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
6월 중순부터 대충 9월 말까지.
훈련장 안에 들어서면 묘하게도 소금을 삭힌 듯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어쩐지 세계에서 가장 깊다고 하는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에서 퍼 올린 것 같은 불쾌한 소금 냄새였다.
뭔가 싶어 가만히 맡고 있자면 이내 그 소금 냄새의 정체가 바로 선수들이 흘린 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지.
하지만 거기에 섞여들어 훈련하다 보면 나도 삭힌 소금 같은 냄새가 나게 되는, 그게 이 업계의 생리였다.
‘그럴 텐데.’
여기는 영 아니었다.
ACW.
이곳 친구들은 우리와 달리 매주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 다니는 히피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실 경기장이 아니라 근처의 다른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오는 선수들도 분명히 많을 터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다들 자고 있을 텐데.”
러셀이 아니란다.
“뭐……?”
“그럴 만도 하지.”
아직 일곱 시.
“아, 뭐 그래.”
확실히, 러셀이나 나 정도를 제외하면 밤샘을 하고 돌아갈 준비를 하는 인원들 정도가 고작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나왔다.
훈련을 위해서.
“신.”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 러셀이 스포츠 백에서 꺼낸 타월을 휙 던졌다.
그걸 받아서 로프에 걸어둔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입고 온 셔츠를 벗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러셀이 그런 날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락커룸은 저쪽인데.”
“귀찮아.”
“그러시겠지.”
피식 웃은 녀석도 그 자리에서 대충 옷을 갈아입었고 우리 두 사람은 링에 올라 그대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근육이 놀라거나 다치지 않도록.
적당히 몸을 풀어주고는 그대로 가장 기초가 되는 훈련부터 시작했다.
파앙-!
낙법을 칠 때마다 링 위에서 나는 소리가 그대로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전방, 후방, 측면까지.
다양한 방향으로 낙법을 쳐나가면서 조금씩 속도를 올려가기 시작했다.
“신.”
“그래.”
이후로는 서로 가볍게 기술을 주고받으면서 계속해서 훈련을 이어갔다.
러셀은 왠지 기쁜 눈치였다.
“그렇게 좋냐?”
“뭐가?”
“오랜만에 몸 좀 푸는 느낌인데.”
“……여기 선수들도 괜찮아.”
“뭐, 거트 정도라면 네가 원하는 만큼 훈련을 도와줄 수 있겠지만.”
“아니, 오히려 힘들어.”
“왜?”
“안 하려고 하니까.”
“아하.”
대충 이해했다.
거트는 나이가 40대에 접어들었고 체력적으로 러셀이 하는 정도의 훈련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도 러셀이 계속 훈련을 도와달라고 요구하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꽁무니를 빼게 되었다는 말이군.
그러자니 러셀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앞으로는 편해질 것 같아.”
“왜?”
“선수 몇 명이 더 오기로 했거든.”
“누구, 코디라도 온대?”
“……어떻게 알았어?”
놀란 듯 되묻는 러셀.
거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더스티가 이쪽하고 계약한다는 소문을 이미 파다하게 들었거든.”
그랬다.
코디 로스는 더스티 로스라는 전설적인 아버지를 둔 프로레슬링 가문 출신의 현역 선수로, 우리의 후배였다.
전생에서도 지금과 비슷한 때에 ACW로 이적해와서는 그나마 WWF에 맞서 최선을 다한 선수로 회자되었지.
하지만 가진 능력에 비해 욕심이 컸다는 평가도 듣는 선수로 성장했다.
WWF 바깥에서 로건과 동시대에 단체의 아이콘으로서 활약했던 아버지의 백을 등에 업고 nWo 로건만큼이나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그런 코디가 ACW에 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젠코에, 거기다 웬일로 인디 쪽 선수들과도 계약을 진행한다고 하던데.”
“놀라운 일이군.”
“비숍이 PWA의 성공에 고무되어서 적극적인 영입을 펼친 덕분 같은데.”
“그 양반, 요새는 술 끊었대냐.”
“그렇게 하고 있어.”
“호오.”
보아하니 이곳에서 러셀이 맡는 역할이 점점 늘어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자니 피식 웃은 녀석이 나를 그대로 들어 반대편으로 힘껏 내쳤다.
파앙-!
낙법을 취하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자 러셀은 눈앞에서 사라진 뒤였다.
“응?”
“뒤.”
일렉트릭 체어 자세로 날 들어 올리는 러셀. 거기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원 윙드 앤젤 포지션.
하지만 러셀은 더 이상 기술을 이어나가지 않았고, 나를 목마 태운 채 그대로 링 위를 돌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가벼운데?”
“풍선 들고 있으면 어울리겠군.”
“하하하! 굴욕적인가?”
“아니야.”
그렇게 말한 나는 그대로 몸을 앞으로 숙이며 러셀의 목에 다리를 걸고는 링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리버스 프랑켄슈타이너.
한 바퀴 돌아 떨어지는 러셀.
녀석이 다시 일어섰고 나는 그대로 그 팔을 붙잡고 반대편으로 던졌다.
