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
경기는 순조롭게 전개되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신이 돌연, 팍의 안면에 힘껏 펀치를 꽂아넣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Uooooooooooooooooohhhhh!!]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팬들.
그건 고릴라 포지션에서 이 경기를 지휘하던 현장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야?”
바트 맥센이 순간 눈썹을 찡그렸고 그 뒤로 해설자의 수습이 이어졌다.
[정말 굉장한 펀치였습니다!]
[소리가 장난 아니었죠! 이 경기에서 신이 얼마나 승리를 원하고 있는지가 느껴지는 멋진 한방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바트 맥센은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모니터링 화면으로 신을 살폈다.
그를 찍는 카메라가 다섯 개.
팍을 찍는 카메라가 네 개.
개중에서 화면에 나가고 있는 것은 신을 촬영하고 있는 4번 카메라였다.
바트는 거기에 시선을 두고 신의 표정을 다시 한번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
딱히 묘하다 싶은 구석은.
없나.
그런 바트의 의심을 지워낸 것은 그 직후 이어진 팍의 행동 때문이었다.
[Waaaaaaaaaaaaaaggghhhh!!]
[팍이 다시 일어섭니다!]
[아!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 두 사람이 다시금 맞붙기 시작합니다!! 난타전에 20만 명이 환호를 보냅니다!]
[이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건 지금 링 위에 서있는 두 사람뿐입니다!]
[더 팍과 신! 신과 더 팍! 과연 이 영광스러운 레슬 임페리움의 마지막 순간에 서있는 남자는 누가 될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늘 이 경기가 그 어떤 때보다 치열하리라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은 채 공격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제기랄! 이 경기는 역사에 남을 겁니다! 마이클! 정말로 환상적이에요!]
[그, 그렇겠죠!!]
“마이클!”
바트는 버럭 호통을 쳤다.
그 말에 오늘의 해설자인 마이클 골이 당황해 내선 마이크로 바꾸고 곧바로 회장에게 대답을 했다.
[예, 옙. 회장님.]
“역사에 남는 경기가 된다는데 왜 거기에서 말을 더듬어!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잖나!!”
[죄송합니다!]
“빨리 수습해!!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하란 말이야!!”
바트는 그렇게 엄포를 놓았다.
그는 이런 식으로 해설자들의 대사 하나하나마저도 자신이 원하는 식으로 구성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 스타일이 올드해서 WWF로 온 다른 스포츠 해설자들은 모두가 실력이 낮아졌다는 억울한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누군들 잘하겠는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이처럼 곧바로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지는데.
그리고 우연이었을까.
때마침 신이 로프까지 밀려난 더 팍을 그대로 클로스라인으로 넘겨버렸다.
[클로스라인!]
이후 로프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크게 찍어!!”
바트가 버럭 소리쳤다.
거기에 영상팀장이 화면을 전환시켰고, 입장로에 세워져 있던 크레인 카메라가 그의 모습으로부터 천천히 줌 아웃을 하며 경기장을 담아냈다.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선수의 이름을 외쳐대는 팬들과.
그런 팬들을 잠시 둘러보는 신.
링 아래로 나가떨어진 팍이 일어서는 시점에 맞춰 그가 몸을 내던졌다.
그것도 문설트로.
[Uooooooooooooooooohhhhh!!]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성기의 존 마이클스나 사용하던 위험천만하고 화려한 무브. 신은 이 무대의 품격에 맞춰 그것을 사용했다.
날카롭게 반원을 그리며 떨어져 내린 신을 팍이 받아주며 그대로 두 사람은 링 아래에서 마구 나뒹굴었다.
“좋아!”
바트는 흥분해 소리쳤다.
이렇게 화려한 무브로 다시금 경기장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바트가 생각하던 것 이상이었다.
팍은 물론 잘해주었고, 신도 그에 절대 뒤지지 않게 맞춰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경기는 정말로 역사에 남을 순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신의 문설트!! 이 많은 관객들의 기억과 프로레슬링의 역사에 평생 남을 순간이 만들어져가고 있습니다!!]
바트 맥센의 명령에 맞춰 마이클 골이 다시 한번 이 경기가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임을 알렸다.
경기는 그렇게 계속 되었다.
바트 맥센은 숨을 몰아쉬며 일어서는 신의 모습을 흥분해 바라보았다.
* * *
내가 팍의 안면에 제대로 꽂아 넣은 펀치는 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 모든 게 내가 의도한 대로였다.
나는 그들을 순간적으로 현실로 끌고 왔고 그들이 원하는 즐거운 프로레슬링 쇼가 아니라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이 경기의 결말을 암시하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갔다.
문설트 이후.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감각을 느끼고 있던 나는 팬들의 환호성에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 받아준 팍은 완전히 뻗어버린 상태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그 곁으로 다가가 머리를 가까이 한 상태에서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괜찮습니까?”
