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피니시 무브.
상대방을 끝장내고 경기를 이기기 위해 선수들이 다들 하나씩은 의례적으로 장착하고 있는 기술들을 말했다.
실제 맞았을 때 아픈 정도를 따져서 기술의 위상이 정해지는 건 아니었고.
오로지 기술 사용자의 위상에 따라서 피니시 무브의 강력함이 정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액스 킥은 확실히 강한 무브였다.
부커-리 기믹 때는 하이 카더, 킹-부커 기믹 때는 메인 이벤터 자리까지 올라간 부커가 그 사용자였던 만큼.
대부분의 상대 선수들로부터 훌륭하게 쓰리 카운트를 빼앗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일이었다.
이제 부커는 언제 은퇴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노장이었다. 반대로 나는 프로레슬링 업계를 한창 이끌어나가고 있는 최고의 스타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2……!]
벗어났다.
후두부를 직격당해서 거의 혼절하기 직전으로부터 어떻게든 탈출했다.
[Uoooooooooooooooooohhhh!!]
경악을 금치 못하는 팬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코디는 자리를 벗어나려는 로건을 계속 추격하면서 공격을 계속 이어나갔다.
날 도와서 경기를 방해하고 있던 그를 혼쭐내는, 어찌 보자면 참으로 속 시원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Booooooooooooooooooooo-!!]
그 행동은 도리어 경기에 혼란만을 가져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코디의 존재를 부커가 뒤늦게 알아차렸다.
“Hey, Kid!”
나를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링 아래에서 경기를 방해하고 있는 코디를 내려다보며 버럭 소리쳤다.
“뭡니까?!”
“당장 내 링에서 꺼져!!”
“저는 당신을 도와주는 거라고요!!”
“누구도 해달라고 안 했어!!”
옥신각신 싸우는 두 사람.
그사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나는 부커의 뒤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Boooooooooooooooooooo-!!]
관객들이 야유를 보냈으나.
“내가 거기로 내려가서 네 엉덩이를 걷어차기 전에 재빨리 꺼지는 게 좋을 거다! 애송이! 정말로……?!”
부커는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쪽에서 접근해 부커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은 나는 그대로 당겨 바닥에 등이 닿도록 했다.
롤 업.
승리를 훔치는 기술이었다.
[1……!]
[2……!]
[3……!!]
땡땡땡!!
[Uoooooooooooooooooohhhhhh!!]
탄식을 내뱉는 팬들.
그렇게 내 승리가 결정되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자리에서 일어선 부커가 이내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장 링을 내려온 나는 로건과 함께 입장로로 나오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로건이 웃으며 소리쳤다.
“고맙다~! 코디!!”
참고로 말하자면 코디는 내 승리가 결정된 것을 안 순간 넋이 나가 우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Bull Sh-t! Bull Sh-t! Bull Sh-t! Bull Sh-t! Bull Sh-t! Bull Sh-t!]
팬들이 그렇게 의사를 표현했다.
이 결과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긴 건 나고.
ACW는 코디로 인해 패배했다.
* * *
그런 식으로 코디 로스에게 더 짐을 지워주며 위클리 쇼는 막을 내렸다.
이쯤 되면 코디 로스라는 선수에게 아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던 이들마저도 슬슬 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정말 등신 취급하는 부킹은 좀 너무하지 않느냐는 게 그들의 말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각본과 그 디테일에 대해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코디나 더스티, 로건은 끝까지 나를 믿어주었다.
우리는 계속 각본을 전개했다.
쇼가 끝난 뒤.
인터넷 SNS에서 부커-리는 오늘 자신의 패배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정말 빌어먹을 수단으로 빌어먹을 놈이 난입해 빌어먹을 패배를 했군. 둘 다 쇼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말이야. 슬픈 밤이다.]
그런 식으로 경기가 끝난 뒤에 던진 메시지는 다음 주 방송까지 잘 사용되며 팬들의 이목을 끌 예정이었다.
부커는 열이 받았다.
단단히 벼르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의 나는 경기의 승자로서 PWA에 출연해 그 SNS의 내용을 예시로 들어 세그먼트를 진행했다.
물론, PWA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찾아온 팬들은 나를 격하게 환영했다.
“이겼으면 된 거잖아?!”
[Yeeeeeeeeeeeeeeeeeeaaaahhh!!]
“뭐라는 거야?! 부커! 당신은 그런 치졸한 남자가 아니잖아! 패배를 인정하라고! 내가 더 나은 남자라는 사실을 만인에게 공표해보라는 말이야!”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로건도 거기에 동의했다.
“승리가 가장 중요하지. 게다가, 먼저 나서서 자네의 시선을 빼앗은 건 그쪽의 애송이인 코디 아닌가?”
