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11화 (411/634)

411.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허억! 허억!”

바닥에 뻗은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는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폐가 망가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의 충격. 나는 수십만 팬들의 시선을 한 몸을 받으며 꼼짝도 못했다.

하지만 그건 팍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쥐어짜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보다는 훨씬 나았다.

엉덩방아를 찧은 채 뒤로 물러난 그가 로프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Pocky!]

팬들의 환호가 계속 이어졌다.

피니시 무브가 터지기 시작하자 모두가 경기의 종반부가 다가왔음을 감지하고는 큰 소리로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끝을 내보자고!!”

팍이 링 중앙으로 나왔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숨을 몰아쉰 그가 나오자 어떤 기술이 나올지 짐작한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업계 역사상 가장 짜릿한 기술.

피플즈 엘보우.

[Yeeeeeeeeeeeeeeeeaaaahhhh!!]

People’s Champion.

그런 이명에 걸맞게 프로레슬링 팬들의 염원을 담아 찍는 엘보우 드롭.

내 머리 사이에 양발을 벌리고 선 팍은 그대로 자신의 오른쪽 엘보우 패드를 벗어 던지며 소리를 질러댔다.

요란한 퍼포먼스.

하지만 거기에 모두가 빠져들었다.

먼저, 오른쪽으로 달려가 로프 반동을 하고 돌아오는 팍. 그가 나를 뛰어넘고 왼쪽 로프에 다시 반동했다.

현실적이지 않은 기술이었으나 팍의 카리스마가 그 기술을 성립하게 했다.

모두가 그것을 단 한번이라도 눈으로 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했다.

그럼에도.

오늘은 아니다.

내가 몸을 일으켜 세운 순간.

반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다들 팍의 카리스마에 눈길이 팔린 채로 그의 시선에서 날 봤을 터였다.

링 중앙에서.

전설을 죽이기 위해 기다리는 나를.

[Uoooohhh……!]

단말마와도 같은 비명.

그와 함께.

나는 팍을 있는 힘껏 들어올렸다.

달려오던 힘을 이용해 회전.

수직이 되는 위치에서 정지.

우드득!

130kg이나 되는 팍의 몸무게와 회전하는 속도를 순간적으로 멈추느라 몸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정확한 위치에서 멈췄다.

링 바닥으로 곧바로 수직.

그 상태에서 몸을 던지며 상대와 나의 몸이 역십자를 그리도록 만든 뒤.

떨어졌다.

투-콰앙-!!

고통스럽다.

온몸이 찢겨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승리였다.

안티크라이스트에 당해 지면에 수직으로 꽂힌 팍은 대자로 뻗고 말았다.

나는 곧바로 커버에 들어갔다.

[1……!]

전 세계의 팬들과 심판.

모두가 함께 카운트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아래에서 팍이 내게 속삭이는 말을 희미하게 들었다.

“가는 거냐?”

“그럴 생각입니다.”

“크크크, 좋은 구경 하게 생겼군.”

그렇게 될 터였다.

[2……!!]

“‘버리고’ 가라.”

월드 챔피언 벨트를.

그로써.

이어질 싸움에 가치를 부여해라.

그런 말과 함께.

[3……!!!]

땡땡땡-!!

요란하게 울리는 링 벨.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는 내 테마 음악. 그리고 팬들의 큰 환호성.

[Waaaaaaaaaaaaaaaggggghhhh!!]

그렇게 나는.

첫 WWF 월드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직 남아있었다.

팍에게서 떨어진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잠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 소리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숨을 몰아쉬면서 내게 집중했다.

나 자신에게.

내 영혼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게 사라졌다.

* * *

“신……!! 신!!”

누군가 부르는 소리.

겨우 정신을 차리자 눈앞에 심판이 무언가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WWF 월드 챔피언 벨트.

이걸 손에 쥐어본 선수는 프로레슬링 역사를 통틀어 50여 명이 안 된다.

50년에 달하는 WWF의 역사를 통틀어서 말이다. 그 정도로 귀중한 가치와 위상을 가지고 있는 벨트인 셈이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신, 일어나게.”

심판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벨트를 땄군요.”

“응? 그, 그래. 이제 자네가 챔피언이야. WWF의 얼굴이 된 셈이지.”

“재미있군요.”

나는 벨트를 소중한 듯 품에 안은 채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모두가 내 챔피언 등극을 축하해주었다. 몇몇 팬들은 감동했는지 눈물까지 찔끔 흘리고 있을 정도였다.

