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
2010년 킹스 럼블의 럼블 매치.
그 우승자는 바로 나였다.
팬들의 환호 속에 세리모니를 끝마친 나는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왔다.
바트가 마중을 나왔다.
“신.”
헤드셋마저 벗어던지고 내게 다가온 그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럼블 매치의 우승에 대한 축하를 해주었다.
“고생 많았네.”
“감사합니다. 보스.”
“이제 시작이지만.”
“레슬 임페리움에서.”
“그래, 월드 챔피언십 매치.”
나는 거기에서 승리하고 회사의 차기 메인 이벤터로서 발돋움할 것이다.
그런 바트의 격려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백스테이지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서있었다.
한 명은 바로 월드 챔피언.
러셀 하트.
나머지 한 명은 그 도전자.
더 팍.
“신~ 고생 많았어! 친구!”
“메인이벤트도 잘 부탁드립니다.”
여유롭게 인사를 건넨 팍과는 달리 러셀은 딱히 말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저 가볍게 주먹을 맞부딪혔고 러셀과 팍은 메인이벤트 경기를 위해 고릴라 포지션으로 들어섰다.
잠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촤악,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와 함께 몸을 스치는 오한.
“…….”
턱을 타고 물이 뚝뚝 떨어졌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니 내 머리에 양동이를 부은 자세 그대로인 랜스 오튼이 낄낄 웃으면서 서있었다.
“안 들어오고 뭐하냐?”
“너 인마…….”
“다들 기다린다. 빨리 와.”
오튼이 내 머리에 양동이를 씌웠다.
한숨을 내쉬며 녀석을 따라가자, 락커룸에서 다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시나가 캔 맥주를 휙 던졌고 그것을 받아든 나는 얌전히 옆에 내려놓았다.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까.
그런 기대감과 함께 자리에 앉은 나는 러셀 하트와 더 팍의 WWF 월드 챔피언십 매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 * *
캐나다의 도시, 캘거리에 자리를 잡은 하트 패밀리의 총본산, 하트 던전.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날카로운 기타 소리와 함께 그들의 자랑, 러셀 하트가 입장을 시작했다.
[Yeeeeeeeeeeeeeeeeeeeaaahh!!]
캐나다를 상징하는 흰색 바탕에 붉은 라인이 들어간 노슬리브 코트를 입은 그는 팬들의 환호성 속에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링으로 올라갔다.
그 등 뒤로 터져오르는 폭죽.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전설 중의 전설인 더 팍이었다.
“좋아! 러셀!”
“가자! 박살을 내버려!!”
다들 환호를 보냈다.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자식이 이렇게 거대한 단체의 중심에 서서 챔피언 벨트를 두르고 활약을 하고 있다니.
감격스러운 광경이었다.
다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러셀을 응원하는 와중, 오직 한 사람만은 침묵을 지키며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렉 하트였다.
‘미안하다. 러셀.’
그가 어깨에 짊어진 짐은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하지만 그에 대해 그렉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집안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그걸 어떻게 해서든 다들 지탱하고 있었다.
그렉 역시 최대한 허리를 싸매고 PWA에서 받는 임금을 대부분 은행 빚을 갚는데 사용해야만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워낙 빚이 많아, WWF라는 회사에서 최고의 스타로 있는 러셀에게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재계약 협상이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러셀은 회사를 떠나야만 하는 위치에 놓였다.
스스로는 괜찮다고 이야기했지만 이제 막 전성기를 구가해야만 하는 시점에서 그 속은 당연히 타들어갈 터.
그럼에도 하트 패밀리의 사람들은 이 일을 절대 타인에게 말하지 않았다.
가족의 일은 가족의 일이기에.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과 동료의 커리어를 생각하는 그 모습은 오히려 자신보다 더 낫게 느껴졌다.
그렉 하트는 언제나 생각했다.
자기 자신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틀어 언제나 최고의 선수라고.
그럼에도.
이렇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열정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러셀 하트.
하트 패밀리가 낳고, 신이라는 걸출한 동료와 함께 성장한, 이 업계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최고의 선수.
그렇기에 그렉은 일단 다른 감정은 다 접어두고, 레슬 임페리움으로 향하는 여정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경기는 초장부터 기술의 러셀과 쇼맨십의 팍이 격돌하는 걸로 시작되었다.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환호는 거의 반반.
선수로서의 위상은 회사의 아이콘이었던 팍이 더 높았지만, 러셀에게는 지금까지 쌓아온 이야기가 존재했다.
그리고 미래로 이어질 이야기.
신과의 결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렉 하트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존 마이클스도 물론 좋았지만.’
젊은 시절의 그는 정말 건드리는 것조차 힘든 망나니였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라이벌리를 만들지 못했었다.