로프 반동 후 돌아오는 러셀의 몸을 붙잡은 나는 뒤로 돌며 들어 올렸다.
지면에서 수직으로 위치한 상태에서 정지. 이후 녀석의 머리를 들어주면서 낙법을 취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쿵-!
우리는 함께 쓰러졌다.
“너도 가볍군.”
싱긋 웃으며 돌려준 나는 그대로 잠시 숨을 고른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로프에 걸어둔 수건을 써서 땀을 닦아내고 러셀이 던지는 스포츠 드링크를 마셔서 수분을 보충했다.
시간은 오전 8시 17분.
슬슬 직원들이 출근하는지 바깥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녀석과 나는 링 사이드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러셀이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뭐냐?”
“……뭐?”
“네 기믹 말이야. 우리 쪽에서 반응이 정말로 안 좋던데 뭔가 싶어서.”
그 말을 들은 나는 쓰게 웃었다.
내 아메리칸 마피아 기믹이 이쪽 선수들에게 반응이 안 좋은 이유는…… 분명히 로건의 존재 때문이겠지.
회사 간의 협약이 이루어졌다고 한들, 그와 별개로 로건은 ACW의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 내고 나갔으니까.
그런 로건이 갑자기 PWA에서 활동하면서 그쪽 단체의 화제성을 키워주고 있는데 과연 누가 좋아할까.
ACW에서는 최고의 선수인양 굴었던 그가 갑자기 나이 먹은 노인네가 되어서 매니저 짓을 하고 있는데.
하지만.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해.”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욕을 하고 싶다면 하라지.
그렇게 생각하자니 러셀이 웃었다.
“뭐, 난 대충은 알 것 같은데.”
“그래?”
“로건이 그렇게 사고를 치고 회사를 나간 상황마저 각본으로 이용하고 있는 거잖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 각본이 시동을 거는 거고 말이야.”
“눈치가 빨라졌는데. 러셀.”
“너랑 몇 년 동안이나 일했는데.”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이거 원.
못 속이겠군.
“마지막이 좋진 않았지만 어쨌든 로건은 ACW의 아이콘이었단 말이야. 그런 양반을 그냥 보낼 수야 없지.”
“그래야 일관성이 유지되니까.”
“맞아. 러셀.”
거기까지 설명한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다시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러셀에게 당부를 하나 건넸다.
“올라와라.”
“…….”
“내년 스타게이트에서 제대로 붙어보자고. ACW 월드 챔피언십을 걸고.”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신.”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벨트를 받으러 와.”
주먹이 가볍게 맞부딪혔다.
* * *
나와 러셀 오메가는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싸움을 해나갈 생각이었다.
ACW를 WWF와 다시 맞설 수 있는 좋은 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장의 흥행 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프로레슬링 회사는 어찌 보자면 일종의 코믹 북 컴퍼니와 비슷했다.
상품성이 있는 슈퍼 히어로와 이야기가 담긴 코믹스를 기획하고 발매하면서 더 큰 경쟁력을 갖춰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ACW의 스타들은 너무 올드했다.
반대되는 WWF를 보자.
숀 시나, 랜스 오튼.
그 아래에 사모아 고, C.M. 펑크.
이외에도 현재 ‘뉴 넥서스’라는 이름의 신인 스테이블도 기획 중이었다.
그런 이들이 현재 쇼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트리플H나 캐스켓-테이커 같은 레전드 선수들도 가치가 더해졌다.
이들의 경기에 한 스푼 레전드 선수들의 매치를 끼얹음으로서 레슬 임페리움은 엄청난 파워를 갖추겠지.
그야말로.
프로레슬링의 황금기였다.
우리는 거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더 많은 흥행 카드를 만들어야만 했다.
일단은 러셀 오메가.
물론, 그는 WWF에 있을 적에도 시나에 비견될 정도의 슈퍼 스타였지만 여기에서는 더 성장을 해줘야 했다.
회사의 압도적인 탑 스타로.
시나의 상대가 아니라 혼자 고고하게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기존 ACW 선수들의 잡을 받아서.
그리고 두 번째로는.
“코디와 붙게 해주십시오.”
나는 그렇게 제안을 건넸다.
러셀과 훈련이 끝난 뒤의 회의.
ACW와 본격적인 협업에 앞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첫 자리에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참가했다.
그 시선들은 무척 사나웠다.
완전히 적지(敵地)였다.
하지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더 자신감을 가지는 게 내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데릭 비숍은 알코올 의존증으로 손을 덜덜 떨면서도 그런 내 요구해 질문을 해왔다.
“코디 로스? 이유는 뭐죠?”
“밀어줄 가치가 있으니까요.”
“말인즉슨…… 코디와 붙으면서 신 당신이 잡을 해주겠단 겁니까?”
“아, 그건 아닌데요.”
“음? 일단 정리를 해보죠.”
비숍이 눈썹을 찡그렸다.
“지금 PWA에서 실행하고 있는 아메리칸 마피아 기믹을 쓰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로건도 같이……?”