“아주, 제대론데.”
팍이 씨익 웃었다.
“이런 기술까지 쓸 줄이야. 대체 어디에서 레슬링을 배운 거냐?”
“옛날에 집 근처에서 레모네이드 파는 아저씨한테 돈 주고 배웠죠.”
내 농담에 팍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경기가 계속되었다.
보통 때의 나는 치열하고 현실적인 스타일의 경기와 방금 문설트처럼 화려한 기술을 교묘하게 같이 썼다.
현대, 아니, 더 나아가 조금 더 미래에 유행하게 되는 하드 히팅 프로레슬링을 내 나름대로 섞은 것이었다.
그러니 팬들은 내 경기에 열광했다.
나는 팍을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콰앙-!
링 아래의 철제 계단에 부딪힌 팍이 무너졌고 나는 경기의 흐름을 약간 늦추며 되도록 천천히 움직였다.
문설트로 순간 집중한 팬들은 그런 내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렇기에 몰입은 계속되었다.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그런 내게 주도권을 내준 팍을 응원하면서 자연스럽게 경기를 따라왔다.
업계의 최고 선역과 돌아온 최고 선역 간의 경기. 그렇기 때문에 팬들은 경기의 약자에게 더 환호를 보냈다.
‘그게 지금은 팍이고.’
나는 다시 놈을 일으켜 세웠다.
순간 이어지는 반격.
퍼억!
[Yeeeeeeeeeeeeeeeaaaahhh!!]
펀치에 순간 놀라 물러서자 팍이 악을 쓰듯이 곧바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연이은 펀치에 바리게이트까지 밀려난 나를 팍이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우오오오오!”
바리게이트 바로 뒤쪽에 있던 팬들이 흥분해 목소리를 내는 게 들려왔다.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거인들 간의 싸움. 거기에 흥분하지 않으면 도리어 이상한 것이었다.
팍과 나, 우리들은 키 190cm, 체중 100kg을 가볍게 넘긴 거구들이었다.
그렇기에 이 싸움은 문외한이 보더라도 신화적인 싸움처럼 보이겠지.
그래, 바로 그게 프로레슬링이 내거는 가장 전통적인 캐치 프레이즈였다.
Myth Battle.
팍의 주먹이 날아들었고.
빠악-!
거기에 맞을 때마다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리게이트 앞에서 점점 무너져갔다.
[Waaaaaaaaaaaaaagggghhhh!!]
그런 나에게 다시 쏟아지는 환호.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거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렸다.
팍의 몸이 움찔 떨렸다.
주먹이 나간 건 한순간이었다.
뻐억-!!
또 다시 거친 한 방.
순간 놀란 팬들의 잦아드는 환호와 함께 나는 팍의 머리채를 붙잡고 바리게이트 반대편으로 휙 내던졌다.
거기에 달려가 부딪힌 팍은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너졌다.
공격이 거듭되었다.
나는 바리게이트 앞에 주저앉은 팍의 앞으로 다가가서 정강이를 세웠다.
그리고 걷어찼다.
뻐억!!
[Uooooooooohhhh……!]
경악에 찬 목소리는 조금 작았다.
그 외의 팬들 모두가 반응이 짜게 식었다.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팍의 복부를 몇 번이고 심할 정도로 걷어찼다.
물론 이건 제대로 차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로레슬링 기술이라기보다 막싸움에 가까운 이 무브는 분명히 팬들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몰입을 깨기 때문이었다.
내 하드 히팅 레슬링은 상대가 똑같이 하드 히팅으로 받아쳐 주지 않는 이상에야 단순한 폭력으로 느껴졌다.
그게 바로 프로레슬링의 오묘한 부분이었다. 상대가 똑같은 연기를 펼치지 않으면 이렇게 몰입은 깨졌다.
그리고 이건 의도적이었다.
나는 팍을 그렇게 잔혹할 정도로 공격하며 팬들에게 불쾌감을 선사했다.
결국 보다 못한 심판이 링 아래로 내려와서 그런 나를 잠세 떼어놓았다.
“신, 뭐하는 거야……?”
“하아, 하아.”
“바트의 전언이 있어. 하드 히팅 스타일이 팍의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적당히 상대한테 맞추라고.”
“뭐?”
나는 황당한 듯 되물었다.
거기에 순간 움찔 떠는 심판.
정말로 황당한 순간이었다.
아니, 왜 내가 현역 선수인데 돌아온 파트타이머에게 맞춰줘야만 하지?
그것도 옛날 스타일 레슬러에게?
그렇게 생각하며 어이가 없어 심판을 바라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돌연 팍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잔뜩 흥분해 얼굴에 가감 없이 힘껏 자신의 펀치를 꽂아 넣었다.
