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24화 (424/634)

424.

신과 로건이 경기장을 떠난 뒤.

ACW 선수들은 모두가 두 사람에게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욕설을 해댔다.

“뭐야, 저 새끼들?!”

“지금 우리를 얕보는 거잖아! 다 때려치워! 뭔 거지같은 놈의 협업이야!”

“저런 싸구려 단체의 돼지 새끼들의 도움 없이도 우리는 잘할 수 있다고!”

다들 흥분해 마구 욕을 해댔다.

아무래도 신이 방금 어그로를 끈 게 제대로 선수들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러셀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것을 느끼며 주차장을 떠나고 있는 트럭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선이 교차하고.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었다.

그리고 나온 결과가 이랬다.

‘저 자식.’

신은 방금, 러셀에게 아주 제대로 된 기회를 하나 주고 간 셈이었다.

물론 러셀로서는 신이 스탠에게 달려들자마자 다른 선수들이 주먹질을 해댈까봐 먼저 손을 쓴 것이었지만.

그로써.

“야, 러셀.”

그는 인정을 받았다.

“새끼, 좀 하는데?”

“별일이다. 야. 네가 그토록 서로 주먹질을 해대던 슈타이너를 구하고.”

ACW 선수들이 러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개중에는 처음에 슈타이너를 도와 러셀을 두들겨 패던 월드 챔피언, 잭 제럿 역시도 포함되어있었다.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러셀은 지금 신이 준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수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는 스탠 슈타이너. 그는 자신을 도와준 러셀의 얼굴을 세차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내가 고맙다고 말하길 바라냐?”

“…….”

“제기랄, 네가 아니었어도 그딴 개자식은 내 주먹에 걸리면 한방이야.”

“그렇겠죠.”

“응?”

“많이 맞아봐서 잘 압니다.”

러셀은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거기에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는 스탠 슈타이너. 할 말을 잃은 선수들.

그러자니 누군가 껄껄 웃었다.

바로 크로우였다.

평소 생활에서도 각본의 캐릭터처럼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의 그가 그렇게 웃음을 터뜨리자 주변의 선수들이 모두 당황해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니 가까이 다가온 크로우가 러셀을 인정하듯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긴, 정말 죽어라고 맞았지.”

“아직도 아프다니까요.”

“그리고 넌 그런 놈을 도왔군.”

“……뭐, 그야.”

러셀은 뺨을 긁적였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팀 사람이 맞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야 없죠.”

“하하하! ‘같은 팀’이라고!”

“그거 재미있는 소리군!”

지금까지 ‘WWF에서 온 이적생’이었던 러셀이 자연스럽게 ACW 선수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각본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신과 로건은 ACW 쪽 사람들에게 공공의 적이 된 것이었다.

* * *

그렇게 로건과 함께 도망치듯 ACW를 떠난 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러셀에게 감사의 문자를 받았다.

[네 덕 좀 봤어. 고맙다.]

내가 ACW 소속 선수들에게 남긴 분노를 받아서 잘 사용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어야지.’

이로서, 로건의 이적이 ACW 쪽에 생각보다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팬들 역시도 그렇겠지.

ACW에서 온갖 욕을 다 들어먹어도 항상 푸시를 받았던 로건이 갑자기 다른 단체로 넘어갔으니 말이다.

그동안 이 업계에서 쌓아온 업보가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나는 로건의 그 상황을 이용해서 ACW 측과 싸우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그 과정을 통해 그쪽 사람들이 결속할 수 있게 돕는 거지.

말했듯, WWF와의 결전을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겟 오버 시켜서 흥행 카드로 만들어놔야만 했다.

그렇게 택한 상대가 코디 로스.

나는 WWF와 계약을 마치고 넘어온 그와 더스티를 불러, 로건까지 포함해 네 명이서 회의를 진행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내 아이디어를 들은 더스티가 말했다.

“로건을 이용해서 ACW의 악당이 되고 그쪽 팬과 선수들이 결속할 수 있는 하나의 큰 시련이 되어주겠다고.”

“그렇습니다.”

그게 올해 말까지의 목표였다.

“ACW에서 큰 실패를 겪은 로건이 저라는 외부의 세력을 통해 다시 한 번 재기를 노리고 있는 거죠.”

“자네는?”

“저는 반대로 로건을 이용해 ACW를 먹을 생각인 거고요.”

그런 식으로.

제각기 두 선수가 다른 뜻을 가지고 뭉친 상태에서 각본이 진행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코디를 겟 오버 시키는 겁니다.”

“흐음…….”

“여, 영광입니다. 선배님.”

코디가 얼굴이 빨개져 대답했다.

나와의 대립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크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녀석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스티는 우려를 표했다.

“과연 괜찮을까 모르겠군.”

