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느끼는 기대감.
그게 바로 위상으로 연결되었다.
그럼, 그 기대감을 줘보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 인정하겠어. 확실히 이번 링 서바이벌은 우리들의 패배였지. 그것을 통해, 나는 확실하게 하나를 느꼈어.”
WWF에는 러셀 하트가 있다.
나의 그런 말을 들은 팬들이 러셀의 이름을 외치며 리스펙트를 보냈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러셀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면서 그런 팬들을 잠시 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링 서바이벌 전까지만 하더라도 러셀은 분명히 악역으로서 팬들의 야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녀석이 이제는 반대로 어마어마한 환호를 받다니 참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러셀. 너도 알고 있잖아. 그건 네 팀의 승리지 네 승리는 아니야. 오히려 그때 그 애송이 코디 로스가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몰랐지.”
“그럼 이렇게 돌려주지. 드류 맥킨마이어가 보호해주지 않았더라면 너는 분명히 내게 박살이 났을 거야.”
[Uooooooooooooooohhhhh……!]
링 위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러셀과 나는 서로를 잠시 노려보았다.
Face To Face.
두 선수가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프로레슬링의 장치.
러셀과 나의 Face To Face는 우리 두 사람이 가진 라이벌리 아래에 형성되어 가장 강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러셀과 나는 동시에 피식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오늘 밤이라도 결판을 내고 싶지만…….”
“몸이 이래서야 불가능하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붙어보자고. 때가 오면.”
“그래, 좋아.”
러셀이 손을 내밀었다.
[Uo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녀석과 힘껏 악수를 나눴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팬들의 환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게 내년 레슬 임페리움을 암시하며 링 세그먼트는 막을 내렸다.
* * *
그렇게 세그먼트를 마친 뒤.
광고가 나가는 동안 러셀과 나는 링을 내려와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왔다.
그러자니 또, 바트 맥센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두 사람을 환영해주었다.
“고생 많았네!”
“…….”
“뭔가 그 반응은?”
“아, 아뇨.”
사람이 죽을 때가 됐나.
갑자기 너무 변해서 적응이 안 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너털웃음을 터뜨린 바트는 러셀과 나를 툭툭 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푹 쉬게나.”
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감각을 참으며 나오자 러셀이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야?”
“아니, 너 티가 너무 나서.”
“내가 바트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게?”
“아니, 바트가 널 인정할 때마다 어딘가 좀 어색해하는 모습이 말이야.”
하지만 바트는 원래 그런다.
그게 러셀의 설명이었다.
“널 인정했다는 거겠지.”
“글쎄, 내 생각에는 자기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숙이고 들어온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게 아닐까?
왕국은 이제 제국이 되었다.
바트 맥센이라는 억만장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거대해졌다.
각 제후들의 권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면서 우리는 그들 모두를 규합해 바트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 같잖은 에고를 내려놓고 SIN을 원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라고.
그리고 그게 옳은 길이었다.
상품성이 있고 확실하게 팬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선수에게 챔피언을 준다.
지극히 상식적인 부킹이었다.
물론, 내 소속 문제가 있기는 했으나 우리들은 현재 바트 맥센의 뒤를 이어서 WWF라는 회사의 주식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주주들도 계속 지지해주겠지.
티파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업적 능력을 계속 증명해 보였으니 말이다.
‘나쁘지는 않아.’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평화로운 해결 방식이었다.
바트 맥센을 완전히 짓뭉개버리는 게 아니라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바트도 이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ACW를 따라가기 위해서 회사의 덩치를 키워야만 했고, 그로 인해서 우리가 파고들 틈을 주고 만 것이었다.
‘오히려 그래서인가?’
바트가 고분고분하게 된 것이.
어쨌든 간에 좋은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만약에 놈이 PWA나 나, 혹은 티파니에게 허튼 수작을 부리려고 한다면 분명히 거기에 대응을 해야 할 테니까.
* * *
쇼가 완전히 끝난 뒤, 늦은 밤.
퇴근을 하지 않고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러셀 하트는 곧바로 경기장으로 돌아가 사무실을 찾아갔다..
자리에 앉아 위클리 쇼 이후의 사업 쪽 업무 처리를 하고 있던 바트 맥센이 곧바로 그를 맞이해주었다.
“오, 러셀. 왔군.”
“식사는 하셨습니까?”
“뭐, 대충 먹었지.”
그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본 러셀은 확실히 신이 하는 생각이 틀린 것 같지 않다고 느꼈다.
저런 어린애 같은 미소라니.
‘확실히 좀 이상해지기는 했어.’
그런 생각과 함께 러셀 하트는 바트가 권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이 안 끝나셨나 봅니다.”
“거의 끝났어. ……아무래도 이번 링 서바이벌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공격적인 마케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좀 처리할 게 늘었다.
그런 식으로 설명한 바트 맥센은 곧바로 러셀의 반대편에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러셀은 심호흡을 했다.
“월드 챔피언이 되고 싶습니다.”
“…….”
순간 얼이 빠진 바트.
그 앞의 러셀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부킹에 대해 요구를 해온 적은 처음이었던 터라, 바트 맥센은 일단 그 이유를 물었다.
“평소에는 이런 식으로 내게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던 자네인데.”
그랬다.
사실, 회장과 독대를 해서 자신의 부킹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러셀 하트는 시나 다음가는 위치에 있는 선수로서 충분히 그런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런 식으로 부킹을 요구하지를 않아서, 바트 맥센은 역시 올곧은 하트 패밀리의 인물답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런 러셀이 요구를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신과 붙고 싶습니다.”