뻐억-!!
알싸한 통증.
나는 미소를 참았다.
분위기가 더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 * *
프로레슬링은 현실과 각본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스포츠였다.
그렇기 때문에 링 위에서의 연기력이 정말 중요했다. 자칫 성에 안 차는 연기를 한다면 곧바로 반응이 왔다.
팬들은 그걸 알아차렸다.
반응은 깨지고 팬들은 몰입을 그만둔다.
무반응은 약과고, 역반응까지 감내해야만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일류와 이류가 갈렸다.
링 위의 연기력.
팬들의 반응에 따라서 템포를 잡고 스토리를 바꾸며 즉석에서 다른 기술을 넣기도 하는 임기응변까지.
그 모든 게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일류 프로레슬러라고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일류 프로레슬러가 자신의 능력을 악용했을 때 얼마나 분위기를 조질 수 있는지가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팬들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고릴라 포지션의 직원들도.
마지막으로 백스테이지의 선수들까지. 모두가 지금 이 상황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할 정도였다.
[팍이 펀치를 날립니다!]
[아주 제대로 꽂혔습니다!!]
팍의 펀치가 신의 안면에 꽂히는 것을 본 모두가 순간 같은 생각을 했다.
‘●됐다.’
슛이다.
그렇게 느꼈을 정도로 팍은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방금까지의 요란한 프로레슬링 스타일 펀치가 아니었다.
감정을 제대로 담아 날리는 펀치.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는 한 방.
바로 신이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모, 모르겠는데.”
심판이 팍을 말리는 장면을 본 선수들 사이에서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
다들 이렇게 생각했다.
신의 진심을 담은 공격에 정말로 열이 받은 팍이 그만 분노를 터뜨렸다.
이건 각본에 의거한 경기가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다들 순간적으로 그렇게 느낄 정도로 이 경기의 스토리텔링은 완벽했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느끼는 것은 신이 배신하겠다는 협의를 해둔 티파니와 PWA 소속의 각 팀장들.
그리고 링 위에서 직접 그를 상대하고 있는 더 팍, 한 사람뿐이었다.
말했듯 그는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퍼포머로서는 도가 튼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경악할 능력이었다.
‘이 정도였나?’
지금 모두를 속이고 있다.
순간적으로 이 일이 실제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교묘하게 팬들의 반응을 조종하는 게, 신이야말로 오히려 도가 텄다 싶을 정도였다.
팍이 지금껏 상대해본 그 어떤 레전드 선수들도 이런 식으로 경기를 이끌어나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대단함이 느껴졌다.
자신이 그 지시대로 펀치를 날린 순간 싸해지는 분위기. 그리고 그가 날아가면서 보여주었던 눈빛이.
‘살아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사이에 낀 심판을 밀어낸 팍은 곧바로 신을 손봐주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펀치는.
그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현실의 펀치에 가까웠다.
더 팍이 그런 식으로 펀치를 날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신의 ‘책략’이었다.
자, 생각을 해보자.
경기가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팬들은 더 몰입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경기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두 선수의 협의 아래에 그런 식으로 진행된 게 아니라, 마치 경기를 잘 하다가 진짜로 흥분해서 펀치를 날린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모두가 속았다.
팍은 몇 번이고 신의 안면에 펀치를 꽂아 넣었고,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가도 되는 거냐?”
“그야 물론이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신.
확실히 팬들은 이 경기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기는 했지만 몰입 자체는 확실하게 해주고 있었다.
팍은 신을 데리고 다시 링 위로 올라와 자연스럽게 프로레슬링에서 쓰이는 기술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코너에 몰아붙인 채 스톰핑.
쿠웅! 쿵! 쿵!
발로 상대방을 짓밟는 위험천만한 기술. 하지만 신은 그 기술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맞아주었다.
거기에서 또 팬들은 이제 상황이 원래대로 돌아온 건가? 안심을 했다.
긴장이 해소되었고 이어서 팍이 신을 데리고 나와 겨드랑이 아래에 머리를 끼우고 DDT까지도 시전을 했다.
[Waaaaaaaaaaaaaaagggghhhh!!]
그제야 다시 쏟아지는 환호.
핸드스프링으로 벌떡 일어선 팍은 이제 다시금 프로레슬링을 이어가겠다는 듯 요란하게 반응을 끌어 모았다.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그를 향해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
어깨를 떨며 요란하게 신을 조롱하는 팍. 팬들은 거기에 안심을 했다.
뒤를 이어.
공격을 받아주는 ‘셀링’ 과정을 생략한 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확실히 이 경기는 업계의 역사에 남을 법한 경기가 될 터였다.
왜냐고?
프로레슬링 역사상 이토록 이질적인 경기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팬들은.
그리고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은 점점 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