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
팍과 나는 레슬 임페리움까지 대립을 거듭해가면서 자주 만남을 가졌다.
심지어 몇 번은 다음 지역까지 이동하는 로드 트립도 같이 할 정도였는데.
그렇게 함께 좀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팍의 성격에 대해서 파악이 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다르다고 느꼈지.”
캠핑 버스가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창문에 달라붙는 어둠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자니 갑자기 나온 말이었다.
“……뭐요?”
“락커룸 분위기라던가.”
그는 쓰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줄곧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흥미를 가지고 반대편의 그를 돌아보았다.
“내가 락커룸에 처음 왔을 때는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 없었는데.”
“저도 뭐…….”
장난 아니었지.
나는 쓰게 웃었다.
그나마 이번 생에서는 나아진 거다.
과거의 프로레슬러들과 지금의 프로레슬러들은 달랐다. 업계가 정착되면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과거에는, 뭐 예를 들자면.
“부커라던가.”
“에이, 그나마 부커는 착했지.”
팍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무장 강도 복역 경력이 있는 사람 앞에서 누가 감히 까불겠습니까?”
“그건 그렇군. 어, 난 솔직히 말해서 JBL이 제일 빡세다고 생각했어.”
“그 양반도 장난 아니었죠.”
내가 일찌감치 테이커의 마음에 쏙 드는 귀염둥이가 되지 않았더라면 엄청나게 갈굼을 받지 않았을까.
그 외에도.
과거의 레슬러들은, 대부분 자신의 인생에서 한번 큰 실패를 겪고 이 업계에 흘러들어온 이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그런 ‘건달’들에게 신사의 스포츠인 프로레슬링을 연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엄격한 룰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의 선수들을 보고 프로레슬링에 대한 꿈을 키운 이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그 시절처럼 바싹 군기가 잡혀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람들 덕도 있겠지만.’
오튼 정도가 그나마 애들을 갈구는 편이지. 나머지 선수들은 조용조용하게 말로 타이르려는 편이었다.
“그나마도 이건 우리 평가라서 후배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뭐? 제기랄, 우리 시절에 비하자면 너희는 천사지! 우리는 락커룸에서 얼음찜질도 못 하게 막았는데!”
“그건 그때 사람들이 잘못한 거지 우리가 잘한다는 말은 아니잖습니까.”
“거기다 너희 게임도 하잖냐.”
“……어, 그건 그렇죠.”
“우리 때는 락커룸에서 게임 같은 거 하면 선배들이 Nerd 새끼라면서 게임기를 박살 냈는데.”
슬픈 일이로구먼.
하지만 실제로 그랬었지.
“그래도 다행이야.”
팍이 미소를 지었다.
“많이 나아졌군.”
“걱정이 되셨나 봅니다.”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WWF에 한정해서지만. PWA니 ACW 같은 건 솔직히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어.”
“저도 후밴데요.”
“넌 알아서 잘 하니까.”
하지만.
“시나는 아니었지. 나 때와는 업계가 달라져서 걱정을 많이 했어.”
그러고 보면 그랬었지.
전생에서도, 팍은 시나의 시대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는 했었다.
그 때문에 도리어 대립 당시 시나와 실제로 사이가 안 좋았지.
사실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열광하던 팍의 시대와는 다르게 시나는 계속해서 역반응을 얻고 있었으니 말이다.
ACW라는 적을 상대로 싸워야만 하는데 그런 시나가 회사의 탑 가이라면 걱정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 시나는 적어도 내 기준에서 봤을 때는 아직 많이 부족한 레슬러야.”
“그래서 돌아오셨습니까?”
“그것과 돈. 그리고 시간도 남아서.”
“솔직하시군요.”
“위선을 떨고 싶지는 않았거든.”
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침묵.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는지 입을 다물고 있던 팍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네가 이 회사를 나간다고 했을 때 기분이 좋진 않았어.”
“그렇습니까.”
“하지만 네 행동과 논리도 뻔뻔하지만 마음에 들었어. 선수라면 그런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게 말하더니 팍은 자신도 확신이 서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가?”
“뭐가요?”
“너처럼 바트 맥센을 직접 조지겠다고 말한 선수는 지금까지 없었지.”
“그랬죠.”
“그 말은 어디까지가 진심이냐?”
“전부 진심입니다.”
“하긴, 그게 아니었다면 그렇게 일을 벌일 이유가 없기는 하지. 또…… 레슬 임페리움 같은 거대한 쇼에서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야.”
