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저는 지금껏 제가 안 된다고 말한 놈들을 엿 먹이면서 여기까지 왔죠.]
그렇다.
신은 바로 그런 남자였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생방송.
바트 맥센의 사무실에서 함께 그것을 보면서 숀 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은 언제나 그렇게 해왔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현실의 벽을 깨부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매번 남들이 경악할 만한 성과를 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압박감을 느꼈다.
동시에 호승심도 느꼈다.
‘결국 이렇게 되었네.’
하지만 왠지 바라던 그림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기쁜가?”
반대편에 앉아 있던 바트 맥센이 그런 시나의 표정을 보고 말을 걸어왔다.
“그렇습니다.”
“어째서?”
바트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와 다른 생각을 했다.
신이 결국 자신을 부정한다고 떠나갔다는 것을 듣자니 속이 쓰려왔다.
그 재능과 상품성은 진짜였다.
바트 맥센이 인정하지 못했을 뿐.
이제 와서 뒤늦게 그것을 알아챈 그는 그만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그러자니 시나가 대답했다.
“틀린 게 없는 말이잖아요?”
말하자면 지금의 WWF는 프로파간다라고 통렬한 일침을 날린 셈이었다.
시나가 아무리 올바름을 말하고.
오튼이 배드애스 같이 굴어도.
그 위에서 모든 일을 지휘하는 것이 바트 맥센인 이상 다 헛것에 불과했다.
그 발언이 가지는 힘은 강력했다.
안 그래도 부정적인 반응을 끌어 모으던 시나는 이걸로 인해 위선자 취급을 받으면서 더 큰 역반응을 얻겠지.
하지만.
“그게 기쁘네요.”
“어째서?”
“그런 남자와 싸우고 싶으니까요.”
시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상대로서 부족할 게 없었다.
하지만 바트는 부정적이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러십니까?”
“그래, 안티들 역반응을 생각해서라도 자네는 휴가를 좀 받는 게…….”
“아닙니다.”
시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런 때.
이런 순간이야말로.
“Never Give Up.”
팬들에게 보여줘야만 했다.
그렇게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도 시나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계속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며 숀 시나라는 레슬러로 살아가겠다고.
바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말릴 수는 없겠지.”
이제 시나는 바트가 함부로 어떻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ACW와의 전쟁에서 회사가 내건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활약한 그는 이제 과거의 아이콘들과 비교하더라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위상을 가졌다.
역반응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는 건, 그만큼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그 별명 또한.
The Champ.
“하지만 시나.”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신이 레슬 임페리움에서 선보인 벨트 쓰로잉 퍼포먼스로 인해 WWF 월드 챔피언십의 가치는 크게 실추되었다.
그리고 오늘 기자 회견으로 인해서 WWF의 이미지 또한 무너질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숀 시나는.
“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Never Give Up.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Hustle, Loyalty, Respect.
투지, 충실, 존중.
지금껏 그가 수많은 역반응 속에서도 굳건히 지켜왔던 가치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빛날 수 있을까?
그런 바트의 질문에 시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시나의 눈은 올곧게 빛나고 있었다.
수많은 역반응과 증오에 가까운 안티들의 Hate 속에서도 숀 시나가 프로레슬러 생활을 계속 해왔던 이유는.
그들 뒤에서 겁을 먹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작은 소년들을 위함이었다.
시나의 커리어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작은 존재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런 이들이 모여.
Let’s Go Cena를 외치고.
당신 덕분에 암을 이겨냈다고 말해줄 때마다 시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이 일을 하기를 정말 잘했어.’
그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시나는.
프로레슬러.
동시에 이 남자는.
“저는 제가 대변하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계속 싸워나갈 것입니다.”
증오가 쏟아지겠지.
바트 맥센의 개라면서 앞으로 안티들이 그를 물어뜯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시나는 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숀 시나로 살아간다.
Rise Above Hate.
증오를 딛고 일어나.
바로 그것이 지금까지 프로레슬러로 살아온 시나가 걷기로 한 길이었다.
“…….”
그 말을 들은 바트는 한동안 좀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잇지를 못했다.
그는 아이콘을 혐오했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아이콘이 회사에 어떤 식으로든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 과정을 겪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상황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존재는 눈앞의 ‘아이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나가 그렇게 의지를 보였고.
그가 나간 뒤에도 바트 맥센은 자리에 앉아 한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ACW와 신이라.
적으로 돌렸을 때 가장 성가신 상대가 적이 되고 말았다.
‘내가 죄를 짓기는 했지.’
그렇기에 원죄(SIN)가 눈앞에 나타난 것일까. 그런 생각마저도 들었다.
문득 바트 맥센은 GCW의 그 애송이가 링에 올라 러셀 하트에 맞서 했던 링 세그먼트의 대사를 기억해냈다.
