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05화 (405/634)

405.

바트 맥센은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지금껏 이 프로레슬링과 WWF라는 드라마의 출연자이자 주연이었던 러셀 하트라는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동.

말도 안 되는 사기극이었다.

거기에 대체 누가 속아줄까.

관객들은 나를 보면 러셀과의 라이벌리를 생각할 터였다. 우리는 레슬 임페리움에서 맞붙을 예정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쟁취했던 럼블 매치 우승이었다.

우리는 링 위에서 계속 레슬 임페리움 매치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러셀은 스크류잡을 당한 뒤, 최악의 형태로 회사를 나가게 되었고.

킹스 럼블이 끝나고 한 달 만에 링으로 돌아온 나는 갑자기 마법으로 기억이 지워진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러셀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냥 우승자의 권리를 사용해 더 팍에게 도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예정이었다.

그게 통할까?

갑자기 이 이야기가 무슨 망한 영화 프랜차이즈처럼 갑자기 리부트를 하고 설정 하나를 뜬금없이 지워버리는데?

모두가 러셀을 기억하는데?

나와 그의 라이벌리를 기억하는데?

‘그게 통하겠냐.’

하지만 바트는 내게 그걸 요구했다.

더 팍이 먼저 링으로 나갔다.

[레슬 임페리움까지 얼마 남지 않았군.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이 더 팍에게 도전할 능력을 갖추진 못했어!]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나마 더 팍은 바트 맥센과 대립하고 거리를 두는 각본으로 인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트 맥센은 이어질 나와 더 팍의 대립 각본이 팬들에게 먹히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자신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긴장했나?”

그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바트가 링에 입장하기 전의 선수에게 이렇게 직접 다가와서 말을 거는 건 아마 전례가 없는 일일 터였다.

그만큼 그는 나를 현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영민하게 굴었다.

확실히 바트 맥센에게 화가 나기는 했지만, 월드 챔피언이라는 지위를 바라고 있다. 그런 감정을 드러냈다.

“복귀가 좀 늦었군.”

“뭐, 딱 좋지 않습니까.”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팬들도 절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래.”

바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 미래만 생각해라.”

“당신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일단 그렇게 하도록 합죠.”

“그래. ……좋은 일 아니더냐? 너와 내가 이렇게 한편에 서있다니. 우리는 분명 역사에 남을 콤비가 될 거다.”

입술에 침이나 바를 것이지.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자신과의 계약을 벗어나거나 상품성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내칠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단지 표정으로만 드러낼 뿐, 딱히 입으로 표현하지는 않고 나갈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가 찾아왔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킹스 럼블 이후 1개월만의 귀환.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이 큰 환호를 보냈다.

“다녀와!”

씨익 웃은 바트가 내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쳤고, 나는 커튼을 걷고 나섰다.

선글라스와 가죽 재킷.

검정색 롱팬츠 경기복.

평소와 똑같은 차림.

그렇게 링으로 나선 내가 맞서게 된 것은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짜릿한 남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선수.

더 팍.

만약에 러셀과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대립을 즐겁게 수행했을 테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게 되었군.’

싱긋 웃은 나는 링으로 향했다.

내내 시선이 교차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신과 더 팍.

더 팍과 신.

WWF가 현재 내걸 수 있는 최고의 매치 카드 중 하나.

두 사람의 첫 대면.

그게 이루어졌다.

Face To Face.

더 팍의 프로필상 키는 196cm.

하지만 실제 키는 188cm인 나와 비슷한 정도로 거의 같은 눈높이였다.

뭐.

나도 프로필로는 195 정도로 뻥튀기되어서 홍보되고 있으므로, 우리 두 사람의 대면은 확실히 그림이 되었다.

나는 팍을 노려보았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팬들이 환호를 보냈고 그런 가운데 팍 역시도 나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팬들은 그런 우리 두 사람의 대면만으로도 전율을 느끼고 어마어마할 정도로 큰 반응을 보내주었다.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강렬한 챈트 속에서.

팍이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댔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넌 대체 뭐하는 새끼냐?”

완벽한 무시, 그리고 조롱.