“왜 그러십니까?”

“아들놈이 듣기에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대립도 서로 급이 맞아야지.”

더스티는 그렇게 표현했다.

“내 아들은 WWF 시절에…… 아마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어.”

주머니를 뒤적거린 더스티는 씹는 담배를 입에 물고 말을 이어나갔다.

“미드 카더였겠군.”

“…….”

대답을 못하는 코디.

나 역시도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 뭐. 게임처럼 생각해보자.

프로레슬링 업계는 선수의 위상을 나타내는 데 쓰는 용어들이 존재했다.

가장 먼저, 패배 전문 자버.

로우 카더.

미드 카더.

하이 카더.

그리고 메인 이벤터.

그 위에 레전드와 아이콘.

뭐, 대충 그런데.

무슨 복싱 체급도 아니고 슈퍼 세세하다 싶지만 원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설정이 중요한 법.

그렇기에 대립에서는 최대 3계급 이상 차이가 나는 상대와는 아예 제대로 진행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를 만약 아이콘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하이 카더 이상의 선수여야만 나와 싸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Young 코디 로스는 미드 카더였고, 그마저도 WWF 커리어 후반부에는 쇼에 나오는 것조차 못했다.

내가 그런 선수와 대립한다면, 아니, 경기라도 가진다면 바로 다음과 같은 게 가장 납득되는 그림일 터였다.

내가 슈퍼 킥을 차고.

코디가 쓰러지고.

1, 2, 3. 땡땡땡.

“그렇겠지.”

“죄송합니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 코디.”

더스티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를 하는 것도 코디가 아직까지는 영 부족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듯해 안타깝겠지.

하지만 내게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럼 제대로 된 각본으로 위상을 끌어올리면 될 일 아닙니까?”

“그게 뚝딱 가능한 일인가?”

“예, 한 가지 있습니다.”

나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더스티 로스.

“……? 뭐? 나?”

“경기, 가능하시죠?”

“어? 아니, 잠깐. 그게 무슨 말인가? 나보고 코디와 경기를 하라고?”

“예, 멋진 아이디어죠?”

“……로건.”

당황해 옆을 돌아보는 더스티.

하지만 로건은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들어나 보자고. 더스티.”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자신 있었다.

이 대립을 성공시킬 자신이.

* * *

그렇게 이어지는 마라톤 회의……도 아니고 그냥 단숨에 끝나버린 회의.

더스티 로스는 황당함을 느꼈다.

‘이런 아이디어를 낸다고?’

순간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신이 낸 아이디어대로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8월의 초대형 페이퍼뷰에서 멋진 경기를 기대할 수 있겠지.

그 대립은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과거와 현재의 싸움으로, 계획대로만 된다면 분명 대박을 칠 터였다.

코디가 지더라도 위상은 오를 테고 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위상은 공고해지는 아주 멋진 시나리오였다.

아, 물론.

이런 식의 대립이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아예 없지는 않았었다. 패배한 선수에게 잘 싸웠다며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주는 각본은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신이 말해준 근거나 디테일을 생각하자니 곧바로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리고 설득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난 뒤.

잠깐 나온 더스티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연초를 꺼내 거기에 불을 붙였다.

‘정말로 멋지겠군.’

마치 모나리자를 훔치는 작업에 끼어든 과거의 대도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신이 훔치자고 기획한 것은 모나리자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크고 위대한 무언가지.

인간의 마음.

갈피를 잡기 힘든 그것을 신은 확실히 손에 넣을 계획을 마련한 상태였다.

“허허.”

웃음만 나오는 상황.

그렇게 PWA 경기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로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더스티는 곧바로 말을 걸었다.

“살 좀 빼야겠는데!”

“자네 말인가?”

“그래, 로건. 빌어먹을. 어떻게든 한 경기를 치를 수 있게 좀 해야겠어.”

“그렇다면 담배부터 좀 끊지.”

“그래야겠군.”

더스티는 곧바로 담배를 껐다.

“정말로 멋진 친구였군. 자네가 혹해서 함께하는 것도 이해가 가.”

“내가?”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지.”

로건이 쓰게 웃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놀랍군.”

“또 왜.”

“자네는 재능 있는 친구들을 삽으로 퍼서 묻는 쪽이었지. 반대로 도운 적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어서.”

질 나쁜 농담을 건네는 더스티.

하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로건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에는 죽어라 싸웠던 남자.

그게 바로 더스티 로스였다.

레슬링으로 싸웠단 말이 아니었다.

그때의 락커룸은 전쟁터였고, 로건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덤벼드는 수많은 선수들과 싸움을 벌였다.

개중에는 다른 단체에 속한 더스티 로스라는 이름의 노동자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렀고.