아마 다들 그렇겠지.

내 이야기를 지금까지 따라온 팬들이라면 분명히 이 시점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정을 느끼고 있을 테지.

월드 챔피언.

거기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챔피언 등극이 어디까지나 바트 맥센의 의도 아래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나는 챔피언 벨트와 함께 내 손을 들어주려고 다가온 심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뒤.

그 벨트를 하늘 높이 던져버렸다.

시간이 잠시 정지했다.

그 가운데에서 오직 벨트만이 허공에서 천천히 회전했고 이내 벨트를 던지고 서있는 내 뒤로 떨어졌다.

굉장히 둔탁한 소리가 났다.

챔피언 벨트.

그것도 단체의 얼굴쯤 되는 월드 챔피언 벨트의 가격은 제작비용에만 10만 달러 정도가 들 정도로 고가였다.

훌륭한 벨트 제작자에게 맡겨 한 땀 한 땀 세세하게 제작해 챔피언들에게 보증금을 받을 정도로 아껴졌다.

재질은 주로 도금 플레이트와 소가죽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렇기에 벨트를 가진 선수들은 쇼에서 활용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애지중지했다.

아니, 애초에.

벨트는 꿈의 상징이었다.

그것을 한 번 걸쳐보기 위해서 오늘도 수많은 레슬링 수련생들이 피를 깎는 노력을 했으며, 개중에서도 재능을 가진 자들만이 위로 올라갔다.

그것을.

나는 그냥 던진 것이다.

팍은 내가 뜸을 들이는 사이 먼저 부리나케 퇴장을 했고, 링 위에는 심판과 나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레슬 임페리움의 챔피언 등극을 알리는 축포가 터져야 하는 시점에서 팬들도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완전히 엿을 먹였다.

그대로 미련 없이 돌아섰다.

WWF 월드 챔피언 벨트.

거기에 미련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차고 넘쳤다.

저것은 내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거기에 바트 맥센이 묻는 상황은 원하지 않았던 나는 처음으로 따낸 월드 챔피언 벨트를 미련 없이 포기했다.

장내는 침묵으로 완전히 가득 찼다.

정말로 모기 소리도 나지 않아서 저 멀리서 해설자들이 뭐라고 뭐라고 수습하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뭔가 수습을 하는 모양이군.’

하지만 이걸 어쩔 텐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긴 입장로를 걸어 이쪽으로 다가오는 카메라맨을 피해서 고릴라 포지션으로 들어갔다.

축하를 준비했는지 케이크까지 준비를 해두었고,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나라도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깔모자를 쓴 각본 팀장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나는 쓰게 웃으며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사과를 건넸다.

“모두 미안합니다.”

“시, 신……?”

“이렇게 되었군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고릴라 포지션을 지나쳐 바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복도로 빠져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대로 락커룸으로 가서 미리 싸둔 짐을 챙겨 WWF를 완전히 떠난다.

그리고 기자 회견을 열어서 내가 그런 이유를 한 행동을 모두에게 밝힌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

현실과 가상의 벽이 허물어진 지금의 상태에서 사람들은 분명히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줄 터였다.

그렇게 나의 스크류잡은 성사되었다.

‘원래는 말을 좀 할까 했는데.’

이 편이 더 화제가 될 터였다.

사람들은, 그리고 언론은 원래 추측하기를 좋아하고 그를 통해서 망상을 써내려가는 존재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락커룸 쪽에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건지 싶은 선수들이 고개를 내밀었고.

“거기 서!!”

노도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바트 맥센이었다.

“가는 거냐! 신! 결국 이걸 숨겨두었군! 이렇게 나오기로 정한 거였어!!”

“…….”

“그래! 넌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였군!! 너는 말뚝에 매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그런 자식이었던 거야!!”

흥분한 그는 자신의 속에 있는 감정을 낱낱이 토해내듯 나에게 말했다.

“다른 놈들처럼……!!”

그랬지.

캡틴 로건.

존 마이클스.

락콜드 스티비 스틴.

모두가 당신을 떠났지.

그게 왜라고 생각해?

당신이 역겹기 때문이다.

이 업계를 존중하지 않아서다.

프로모터는 이 링 위의 선수들을 위해서 일해야지. 그들을 자신의 말로서 생각하면 결코 안 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바트 맥센은 그렇게 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절대, 그와 같이 일하지 않고 이후로 전력을 다해 그와 이 단체에 맞서서 싸울 생각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바트 맥센은 나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한 순간.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바트 맥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존재를 부정했다.