[Yeeeeeeeeeeeeeeeeeeaaahhhh!]

상대방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그 특유의 슬랭이 섞인 마이크워크는 더 팍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기술이었다.

“대체 누군데, 더 팍의 말을 끊고 링에 나와서 똥폼을 잡고 있는 거지?”

“그 벨트의 도전자.”

“네가? 아! 아아아~! 알겠어! 이제야 알겠어! 네가 바로 신이로군! 그래! 대체 어떻게 생긴 놈인가 많이 궁금했는데!”

팍이 내게 가까이 붙었다.

“그래! 너였군! 이번 킹스 럼블의 우승자! 제기랄! 그 곱상한 면상만 봐도 내가 없는 동안 이 업계가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느껴지는군!”

바로 그때였다.

[Russell……! Russell……!]

팬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예상한 대로의 상황이었다.

바트는 지금쯤 여기에서 왜 러셀의 이름이 나오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다들 기억하고 있으니까.

러셀과 나의 스토리를.

러셀 하트.

내 커리어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그 이름.

거기다 레슬 임페리움 경기와 스크류잡이라는 희대의 사태의 희생양.

팬들은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의견을.

이게 프로레슬링이다.

팬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팍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지만 팬들의 목소리를 그럴수록 점차 더 커졌고, 그로써 마이크워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마이크를 들자.

팬들은 기대를 했다.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장내.

나는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느끼며 그대로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물론 내 상대도 네가 아니었지만.”

[Uoooooooooooooooooohhhhh!!]

팬들은 완전히 미쳐 날뛰었다.

내가 한 대사는, 지금까지 WWF에서 지워져가던 러셀 하트라는 이름을 재각인시킨 환상적인 마이크워크였다.

물론.

백스테이지에서는 난리가 났겠지만.

링 아래에 있던 심판이 바트 맥센으로부터 호통을 들었는지 자기 목을 그으며 그 발언을 이어가지 말라고 신호했다.

하지만 어쩔 텐가.

어쩌면 좋은가. 바트 맥센.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걸 막으려면 날 죽여야만 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럴 수 없겠지.

나라는 존재를 원하고 있으니까.

그로서 반격이 시작되었다.

“왜 다들 말을 못해?”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러셀이 뭐 뒤진 것도 아니고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말을 못해?!”

[Yeeeeeeeeeeeeeeeeeaaaaahhh!]

“내가……!”

계속 말을 이어가던 찰나.

마이크가 끊어졌다.

“아, 아.”

확실히 끊어졌다.

[Bo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의 야유가 이어졌다.

‘이러면 더 반감만 사는데.’

하지만 내 이미지에는 좋았다.

나는 지금 각본을 넘어선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관객들에게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줬으니까.

팍도 거기에 맞춰 행동했다.

녀석이 내게 마이크를 내밀었고 나는 씨익 웃으며 그것을 받아 손에 쥐었다.

[Yeeeeeeeeeeeeeeeeeeaaaahhh!!]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고.

“말해봐! 계속 말해보라고!”

팍 역시도 바트 맥센이 만들고자 하는 가상의 세계를 넘어서서 나를 지지하며 마이크워크를 이어가라고 응원했다.

우리 둘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

말하지 않아도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팬들을 집중시킬지 알고 있었다.

바트는 두 번째 마이크까지는 방송 사고로 위장해서 끊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었지. 녀석은 나와의 승부를 포기하고 ACW로 도망쳤어.”

[Boo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쏟아졌다.

그래, 내 말은 틀렸다.

러셀은 도망친 게 아니다.

배신을 당하고 내쫓겼지.

그렇기에 팬들은 내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야유를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당했다.

“지금 그런 역겨운 짓에 대해 여기서 가장 열 받아있는 게 누구라고 생각해?”

팬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나 자신을 가리켰다.

“바로 나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빼앗겼으니까. 바트 맥센에게, 레슬 임페리움에서 벌어질 세기의 결전을.”

[Boooooooooooooooo……!]

바트를 향해 쏟아지는 야유.