[왜냐고? 난 역대 최고거든! 하지만 너희의 그 음습한 관심이 없이는 그걸 증명할 수가 없다고! 난 너희가 만들어낸 존재인 거야!]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왜 벌써 5년 이상 된 과거의 대사가 이처럼 기억에 남았을까.
바트 맥센은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기억해냈다.
그 말이 마치 자신을 향해서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WWF에 속한 모든 레슬러는 결국에는 바트 맥센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그의 허가가 있어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이 그렇게 자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바트 맥센은 분명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동양인이니까.
동양인 챔피언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해 아득바득 이 위치까지 기어 올라왔고.
바트 맥센을 죽이려고 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기왕이면 함께 가고 싶었지만.
그는 매어둘 수가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바트는 생각했다.
만약 신이, 정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바트 맥센이라는 남자를 죽이러 온다면.
거기에 맞서 준비를 해주겠다고.
바트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받았다.
바로 더 팍이었다.
[예, 회장님.]
“솔직하게 대답해주게나.”
[뭘요?]
“자네도 다 알던 일인가?”
[……제가 모르는 일이라고 말씀드린 걸 지금까지 믿고 계셨습니까?]
바트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이로서 팍 역시도 이 스크류잡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시인한 셈이었다.
여기서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왜 그랬나?”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죠.]
“안 하고 있나?”
[오늘 기자 회견 연 걸 보니 확신이 서더군요. 그 친구가 이 업계의 미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말이죠.]
팍은 그렇게 설명했다.
신의 의지는 확고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잡을 거절한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사를 나갈 인물이었다.
[회장님. 저는 업계를 반쯤 떠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프로레슬링에 대한 애정은 남아있는 놈입니다.]
고향에 대한 애정처럼.
이번에 신을 도와주기로 판단한 것도 WWF와 프로레슬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신이 WWF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자마자 벨트를 던지고 회사를 나가는 게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실제로 큰 화제가 되고 있죠.]
주가는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기는 하지만, 안정되면 크게 상승해 있을 터였다.
그런 식으로 사건이 하나씩 터져줘야 대중들의 관심도 유지되지 않겠나.
[그걸 위한 선택이었죠. 이제는 왠지 좀 깨닫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뭐를?”
[그런 전도유망한 후배를 시험하는 게 앞으로 제 역할이라는 걸요.]
물론.
[앞으로는 WWF에서 그런 역할을 맡겠죠. 신과 러셀이 함께하는 ACW에 절대 밀리지 않도록 말이죠.]
“……어쩔 수 없군.”
바트 맥센은 쓰게 웃었다.
그제야 머릿속이 좀 정리되는 기분이었고, 해야 할 일이 대충 떠올랐다.
[설마 고소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아니, 절대.”
[신은요?]
“그럴 리가.”
바트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 기분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부친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고, 프로레슬링을 정복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보낸 이후, 다시금 찾아온 싸움.
그리고 아마.
이게 최후의 싸움.
“그 녀석에게 보여주고 말겠어.”
WWF를 떠난 자의 말로를.
바트 맥센은 오랜만에 의지로 심장이 저릿거리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우리 쪽도 준비를 하지.”
* * *
기자 회견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모두 예상한 대로였다.
팬들은 인터넷에서 날 지지하는 쪽과 아닌 쪽으로 갈려 첨예하게 싸웠다.
WWF 측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내가 버린 WWF 월드 챔피언십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이야.’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글쎄.
팬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WWF 월드 챔피언십은 반대되는 위치에 있는 WWF 유니버스 챔피언십보다 훨씬 역사가 깊은 타이틀이었다.
‘월드’ 타이틀은 WWF의 탄생과 함께 존재해온, 거의 반세기 가까운 산물이고, ‘유니버스’ 타이틀은 선수 풀이 많아진 WWF가 랙다운이라는 브랜드를 신설하면서 만들어진 타이틀이었다.
그러므로 그 정통성은 월드가 더 깊었다. 하지만 WWF는 그 월드를 무시하고 유니버스 타이틀에만 집중했다.
그게 얼마나 웃긴 꼴인가.
나라면 당장에 회사를 버리고 떠난 선수를 비난하고 새롭게 월드 타이틀의 주인을 기리는 토너먼트를 개최하면서 팬들의 반응을 끌어올 거다.
하지만 WWF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게.
“우리에게는 기회가 된 셈이죠.”
회의실.
나는 나와 함께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기자 회견은 성공적이었고 이제 남은 것은 ACW로 넘어가는 일뿐이었다.
티파니가 입을 열었다.
“WWF와의 계약은 6월까지에요.”
“그때까지 WWF가 지금처럼 계속 등신짓을 해주면 좋겠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계약 아닌가?”
바쿠가 말했다.
“그쪽에서 신과 우리를 놔줘야지.”
