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
갈비뼈 부상은 대략 6주에서 8주 정도의 회복 기간을 거쳐야만 했다.
즉, 킹스 럼블이 개최되는 시즌에는 선수로 복귀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원래대로라면 집에서 푹 쉬면서 최대한 무리하지 않아야만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스케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꽤 긴 출장이었다.
나의 조국, 한국으로.
“괜찮겠어요?”
떠나기 며칠 전.
가서 사용할 짐들을 챙기고 있자니 티파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몸도 다 안 나았는데 그냥 일정 취소하고 집에서 쉬는 게 낫지 않아요?”
“무리만 안 하면 된다고 했으니.”
“무리를…… 하게 되겠죠.”
그녀는 눈썹을 찡그렸다.
“레슬링을 ‘가르치는’ 거잖아요.”
“……그렇지.”
“당신 성격이면 아무리 봐주기만 한다고 해도 하다가 반드시 흥분해서 시범을 보여줄 것 같단 말이죠.”
“아, 아닐걸?”
“아뇨, 분명히 그래요.”
티파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 여자,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일단은 뭐, 그랬다.
내가 내한을 했을 때도 좋은 친구로서 맞이해주었던 ‘무안도전’ 팀에서 프로레슬링에 도전한다는 모양이다.
그 기획에 혹시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연락이 와서 나는 두 달 정도 한국에서 머무르며 그들의 프로레슬러로서의 훈련을 도울 예정이었다.
‘부상이 낄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직접 모든 트레이닝을 시키는 건 힘들어졌고, 디테일을 수정해 다른 식으로 가기로 했다.
한국 프로레슬러를 몇 명 정도 불러서 나 대신 낙법이나 기술 시전을 할 때 도움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쪽 선수들을 방송에서 띄워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겠군.’
현재 한국에서는 수도인 서울에 있는 단체 하나가 월마다 꾸준히 성황리에 쇼를 개최하고 있다고 들었다.
전생에는 안 그랬는데.
나의 존재로 인해 아직까지 프로레슬링에 대한 인기가 식지 않고, 오히려 더 올라가는 상황 같았다.
나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한국은 내 뿌리가 되는 국가이자 부모님의 출신지였다. 그곳에서 내가 영향력을 갖는다니 좀 자랑스러웠다.
어쨌거나.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자.
“약속하고 가요.”
“솔직히 말해봐. Honey.”
“……?”
“나랑 떨어지기 싫은 거지?”
“와.”
내 가벼운 농담을 들은 티파니가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건 좀 상처받는데.
“각자 할 일이 있잖아요.”
티파니는 내 재킷의 깃을 슬그머니 가다듬더니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걱정 말고 다녀와요.”
“……그래.”
걱정은 하지만 나를 믿는다.
그 신뢰감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하지만 나에게도 이유는 있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리 ‘프로레슬링’이 하고 싶어져도 충분히 참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러셀 하트와의 결전.
2010년 레슬 임페리움.
그때를 위해 나는 방송 촬영을 하는 한편 회복에도 전념할 생각이었다.
* * *
그렇게 찾아온 12월.
크루들과 한국에 도착한 뒤로도 나는 미국 쪽과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며 상황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그쪽에서 내년 레슬 임페리움을 위해 작업을 진행하며 티파니는 계속해서 내게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12월 7일.
WWF에서 최초로 주주총회가 개최되었고 50%를 넘겨 그들의 의사가 앞으로 각본에 반영되게 되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레슬 임페리움에서 러셀 하트와 월드 챔피언십을 가지고 겨루게 될 것 같아요.]
그런 좋은 소식 속에 나는 무안도전 팀과 만나서 촬영을 시작했다.
“아, 오늘 이렇게 신 선수가 다시 한 번! 우리 무안도전에 나와주셨습니다! 무려! 저희 무안도전 팀에게 프로레슬링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A-Yo! 그게 정말이에요?! 형님?! 아, 아니! 정말로 신 선수가 우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여기에 왔어?!”
멤버가 조금 바뀌었다.
‘꼬마’가 없어졌고, 웬 스킨헤드를 한 뚱뚱한 사내 한 명이 추가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
“아~ 신 선수 오랜만입니다!”
“신, 신…… 마이, 마이 후렌드.”
“아이~ 뭐야! 빠져!!”
‘거성’ 그리고 ‘뚱보’까지.
다들 기억이 나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약속했던 대로 레슬링을 가르치는 동시에, 한국 프로레슬러들을 초청해 시범 맨으로 삼았다.
그리고 끝난 뒤, 그들로부터 생각도 못한 감사 인사를 듣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신 선수.”
“당신이 아니었다면 한국 프로레슬링은 이렇게 올라오지 못했을 거예요.”