그런 식으로 교묘히, 지금 이 각본과 바트 맥센 사이에 거리를 둔 나는 그대로 팍을 돌아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웃기는 게 뭔지 알아? 챔피언이 바뀌었군. 그것도 몇 년 동안 영화판에서 놀던 이빨 빠진 사자가 말이야.”

바로 그때였다.

팍이 내 마이크를 낚아챘다.

[Uooooooooooooooooooohhhh!]

경악을 금치 못하는 팬들.

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한판 붙을 것처럼 팍의 얼굴을 불쾌한 듯 노려보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결코 터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잠시 노려보고 있자니 팍이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빨 빠진 사자’라. 거참 멋진 표현이로군. 확실히 더 팍이 그 폭력과 배신이 난무하던 시절에 비하면 좀 온순해진 건 사실이지. 하지만! 네가 모르는 게 있어.”

팍이 내 얼굴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지금 네가 레슬링을 하고 있는 바로 이 시대는! 그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Waaaaaaaaaaaaaaaaggghhhhh!!]

환호가 쏟아졌다.

팬들 모두가 그걸 인정하는 걸까?

팍이 활약하던 태도 불량 시대가 지금 우리들의 시대보다 훨씬 낫다고?

아니지.

나는 내 얼굴에 대고 삿대질을 하고 있는 팍의 손을 있는 힘껏 쳐냈다.

[Uoooooooooooooooooooohhh!!]

다시금 경악을 금치 못하는 팬들.

이제는 노골적으로 신체 접촉까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나는 팍의 손에서 마이크를 빼앗아와 논리를 전개해나갔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Waaaaaaaaaaaaaaaagggghhhh!!]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환상적인 시대는 내가 활동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라고!”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자신만만한 선언.

거기에 쏟아지는 팬들의 응원.

사실, 실제로도 그랬다.

ACW와 PWA의 설립, 그리고 선수들의 외부 활동까지 겹치면서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융성한 시대는 사실상 지금이었다.

러셀 하트는 떠났다.

여기에 남아있는 것은 WWF 월드 챔피언 벨트와, 과거의 영광을 말하며 현 시대를 조롱하고 있는 웬 사내 하나뿐.

그런 상황에서 나는 증명해야만 했다.

그 벨트를 차지함으로서.

“어디 한번 붙어 보자고. 팍.”

우리 시대가 더 낫다는 걸 증명하겠다.

그런 식으로 기조를 다진 채, 더 팍과 나의 첫 번째 링 세그먼트가 종료되었다.

* * *

물론.

팍과의 링 세그먼트가 끝난 뒤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오자 곧바로 분노한 바트 맥센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내가 그놈 언급하지 말라고 했지!”

세상에.

사람이 어쩜 이렇게 뻔뻔할까.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는 바트를 바라보았다.

러셀 하트에 대해 언급하지 마라.

그건 녀석의 흔적과 존재감을 WWF에서 지워내기 위한 바트의 지시였다.

난 그걸 무시했고.

“초장부터 이런 식이야?!”

흥분해 마구 소리를 질러대는 바트.

그 앞에서 나는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내 뒤를 따라서 고릴라 포지션으로 들어온 팍이 날 변호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요. 바트. 방금 관객들 분위기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때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러셀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무시하고 세그먼트를 진행했다가는 어마어마한 역반응과 마주해야만 했다.

그걸 감내할 수는 없었다.

“팍! 너도 동조자야! 내가 마이크를 끊어서 신호를 보냈는데 잘도……!”

“어쩌자는 겁니까?”

“뭐?”

바트가 나를 휙 돌아보았다.

거기에 모두가 경악했다.

분노한 바트 맥센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그건 프로레슬링 업계에 전해져 내려오는 불문율과도 같았다.

하지만 뭐, 어쩌라고.

“관객들 반응 조져놓고 월드 챔피언에 오르면 이후가 잘 풀리겠습니까?”

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팍이 그런 것처럼, 저도 당신과 거리를 둬야겠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

잠시 고민에 빠지는 바트.

다들 숨죽여 그걸 지켜보는 가운데.

“틀린 말은 아니군.”

놀랍게도, 그는 순순히 납득했다.

그래, 계획대로.

바트는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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