하지만 만약.
마이클스와 자신의 라이벌리가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저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약간의 아쉬움.
그리고 대견함, 기대감.
미안함.
여러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그렉 하트는 계속해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더 팍의 거친 브롤링에 러셀 하트가 드롭킥으로 응수합니다! 두 사람 다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걸린 게 많은 경기니까요! 단순한 월드 챔피언십 매치가 아닙니다!!]
“좋은데?”
“팍을 잘 이끌어주고 있군요.”
경기에 내재된 드라마를 주로 설명하는 해설자들과는 달리 하트 패밀리의 일원들은 기술적인 면을 주로 보았다.
더 팍은 경기력이 좋은 선수라기보다는 링 위의 심리전에 능한 사내였다.
몇 가지 단순한 기술만으로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며 승리를 따내는, 굉장히 효율적인 레슬링을 하는 스타일.
그리고 러셀은 그런 그에게 맞춰주며 기술적인 면에서 재미를 보여주었다.
러셀 하트는 진화했다.
하트 던전에 있을 때는 위대한 삼촌, 그렉 하트의 다른 버전에 불과했으나.
점차 하이플라잉 레슬링이라는 화려함을 첨가하면서 달라진 것이다.
킹 오브 하트.
그 이름에 걸맞은 남자로.
계속해서 진행되던 경기는 결국 화려한 레슬링을 앞세운 러셀 하트가 주도권을 잡아 팍을 링 밖으로 몰아냈다.
턱을 매만지며 통증을 호소하는 팍.
링 안에서 그를 바라보던 러셀은 로프를 붙잡고 이내 힘껏 뛰어올랐다.
그리고 반대로 돌아 로프 바깥쪽을 밟고는 그 반동을 이용해 다시 뛰었다.
공중에서 깔끔하게 회전하는 러셀.
[Uoooooooooohhhhh……!!]
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프링보드 문설트.
그것을 받아낸 팍이 쓰러졌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팬들의 환호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오오오-!!]
호쾌한 포효와 함께 일어선 러셀은 그렇게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좋아.
경기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모두가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경기 시간은 약 20분.
그 후로 5분 정도, 신과 러셀이 링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링 서바이벌은 막을 내린다.
예정은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
그 이면에 숨겨둔 계획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WWF의 회장, 바트 맥센과 몇몇 임직원들 이외에는 없었다.
쇼는 예정대로 끝나지 않는다.
바트 맥센은 ‘슛’을 걸 예정이었다.
각본에 따라 전개되는 프로레슬링.
거기에서 그 각본을 벗어난 실제 상황을 저지르는 걸 슛이라고 표현했다.
링 위의 카우보이들은 어디까지나 그런 연기를 할 뿐, 결코 상대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돌연 한 사람이 총을 장전하고 쏴버리는 상황도 존재했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바트 맥센은 총을 장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러셀 하트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주주들의 승인과 실제 성과를 통해 바트 맥센은 앞으로 신을 확실한 WWF의 스타로 밀어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렇기에 누가 뭐라던 이번 레슬 임페리움 경기를 통해서 신이 제대로 된 대관식을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그 레슬 임페리움 경기에서.
ACW로 넘어가게 된 러셀 하트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누가 안단 말인가?
막 ACW로부터 시청률을 탈환해온 시점에 단체의 이미지에 해가 될 위험성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러셀이 신을 링 위에서 진짜로 공격해서 이미지를 박살 내버린다면?
그리고 스스로 타이틀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면서, ACW로 가서 WWF는 구린 단체라고 갑자기 슛을 쳐버린다면?
그 위험성을 감수할 순 없었다.
따라서 팍으로 가는 게 맞았다.
그렇기에 바트 맥센이 택한 것은.
끔찍한 배신이었다.
신이나 러셀을 설득할 수도 있었겠지만, 바트 맥센은 그런 말랑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어차피 통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러므로 바트 맥센은 일단 신을 속이면서 최선을 다해 이 일을 준비했다.
그 누구에게도 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극비리에 이 배신을 진행시켰다.
그리고 신에게는 사탕을 쥐여주었다.
킹스 럼블 우승.
그렇게 한다면 이 배신이 일어난 후에도 신은 이쪽의 말을 들을 터였다.
왕좌로 향하는 그 길을 밟는 영광을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 신.’
배신이 일어나기 1분 전.
바트 맥센은 생각했다.
‘내 아래에서 나의 챔피언이 되라.’
마치 위대한 신에 의해서 운명을 조종당하는 그리스 비극의 영웅들처럼.
그렇게 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바트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이 신을 너그럽게 품어주기만 한다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그리고 그는 분명히 실패하겠지만.
그조차 품어주면 될 문제라고.
ACW라는 거대한 적을 앞에 둔 상황에서 그는 그렇게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분명.