“계약 해지 조건이…….”
“할 수 있어요.”
티파니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쪽에서 선수에게 스크류잡을 하고 내쫓았는데 우리로서는 충분히 계약을 종료할 만한 사유가 되죠.”
“그럼 그쪽은 부탁할게.”
“예, 맡겨만 두세요. 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티파니.
하지만 직후.
“ACW 쪽은 어때?”
그런 내 질문에 자리에 앉아 있던 팀원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그, 을쎄요.”
“일단, 신.”
할리가 나를 바라보았다.
“지난 스타게이트는 봤나?”
“그때 뭘 좀 하고 있어서…….”
벨트를 던졌지.
레슬 임페리움 무대 위에서.
아니, 사실 농담이었다.
보기는 봤다.
기자 회견 전까지 조용하게 티파니와 지내면서 ACW의 상황을 다 봤지.
그리고 모든 게 내 기억대로였다.
“로건이 결국 ACW를 떠났죠.”
나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웃을 일인가? 아무리 그가 쓰레기여도 ACW의 아이콘이었는데 말이야.”
할리가 그렇게 우려를 내비췄으나.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이죠. 그런 늙은이가 계속 있어봤자 정치질이나 할 테니까요. 거기에 휘둘린 ACW가 WWF에 밀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고요.”
“……그런데, 그런 바보 같은 ACW와 우리가 함께 일을 하게 되었잖나?”
“그렇죠.”
“제 얼굴에 침 뱉기 아닌가?”
“아니죠. 이제 선수들이 물갈이되고 새로 키워나가면 해결될 문제니까요.”
2013년 정도까지 존속한 ACW는 보통 전기와 후기를 크게 구분 지었다.
nWo를 중심으로 WWF의 숨통을 끊으려 들었던 황금기 시절이 바로 전기.
그런 이들이 모두 정치 싸움에 질려 회사를 헌신짝 버리듯 내치고 나간 뒤 형성된 로스터를 후기로 구분했다.
‘말인즉슨.’
앞으로 내가 함께 일을 하게 될 선수들은 ‘후기 로스터’라는 뜻이었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ACW의 기존 로스터에서 끝까지 회사에 충성을 다한 크로우 같은 인물들.
WWF 활동을 끝마치고 넘어간 크리스 젠코와 코디 로스 같은 선수들.
마지막으로 WWF 밖의 인디 시장을 주름 잡았던 ‘영 덕스’ 같은 태그 팀.
그런 식으로 구성된 로스터는 나름대로 인기를 끌면서 계속 존속했다.
문제는 바로 그곳에서 시대의 아이콘이 탄생하지 못하고 회사가 통째로 WWF에게 넘어가버렸다는 거지만.
그래도 지금은 괜찮을 터였다.
러셀이라는, 충분히 그 회사의 주인공을 맡을 만한 선수가 합류했으니.
거기다 그 상대역으로 나와 PWA의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난 충분히 WWF라는 회사에 맞서서 싸울 로스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걸 러셀이 깨닫고 있는지는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건 차차 알아보는 걸로 하고.
“일단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뭐지?”
“로건을 다시 데려오죠.”
“……?”
“잠, 시만요. 신.”
티파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이해는 한다.
내 말이 얼토당토않게 들리겠지.
그처럼 모두가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캡틴 로건…… 아니, 할리우드 로건이 ACW를 나간 것은 잘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를 다시 데려와야 한다.
얼핏 모순적으로 들리는 내 말은.
“일관성을 위해 그가 필요합니다.”
그런 식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ACW가 이번 스타게이트를 통해서 망조가 든 건 여러분 모두도 아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싸움에 질린 선수들이 하나둘씩 회사를 나가고, 결국 이번에 로건이 나가면서 ACW는 큰 손해를 봤다.
물론, 그 일은 나와 러셀, WWF의 스크류잡이라는 큰 사건으로 인해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로건은 책임을 져야 했다.
말했듯, 일관성 때문이었다.
“개판 오 분 전이기는 하지만 ACW도 나름대로 지금까지 자신들의 스토리 라인을 유지하고 만들어왔습니다.”
그것을 계속 유지한 채로 러셀이라는 선수를 새 얼굴로 밀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신…….”
“우리 PWA는 어떻게 하지?”
그렉이 물었다.
“아니, 뭐 그거야.”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이제 와서 그런 걸 묻는단 말인가.
“저희는 잘하고 있잖아요?”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우리는 회사 크기가 좀 작다는 걸 제외하면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없었다.
“목표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화살이 정반대로 돌아가 버린 상황입니다.”
나는 지금 상황을 그렇게 정의했다.
ACW와 협업하여 WWF를 친다.
나와 내 팀원들이 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마지막으로 각인시킬 때였다.
바트 맥센을 쓰러뜨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