비숍은 내 옆에 앉아서 입을 다물고 있는 로건을 불신의 눈으로 보았다.
다들 그랬다.
로건은 이곳에서 더 이상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다들 걸쭉하게 욕설이라도 해주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그야 물론이죠.”
나는 그 분위기를 더 차갑게 굳히기 위해 일부러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남 속도 모르고 재수 없게 구는 나를 본 선수들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선수들의 존경 받는 선수였던 로건이 이렇게까지 증오를 받게 될 줄이야.
과연 누가 알았겠는가.
레임덕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로건과 당신이 와서 코디를 상대한다. 단, 여기에서 코디의 위상을 키워주는데 승리는 당신이 챙겨간다.”
“그렇게 되겠죠.”
“가능하겠습니까?”
“한 명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나는 비숍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서있는 두툼한 몸집의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더스티.”
“……Holy Moly.”
카우보이모자를 쓰고서 씹는담배를 우적거리던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식으로 내 아들을 밀어준다는 평가를 피하려고. 일부러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말이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더스티 로스.
옆에 있는 로건이 WWF와 프로레슬링의 아이콘이었다면, 더스티는 그 바깥에서 아이콘이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나를 흥미롭다는 듯 봐주자 솔직히 좀 가슴이 벅찼다.
뚱뚱하고 거대한 몸집.
그럼에 그는 크게 사랑 받았다.
별명 또한 American Dream.
노동자들의 친구.
“나야말로 영광이네. 신.”
더스티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하나 하겠나?”
“잘 못해서.”
“딥도 있는데.”
“괘, 괜찮습니다.”
레드맨 사(社)의 씹는 담배인 츄와 딥을 주머니에서 꺼내 내미는 더스티.
츄는 우적거리며 씹는 거고 딥은 잇몸에 붙여서 니코틴을 흡수하는 거다.
전생에는 담배를 곧잘 즐겼던 나였으나 이제는 나서서 피우지는 않았다.
제일 좋은 금연 방법은 회귀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츄잉 타바코를 권한 건 내가 한 말이 싫지는 않다는 말이겠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나야 뭐, 여기에 있는 젊은 친구들이 괜한 오해를 하지만 않는다면.”
“……그러면.”
바로 그때, 제멋대로 진행된 더스티와 나의 이야기를 듣던 비숍이 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저희 쪽 각본팀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올려주시면 검토해보겠습니다.”
거기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죠.”
이후로 이어지는 회의에서도 ACW 선수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비숍과 나는 선수들 간의 교류전에 관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젊은 선수들 위주로 밀어서 WWF와 싸울 만한 화제성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게 여기 있는 노장들의 심기를 건든 모양이었다.
결국, 일차적인 회의가 끝난 뒤 돌아가려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가려는 로건과 나를 주차장까지 쫓아온 스탠 슈타이너가 시비를 걸어왔다.
“이봐 로건, ACW에서는 그렇게 탐욕을 부리더니 왜 이제 와서 그런 애새끼 불알이나 빨게 된 거지?”
“……가세나. 신.”
로건은 시선을 피했다.
스탠 슈타이너는 미친 개였다. 실제로도 로건에게 계속 ‘죽여버린다’면서 협박을 서슴지 않는 막장이었다.
그런 상황인 만큼 나 역시도 굳이 슈타이너를 상대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직후.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가까이 다가온 슈타이너가 그대로 로건의 안면을 향해 펀치를 휘둘렀다.
퍼억-!
여러 상황이 겹쳐 크게 흥분한 그 주먹에 맞은 로건이 나가떨어졌다.
‘어쩔 수 없군.’
순간적으로 소란이 빚어졌다.
슈타이너는 곧바로 나를 돌아보았고 그런 상황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나는 슈타이너의 발을 밟았다.
순간 놀란 그의 움직임이 멈췄고 나는 그대로 턱에 펀치를 꽂아 넣었다.
빠악-!
“크헉?!”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슈타이너.
“이, 비겁한 새끼가!”
분노한 그가 내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시 쓰러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큰 소리를 들은 ACW 소속 선수들이 놀라 달려 나왔다. 그 무리 안에는 러셀 역시도 함께 있는 상황이었다.
시선이 잠시 교차했고.
우리는 곧바로 판단을 내렸다.
“너, 이 윽……?!”
나는 슈타이너를 덮쳤다.
그러자니 곧장 이쪽으로 달려든 러셀이 힘을 줘서 나를 슈타이너로부터 떼어내고 가슴팍을 세게 밀쳤다.
나는 일부러 엉덩방아를 찧었고 다른 선수들이 달려와 대립이 일어났다.
상황을 중재한 것은 러셀이었다.
“돌아가. 신.”
녀석의 말에 일부러 혀를 크게 차며 일어선 나는 로건과 함께 자동차에 타 그대로 ACW 경기장을 떠났다.
협업의 분위기는 완전히 최악이었으나, 그 모든 게 우리가 의도한 바였다.
‘나쁘지 않군.’
백미러로 확인하자 ACW 선수들이 러셀을 주목하며 모여선 것이 보였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