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17화 (417/634)

417.

기절한 스탠 슈타이너가 깨어난 것은 메인이벤트가 끝나고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원래 경기 시간과는 크게 달라져서 마지막에 러셀이 즉석에서 마이크워크를 진행해야만 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친구인 잭 제럿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슈타이너는 곧바로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개새끼가!!”

“진정해! 스탠!”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그 개새끼가 슛을 날린 상황이라고!”

먼저 날린 건 스탠이었고 심지어 러셀이 보호를 해주려다가 어쩔 수 없이 그와 같은 기술이 나온 것이었으나.

그런 건 상관하지 않는 슈타이너는 곧바로 락커룸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 기술 한 방에 뻗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창피함도 있었을 터였다.

“내가 정신만 차렸으면 그딴 기술에 뻗지도 않았어! 개 같은 새끼!”

“나도 알아……! 자네가 그런 장난질 한 방에 기절한 건 미리 기술을 맞을 각오를 해두지 않아서라고!”

“빌어먹을……!!”

스탠은 곧바로 방을 나섰다.

그 빌어먹을 애송이, 러셀 오메가를 조져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품은 채로.

하지만 문을 박찬 직후, 스탠 슈타이너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멈췄다.

바로 반대편 벽에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던 러셀이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멱살을 쥐는 스탠.

“죽여주마!”

그런 식으로 말을 먼저 꺼낸 것은 러셀이 도망을 가지 않고 기다렸다는 사실에 순간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락커룸에서 적대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진작 도망을 쳤어야 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 러셀 오메가는 도망치는 대신에 보란 듯이 스탠이 기절한 락커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스탠의 머릿속을 지배한 의문에 러셀 오메가가 곧바로 대답했다.

“당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해.”

“뭐……?”

“나는 ACW를 무시하고 있지 않아. 오히려 그쪽이 그렇게 하고 있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WWF의 선수로서 이 단체가 우리 목을 조여 오는 상황을 직접 보고 겪었어. 그런 내가 이 링을 무시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스탠.

그 앞에서 러셀은 입에 모터라도 단 것처럼 계속해서 할 말을 이어갔다.

“이미 WWF와 싸움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패배감이 오히려 이 링을 무시한다고 볼 수 있지.”

“이 새끼가……!”

흥분한 스탠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방금 기절한 상태에서 막 깨어난 그 펀치는 어린애라도 쉽게 피할 수 있을 정도였고.

허리를 숙여 펀치를 피한 러셀은 그대로 힘껏 스탠의 턱을 후려쳤다.

빠악-!!

그대로 넘어가는 스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 사람’은 모두가 경악에 물든 표정이 되었다.

락커룸의 잭 제럿.

그리고.

모퉁이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부커 리와 거트 엔젤까지도.

스탠은 다시 기절을 했건만.

러셀은 무식하게도 그 앞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PWA 소식은 들었겠지?”

“…….”

“신과 로건이 연합했어. 각본 상으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지. 우리는 거기에 맞서서 준비를 해야 해.”

하지만.

“쉬울 거라고 생각은 안 했어. 당신들도 당신들 나름대로 여기에서 잔뼈가 굵은 게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동료를 필요로 한다.

러셀 오메가라는 남자를 왕으로 만들어 다른 단체에 대적할 수 있게 해줄 동료들의 존재가 필요했다.

“내일 다시 만나지.”

이야기를 마친 러셀 오메가는 그대로 옆으로 돌아 부커와 거트가 숨어 있는 모퉁이 쪽으로 다가왔다.

신의 부탁으로 남몰래 그를 지켜주려고 했던 두 사람은 순간 깜짝 놀라 자리에서 도망치려고 했으나.

“부커, 거트.”

러셀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 어?”

“우연이군. 러셀.”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을 배려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러셀은 그대로 부어오른 얼굴을 한 채 경기장을 떠났다.

그런 식이었다.

러셀 오메가는 자신을 배척하는 기존 ACW 선수들의 앞에서 꿋꿋이 자신의 레슬링 철학을 밀고 나갔다.

딱히 돌려 말하지도 않고.

매수를 한다거나, 아니면 협박을 하거나 하는 쉬운 방법을 쓰지도 않고.

그저 우직하게 마음을 전했다.

누군가 본다면 분명히 멍청한 짓이라고 할 테지만, 러셀은 지금 이 순간 남의 흉내를 내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이 이겨내야 할 싸움이었다.

물론.

거기에 맞서 신과 PWA 역시 간접적인 방식으로 계속 신호를 보냈다.

같은 주의 수요일.

PWA의 위클리 쇼 오프닝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신은 이전과는 많이 모습이 바뀐 상태였다.

* * *

쿵-쿵-쿵-쿵-쿵-쿵-쿵-쿵-쿵-!!

