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PWA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분명히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대의 아이콘.
캡틴 로건.
혹은 할리우드 호건.
선과 악, 양쪽의 아이덴티티 모두. 하나의 단체와 하나의 시대를 이끈 경험이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레슬러.
그가 PWA에 나타났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쨌거나.
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PWA의 팬들은 로건에게도 큰 환호를 보냈다.
현재, ACW와 WWF 양쪽 팬들 모두로부터 좋지 못한 시선을 받고 있는 로건. 하지만 그 힘은 엄청났다.
“이봐. 제이시!”
마이애미의 한 좁은 아파트.
더럽게 비싼 월세에 짜증을 느끼며 방송을 켠 찰리는 눈앞을 의심하게 만드는 반전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로건이 나왔어! PWA로 왔다고!”
[뭐, 미친?!]
“이야~ 티켓 값 환불 받는다고 난리 피우더니. 일이 이렇게 됐네!!”
그는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친구인 제이시는 얼마 전 스타게이트의 티켓을 겨우 구해서 직관을 다녀왔을 정도로 ACW의 광팬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메인이벤트가 그따위가 되어서 분노를 금치 못하던 찰나, 로건이 PWA에 나타난 것이었다.
“크하하하! 이거 어떻게 되가는 거야?! 장난 아닌데! 로건이? 왜?”
[야, 이……! 진짜네.]
황당하다는 듯 대답하는 제이시.
그걸 놀릴 생각을 하자니 월세에 관한 것은 잠시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놀랍게도.
찰리는 신의 팬이었다.
또한 PWA를 첫 방영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봐왔을 정도로 마니아였다.
그런 신과 로건의 연합.
분명히 멋진 그림이 되리라.
그 기대감에 응하듯.
TV 속의 두 사람이 움직였다.
링으로 올라온 로건은 신과 악수를 나누고 그대로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돌아올 수 있게 되어 기쁘군.]
그리고 말을 시작했다.
[나 역시 끔찍한 배신을 당했지. 치졸한 ACW 놈들의 질투로 인해서 결국에는 이런 꼴이 되고 말았어.]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이 환호를 보내주었다.
[저 썅!!]
제이시가 욕설을 내뱉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자기가 회사에서 수작질 부리려다가 당한 주제에! 다 저 새끼 잘못이라고!]
“하지만 제이시~.”
찰리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시청자들이 그걸 알겠어?”
그랬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프로레슬링 업계의 뒷사정까지 빠삭하게 안 상태에서 시청을 하는 인원은 거의 없었다.
정말로 하드코어한 ACW 팬들이 아니면 지금 로건의 말을 듣고는 자신들이 오해를 한다고 느꼈을 터였다.
“아~ 로건이 억울한 거였구나~.”
찰리는 그걸 이용해 제이시를 놀렸다. 그러자 상대방이 바로 악을 썼다.
[아니라니까!!]
“와~ ACW가 나쁜 놈들이었네! 하긴 회사는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
[야! 진짜 이럴 거야?! 난 아직도 그 티켓 값만 생각하면 욕 나오는데?!]
“하지만 제이시.”
찰리는 미소를 지었다.
화면이 바뀌며 신의 얼굴이 나왔다.
찰리는 고양감을 느꼈다.
신이라는 남자가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어느 샌가 찰리의 인생에 이와 같이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를 믿었고.
그가 이후로 무엇을 보여줄까를 상상하자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어서 로건의 옆으로 다가온 신이 그 어깨에 손을 얹고 말을 이어나갔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로건.]
거기에 제이시가 또 발작했다.
[아오! 신 저 자식이!!]
“크하하하하하!”
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앞으로 잘해보죠.]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놈들!]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멋진 콘셉트다 싶었다.
각자, 자신의 단체를 버리고 나온 두 명의 아이콘이 뭉쳐서 싸우다니.
물론, 신은 로건이 선수로 활동하지 않고 매니저 역할을 할 거라고 분명히 말을 해두었고.
