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25화 (425/634)

425.

그래, 분명히.

코디 로스는 젊은 선수였고, WWF에서는 그 시절의 나와 비교했을 때만큼의 위상도 쌓지 못한 상태였다.

데뷔 후, 랜스 오튼의 아래에서 레갈리아라는 스테이블로 활동하면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기는 했으나.

푸시와는 영 거리가 먼 선수였다.

딱 미드 카더 정도.

하이 카더로 올라갈까 말까 한 상황이 오면 꼭 위상이 떨어졌고, WWF에 속했던 내내 그런 식으로 지냈다.

ACW로 넘어온 이유도 그런 부킹을 견뎌내기 힘들어서였다고 말했지.

그렇기에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나와 코디의 대립을 탐탁찮게 여길 터였다.

코디보다 좋은 선수들은 ACW에 쌔고 쌨고, 그들과 좋은 대립을 통해 시청률을 쌓아갈 시기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기회를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위상을 쌓고 좋은 선수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코디에게 그 기회를 주고 싶었다. 누구나 바라고 있지만, 선수들 대부분은 받지 못하는 기회란 놈을.

그리고 아마 잘 소화할 터였다.

전생에도 코디는 좋은 선수였다.

결코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고, 시간이 지나며 과도한 부킹에 역반응이 꽤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그건 전생의 이야기.

지금의 녀석은 단지 WWF에서 아버지 하나만 믿고 ACW에 온 애송이다.

그렇게 취급될 터였다.

팬들도, 선수들도 다 그렇게 보겠지.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답은 간단했다.

거기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된다.

나와 로건이 ‘아버지’를 공격하면서.

8월까지 이어질 나와 애송이, 코디 로스의 대립은 막을 올릴 예정이었다.

링 위.

[Waaaaaaaaaaaaaggggghhhh!!]

[Booooooooooooooooooo-!!]

환호와 야유가 정확히 반반.

환영받되,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미묘한 상황.

우리는 확실하게 이야기 속에서 포지션을 잡아 이곳의 팬들에게 알려야만 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위해 왔는지.

그걸 위해,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더스티 로스.”

[Yeeeeeeeeeeeeeeeeeaaahhh!!]

“아메리칸 드림. 미국이 사랑한 남자. 만나게 되어서 정말로 영광이군.”

일단 그런 식으로 칭찬을 건넸다.

더스티가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로건을 뒤에 거느린 남자를 내 살아생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신.”

[Booooooooooooooooo-!!]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주목의 대상이 된 로건은 선글라스를 쓴 채 무표정한 얼굴을 해보였다.

아무런 반응도 않고 서있는 그의 가슴을 툭 친 나는 그대로 여유를 부리며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선수의 뒤에 서있는 건, 정상에 올라본 적이 있던 선수의 권리 아니겠어?”

지금 관객들은 우리가 여기에 왜 등장했는지, 그리고 왜 더스티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힌트를 얻은 건 마피아 무비였다.

특유의 긴장감.

나는 곧바로 더스티의 앞으로 다가섰다. 거기에 순간 관객들이 놀랐다.

내가 혹시라도 그를 공격하지는 않을까. 남자와 남자가 아주 가까이에 선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공격.

특히나 이 링 위에서는 더욱이.

나는 더스티의 두툼한 뱃살 앞에 서서 빙긋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당신도 그러려고 온 것 아닌가?”

[Uoooooooooohhhh……!]

몇몇 관객들이 놀라 소리를 냈다.

“코디 로스와 WWF 간의 계약이 끝났더랬지. 그 친구가 이제 여기로 와서 아버지의 두툼한 젖을 빨아먹으면서 성장하는 그림을 볼 수 있을까?”

[Waaaaaaaaaaaaaaaagggghhh!!]

[B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은 다시 양분된 반응을 보냈다.

내 말이 더스티를 모욕한다고 느낀 팬들은 야유를, 반대로 코디를 깐다고 느낀 이들은 환호를 보냈다.

이게 바로 코디 로스라는 사내의 현 주소였다.

그를 환영하는 이는 없다.

그걸 무시하고 그대로 데뷔시킨다면 분명히 역반응이 나올 터였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찌질하게 악역 전환을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정면으로 헤치고 나가야 한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잖아? 늦둥이 자식 놈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버지. 이 시대가 낳은 노동자들의 귀감이로군. 더스티.”

“……할 말은 다 했나?”

더스티가 마이크를 들었다.

표정은 여전히 웃고 있었으나.

아주 약간.

굳어졌다.

“확실히,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내 아들 코디를 위해 이곳으로 돌아온 게 아니야. 신.”

“그럼 왜 돌아왔지?”

“좋은 선수들을 발굴해서 이 ACW의 팬들이 보다 멋진 쇼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거든.”

더스티는 내게서 돌아섰다.