“아뇨, 제가 한 게 뭐라고.”
나는 거기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러분의 단체가 인기를 얻은 것은 여러분 덕이지 제 덕이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의 인기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들, 그것과 이들의 인기는 다른 문제였다.
“아까 보니까 기술도 잘 쓰시고 아주 잘하시던데 앞으로도 힘내세요.”
“예, 옙!”
“감사합니다!”
“방송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한국의 프로레슬러들과도 편하게 인사를 나누었고.
그러한 일정 속에서 꼬박꼬박 병원을 방문하며 부상도 치료를 받았다.
그런 식으로 일정이 계속 이어졌다.
즐거운 TV 쇼 촬영.
부모님의 나라이자 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환대를 받고 있다는 건 정말로 기쁜 일이었다.
또 그러는 사이, 미국의 부모님이 자꾸 한국에서만 파는 물건을 뭘 보내라고 하셔서 좀 귀찮기는 했지만.
이조차도 전생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나는 거기에 감사를 느꼈다.
변했다.
변하고 있다.
거의 다 왔다.
‘뭐, 사실.’
처음부터 생각하던 방식대로는 아니었지만, 어찌저찌 잘 되고 있는 듯했다.
바트 맥센도 얌전히 우리 쪽에서 하는 요구를 들어주려 한다는 모양이고.
정말로 이제 날 인정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내가 상상하던 바트 맥센과의 결말과는 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게 맞겠지.’
현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되도록 큰 분쟁 없이 끝나는 게 올바른 흐름일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쇼는 계속 되었다.
한국에서는 시차 때문에 생방송이 아니라 방송이 끝나고 하루 뒤의 저녁에야 쇼를 틀어주었는데.
계약 때문이라면서 WWF는 공영방송에서 황금시간대에 방영이 되었고.
PWA는 잘 나가는 신생 케이블 채널이 ACW는 오래된 중견 케이블 채널에서 각자 방영을 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매주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자막을 입힌 프로레슬링 영상을 즐거워하며 시청하다니.
그런 상황 속에서 각 프로그램은 취지에 맞춰 계속해서 방영되었으며.
그렇게 찾아온 12월 20일 일요일.
[러셀 하트! 러셀 하트가 다시 한 번 월드 챔피언 자리를 탈환합니다!!]
[안타깝게 쓰러져 있는 셰무스! 아! 러셀에게는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승자! 러셀 하트가 바로 지금! 황금빛 벨트를 들어 올립니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미국 팬들의 환호와 현지 한국인 해설이라는 독특한 조합의 방송이 즐거웠다.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아무래도 한국말이라고는 해도 빠르게 말하는 건 영 익숙하지 않아서.
어쨌거나.
WWF 월드 챔피언 벨트를 들어 올린 러셀은 화면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고.
그걸 마주보며 똑같이 웃은 나는 곧바로 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축하한다.]
곧 벨트를 빼앗기게 되겠지만.
팬들의 리스펙트 속에 벨트를 든 녀석은 정말로 기뻐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식으로 부상 회복과 무안도전 촬영, 모니터링을 거듭하며 나는 12월 한 달을 모조리 한국에서 보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다시 찾아온 2010년.
나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 * *
한편, 미국.
2010년이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충격적인 기사가 보도되었다.
[러셀 하트, ACW로 이적?]
사람들이 그런 소식에 깜짝 놀라 들어가면 나오는 건 ACW 측에서 비밀리에 계약을 제시했다는 기사였다.
하지만 그 금액이 가관이었다.
연봉은 무려 이천만 달러.
WWF에서 신이 받는 금액과 타이였고, 기존에 그가 받던 연봉인 칠백만에서 2배 이상 상승한 엄청난 금액.
거기다 1년에 최대 150일만 위클리 쇼에 출장해도 좋다는 조건부터 시작해서, 파격적인 머천다이즈 수익 배분율까지.
미식축구 업계의 탑 스타들이나 받을 법한 엄청난 금액이 제시되었다.
……그런 찌라시가 나돌았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황된 조건이라면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필라델피아의 한 호텔 안.
일을 마친 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러셀 하트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All Championship Wrestling의 부사장, 데릭 비숍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재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상대방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강탈하듯이 돈으로 사버리는 전략.
이제는 그 타깃이 러셀이었다.
그 마수가 단물이 다 빠진 업계의 노장들이 아니라 지금 당장 상대 단체의 탑스타에게까지 뻗친 것이었다.
“…….”
[고민을 할 조건인가?]
데릭 비숍이 물었다.
러셀은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시선은 줄곧, 테이블 위에 올려둔 WWF 월드 챔피언 벨트에 향했다.