선수들이 고통스러운 삶 속에 하나둘씩 영면하면서 로건은 그런 동료들에게 뒤늦게 동료애를 느꼈다.

“그래서 복귀했지.”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들어봐. 더스티. 한 남자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털어놓는 이야기니까.”

로건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이 업계에서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가졌는지 다시 알고 싶었던 로건은 ACW로 복귀했고 이후 nWo라는 걸출한 스테이블을 출범시켰다.

일은 잘 풀리는 듯했으나 안타깝게도 그건 로건만의 생각이었고 결국 최악의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회사는 로건을 부정하고 쫓아냈다.

분노와 절망 속에 로건은 생각했다.

“난 내 커리어를 그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 그래서 마지막으로 신에게 모든 걸 맡길 생각이네.”

“……그래서였군.”

그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더스티는 로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누군가는 떠날 시기를 놓쳤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로건은 제대로 된 마무리를 짓고 싶은 것이었다.

더욱이.

“그 선수가 바트 맥센을 죽이려 한다면 기꺼이 손을 보태야지 않겠나.”

“그래, 그 영감이 죽는 걸 보는 게 내 일생일대의 소원인데 말이야.”

“그 친구라면 해낼 거야.”

두 노장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신이 이번에 제시한 각본을 통해 의심은 어느덧 거두어진 상황이었다.

* * *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ACW 쪽에서는 우리가 제시한 각본을 그대로 진행하자며 수락해주었다.

여기에는 내 팬(?)이 된 더스티 로스의 영향이 컸다. 그가 직접 일을 진행하자며 비숍을 설득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별다른 방해 없이 8월 페이퍼뷰까지 이어질 코디 로스와 나의 대립 각본을 통과시켰다.

두 달 넘도록 이어지는 만큼 대립은 더스티와 로건까지 참여해서 최대한으로 크게 키워나갈 생각이었다.

‘아무렴.’

나와 로건이 ACW에 데뷔하는 각본도 되는 셈이니 그 정도는 나와야지.

그런 생각 속에 우리는 세밀한 일정과 상황을 조율해가며 때를 기다렸고.

그렇게 6월 2주차의 나이트로에서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되는 게 정해졌다.

그 내용은 일단.

ACW에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더스티 로스가 귀환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월요일 밤의 나이트로.

그 쇼의 오프닝에서 프로레슬링 비즈니스 사상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초대형 스타가 링으로 돌아왔다.

[Ame~ri~ca~n Dre~a~m~~!]

[Waaaaaaaaaaaaaaaaaggggghhhh!]

아메리칸 드림.

그 테마와 함께 청바지를 입고 링에 나온 더스티는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그렇게 링에 올랐다.

그는 나이를 먹은 상태였지만 카리스마는 여전했고, 마이크를 쥐고 팬들에게 순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돌아와서 기쁘군요. 정말로 기쁩니다. 이런 단체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저도 진즉에 선수로 복귀했을 텐데요!]

[One More Match! One More Match!]

[하하하, 미안합니다. 그걸 하기에는 제 나이가 너무 많아요. 제 큰 엉덩이와 뱃살을 보십시오. 하지만 저는 미래를 이어갈 선수들을 위해 링 프로듀서로서 이 자리에 복귀했습니다!]

[Yeeeeeeeeeeeeeeeeeaaaahhhh!!]

[그래도 팬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나왔고요! 이런 기회를 준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군요!]

모두에게 사랑받는 과거의 스타.

그는 서민의 편이었고 아메리칸 드림이었으며 안티 WWF를 표방하는 이곳 팬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그걸 방해하는 인물이 등장해야 팬들이 흥미를 갖는 스토리가 될 터였다.

[Uooooooooooooooooooohhhh!!]

순간 경기장이 크게 뒤흔들렸다.

내 테마 음악이 울려 퍼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엉덩이를 떼고 벌떡 일어나 입장로를 경악에 찬 눈으로 보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내가 최근 PWA에서 어떤 말을 떠들어댔는지. 누구와 함께 선수들을 어떤 식으로 조리하고 압도적일 정도의 위상을 지금껏 쌓아왔는지.

그렇기 때문에.

더스티 로스의 마이크워크에 난입한 것은 정말로 완벽한 선택이었다.

나는 커튼을 걷고 링으로 나섰다.

[Waaaaaaaaaaaaaaaaggggghhhh!]

WWF를 엿 먹이고 나온 나를 환영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정말 엄청났고.

[Booooooooooooooooooooooo-!]

반대로, 로건과 함께하고 있는 내 행동에 대한 야유 역시 큰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장을 갖춰 입은 나는 거기에 전혀 개의치 않고 링으로 나아갔다.

링 위의 더스티가 보였다.

순간 굳어진 그의 표정에서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말인즉슨.

ACW의 결속력을 강화시킬 존재라는 의미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