“그게 프로레슬링이지. 다들 퇴근해서 맥주 한 잔 기울이면서 볼 수 있는 좋은 쇼를 만드는 게 말이야.”

[Yeeeeeeeeeeeeeeeeeaaaahhhh!!]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런 가운데, 더스티는 미국 대선 후보처럼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내게서 계속 등을 돌리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내가 코트를 벗었다.

그리고 손목에 찬 시계까지 풀어 옆의 로건에게 건네주며 액션을 취했다.

[Boooooooooooooo……!!]

야유를 보내는 관객들.

내가 금방이라도 더스티를 공격할 것처럼 액션을 취하자 놀란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아메리칸 드림.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

“……무슨 말이지?”

“더스티. 이 ACW는 여기 있는 남자가 회사를 나온 뒤로 망가졌어. 이미 회생할 수 없는 단계가 되었다고.”

[Boooooooooooooooooooooo-!]

“지금 남아있는 것도 죄다 허리 굽어가는 영감들뿐이고. 이딴 곳에서 대체 누가 차세대 스타가 되겠어?”

양로원 배틀도 아니고.

“신, 확실히 말해두지.”

그런 내 말에 더스티가 응답했다.

“나는 네가 이 업계에 대한 존중과 신의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지난 레슬 임페리움에서 벨트를 따내고 이 업계의 부조리에 저항한 행동을 인상 깊게 보았다.

“하지만 지금 꼴을 보자니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싶군. 내가 알던 그 강단 있는 놈은 어디로 갔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나? 더스티?”

“그렇게 느껴지는데. 아닌가?”

“나는 변하지 않았어. 빌어먹을. 지긋지긋하군. 다들 헛소리를 해대는데. 내게 간증을 요구하지 말라 이거야.”

나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맞아! 솔직히 역겹다고 생각했지. 10년 가까이 함께해온 선수를 믿지 못해서 엿 먹인 그 영감이, 나는 정말로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ACW가 ‘좋은 놈’들이라는 건 절대로 아니야. 너희는 슈퍼 구려. 그래서 생각을 했지.”

The World Is All Yours.

나의 새 캐치 프레이즈.

“난 이 바닥을 접수하겠어.”

[Booooooooooooooooooooooo-!]

“왜, 허황된 소리 같나?”

나는 피식 웃으며 팬들을 돌아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ACW 팬들은 나에게 더 큰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후.

나는 더스티의 안면을 걷어찼다.

쩌억-!

슈퍼 킥.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더스티는 곧바로 뒤로 넘어가 바닥에 쓰러졌고, 나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며 그 앞으로 다가섰다.

“난 뭐든지 하는 놈이야! 내 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박살내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빌어먹을 개자식이지!!”

[Boooooooooooooooooooo-!!]

“이건 선전포고다! ACW!!”

야유와 혼란이 빗발쳤다.

그런 상황에서 로건만이 껄껄 웃으며 박수를 보냈고, 나는 그야말로 잔혹할 정도로 더스티를 박살 냈다.

일단은 그 위에 올라타 마구잡이로 펀치를 내리치며 혼을 쏙 빼놓았다.

그리고 이어.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링 위를 크게 돌면서 팬들의 어그로를 잔뜩 끌었다.

“이 링은 내 거야!! 병신 같은 ACW 새끼들에게 넘겨주기엔 너무 크다고!”

[Boooooooooooooooooooooo-!]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치는 더스티.

그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놈의 뒤를 쫓아가서는 발로 짓밟으며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허억, 으허억…….”

정신을 못 차리는 더스티.

나는 그 뺨을 후려치고 최대한 잔혹하고 굴욕적인 방식으로 더스티 로스라는 남자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그다음.

“신!”

나를 지켜보던 로건이 품 안에서 검은색 스프레이를 꺼내들었다. 그것을 본 팬들은 반쯤 절규하고 있었다.

노인에게 가해지기에는 너무나도 잔혹한 행동이었다. 팬들은 고개를 내저으며 미친 듯이 야유를 보내댔다.

하지만 나는 그걸 해버렸다.

더스티가 입고 있던 남방을 찢어 벗긴 뒤 발로 걷어차 돌아눕게 했다.

더스티는 완전히 기절했고.

낄낄 웃으며 다가선 로건이 그 위에 대고 굴욕적인 락커질을 시작했다.

나는 코너에 기대어 서서 더스티의 살찐 등 위에 새겨지는 문자를 보았다.

S, I, N.

“푸하하하하하!!”

[You Su-k! You Su-k! You Su-k! You Su-k! You Su-k! You Su-k!]

“더 지껄여봐! ACW 패배자 새끼들! 어디 한번 승자의 이름을 말하면서 너희들끼리 서로 대딸이나 쳐주라고!”

[Booooooooooooooooooooo-!!]

결국.