[조건에 간을 보고 싶은 거라면 그만두기를 추천하겠네. 이 업계에 샐러리 캡 제도가 있었더라면 자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벅찰 정도야.]
“일단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러셀은 그렇게 말했다.
전화를 끊은 뒤, 길게 한숨을 내쉰 그는 머릿속을 잠시 정리했다.
물론, 이런 계약을 제안 받았다고 해서 이적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러셀 하트는 그런 남자였다.
돈보다는 자신의 캐릭터, 다시 말해 ‘킹 오브 하트’가 어떻게 이 업계의 역사에 남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신과의 대결.
이후의 라이벌리.
선수 커리어의 말년까지.
어떤 식으로 될 것인가.
그렇기에 ACW에 이적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면 ‘러셀 하트’라는 이름의 초상권이 묶여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두가 ‘급전’을 당기기 위한 것으로, 어쩔 수 없이 한 계약이었다.
하트 패밀리가 운영하는 던전과 스턴포드 레슬링의 재정에 당시 엄청나게 많은 빚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한순간에 하트 던전과 스턴포드 레슬링이 넘어가게 생겼고.
그걸 어떻게든 러셀이 WWF에서 버는 돈으로 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가면서 빼앗기지 않게 버텨오던 상황.
그렇기에 이번 재계약은 중요했다.
이걸 잘 해내야만 앞으로 남은 빚이 5년 안에 끝날지 10년까지 이어질지가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상황이었다.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은 하트 패밀리를 포기하자고 이야기했지만, 러셀은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이번 사태를 전략적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솔직히 그래서 데릭 비숍의 제안에 순간적으로 엄청난 유혹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
그와의 관계는 무척 소중했다.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자신과 동등한, 때로는 더 낫다고 생각되는 거의 유일한 존재가 바로 신이었다.
거기다 약속까지 해버렸다.
2010년 레슬 임페리움에서 월드 챔피언과 도전자의 입장으로 만나자고.
그렇기에 러셀은 딱히 ACW로 이적할 마음은 없이 은근슬쩍 바트 맥센에게 다음 재계약에 대해서 물었다.
기사를 막 읽은 참이었던 바트 맥센은 안색이 창백해져 이렇게 말했다.
“설마 넘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예?”
“아니, 러셀. 이봐. 내가 자네에게 얼마나 잘 해주었는가? 원하는 대로 월드 챔피언까지 두르게 해주었고.”
“예, 그래서…….”
“회사도 재정 상황이 딱히 좋지만은 않아. 그러니까 너무 무리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단 점. 알아주게나.”
“예, 그 점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나 시나 같은 대우는 아니라도, 적어도 얼마 전 재계약한 오튼 같은 대우만 해준다면 그는 지금까지처럼 회사에 계속 충성을 다할 생각이었다.
대략적으로 천만 이상.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금액은 받아야겠다는 게, 러셀의 희미한 생각.
그 앞에서 바트 맥센은 순간 충격적인 발언으로 러셀 하트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다.
“……팔백만.”
“예?”
“너무 적은가?”
그야 당연하지.
이 2년간.
그리고 얼마 전의 링 서바이벌에서.
러셀은 자신이 시나와 같은 회사의 탑 페이스에도 절대 밀리지 않는 상품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해보였다.
실제로 상품 판매량은 시나를 잇는 2위였고, 특히 캐나다를 비롯한 유럽 쪽에서 인기를 끄는 게 그였다.
그런 스타에게 겨우 팔백만이라니.
이전까지의 연봉인 칠백만에서 고작 백만이 오른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제가 천만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까?”
“음……. 그건 아니네만.”
“신에게는 1년에 4번 출장에 이천만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풀타임으로 WWF에 출장하는 제가 팔백만이라니.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만. 지금 정말로 회사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
한숨을 내쉬는 바트 맥센.
러셀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
이 회사에서 정말로 최선을 다해 몸을 불사르며 일을 해왔는데, 고작 이 정도의 연봉을 제시하다니.
물론, 그게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레슬러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얼른 하트 던전을 은행으로부터 되찾고 돈을 모으고 싶었던 러셀에게는 그 돈이 정말로 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주변에 있는 다른 슈퍼스타들은 천만은 무슨, 이천만 단위까지 바트로부터 돈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그럼에도.
러셀 하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싸우기로 했단 말이다.
친구이자 전우, 그리고 라이벌.
그걸 위해서라도 러셀 하트는 WWF와 재계약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회장님.”
“뭔가.”
“지금 WWF는 다시 ACW를 추월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회사의 재정에 문제가 있다니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일세.”
한숨을 내쉬는 바트.
“이번에 그놈들의 숨통을 끊어줄 만한 괴물과 계약을 하게 되었거든.”
“예……?”
그리고 이어진 선수의 이름을 들은 러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