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
더 팍은 훌륭한 ‘프로레슬러’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프로레슬러란, 링 위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을 뜻했다.
그리고 반대로, 팍은 정말 형편없는 기술 구사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그가 사용하는 샤프 슈터는 시전하는 자세가 영 애매해서 ‘똥 슈터’라는 굴욕적인 이름으로 불릴 정도였으니까.
얼핏 듣기에 모순적인 말일 터였다.
좋은 프로레슬러면서 동시에 구린 경기력을 가졌다니 말이다. ‘사람 좋은 바트 맥센’과 비슷한 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예로부터 프로레슬링 업계에는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은 프로레슬링 그 자체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
‘경기력은 필요 없다는 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업계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었다.
딱 잘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가까운 단어를 생각하자면, 그것은 ‘팬들을 열광시키는 능력’이겠지.
더 팍은 그런 힘 하나만큼은 업계의 역사를 통틀어서 최고인 남자였다.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경기가 시작한 후 십몇 초.
우리는 단지 링 위를 돌고 있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질질 끈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 환호를 보냈다. 그게 이것을 빛나게 해주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팍이 고개를 힐끔 돌리며 웃자니 더 큰 환호가 쏟아지는 광경은 놀라웠다.
우리는 아직 서로 주먹 한 번 휘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벌써부터 경기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거리가 좁혀졌다.
단지 그것만으로.
팬들은 미쳐 비명을 질러댔다.
이 경기에 걸려있는 그들의 기대감이 어느 정도인지가 그로써 느껴졌다.
그 상태에서 이루어진 전초전.
쿵-!
락 업으로 맞붙고.
물론 설정 상 체중이 10kg 정도 적은 나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직후, 팔의 옆으로 빠지며 그 팔을 잡고 회전시켜 그대로 꺾었다.
[Uooooooooooooohhhh……!]
자연스레 팍의 등을 밀어냈다.
반대편으로 달려간 뒤, 로프 반동을 하고 돌아오는 팍. 나는 타이밍에 맞춰 힘껏 뛰어올라 드롭킥을 날렸다.
콰앙-!
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상대방을 타격하는 소리보다 더 클 정도로 높은 타점에서 날린 드롭킥이었다.
그렇게 한 방을 먹인 뒤 팍이 뒤로 물러나 다시 거리를 벌렸고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잠시 정신을 차렸다.
그 정도로 호쾌한 드롭킥.
나는 그 한 방으로 지금 팍에게 내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 속에 나는 씨익 웃으며 그렇게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끌고 왔다.
하지만 그건 팍도 마찬가지였다.
다시금 이루어지는 락 업.
“흐압!”
팍이 곧바로 내 쪽으로 움직여 헤드록을 걸었다. 나는 그 힘에 발버둥치다 이내 팍을 반대편으로 밀어냈다.
다시금 로프 반동.
하지만 그 속도가 훨씬 빨랐다.
“웃……?!”
의아해 바라본 순간 내 쪽으로 달려든 팍이 그대로 숄더 블록을 날렸다.
퍼억-!
팍의 어깨와 부딪혀 넘어진 나는 그대로 옆으로 구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와 거리를 벌렸다.
아까와는 반대의 상황.
“허세는 다 떨더니 고작 그거냐!?”
팍이 내게 분노를 터뜨렸다.
[Waaaaaaaaaaaaaaagggghhh!!]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쭉 뺀 채로 마치 돌진하기 직전의 소라도 된 것처럼 내게 자신의 투지를 보여주었다.
다시금 이어진 싸움.
락 업에서 체인 레슬링으로.
팍은 체인 레슬링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반대로 나는 체인 레슬링의 도사였으므로 주도권은 내가 쥐었다.
나는 번개처럼 움직였다.
[Uoooooooooooooohhhh……!]
오른발을 내딛어 팍의 오른쪽으로 파고 들어. 그대로 그 앞에서 뒤로 돌면서 허리를 있는 힘껏 붙잡았다.
[Yeeeeeeeeeeeeeeeeaaaahhhh!!]
순식간에 벌어진 일.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깔끔하게 우위를 점한 나는 버텨내려는 팍을 들어 반대편으로 힘껏 내쳤다.
콰앙-!!
붙잡은 허리를 놓지 않고 힘을 준 상태에서 버티며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큭……!”
그렇게 뒤에 달라붙은 상태에서 나는 팍의 다리와 내 다리를 엮고 페이스 락 계통의 기술로 연결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손을 풀고 팍의 머리를 붙잡으려고 했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팍이 옆으로 굴렀다.
[Waaaaaaaaaaaaaaagggghhhh!!]
상황의 변화에 환호하는 팬들.
팍이 구르면서 그대로 함께 옆으로 구른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일어섰다.
팍 역시 훌쩍 뛰어 일어났고 그대로 나를 노려보는 찰나의 순간이 이어졌다.
팍이 내게 달려들었다.