“맞는 말입니다! 로건! 이봐, 부커. 내가 악당처럼 보이나? 아니야. 나는 단지 이기기 위한 방법을 찾으며 싸웠을 뿐이야. 그게 내 삶의 방식이지.”
[He Is Alpha!]
짝! 짝! 짝짝짝!
[He Is Alpha!]
짝! 짝! 짝짝짝!
[He Is Alpha!]
짝! 짝! 짝짝짝!
팬들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다시 ACW를 도발했다.
“잘 들어, ACW 친구들. 최고는 절대 패배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 않아.”
[Yeeeeeeeeeeeeeeeeeaaahhhh!]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 그리고. 다들 궁금해할 사실을 한 가지 더 가르쳐주자면. 내가 ‘보험’에 관해서 말해둔 거, 기억하나?”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보험’이 바로 그 녀석이었어. 코디 로스. 너희들이 내게 대비해서 무슨 짓을 해도 그 녀석이 나와서 다 해결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코디 로스는 무능력할 뿐만 아니라 ACW에 방해가 되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런 식으로 내가 통렬한 디스를 걸자 팬들과 로건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식으로.
나는 점점 코디 로스라는 선수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과부하를 걸었다.
다들 분명히 의아해할 터였다.
이렇게 선수 이미지를 조지고 있는데 대체 어떤 식으로 반전시켜서 그를 띄워주겠다고 하는 건지.
그리고 여기에서.
더스티 로스가 나설 때였다.
아메리칸 드림.
바로 그가.
* * *
PWA에서 내가 한 도발을 들은 팬들의 관심은 곧바로 다음 주에 열리는 월요일 밤의 나이트로로 이어졌다.
그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PWA와 ACW가 주고받으면서 퓨드를 계속해서 쌓아가고, 그러면서 자연히 다른 대립도 홍보가 되고 있었다.
물론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를 계속 키워온 WWF에 비하자면 ACW는 그런 선수들이 적어 파워가 크게 밀렸다.
WWF는 잘해나가고 있었다.
전생보다 훨씬 더.
원래는 단순히 영웅 숀 시나를 띄워주기 위해 소모된 ‘뉴 넥서스’라는 이름의 신인 스테이블과의 대립도.
전생과 달리 랜스 오튼이 시나와 협력할 듯 말 듯 미묘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그 스토리에 깊이가 더해졌다.
그 외에도 하이, 미드 카더 라인은 사모아 고가 수문장으로 활약해주면서 확실히 무게감을 잡아주고 있었고.
의외로 펑크의 푸시가 결정되어 메인 챔피언십 라인으로 올라가 바트 맥센을 포함한 대립을 연출 중이었다.
아주 좋은 회사가 되었다.
문제는 온갖 포문을 새로 단 멋진 함선이 나와 러셀을 포함한 선수들을 무인도에 내리고 가버렸단 거지만.
그러니 뭐 어쩌겠는가.
바닷속에서 떠오른 전설의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에 새 포문을 달고 추격해 그들을 작살내는 수밖에.
그리고 말하자면 오늘은.
그 새로운 포문을 다는 날이었다.
ACW의 위클리 쇼, 나이트로는 오늘도 부커-리가 등장하는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를 보여주면서 시작되었다.
그에게 다시 접근하는 코디.
지난주와 같은 씬.
하지만 팬들의 야유는 더 커졌다.
[Booooooooooooooooooooo-!!]
부커 역시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코디의 가슴팍을 밀치며 분노했다.
[무슨 낯짝으로 여기에 온 거냐?]
[사과를 하러 왔습니다.]
[이건 뭐 또라이도 아니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 부커.
그 앞에서 코디는 차근차근 자신이 왜 잘못을 했는지 말하고 사과했다.
[지난 패배에 제 책임이 큽니다. 그 점에 대해 정말로 사과를 드립니다.]
하지만 부커는 그런 코디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는 되물었다.
[지금 그렇게 말한 거냐?]
[예?]
[지난 패배가 네 책임이라고? 그래?]
[아닙니까? 저는 분명히……!]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코디의 멱살을 쥔 부커가 험악한 표정과 함께 그를 벽까지 몰아붙였다.
[잘 들어. 애송이. 오늘 밤 너는, 나와 이곳에서 경기를 갖게 될 거다.]
[가, 갑자기 뭡니까?!]
[닥쳐. 당장 더스티에게 가서 경기를 추진하지. 지금 상황을 설명하면 그도 분명히 내 말을 들을 거다.]
코디는 그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Bo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이 그런 녀석에게 야유를 보냈고 부커는 쥐고 있던 멱살을 거칠게 놓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두 사람의 경기는 오늘의 메인이벤트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거기에 출연해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지난주까지는 코디가 계속 링에 난입했지만 이제는 반대로 내가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을 조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더스티가 정리하는.
지금까지 최악에 가까웠던 ACW의 분위기를 삽시간에 반전시키는 각본.