러셀은 진중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2010년의 레슬 임페리움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뤄보고 싶습니다.”
“역시, 그래서였군.”
바트는 씁쓸하게 웃었다.
“자네 둘의 관계는 특별하지. 그런 라이벌리는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아.”
하지만.
“위대한 선수들은 언제나 그런 라이벌리를 지닌 채 커리어를 만들어왔어.”
“예, 회장님과 락콜드나 캡틴 로건과 랭 새비지, 더 팍과 트리플H 같은 라이벌리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맞아. 시나와 자네의 라이벌리도 그렇게 설명할 수가 있겠지.”
“글쎄요.”
“응?”
“저는, 저와 시나의 라이벌리는 시나가 얼마나 완벽한 정신력을 지닌 선수인지를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랬다.
‘하트’라는 이름을 내건 이들 중 최고가 되려는 것이 바로 러셀 하트였다.
하지만 시나와는 그런 캐릭터를 표현하기보다는 완전무결한 시나의 앞에서 악당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싫다는 건 아니었다.
시나에게 깊이 공감하고 응원하는 가족 팬들의 앞에서 악당으로서 활약하는 것은 정말로 즐거운 일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인간 러셀 하트는 원했다.
그것을 넘어서서, 자기 자신이 어떤 남자인지를 표현할 수 있는 싸움을.
그게 바로 신과의 결전이었다.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그 경기의 승자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러셀은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팬들이 신이 이기는 스토리를 원하고 있다면 그에게 대관식을 치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상쾌한 미소와 함께.
아무런 ‘외부’의 개입 없이 2010 레슬 임페리움의 결전을 맞이하고 싶다.
그런 러셀의 앞에서 잠시 고민을 하던 바트 맥센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못 해줄 것도 없지. 자네와 신의 라이벌리가 앞으로 회사에 가져다줄 이득을 생각한다면 말이야.”
너무나도 손쉬운 대답이었다.
거기에 좀 의아함을 느낀 러셀 하트는 그만 솔직하게 묻고 말았다.
“진심이십니까?”
“그럼 진심이지.”
바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개자식……. 참으로 절묘한 부분을 파고들었더군. 내가 ACW와의 혈전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도랑을 파고 들어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어.”
솔직히 그렇게 당했다고 깨달았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은 분명히 내 아래에서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나갈 인물이라는 것을.”
“……그렇군요.”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묘한 기분이었다.
신은 그가 이 업계에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동시에 두 사람의 사이에는 서로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존재했다.
그게 라이벌리였다.
그리고 그런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부딪히며 러셀은 친구가 인정을 받자 기쁜 것과 동시에, 라이벌이 자신도 듣지 못한 극찬을 받았다는 사실에 솔직히 질투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앞으로 레슬 임페리움에서 대등한 대결을 펼칠 수 있을 듯해서.
기쁘다는 감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러자니 바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레슬 임페리움에서 지는 결말을 상정해두지는 않겠네. 왜냐면 자네 역시도 훌륭한 선수니까.”
“……감사합니다.”
그 말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했다.
승부는 결정 난 게 아니다.
두 사람이 맞이할 결말은 팬들의 반응도 알 수 없었으므로 아직 완벽하게 만들어진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러셀은 생각했다.
2010년의 레슬 임페리움.
반드시 신을 ‘이기겠다’고 말이다.
* * *
한편.
ACW의 총괄 부사장, 데릭 비숍은 회사의 회장과 임원진이 모두 참석한 회의에서 한창 깨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숍, 설명을 해보게나.”
일단 체드 터너가 그런 식으로 변명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듯했다.
“아, 옙. 사실 이번 패배는…….”
“그쪽에서 선수들 빼온답시고 회사 운영비만 수십억이 들었지. 그런데 시청률에서는 밀리고 있어. 말이 되나?”
하지만 비숍이 입을 열자마자 그간 참아왔던 불만이 마구 쏟아졌다.
체드 터너 산하, 데릭 비숍을 제외한 회사의 임원들은 프로레슬링에 문외한이었다.
그렇기에 쇼의 운영을 데릭 비숍이 맡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역전하는가 싶던 시청률과 각종 지표가 WWF에 다시 따라잡혔다.
그 중심에 있는 남자는 두 명.
“신과 숀 시나지.”
“……예에.”
“두 사람이 가지는 파급력은 정말로 엄청나. 프로레슬링이 아닌 곳에서조차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하니까.”
주로 시나는 아동용 프로그램이나 광고 따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고.
신은 영화나 드라마, 토크 쇼 같은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매력을 알렸다.
하지만.
“왜 우리에겐 그런 선수들이 없지? 아니, 신은 원래 우리랑 일했잖아? 왜 그가 WWF에 출연하고 있는 거지?”
“그, 그게…….”
“성과를 가져와. 비숍. 아니면 자네는 해고야.”
“더 팍을 데려오면 어떻습니까?”
“그건…….”
임원 중 하나의 질문에 체드 터너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얼마 전에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넌지시 ACW에 출연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가 돌아갈 곳은 한곳뿐입니다.]
그건 분명 WWF일 터였다.
아직까지 젊은 그가 WWF로 돌아간다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될 터였다.
그러자니 비숍이 입을 열었다.
“시나나 신은 아니지만……. 그들을 웃도는 스타를 한 명 영입해서 회사의 아이콘으로 키워보고자 합니다.”
거기에 다들 흥미를 가졌다.
“그게 누구지?”
데릭 비숍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는 분명히 ACW의 실책으로 인해 시청률 1위를 재탈환 당했지만.
이 남자만 있다면 분명히 WWF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터였다.
“러셀 하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