상대의 두 다리를 붙잡아 그대로 몸으로 밀어붙여 쓰러뜨리는 기초 기술.
더블 렉 테이크 다운.
그 호쾌함에 팬들이 환호했고 팍은 그대로 내 안면에 엘보우를 날렸다.
퍼억-!
그렇게 연잇는 엘보우.
팍은 특유의 과장되고 호쾌한 동작으로 내 안면을 연이어 후려쳤고 거기에 팬들은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냈다.
역시나 더 팍이었다.
간단한 엘보우 어택만으로도 이렇게나 큰 환호를 팬들에게 받을 수 있다니.
그렇기에 더 팍은 프로레슬러로서 정상급의 기량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아우라’라고 하더랬지.
타고난 재능과 카리스마가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그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노력도 할 수 있는 쪽이었다.
흔히들 사람들은 말한다.
재능은 노력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이란 행위는 오직 ‘재능’을 갖춘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것에 가까웠다.
흔히들 매체에서 묘사될 때 노력하지 않는 천재와 노력하는 범재가 있다.
하지만 정말로 재능이 없는 사람은 노력조차 하지 못한다. 스스로의 무능에 절망해 집어삼켜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팍의 노력은 그 재능을 기반으로 둔 탄탄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나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프로레슬링은 현실을 왼쪽, 판타지를 오른쪽에 두고 그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팬들에게 감정을 전하는 스포츠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판타지의 영역은 옅어지고 현실에 좀 더 발을 걸친 형태로 프로레슬링은 형성되었다.
즉.
팍보다 뒤의 시대에 있는 나는 보다 현실적인 느낌의 프로레슬링을 했다.
그 형태가 바로 이것이었다.
팍이 나를 테이크다운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사실, 이건 팍이 내 스타일의 프로레슬링에 맞춰준 것에 가까웠다.
팍은 좀 더 단순하게.
자리에 서서 치고받고 수플렉스 같은 기술을 주고받으며 퍼포먼스적인 행동을 하는 식으로 경기를 전개했는데.
여기에서 만약 감이 좋은 시청자나 관계자들이라면 알아차릴 터였다.
곧바로 내 반격이 이어짐을.
“그헉?!”
나는 팍의 복부에 발을 올리고 머리를 양손으로 잡아 그대로 넘겨버렸다.
콰앙-!
[Uooooooooooooooooooohhh!!]
부웅 떠오른 팍의 몸이 반대편으로 날아가 링 위에 내동댕이쳐졌고, 나는 그대로 자세를 바로 잡고 대응했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긴장, 해소, 긴장, 해소.
드라마의 기본이었다.
팍이 나를 덮치며 긴장.
펀치를 날리며 긴장의 연속.
내가 팍을 날리며 해소.
그리고 해소된 상태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구 스파크를 튀겨댄다.
자.
다시 긴장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천만 명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팍의 턴이었다.
퍼억!
내가 펀치를 날렸고.
거기에 순간 턱을 움켜쥐며 물러났던 팍이 팬들의 반응을 조련하기 시작했다.
몸을 크게 돌린 그를 보고 가장 먼 4층석의 관객들조차도 지금 링 위의 상황이 어떤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
팍이 강하게 맞았다!
주도권은 신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루어지는 리턴.
[Uooooooooooooooohhhh!!]
몸을 비틀듯이 크게 열어젖힌 팍이 그대로 내 안면에 힘껏 펀치를 날렸다.
퍼억!!
[Yeeeeeeeeeeeaaaaahhhh!!]
그리고 연잇는 펀치.
팍의 시그니처 무브 중 하나였다.
하나, 둘, 셋.
연속 펀치를 날린 팍은 내가 정신을 못 차리자 그대로 팔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빛나는 보물을 바라보듯 자신의 주먹을 과시하는 퍼포먼스를 취하고는 마지막 펀치를 내 면상에 꽂았다.
빠악-!!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요란하게 바닥을 굴러, 엎드린 상태에서 쓰러지고는 천천히 몸을 가누며 그대로 일어섰다.
그러자니 다가온 팍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너무 오버 셀링 아니야? ……아, 화내는 게 아니라 묻는 거임.”
“남이사.”
짧게 대답한다.
팍은 화가 난 연기를 하면서 내 셀링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해야 맞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팍의 손에 잡혀 그대로 반대편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버티컬 수플렉스.
몸이 번쩍 들려 일직선으로 선 상태에서 팍이 천천히 뒤로 넘어졌다.
투콰앙!!
충격이 몸을 덮쳤다.
나는 등을 붙잡은 채 고통에 겨운 표정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면서 반대편의 팍을 확인했다.
요란한 핸드 스프링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냄새를 맡듯 눈을 감은 채 잠시 팬들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Yeeeeeeeeeeeeeeeeeaaaahhhh!!]
단지 그것만으로.
그것만으로도 반응은 죽여줬다.
다들 팍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무슨 슈퍼 히어로를 보듯 환호를 보냈다.
그 시절에는 저게 최고였다.