별 미친놈 다 보겠다.
팍은 그런 반응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싶기는 한데. 네가 그런다면 디테일은 보지 않고 너를 바트 맥센과 똑같은 놈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러라고 두면 됩니다.”
나는 쓰게 웃었다.
“중요한 건, 제가 더 이상 바트 맥센과 같이 일을 못 하겠다는 거죠. 바로 그게 정말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나는 팍을 바라보았다.
“그 양반은 과거에 사로잡힌 망령이에요. 그렇기에 지금의 시대를 폄하하고 우리를 바보 멍청이로 만들죠.”
마치 누구처럼.
그 말을 이해한 팍은 잠깐 눈썹을 찡그리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날 말하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군요.”
“ACW의 로건도 그렇군! 확실히 우리가 너희들의 앞길을 막고 있어.”
“정확히 말하자면 이거죠.”
나는 가감없이 말했다.
“노인네들이 아직도 자기 잘난 맛에 일선에 나서고 있으니, 우리가 활약하는 순간을 빼앗기게 되는 거죠.”
“내가 괜한 짓을 했나 싶군.”
“아뇨, 모르셨으니까요.”
괜한 짓은 맞았다.
“하지만 이후 어떻게 해주시느냐에 따라서 괜한 짓이 아닐 수도 있죠.”
그 말에 다시 고민에 빠진 팍.
나도 딱히 더는 이야기하지 않고 다시금 고속도로의 어둠에 매몰되었다.
프로레슬링은 결국 기회를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많은 것이 뒤바뀌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였다.
하지만 과거의 선수들은 언제나 그 기회를 받아가서 승리하고는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않은 채 업계를 떠났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을 벗어난 그들을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 모든 책임은 바트 맥센에게 있지만, 그들 역시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처럼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시대에서 살아남은 것은 시나뿐이었다.
‘그러니 이 업계가 몰락하지.’
그걸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나는 ACW로 간다.
그리고 그런 선택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할 생각이었다.
“신.”
바로 그때, 팍이 나를 불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 ‘끔찍한 배신’을 더 확실히 할 생각은 없나?”
“예?”
“나를 이기고 가라는 말이다.”
벨트를 버리고.
팍의 제안은 황당했다.
사실 나는, 경기를 치르기 위해 입장을 하고는 마이크워크를 한 뒤 그냥 링을 떠나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바트 맥센만을 배신한다는 취지에 걸맞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런 제안을 해왔고.
그렇기에 나는.
그만 미소를 짓고 말았다.
* * *
그렇게 찾아온 2010년 4월 4일.
20만을 가뿐히 넘긴 관객 수를 기록하며 레슬 임페리움이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 모인 팬들의 기대감과 그것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을 만한 준비는 물론 모조리 끝난 상태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 프로레슬링 업계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무대.
그 시작은 물론 폭죽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일반적인 폭죽 하나조차도 다른 경기장의 수 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
이것이 바로 레슬 임페리움.
더 팍과 나는 오늘, 이 규모에 절대로 부족하지 않은 경기를 준비해왔다.
‘결말’까지도 완벽한 그런 경기를.
완벽하게 준비를 해온 만큼 레슬 임페리움은 멋진 반응 속에 시작되었다.
각각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들이 그렇게 링에서 펼쳐졌다.
거기에 팬들이 열광을 하거나 아유를 보내는 모습은 정말로 이 업계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이걸 버리고 나간다.
WWF를 버리고 ACW로 간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모든 결과.
이 ‘세계관’이 결국 내가 가장 혐오하는 바트 맥센이라는 남자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팍과 같은, 어차피 떠날 과거의 선수들을 우대해주느라 현재의 선수들을 무시하는 게 정말로 불쾌했다.
‘어디 한번 엿이나 먹어보라고.’
그것도 길고 긴 경기가 끝나고, 정상에 오른 내가 모든 걸 걷어차고 회사를 떠난다는 충격적인 결말을.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모든 경기를 지켜보며 메인이벤트를 기다렸다.
세상에 밤의 커튼이 드리웠다.
“신 선수, 나가셔야 합니다!”
시간에 맞춰 찾아온 직원과 함께 락커룸을 나선 나는 그대로 경기 입장을 위해 고릴라 포지션으로 이동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벽을 꿰뚫고 들려오는 외침.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이 경기를 기대하는 수많은 관객들이 벌써부터 챈트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분위기가 달아오르게 되는 법이라, 직원들도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바트 맥센도 그랬다.
“최고가 될 준비는 끝났나?”