신도 그렇게 해주리라고 믿었다.
상황은 모두 준비되었다.
슛.
그것은 마치, 여행 카니발에서 벽에 붙은 상품을 쏴서 맞추는 타깃 슈팅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옛날에는 그런 카니발에서 프로레슬링 쇼가 일어나기도 했으므로 아마 거기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용어겠지.
바트 맥센은 그때를 떠올렸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가난 속에 양부들의 가정 폭력에 노출되었던 어린 시절. 단 하나의 즐거운 추억이었다.
빙고로 돈을 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찾게 된 카니발. 거기에서 가장 큰 테디베어를 맞춰서 어머니께 드렸었지.
그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바트 맥센은 미래에 자신의 불행이 될지도 모르는 사내를 쏘기로 했다.
타이밍은 경기의 종반부.
더 팍이 샤프 슈터를 사용하고 러셀이 그걸 반격해 승리하기로 한 스팟.
바로 그 시점.
돌연 링 벨이 울렸다.
땡땡땡-!!
[Uoooooooooooooooooooohhhh!!]
혼란에 빠진 관객석.
그리고 두 명의 선수.
바트 맥센은 음향 팀장을 바라보았고 그가 곧바로 팍의 음악을 내보냈다.
[If You Smell-!!]
경기 결과는 팍의 승리.
예정과는 다른 배신이 일어났다.
* * *
땡땡땡-!!
[If You Smell-!!]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이게 무슨 일이지?
대체 뭐가 일어난 거야?
[어?]
[더 팍이 승리를 거둡니다! 아! 러셀 하트! 안타깝게도 항복을 하고 맙니다!]
해설자들 중 하나도 그랬다.
각본을 벗어난 지금의 상황에 완전히 넋을 잃고 있었다. 그걸 바로 옆의 사람이 가로채서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마치 이게 각본인 것처럼.
하지만 나는.
그리고 락커룸의 선수들은 다들 이 결과에 어안이 벙벙해진 눈치였다.
“시, 신……?”
오튼이 물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다.
링 위의 팍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 어색함을 감추려는지 갑자기 폭죽이 마구 터져 올랐고, 옆에 있던 심판이 억지로 벨트를 가져와 그의 손에 들려주면서 승리 선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카메라는 러셀의 모습을 결코 비추지 않은 채로 방송이 이어졌다.
“…….”
머릿속이 순간 차가워졌다.
말 그대로.
지금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며, 주도자에게로 생각이 향했다.
바트 맥센.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뭔가 싶어 문손잡이를 몇 번 돌리고 있자니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오시면 안 됩니다.]
“……?”
[회장님 명령입니다. 대기해주세요.]
이래서였나.
이 맥주 파티는 바트 맥센의 축하였다. 그렇기에 다들 한 락커룸에 모여서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지켜본 거고.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어진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나는 옆에 있던 소화기를 들었다.
까앙-!
그 끝부분을 휘둘러 문손잡이를 박살 내고는 그대로 바깥으로 나갔다.
밖에 서있는 건 보안 요원들.
“자, 잠깐!”
다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라 곤봉을 빼들었다. 숫자도 생각보다 많아 거의 모든 인원이 모인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뻐억-!
마치 프로레슬링을 할 때처럼.
“어엇?!”
하지만 이건 프로레슬링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지.
그렇게 펀치 한 방씩을 날려서 세 명을 잠재운 나는 그대로 고릴라 포지션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일의 주동자.
바트 맥센을 죽이기 위해서.
보다 못한 보안 요원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나를 제압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퍼억-!
펀치를 날리고.
위험한 곳을 향한 곤봉은 피하고, 아닌 곳은 그냥 적당히 맞으며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고릴라 포지션.
소란을 듣고 밖으로 나온 직원 몇몇이 복도를 보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시, 신!”
“잠깐! 진정해! 우리도 모른다고!!”
“그럼, 꺼져.”
나는 사납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벽에 딱 들러붙는 직원들.
나는 그들을 지나쳐 아직까지 쇼의 혼란을 수습하고 있는 고릴라 포지션 안으로 들어섰다.
“러셀 빨리 들어오라고 해!”
“팍은 세리모니 하라고 하고!!”
그런 식으로.
이 사기극을 어떻게든 각본으로 뒤덮기 위해서 다들 난리를 피우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은 바로, 가장 안쪽 자리의 남자.
바트 맥센이었다.
“…….”
“변명은 않겠네.”
그 단호한 표정에서 모든 걸 알아차린 나는 곧바로 책상을 밟고 뛰었다.
빠가악-!!
그리고는 바트 맥센의 안면을 그대로 있는 힘껏 걷어찼다.
빌어먹을 새끼가.
모두를 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