팍의 카리스마도 대단했고, 그가 가진 잘생긴 외모와 근육질의 몸을 보며 팬들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즉, 말하자면.
이 경기에는 단순히 승패뿐만이 아니라…… 과거와 싸워 이겨내고 말겠다는 내 의지도 포함된 경기였다.
저런 카리스마.
저런 압도적인 캐릭터.
거기에 대항해 SIN이라는 뒷골목 출신 양아치는 과연 무엇을 가지고 있나.
그걸 어떻게 해야만 내가 이어질 배신에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우리에게는 치열함이 있다.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기를 거쳐, 그 과도기에 데뷔한 우리에게는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락콜드는 목 부상으로 은퇴했고.
트리플H는 계속 심술을 부렸으며.
테이커는 계속해서 보호를 받았고.
더 팍은 업계를 떠나고 말았다.
우리들의 프로레슬링은 황무지로부터 시작되었다. 황무지에 출가해 과거의 별들을 바라보며 이곳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별들을 상대로 싸웠다.
어떻게든 승리해오며 만난 상대가 바로 이 남자, 더 팍이라는 존재였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우리들의 프로레슬링을 전면으로 부정을 했다.
‘그러니까 질 수야 없지.’
눈앞에서 보여주마. 팍.
당신이 사라진 이후로, 프로레슬링이 어떤 식으로 진화를 해왔는지.
수플렉스를 맞은 뒤, 팍이 특유의 건방진 표정으로 팬들을 조련하는 동안.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우.”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 하나하나.
지금 내 심리와 생각 모두를 정확하게 담아낸 지극히 현실적인 행동이었다.
‘좀 하는데?’
지금 같은 시대에서 같은 방식으로 프로레슬링을 해서 계속 반응을 얻다니.
뭐, 물론.
영화 쪽에서 명성을 얻지 않았더라면 팍은 결코 이렇게까지 좋은 취급은 받지 못했겠지만.
그런 생각과 함께 일어선 나는 곧바로 팍을 향해 걸어가 놈을 노려보았다.
[Uoooooooooooooooooohhhhh!]
다시금 투지를 내보이는 나를 보고 팬들은 다시금 기대감에 차 환호했다.
팍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벌써 회복했냐?”
“쌩쌩하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팍의 뺨을 날렸다.
쫘악-!!
봐주지 않고 아주 제대로.
거기에 순간 놀라 몸을 비틀거린 팍이 이를 악물고 내게 달려들었다.
다시금 주먹이 오가기 시작했다.
방금 이어진 내 일련의 행동을 보고 팬들은 분명히 깜짝 놀랐을 터였다.
그 말처럼 내가 팍의 따귀를 아주 제대로 때리자 다들 얼어붙고 말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모든 게 연기다.
이제 와서 프로레슬링이 드라마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무실했다. 그렇기에 선수들이 고안해낸 멋진 테크닉이었다.
현실과 가상의 벽을 부순다.
그 뺨치기는 개인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팬들은 순간 ‘팍과 내 사이가 정말로 좋지 않은 건가?’라고 생각해서 이 경기에 더 깊게 몰입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부킹을 해왔다.
이 순간을 위해서.
뻐억!
쫘악!!
주먹을 날리는 팍.
거기에 대항하는 나.
주먹과 찹.
연이은 난타전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로 지속되었다. 턴은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와 팬들이 열광했다.
[Waaaaaaaaaaaaaaaaaagggghhh!]
지지 않고 팍에게 맞선 나는 끝내 녀석의 안면에 펀치를 날리고야 말았다.
빠악!!
순간적으로 장내가 조용해질 정도로 강렬한 펀치. 거기에 맞은 팍은 제대로 셀링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허억, 허억…….”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바로 그때였다.
[Booooooooooooo……!]
순간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야유.
찐득하여 마치 타르처럼 굵은 사람들의 반응이 내 발목을 휘감으며 이내 몸을 타고 오르는 걸 느꼈다.
이 모든 게 내 의도대로였다.
협력자인 팍이 입을 가린 채 웃었다.
“…….”
내가 한 조금 전의 행동은 분명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기분 나쁘게 느껴질 터였다.
왜냐고?
환상 속에서 이어진 팍의 요란한 프로레슬링이 깨지며 순간적으로 내가 그들을 더러운 현실로 끌어내렸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 쪽에 가까웠으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여기에서 조금.
셰익스피어 식으로 말해보자.
오그라든다는 뜻이다.
나는 SIN이다.
‘백인 슈퍼 히어로가 모든 걸 때려눕힌다.’라고 말하는 프로레슬링의 환상에 젖은 모두가 잊고 있는 원죄이며.
여기 모인 이들이 원하는 판타지 세계를 박살 내기 위해 돌아온 남자였다.
남들과 달리 나는 알고 있으니까.
이 이야기의 비참한 결말을.
그렇기에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이곳에 모인 멍청한 놈들에게 현실의 잔혹함을 가르쳐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