로건은 그걸 팬들이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신을 띄워주었다.
[과거의 최고인 나와! 현존하는 최고인 자네가 함께라면 우리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팀이 될 걸세!]
“키야.”
[레볼루션 짭이잖아.]
“클라스가 틀리잖냐. 이건 지금 두 사람이 WWF와 ACW 양쪽 모두에게 보내는 선전포고인 셈이라고.”
찰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건은 신의 손등을 잡더니 마치 마피아의 부하가 보스에게 경외를 표하듯 거기에 자신의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전 세계가 들으라는 듯이.
[The World Is All Yours.]
이 세계는 모두 당신의 것이다.
그것은 지금 두 사람이 합을 맺은 상황을 요약해주는 듯한 한마디였고.
실제로, 다른 두 단체에 비해 규모가 10배 정도 작은 PWA은 한순간 다른 두 단체의 위클리 쇼를 웃돌 정도의 엄청난 시청률을 만들어냈다.
* * *
‘아메리칸 마피아’.
그것이 내 새 기믹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 편린만 보여줬으나 나와 로건의 링 세그먼트는 그야말로 예상 이상의 대박을 냈다.
과거의 아이콘.
현재의 아이콘.
그리고.
ACW로부터 나온 자.
WWF로부터 나온 자.
그 대비는 훌륭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나는 싱긋 웃으며.
새로운 기믹에 어울리는 새로운 복장을 마무리 짓기 위해 빗을 들었다.
포마드를 두 배는 발랐다.
거기에 오존층에 안 좋다는 스프레이까지 마음껏 뿌려서 고정을 했다.
그렇게 완성된 올백 컷.
그리고 올 블랙 정장.
훌륭한 아메리칸 마피아 스타일.
시계는 티파니가 나에게 선물한 것으로 차고, 나는 화장실을 나왔다.
모두 날 보고 싱긋 웃었다.
특히나 티파니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내 모습을 마구 찍어댔다.
거기에 좀 포즈(?)를 취해준 뒤, 나는 자리로 가 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어떻습니까?”
“제기랄, 죽겠군.”
그러자니 들려오는 첫 말은.
바로 로건의 대사였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정장을 입었다. 안에는 티셔츠를 입고 특유의 두건과 선글라스는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힘들어 했다.
“이거, 어깨가 너무 좁아.”
“일단 좀 참아요.”
나 역시도 쓰게 웃었다.
일단 아이디어를 보여주려고 경기장에 준비된 기성복을 걸쳤는데, 어깨가 너무 좁아서 찢어질 것 같기는 했다.
더군다나 나보다 훨씬 더 벌크를 크게 키운 로건은 거의 깜짝 상자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이런 느낌으로 해볼까 하는데.”
“거기에 코트를 걸치죠.”
티파니가 아이디어를 냈다.
“나쁘지 않군.”
“경기복도 그렇게 바꿀 건가요?”
“거기까지는 힘들걸? 재질 때문에 신의 경기 스타일에 안 맞을 거야.”
“하긴, 그렇겠네요. 경기하다가 바지라도 찢어지면 개망신일 테니까.”
나도 동감하는 사실이었다.
“경기복은 그대로 갈 겁니다.”
그렇게까지 크게 바꿀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아무리 길어봤자 ‘올해 말’까지만 사용할 기믹이었으니까.
아메리칸 마피아.
과거, 금주법 시대에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그들과 같은 모습을 취하면서 선언하는 것이었다.
뒷골목 양아치, 해적.
그리고 보스.
나는 지금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그 정도의 대접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위치까지 성장했다.
“로건이 제 콘실리에리인 거죠.”
“신, 자네가 Don이고 말이야.”
Don, 콘실리에리.
둘 다 마피아 용어였다
Don이 보스고 콘실리에리는 조직의 참모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지금 이게 마피아 영화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뭔가를 구성하고 설정할 마음은 없었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이미지.