그런 내 행동에 분노한 관객들이 링 위로 쓰레기를 투척해대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은 나는 쓰러져 있던 더스티를 일으켜 세워 날아드는 쓰레기들을 막아내며 웃었다.

완전히 엿 먹이는 상황이었다.

그 직후였다.

[Waaaaaaaaaggghhhh……!]

작은 환성 소리에 돌아본 나는 링 위로 달려 나오는 코디를 발견했다.

아버지가 최악의 상황에 처하자 그 아들이 참지 못하고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쏟아지는 환호는 아주 미약했다. 코디 로스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고작 이 정도인 셈이었다.

그렇기에.

링 위로 올라온 코디가 내게 펀치를 날리며 몰아붙여도 그다지 이렇다 할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팬들은 그를 믿지 못했다.

그리고 내 뒤에 서있던 로건이 달려들어 코디를 떼어내고.

쩌억-!

거기에 내가 다시 슈퍼 킥을 차 넣으면서 그 짧은 반란은 막을 내렸다.

[Boooooooooooooooooooo-!!]

다시금 쏟아지는 야유.

나는 녹다운 된 코디의 위에 서서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뭐야, 이건?”

그게 바로 코디의 현 상황이었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나와도 제대로 된 힘조차 쓰지 못하는 애송이.

그렇게.

나와 로건의 ACW 데뷔는 악역으로 확실한 가닥을 잡은 채 이루어졌다.

* * *

세그먼트가 끝나고 백스테이지.

“이야, 정말로 훌륭했어!”

더스티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또 돌아오자마자 이마에 난 피의 치료보다 씹는담배를 한 줌 쥔 그는 나를 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팬들 반응도 대단했고! 로건과 내가 있는데도 자네가 중심에 서서 멋진 세그먼트를 하나 만들어냈군!”

“과찬이십니다.”

나는 쓰게 웃었다.

물론, 내가 주먹을 몇 번 휘둘렀다고 해서 더스티의 이마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를 리는 없었다.

내가 그렇게 후려친 뒤 팬들의 분노를 더 끌어내는 장면에서 더스티가 주머니에 둔 면도칼로 이마를 그어 일부러 더 잔혹하게 연출한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ACW 팬들에게 있어 완전히 공공의 적이 되었고, 앞으로 스토리가 멋지게 전개될 발판을 얻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

그게 주요한 테마였다.

나와 코디가 맞서기 위해서는 이 정도 되는 계기가 있지 않으면 힘들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먼저 코디 로스는 팬들의 시험을 받아야만 할 터였다.

과연 코디는 더스티의 대리자로서 그의 복수를 이뤄줄 만한 인물인가?

그게 7월의 ACW 페이퍼뷰까지 주요한 스토리 라인으로 작용할 터.

“아주 멋지군. 좋아.”

고개를 끄덕이는 더스티.

“오랜만에 피가 끓어오르더군. 신.”

“그걸 코디에게 쓰셔야죠.”

“그래야겠어. 하하하.”

더스티가 옆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코디 로스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우리 애송이가 아직 부족하지만, 기회를 줘서 정말로 고맙네.”

“……아까 링 위에서는 분명 ACW 선수들을 위해 돌아오셨다고 했죠?”

“크하하! 뭐,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이 녀석도 잘해준다면 나는 더 기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틀린 말은 아니군.

거기에 더스티는, 자신이 오랜만에 프로레슬링의 링에서 역할을 맡고 경기까지 뛸 수 있게 되어 기쁜 듯했다.

사실 다들 그럴 터였다.

나 역시도 회귀 후 오랜만에 GCW를 통해 링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 러셀과 대립을 하면서 정말 기뻤으니까.

영원히 깨지 않고 싶은 꿈.

그게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겠지.

그런 식으로 더스티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뒤, 나는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고자 락커룸을 나왔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직원이나 선수들의 반응은 제각기 미묘했다.

중간에 더스티가 끼어 있어서 그런지 더 이상 시비를 걸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호의를 가지고 먼저 인사를 해오지도 않았다.

그런 와중이었다.

“이봐, 신.”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본 나는 조끼를 입고 링으로 나설 준비를 마친 러셀 오메가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 오메가.”

“오메가는 무슨…….”

“이제 네 차례인가?”

“그래, 네 덕에 마이애미 관객들이 아주 제대로 흥분했군. 좋은 일이야.”

“그쪽은 좀 어때?”

“나도 나쁘지야 않지.”

러셀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니 새하얀 페이스페인팅이 인상적인 사내, 크로우가 우리를 지나가 곧장 고릴라 포지션으로 향했다.

“아무렴, 최고의 사나이인데.”

“……잘하고 오라고.”

나는 그렇게 러셀을 배웅했다.

우리가 좋은 대립을 시작한 것만큼이나 러셀 역시 잘해나가고 있었다.

WWF에 대항해나갈 힘을 갖추기 위해, ACW의 스토리 라인이 다시금 제 위치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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