그 테마는 분명.

2000년대에 들어서.

그리고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프로레슬링을 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등장 음악이었다.

이 음악을 들으면 관객들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라도 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엄청난 반응을 보내주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링에 등장한 신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올 블랙 슈트에 어깨에는 코트를 걸친 그 모습은 선수라기보다 어딘가 조직의 젊은 보스처럼 느껴졌다.

그 뒤를 따라서 나오는 로건.

안에 티셔츠를 걸치고 재킷을 입은 그는 일부러 굽 없는 구두를 신어 신과 비슷하거나 좀 더 작아 보였다.

신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디테일이었다.

그처럼 팬들은 새로운 복장을 갖춘 신에게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Waaaaaaaaaaaaaagggghhhh!!]

그 모든 시각적 요소들이 지금껏 신이 선보여온 캐릭터와 어렵지 않게 융화되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WWF라는 회사에서 나와 거대한 야망을 꿈꾸고 있는 젊고 유능한 보스.

바로 그것이 신이 자신에게 새로이 부여하고자 했던 수컷의 이미지였다.

지금이 딱 적절한 시기였다.

신이 WWF를 다시 나오고, 사람들의 주목도가 가장 커진 상황에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이미지 변화였다.

그 캐릭터는 기존과 같았으나 모습이 바뀐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지금 이 등장 씬 자체에 깊이 집중했다.

바로 이게.

신이 그리던 그림이었고.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팬들은 링에 오른 신의 모습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그 의도대로 행동했다.

곧바로 챈트가 터져 나왔다.

마이크를 잡기도 전이었는데.

[We Want Boss!!]

짝! 짝! 짝짝짝!

[We Want Boss!!]

짝! 짝! 짝짝짝!

[We Want Boss!!]

짝! 짝! 짝짝짝!

그걸 보며 신은 빙긋 웃어 보였다.

카메라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신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에서, 또한 무척이나 절묘한 각도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천천히 멀어지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기믹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길게 뜸을 들였다.

방송을 지켜보던 러셀 오메가를 비롯한 모두가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프로레슬링은 쇼다.

그렇기에 선수의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그걸 보여주는 방식도 중요했다.

그 한 예시가 바로 지금처럼 멋진 카메라워크를 이용한 연출이었다.

오랜 회의와 지휘관의 순발력이 빚어져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멋진 쇼.

PWA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직원들의 실력 또한 업계 최정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직원들이 과거 근속한 WWF의 산하 단체 GCW는 회사 분위기부터 시작해 모든 부분이 완벽했으니까.

더군다나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작품을 WWF가 가져가 파괴하는 상황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과 같은 좋은 레슬러를 위해 의욕을 갖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PWA의 연봉은 WWF에 있을 때보다 평균적으로 두 배 더 높았고.

카메라가 정장을 입고 있는 신의 모습을 그렇게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점점 멀어지면서 촬영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런 그를 보고 있는 팬들의 환호는 점차 더 크게 번져나갔고, 신은 마이크를 손에 쥐고 말을 시작했다.

[다들 좀 놀랐나? 내가 유명한 슬래셔 무비, 크레이지 사이코의 크리스찬 데일처럼 차려입고 나와서 말이야.]

[Yeeeeeeeeeeeeeeaaaahhhh!!]

[신, 내 한마디만 하지.]

바로 그때, 로건이 끼어들었다.

팬들과 신의 시선, 카메라가 자신에게로 오자 로건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잘 어울리는군. 아르마니의 그 맞춤 정장 말이야. 비싼 값을 해.]

거기에 황당한 듯 돌아보는 신.

[Jesus, 로건. 굳이 그런 걸 말하면 우리가 꼭 악당들 같잖아요? 제기랄.]

팬들이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로건이 신에게 건넨 말은 레볼루션이 자주 사용하고는 했던 전형적인 악역 스타일의 마이크워크였다.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팬들과 거리를 두는 것.

하지만 신은 마치 현실에서 그러는 것처럼 로건의 말을 순간 부정했다.

그리고 팬들에게 변명을 했다.

[다들 알아줬으면 좋겠군. 이 슈트가 아르마니는 맞는데, 내가 돈이 많으니까 어쩔 수가 없잖아. 좀 비싼 옷도 입으면서 세금도 내줘야지. 그래야 돈의 순환이라는 게 일어난다고.]

그 내면은 변하지 않았다.

값비싼 정장을 입고 실컷 꾸며도 자신은 결국 팬들이 기억하는 신이었다.

그것을 과시하는 듯한 마이크워크.

물론.

그걸 지켜보던 신과 PWA의 안티들은 분노로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을 기만하고 엿 먹인 두 사람이 링에 올라가 구린 정치 쇼를 펼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또한 신이 노린 바였다.