우리는 이 이미지를 사용해서 화제성을 끌어 모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반응을 보자니 확실하게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럼 이런 느낌으로 진행해보죠.”
일단 WWF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6월 말까지 PWA에서 계속 활동한다.
그렇게 해서 알린 기믹을 바탕으로 ACW로 넘어가서 그쪽과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각본을 써내려간다.
우리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단 ACW 소속으로 계약된 로건이 이쪽으로 넘어온 거지.
현재 분열 중인 ACW는 이런 우리의 충격적인 선언에 과연 어떤 식으로 스크럼을 짜서 대응을 할 것인가.
그것은 일단 그쪽의 문제라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건 피할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곳곳에 내 눈과 귀가 되어줄 선수들을 배치해둬서 계속 이쪽으로 정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어뒀다.
러셀의 일은 러셀이 알아서 하겠지만 그래도 그 ACW 락커룸은 내가 기억하기에는 미친놈들이 많으니까.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싶었다.
그런 식으로 새로운 기믹에 대한 회의를 끝낸 나는 회의실을 나와 좀 조용한 장소에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잠깐 신호가 가고.
부커가 전화를 받았다.
[그래, 신. 미안하다.]
“예?”
[문제가 생겨서 말이야.]
뭔가 좀 불길한데.
“뭔데 그래요?”
[러셀 그 미친놈은 우리 예상을 훨씬 더 뛰어 넘는 미친놈이었단 거야.]
“아, 뭐.”
나는 한순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을 한번 생각해보았다.
갑자기 러셀이 발레리나 기믹을 쓰겠다고 말했다던가. 그런 거려나?
[아니, 각본 문제가 아니라.]
“그럼 뭐, 스탠 슈타이너한테 가서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했습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저께 치고받은 상대에게 다짜고짜 그런 식으로 악수를 청할 미친놈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 그리고 한 대 맞더니 또 싸움을 벌이더라고. 내 생애 그런 식으로 직진만 하는 또라이는 처음 봤어.]
“…….”
있군.
* * *
4월 4주차 월요일.
ACW의 위클리 쇼인 나이트로는 오늘도 공짜 표를 지역 주민들에게 뿌리면서 겨우 겨우 관객석을 채웠다.
그나마 지난주보다는 표를 좀 덜 뿌렸다는 점이 나름의 위안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러셀 오메가라는, 쉽사리 볼 수 없는 빅 카드가 ACW로 오면서 WWF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팬들이 쇼를 보기 위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의식한 ACW도 러셀 하트와 스탠 슈타이너의 경기를 위클리 쇼의 메인이벤트로 구성했다.
하지만.
정작 링에 나온 러셀 오메가의 모습을 본 팬들은 의아해 하는 모습이었다.
누구에게 맞았는지 얼굴이 부었다.
그럼에도 손을 번쩍 들며 자신을 과시한 러셀은 아무렇지도 않게 링에 올라와 스탠 슈타이너를 상대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경기는.
[Waaaaggghhh……?]
다들 몰입하지 못했다.
퍼억!
스탠 슈타이너는 경기를 한다기보다도 막 싸움을 거는 것처럼 러셀의 얼굴을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거기에 얻어맞은 러셀의 얼굴에서 피가 튀었고 그것은 이것이 각본을 벗어난 상황임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Booooooooooooooooooo-!!]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이건 프로레슬링이 아니었다.
신이 보이는 하드 히팅 스타일의 경기는 적어도 프로레슬링의 양식을 가졌기에 팬들이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탠 슈타이너의 지독한 펀치는 완전히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도 그런 상황이었다.
링에 오르고, 경기가 시작되자 스탠은 러셀을 죽여버리겠다는 기세로 달려들어 마구잡이로 펀치를 휘둘렀고.
거기에 당한 러셀은 방어만 하면서 계속해서 말로 스탠에게 화를 냈다.