“뭐라고 말 좀 해봐라!!”

바트는 거의 악을 쓰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기만 할 뿐, 거기에 어떠한 반응도 해주지 않았다.

“정말로 떠날 생각이냐?! 지금까지 같이 잘 해왔으면서 왜 이러는 거냐!! 이제 ACW 그 빌어처먹을 개새끼들을 죽이는데 1년도 남지 않았어!!”

그럴 테지.

“ACW가 망하면 어디로 갈 테냐?! 일본? 멕시코? TMA? PWA? 그 어느 곳도 너의 재능을 담아내지는 못해!!”

심지어는 그 ACW조차도.

“너를 아는 건 나뿐이다! 신! 네 재능을 세상 그 무엇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지금껏 실컷 엿을 먹어온 나밖에 없는 거라고……!!”

마지막에는 거의 애걸이신가.

이유는 모르겠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자 바트 맥센의 진심이 결국 터져 나온 것인지.

‘아무 상관도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바트 맥센을 향해서 내 마지막 제스처를 취해보였다.

중지.

가만히 선 채 지금껏 수도 없이 엿을 먹여온 영감에게 엿을 날리고는.

나는 WWF를 떠났다.

* * *

[어, 음…….]

[시, 신이 돌연 챔피언 벨트를 던졌습니다. 어떠한 퍼포먼스인 걸까요?]

모두가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레슬 임페리움이 개최되는 날.

PWA에 모인 신과 그 은밀한 협력자들은 함께 그 스크류잡이 성사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반응은 제각각 다양했다.

그렉은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바쿠는 얼굴이 빨개졌고.

베이다는 껄껄 웃었으며.

티파니 맥센은 박수를 쳤다.

그리고.

러셀 하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바로 이거였군.’

신이 하겠다고 말한 게.

방금 그걸로 속이 시원해졌다……고 인정을 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으나.

솔직히 말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레슬 임페리움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자신의 첫 번째 챔피언 벨트를 저렇게 내던지는 신을 보고 있자니.

확실히 느껴졌다.

‘난 놈은 난 놈이야.’

저걸 누가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못하는 행동이었다.

“미친놈.”

삼촌, 그렉 하트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정말 멋지군.”

“그러게 말이에요. 이걸로 완벽하게 저걸 각본으로 써먹을 수 있겠어요.”

신은 바트 맥센을 적대한다.

그걸 보여주듯이 최고의 자리를 포기하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WWF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일은 그렇게 계획되었다.

은밀한 협의 아래에 진행되던 ACW와의 협약도 이제 공개를 할 때였다.

러셀 하트는 그동안 ACW에 출연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2010년이 시작되며 또 한동안 북미 프로레슬링 업계는 전 세계의 큰 주목을 받을 터였다.

이 모든 게 신의 공작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선 러셀은 생각했다.

자신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드라마를 통해 팬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렇기에 생각이 났다.

“삼촌.”

조용한 중얼거림.

다들 레슬 임페리움이 쇼를 수습하며 마무리하는 광경을 속이 시원한 채 지켜보는 가운데였다.

“그래, 러셀.”

“제 링네임 말인데요.”

ACW에서 사용할.

그게 방금 생각이 났다.

“러셀 하트는 못 쓰니까…….”

그렉이 눈썹을 찡그렸다.

‘하트’도 괜찮았다.

‘러셀’도 괜찮았다.

하지만 ‘러셀 하트’를 붙여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그렉과 러셀, 하트 패밀리에서는 잠정적으로 ‘러스 하트’라는 이름을 사용하자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러스는 러셀의 애칭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러셀’이라고 불렸던 남자가 ‘러스’라고 불리는 것은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하트 패밀리’라는 이름을 포기할 수 없었던 러셀은 그런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방금 깨졌다.

“하트를 쓸 생각이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러셀을?”

“예.”

“그냥 Russell로 간다고?”

“거기에 하나를 더 붙입니다.”

그건.

러셀 하트가 방금 자기 자신이 ACW에서 맡고 싶은 역할을 깨달았기 때문에 비로소 만들어진 링네임이었다.

신의 별명은 Alpha(Α).

선두에 서서 우두머리가 되어 이 업계를 헤쳐 나가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만들어진 별명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 최후에 서있는 자.

“저는…….”

Omega(Ω).

“러셀 오메가입니다.”

어깨까지 기른 금발을 반묶음 한 남자가 자신의 새 이름을 입에 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