프로레슬링 업계의 문제적 인물.

그것이 아메리칸 마피아.

업계의 The Boss.

SIN.

바로 그 순간이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한 남자의 음악이 예기치 못하게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러셀 오메가.

[Waaaaaaaaaaaaaaaaaggghhhh!]

팬들이 순간 놀라 비명을 내질렀고 신과 로건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해 서로의 얼굴을 잠시 보았다.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고, 신이 당황해 코트를 벗은 뒤 그 남자, 러셀 오메가에 맞서 싸울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러셀은 나오지 않았고, 진지한 얼굴로 서있던 신이 이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바닥을 나뒹굴며 웃는 신.

거기에 TV로 쇼를 보던 ACW의 슈퍼 팬들은 신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로건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Boooooooooooo……!]

[아, 미안. 미안. 정말 미안해. 여러분. 이거 여러분까지 엿을 먹일 마음은 솔직히 말해서 없었는데.]

겨우 마이크를 잡은 신은 로건과 그렇게 링 위에서 다시금 분위기를 잡는 척을 하다가 또 한바탕 웃었다.

팬들은 여기에 의아함을 느꼈다.

보스라기에는 너무 가볍지 않나?

그러자니 순간 일어나는 리턴.

표정을 싹 굳힌 신은 순간 크게 분위기를 잡고 본심을 야성적으로 드러냈다.

[다들 이걸 바라고 있겠지.]

[Uooooooohhhh……!]

[이건 그 암시였던 거야. 나는 너희가 뭘 원하고 있는지 알아. 여기에서 ‘숀 시나’의 음악이 나왔어도 좋았을 거야. 왜냐면 그게 지금, 너희들이 가장 바라고 있는 그림일 테니까.]

WWF 팬들.

ACW 팬들.

[내가, 그리고 로건이. 너희들의 슈퍼스타에게 박살이 나는 광경을 바라고 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 오, 내가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

신은 비릿하게 웃었다.

[‘오메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래, 안타깝게도 이 링 위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종종 있거든.]

그렇게 계약 문제를 암시한 그는 두 팬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우리 PWA 팬들은 구린 ACW를 보지 않겠지만. 그래서 말을 해주겠는데. 이번에 그놈이 좀 큰 사고를 쳤어.]

같이 보자고.

그런 식으로 말한 신이 손을 뻗었고 방송 화면은 자연스럽게 지난주 촬영된 ACW 위클리 쇼의 영상으로 바뀌었다.

러셀 오메가.

스탠 슈타이너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던 그가 그대로 상대의 머리를 거꾸로 하며 지면에 처박아버렸다.

투-콰앙-!

[Uoooooooooooooooooohhhhh!!]

계속해서 얻어맞던 순간에 나온 화끈한 반격. 거기에 순간 놀란 ACW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설자들의 코멘터리도 나왔다.

[Wh, What……?!]

[이건 대체 무슨 기술이야!]

[슈타이너! 일어나지 못합니다!]

[원! 투! 쓰리!!]

땡땡땡!!

거기에서 영상이 끊어졌고.

[빌어먹을. 놀라운 짓을 하는군.]

[Wa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반응도 좋았다.

지난 주, 뉴튜브에 업로드가 되면서 이미 전 세계적인 화제를 끌어 모은 러셀 오메가의 새로운 피니시 무브.

그걸 PWA와 신은 다시 한 번 방송에서 보여주며 주목을 받게 만들었다.

또한.

신은 자연스럽게 러셀 오메가가 어떤 캐릭터를 가졌는지 설명해주었다.

[ACW에서 고생 좀 하고 있잖아. 러셀. 아무래도 거기에는 너를 인정하지 못하는 놈들이 많은 모양이로군.]

두 사람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비슷하지만 정반대.

[나도 그래. 이 PWA에는 Boss의 목을 노리려는 미친놈들이 가득하지.]

도전자의 입장에 있는 러셀.

반대로 제왕의 위치에 있는 신.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드라마.

[내가 여기에 있는 이 남자를 매니저로 영입한 일로 다들 불만을 느끼고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지.]

그리고 반대되는 위치의 러셀도 지금 수많은 팬들의 앞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쪽 일이 다 정리되면 ‘그쪽’으로 넘어갈 생각인데. 그때까지 네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기대에 부응했으면 좋겠다.

[실컷 발버둥 쳐봐.]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프로레슬링 업계와 라이벌, 그리고 팬들 모두에게 날리는 일종의 선언.

분명히 언젠가.

자신은 그쪽을 박살 내러 간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멋진 카리스마를 보여준 신에게 팬들은 우렁찬 챈트로 응답을 해주었고.

그걸 본 러셀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미친놈.”

하지만 그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는 시험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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