“뭐하는 겁니까……!”
“이 새끼가, 내가 너 같은 애새끼랑 진짜로 경기를 해줄 줄 알았냐?”
“프로 의식도 없는 돼지 새끼!”
“오냐, 어디 한번 죽어봐라!”
빠악!!
러셀의 얼굴이 크게 휘청거렸다.
당황한 심판이 어떻게든 스탠을 말리려고 했으나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스탠! 링 위야!”
“링 위니까 더 이렇게 해야지!!”
스탠이 심판을 몰아붙였다.
“저 개새끼는 이 링에 대해서 아무런 존중도 보이지 않았어!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
러셀이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에 돌아보는 스탠.
야유하는 팬들.
그리고 경악하는 심판.
그런 가운데 러셀은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스탠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내가 지금 WWF에게 진 ‘패배자’로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 새끼가……!!”
“아니야! 스탠! 오히려 패배자는 내가 아니라 너라고! 공과 사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머저리 새끼!”
스탠이 러셀을 죽이겠다는 듯 콧김을 씩씩 내뿜으면서 달려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러셀은 자기 자신이 정말로 멍청한 인간임을 실감했다.
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스탠을 제압하고 자신의 말을 듣게 만들었을 터였다.
‘그런 놈이니까.’
하지만 러셀은 아니었다.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다.
언젠가 삼촌이 말을 해주었다.
‘러셀, 넌 미련한 놈이다.’
효율도 뭣도 없이.
그저 프로레슬링이라는 것에 취해서 팬들이 사랑해주기를 기다리는 남자.
그렇기에 아마 신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도 없었겠지 싶었다.
그가 도와줘서 푸시를 받은 것도 맞았고, 자칫 밋밋할 수 있던 러셀이라는 캐릭터를 팬들이 흥미를 갖고 반응을 보낼 수 있게 만들어줬으니까.
하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러셀 하트는 우직할 정도로 곧은 남자였고, 그런 남자에게는 그런 남자만의 싸움 방식이 있는 법이었다.
스탠 슈타이너가 주먹을 휘둘렀다.
이어지는 행동은 본능적이었다.
고개를 숙이며 그것을 피해낸 러셀은 스탠의 뒤로 돌아들어가 그대로 허리를 잡고 뽑아들려고 했다.
“크윽……!!”
하지만 물론.
상대 쪽에서 들려주려고 하지 않는 이상 저먼이라는 기술은 힘들었다.
그렇다면.
러셀은 스탠의 뒤에서 허리를 숙여 그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넣고는 목마를 태우듯이 힘껏 위로 들어올렸다.
“뭐, 뭐하는 거야!!”
일렉트릭 체어 포지션.
상대를 어깨 위로 목마 태운 이 자세를 프로레슬링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그 상태에서 허우적대던 스탠 슈타이너의 상반신이 앞으로 기울었고.
러셀은 자세가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눈앞에 거꾸로 뒤집혀 나온 스탠의 머리를 잡고 안으로 당겼다.
실제로는 그를 뒤집어주면서 안전하게 떨어지도록 돕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스탠은 순간 몸에 힘을 주었고.
머리가 덜 당겨진 상태에서 떨어진 스탠은 그대로 몸이 거꾸로 뒤집혀 정수리부터 바닥에 처박히게 되었다.
투-콰앙-!!
순간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허억, 허억…….”
러셀은 자신의 앞에 대자로 뻗은 스탠 슈타이너가 완전히 기절한 상태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우연히 만들어진 그 액션은.
하나의 완벽한 기술처럼 보였고.
[Waaaaaaaaaaaaaaaagggghhhh!!]
순간적으로 경기의 흐름을 뒤집어낸 러셀의 기술을 본 팬들은 그야말로 경기장이 떠나가라 큰 환호를 보냈다.
One Winged Angel.
편익의 천사.
그 이름으로 불릴 러셀 오메가의 새 피니시 무브가 탄생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