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19화 (419/634)

419.

경기 시작 후, 대략 10분이 지났다.

그동안 러셀 오메가와 크로우는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았고 팬들은 두 사람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러셀 오메가는 노련한 선수였다.

일반적으로 몸을 쓰는 스포츠 선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지표가 시간에 따라 상승하고 낮아졌다.

선수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술력은 좋아지지만, 반대로 신체능력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그 지점이 교차되는 시점을 사람들은 선수의 ‘전성기’라고 했다.

러셀은 그 전성기였다.

계속해서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아오면서 끌어올린 노련한 경기력, 또한 기술 구사력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죽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크로우는 어쩐지 마음속에 세우고 있던 생각 하나가 미묘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건 바로 러셀에 대한 감정이었다.

‘신경 쓰지 않겠다.’

이 더럽고 정치질로 가득한 레슬링 비즈니스에 순수성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로건이 회사를 나간 이후 정처 없이 떠돌게 된 자신의 커리어와 ACW의 방향성에 대해 크로우는 아무 관여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만약 레슬링에 대한 순수성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있다면, 눈앞의 선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레슬링의 순수성이란 무엇인가.

협력에 따른 완성이었다.

이 스포츠 비즈니스에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선수들은 투쟁을 연기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그에 대한 반응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선수들은 자신의 몸을 만들고 기술력을 길렀으며.

마지막으로 여기에 스포츠의 아이러니를 한 스푼 첨가해서, 비로소 프로레슬링은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 스포츠의 아이러니란.

바로 ‘재능’이었다.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는 재능.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유연성.

그 외에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재능.

외모.

타고난 체격.

근육의 모양.

그런 것들이 존재했다.

아니, 빌어먹을. 뿐만이랴?

여기에서 그 빌어먹을 ‘정치’가 들어갔다.

스코어링 게임이 아닌 프로레슬링이기 때문에 더 그게 심했다.

그 정치가 앞선 모든 요소들을 부정하고 이 ACW라는 회사를 망가뜨렸다.

하지만 역시.

‘그쪽은 아닌 모양이군.’

아니, 있겠지만.

적어도 덜하다는 느낌이었다.

러셀에게서 그것이 보였다.

오늘은 비록 자신이 지지만 이후 팬들의 반응을 가져와 승리하고 말겠다는 순수한 야망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경기에 최선을 다했고.

그것은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팬들과 크로우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다.

러셀 오메가.

그가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어진 무브.

[U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치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뛰어오른 러셀의 몸이 그대로 뒤로 회전하며 정면으로 지면의 크로우와 추돌했다.

투콰앙-!

깔끔한 크레센트.

노장들로 가득한 이 ACW에서 그간 이와 같은 깔끔한 슈팅스타 프레스를 사용한 선수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한 시대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기술 구사력.

가히 전성기 시절의 그렉 하트에 하이 플라잉 무브로 인한 화려함까지 더해져 스타성까지도 갖춘 완전체.

그것이 지금의 러셀 오메가.

그럼에도 그는 겸손했다.

[1……!]

[2……!!]

크로우가 어깨를 들어 핀 폴에서 벗어나자 경악하는 표정이 일품이었다.

그 강력한 공격으로부터 벗어난 크로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연기.

뒤를 이어 크로우를 일으켜 세운 러셀은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곧바로 반격을 당하고 말았다.

연이은 주먹질.

이어서 DDT까지.

콰앙-!

겨드랑이 아래에 러셀의 머리를 끼워 넣어 붙잡고 떨어진 크로우는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Yeeeeeeeeeeeeeaaaaahhhh!!]

어마어마한 환호가 쏟아졌다.

젊고 화려한 러셀에 비해 크로우는 반대로 노련하고 정적인 무브를 구사했다. 그 대비가 이야기를 만들었다.

ACW 팬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스타, 크로우에게 더 크게 몰입했다.

그가 이 젊고 건방진 슈퍼스타를 참 교육하는 그림을 원했고 그렇기에 경기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이어졌다.

‘나쁘지 않군.’

크로우는 생각했다.

러셀은 그런 팬들의 드라마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맞춰서 행동해주었다.

기술을 맞을 때는 최대한 아프게.

또한 크로우가 자신의 기술에 맞고 일어날 때마다 황당하다는 듯한 얼굴을 해보이면서 팬들이 최대한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연기를 했다.

그렇게 만들어져가는 드라마.