곁으로 다가온 그가 어깨에 손을 얹었고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혹시라도, 만약에. 지금 허튼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할지도요.”
“크하하! 그래서 자네가 좋아!”
완벽하게 속고 있다.
염려는 없었다.
반대편에 WWF 월드 챔피언 벨트를 든 채 서있던 팍이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 다녀와라!!”
바트 맥센의 외침과 함께.
어둠이 깔렸다.
경기장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달빛과 동시에 20만 관객 중 몇몇이 막 켠 핸드폰 조명만이 불빛이 된 상황.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aaggghhhh!]
북 소리가 시작되며 따라붙는 환호.
거대한 입장로 전체에 연기가 분사되며 그 뒤로 파이로 분사 장치가 지면에서 불꽃 덩어리들을 뿜어냈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밝은 조명이 내가 모습을 드러낼 입장로 위를 비추는 시점에 맞춰.
나는 커튼을 걷고 나아갔다.
[Yeeeeeeeeeeeeeeeeeeaaahhh!]
쏟아지는 환호.
나는 연기를 헤치고 나아갔다.
그렇게 불꽃과 연기 속에서 나아가자 경기장 전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수십만 WWF 팬들의 환호가 마치 거센 파도처럼 몸을 덮쳐오는 듯했다.
거기에 압도된 채 숨을 몰아쉬며 서있던 나는 천천히 링을 향해 나아갔다.
긴 여정을 뜻하는 듯한 입장로.
2미터 정도 되는 폭의 입장로 양옆의 관객석에 있던 팬들이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더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들의 감정이 느껴졌다.
기대감, 동경, 애정.
그것이 내게로 향했다.
뿐만이랴.
이 4층까지 있는 초대형 경기장에는 프로레슬링 팬들로 가득찬 상태였다.
무려 20만.
그들 모두가 기다렸다.
이 순간과 오늘의 경기를.
그렇기에 나는 오늘 팍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경기에서 승리한다.
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고 링을 떠남으로서 내 역할을 다 하는 거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나는 그렇게 링으로 올라갔다.
반대편 로프를 밟고 올라가 손을 번쩍 치켜들자니 팬들이 다시 한 번 내게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내주었다.
재킷을 벗어 던지고 선글라스를 관객석으로 던진 나는 그대로 투지를 드러내며 팍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음악이 나왔다.
[If You Smell-!!]
[Waaaaaaaaaaaaaaaaaggghhhh!!]
[What The Pock Is Cookin’!!]
콰앙-!
터져 오르는 폭죽.
거대한 불꽃이 하늘을 수놓고 나와는 정반대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조명 속에 팍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브리프 형태의 경기복.
니 패드를 포함해서 무릎까지 연결된 검정색 레슬링 부츠와 엘보우 패드를 걸친 전형적인 프로레슬러 복장.
거기에.
WWF 월드 챔피언 벨트.
허리에 차거나 어깨에 걸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벨트는 팍이 지닌 위용을 어마어마하게 상승시켜주었다.
그는 날 노려보며 링으로 올라왔다.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경기도 시작하기 전에 벌써부터 팬들이 우렁차게 우리의 이름을 외쳤다.
그리고 나는.
팍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게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으나.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이어지는 경기는! 오늘의 메인이벤트! WWF 월드 챔피언십입니다!”
[Yeeeeeeeeeeeeeeeeeeaaaahhh!!]
“먼저 도전자를 소개하겠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출신! 195cm에 120kg! 업계의 Alpha! Breaker! 그 이름은!!”
나는 그 말에 맞춰 앞으로 나섰다.
“SIIIIIIIIIIIIIIIIIIIIIIIINNNNNNN!!”
[Waaaaaaaaaaaaaaagggghhhh!!]
링 위의 조명이 날 비추면서 도전자를 향해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이어지는 챔피언 소개.
“그 상대는! 마이애미 플로리다 출신! 196cm에 130kg! 현 WWF 월드 챔피언! 이 업계에서 가장 짜릿한 사나이!!”
[Yeeeeeeeeeeeeeeeeaaaahhh!!]
[Theeeeeeee Pooooooooocckkk!]
팍이 벨트를 번쩍 치켜들며 나섰다.
그런 식으로 차례차례.
하나하나 천천히 공을 들이며 WWF는 이 매치 업을 끝까지 포장했다.
벨트가 심판의 손에 넘어가고 그가 황금빛의 벨트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땡땡땡-!!
[Uo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팍과 나는 일단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링 위를 크게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