어느새 거기에 함께 빠져든 크로우는 이 경기의 승자로서 거기에 걸맞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좀 더 박력 있게.

콰앙-!

코너 쪽으로 러셀을 던지고 그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에 달려들어 그대로 몸의 전면부로 힘껏 충돌했다.

스팅거 스플래시.

퍼억-!

크로우의 시그니처 무브. 그것을 본 팬들은 더 큰 성원을 보내주었다.

러셀이 결국 무릎을 꿇었고, 크로우는 입을 꾹 다문 채 그 뒤에 섰다.

[Waaaaaaaaaaaaaaaaaaggghhhh!]

팬들이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전갈이 그려진 검은색의 경기복.

흰색의 페이스페인팅을 한 그는 어느 샌가 과거, 어둠의 군대에 맞서 싸우던 검은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과거, ACW 전체가 nWo에 굴복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그에 맞서 싸웠던 카리스마가 다시금 보이고 있었다.

DDT와 반대로 러셀의 허리를 뒤로 당겨 겨드랑이 아래에 머리를 끼운 크로우는 힘껏 뒤로 몸을 내던졌다.

그와 함께 쓰러지는 러셀.

스콜피온 데스 드랍.

투콰앙-!

크로우의 양대 피니시 무브 중 하나가 그렇게 러셀 오메가에게 작렬했다.

[Yeeeeeeeeeeeeeeeaaaaah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고 그 상황에서 크로우는 핀 폴에 들어가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러셀의 다리를 잡았다.

[Uoooooooooooooooooooohhhh!]

완전히 끝을 내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WWF의 레전드, 그렉 하트가 사용한 것과 동일기.

샤프 슈터.

그것을 자신이 쓸 때 크로우는 스콜피온 데스락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자신의 다리에 러셀의 양다리를 얽어낸 크로우가 그대로 뒤로 돌아섰다.

우드득!!

위험한 각도로 꺾이는 무릎과 허리.

“크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러셀.

거기에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무리 라이트한 팬이라도 기억하는 게 바로 그렉 하트의 이름과 그 피니시 무브인 샤프 슈터였다.

캐나다인.

그리고 하트 패밀리의 성명절기.

그게 바로 러셀에게 사용되었다.

허리가 크게 꺾였고 러셀은 계속해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크로우의 기술은 완벽하게 들어갔다.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팬들까지도 그의 편이었다.

오늘 이 경기를 통해서 크로우는 생각도 못한 이득을 가져가게 되었다.

아니, 동시에 큰 부담이었다.

nWo와 로건이 사라져버린 회사에서 무력감에 빠져 있던 그는 이번 경기로 인해서 다시 기대를 받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나.’

그는 발버둥치고 있는 러셀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힘을 주며 생각했다.

솔직히.

이제는 이 젊은 힘을 감내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맡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야.

이 천재가 성장해 자신의 벨트를 빼앗아갔을 때의 가치가 더 커질 테니.

쾅쾅쾅쾅-!!

러셀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링 바닥을 요란하게 내리치면서 탭을 쳤다.

[Waaaaaaaaaaaaaaaaaagggghhh!]

땡땡땡-!

팬들의 환호와 함께 크로우의 승리를 알리는 링 벨이 경기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기술을 풀고 일어선 크로우는 그대로 심호흡을 하며 바닥에 쓰러져 링 밖으로 굴러 나가려는 러셀의 모습을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기본적으로 승자를 위해, 패배자는 곧바로 링 밖으로 나가는 것이 프로레슬링의 오랜 전통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경우에는 이와 같은 전통이 위배되는 경우도 존재했는데.

그건 바로 승자가 패자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였다.

각본에 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팬들도 분명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며 크로우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러셀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이봐, 애송이.”

“……?”

의아해 올려다보는 러셀.

크로우는 곧바로 손을 뻗었다.

거기에 잠시 멍하니 있던 러셀은 이윽고 크로우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거기에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

[Yeeeeeeeeeeeeeeeaaaahhh!!]

비록 악역 같은 운영을 했으나.

오늘 밤, 평소 ACW에서는 볼 수 없던 멋진 경기를 보여준 러셀에게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크로우 역시도 러셀의 팔을 들어주며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서있던 러셀은 크로우를 향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어, 이거 분명히 원래 각본 내용하고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

크로우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게 프로레슬링이야.”

“…….”

무기력에 빠져 있던 크로우에게 오늘 밤, 목표가 하나 생긴 순간이었다.

* * *

러셀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니, 왜?’

경기를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직원들의 존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 크로우가 그랬을까.

정말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린 러셀 오메가는, 조금 전의 경기를 통해 아주 조금이지만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온 락커룸.

“이야, 러셀!”

“오늘 멋졌다!”

약간 걱정하며 경기를 지켜보던 부커와 거트가 그를 칭찬해주었다.

거기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러셀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실력이 좋아졌군.”

“거트보다 낫겠어.”

“아니, 그건 아니고.”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거트.

침묵으로 물들어 있던 락커룸이 한순간 세 사람의 대화로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그렇게 남의 인정을 받을수록 반대로 질투하는 이들도 생기는 법이었다.

“정말로 대단한데.”

바로 스탠 슈타이너였다.

그 옆에는 ACW의 다른 동료들이 함께였다. 그렇기에 부커도 눈짓만 했을 뿐 딱히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무슨 레슬 임페리움 뭐시기에서 싸워 이긴 선수 같잖아. 정말 대단해.”

“……지금 시비 거는 겁니까?”

거기에 러셀이 발끈했다.

부커와 거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좋은데, 이런 부분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 부분이 러셀 오메가의 커리어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칭찬을 해줘도 지랄이네.”

자리에서 일어서 다가오는 스탠.

부커가 막아서려고 했으나 분위기를 살핀 거트가 일단 그것을 제지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두 사람이 섣불리 나섰다가는, 안 그래도 WWF 출신들끼리 뭉친다는 소문이 도는 ACW 락커룸에서 하등 좋을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섰다.

금방이라도 다시 주먹질이 오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러셀.”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크로우였다.

“……?”

스탠이 순간 의아해했고 그런 가운데, 락커룸의 선수들을 돌아본 크로우는 러셀을 향해 말을 이어나갔다.

“목이 좀 마른데 맥주 좀 몇 개 사와라. 경기장 앞에 마트가 있으니까.”

“예?”

거기에 순간 놀라는 러셀.

그러자니 크로우는 돈이 든 지갑을 아예 통째로 러셀을 향해 던졌다.

그러고는 어안이 벙벙해져 서있는 선수들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내가 쏠 건데. 마실 사람?”

“워우, 크로우가?”

눈치가 빠른 부커가 나섰다.

그런 식으로 선수들이 하나둘씩 손을 들었고, 러셀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락커룸 밖으로 내쫓겼다.

“어…….”

그건 크로우 나름대로 러셀을 락커룸에 적응시켜주겠다고 한 행동이었다.

사실 이제는 베테랑이라고 부르더라도 손색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막내 취급을 하면서 분위기를 푼 것이었다.

바로 그게 중요했다.

크로우가 그렇게 러셀을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스탠 슈타이너도 딱히 할 말은 없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잠시 자리에 서있던 러셀은 이내 군말 없이 맥주를 사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월요일 밤의 나이트로를 통해, 나는 몇 가지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크로우가 러셀을 인정했군.’

경기가 끝난 뒤로 두 사람이 보여준 디테일은 각본이 아닌 것 같았다.

러셀은 갑자기 크로우가 자신을 일으켜 세워 손을 들어주자 적잖이 당황했고 크로우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자면 솔직히 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뻔한 이야기가.

나를 자극했다.

경기의 내용은 아주 좋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좀 열이 받는 걸 느꼈다.

상대가 대견하기보다 열이 받는다.

반대편도 마찬가지였다.

WWF는 우리의 숨통을 조르는 아나콘다처럼 계속해서 대형 매치 카드들을 사용하면서 연신 세를 불려갔다.

C.M. 펑크 vs 코피 퀸스턴.

사모아 고 vs 브로큰 와이엇.

랜스 오튼 vs 숀 시나.

WWF 통합 월드 챔피언십 매치.

무게감 있는 매치들이 여럿 만들어지면서 페이퍼뷰에서 ACW를 개박살 내버릴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자, 그렇다면 여기에서 문제.

이런 상황에서.

PWA와 신은 어떻게 행동하느냐.

답은 간단했다.

우리들 역시도 그들 못지않게 젊고 실력 있는 선수들로 로스터를 꾸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지는 경기는 분명히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신 VS 쟈니 에이스.

현재 PWA에서 가장 사랑 받고 있는 스타 중 한 명인 쟈니 에이스와.

그 반대로, 회사 밖에서 계속 자신의 위상을 키워온 아메리칸 마피아.

페이퍼뷰 급의 빅 매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