시간은 흘러 마침내 때가 찾아왔다.
[Booker! Booker! Booker! Booker! Booker! Booker! Booker! Booker!]
팬들은 일방적으로 부커를 응원했다.
처음에는 계속 얻어맞던 코디는 부커의 공격이 이어지자 반격을 가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잘 풀어갔으나.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위상이 확립되었다.
나 > 부커 > 코디 순으로.
코디를 애송이로 보이게 만드는 상하 관계를 명백히 해두는 부킹이었다.
그렇게 이어진 두 사람의 경기는 악역인 우리가 입장로 위로 등장하면서 다시금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Booooooooooooooooooooo-!!]
야유를 보내는 탬파 시의 팬들.
마이크를 미리 들고 나온 나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거 놀랍구만. 남의 경기를 방해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던가?”
링 위에서 싸움을 이어가던 부커와 코디가 완전히 열이 받아 우리 두 사람의 얼굴을 씩씩대며 노려보았다.
“도로 사정 때문에 경기장에 좀 늦게 도착했더니 벌써 메인이벤트를 시작했군. 날 빼놓다니, 이거 섭섭한데.”
[Bull Sh-t! Bull Sh-t! Bull Sh-t! Bull Sh-t! Bull Sh-t! Bull Sh-t!]
“이런, ACW 친구들. 너희는 그런 말을 한 입으로 엄마한테 키스하나? 제길, 너희 엄마는 나와 키스하고 싶을걸?”
[Uooooooooooooooooohhhhh!!]
흥분해 소리를 지르는 팬들.
이건 좀 생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다들 내가 그런 식으로 팬들이 던지는 욕설을 재치 있게 받아치자 그들이 ‘한방 먹었다’고 인정한 것이었다.
‘팬들이 나에게 보내는 반응이 완전히 감정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로군.’
이게 각본의 일임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말인즉슨 내가 악역으로서 쩔어준다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이제 Boss가 왔다고. ACW 팬들. 더 이상 저 구린 두 사람의 경기를 졸면서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나는 계속해서 두 사람을 도발했다.
“몇 주 전의 뚱뚱한 더스티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꺼져. 코디 앤 부커.”
그 말에 흥분한 코디가 로프 밖으로 몸을 내밀고 나오려는 그 순간이었다.
[Ame~Ri~Can~! Dre~a~m~!!]
한 남자의 음악이 나왔다.
그것은.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과거 전설적인 업적을 쌓은 사내의 음악이었다.
요즘 듣기에는 다소 올드한 팝.
하지만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거의 애국가와 같은 노래였다.
특히나 이곳, 안티 WWF이자 ACW의 약진을 바라고 있는 팬들에게는.
[Waaaaaaaaaaaaaaaagggghhhh!!]
입장로를 걸어 나오는 더스티.
펑퍼짐한 배와 두툼한 엉덩이를 가진 그는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건 내가 제안을 한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더스티 로스 같은 남자를 완전히 발라먹는 것은 나 스스로도 원하는 것이 아니니까.
더스티는 내 손에서 삽시간에 마이크를 낚아채가고는 손가락질을 했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고맙네. 신.”
[Yeeeeeeeeeeeeeeeeeaaaaahhh!!]
링으로 올라가는 더스티.
마이크를 빼앗기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연기를 하던 나는 그대로 더스티의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링으로 올라간 그가 부커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그 음악이 끝을 맺었다.
그가 이야기했다.
[미안하네. 부커.]
[Uooooooooooooooooohhhhh!!]
거기에 도리어 사양하는 부커.
더스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사과했다.
[내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켰어.]
“아버지!”
그렇게 소리친 것은 코디였다.
마이크를 들지 않아서 그 소리는 희미했으나 놀라 다가서는 코디의 모습에서 이야기는 모두 전달되었다.
나는 문득 코디가 링에 나서기 전 나에게 했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사내는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 살아가죠. 저는 그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의외로.
코디는 그런 유형의 사내들처럼 너무 큰 아버지의 휘광에 묻혀서 살아가는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그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
‘최근에는 선배님 경기를 챙겨 보면서 어떻게든 그 뒤를 쫓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도 영광스러운 말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각본은 심각했다.
더스티와 이야기를 마친 부커가 한숨과 함께 내려와 나를 노려보며 링에서 퇴장했고.
링 위에는 두 사람이 남았다.
더스티 로스와 코디 로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자.
분노해 마구 제스처를 취하며 무어라 이야기하는 코디. 그것을 묵묵히 듣고 있던 더스티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소리가…….
쩌억!
‘으헉.’
저거 죽는 거 아닌가.
그렇게 느껴질 정도의 엄청난 따귀였다. 팬들도 모두 놀라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진 것이 보였다.
쓰러지는 코디.
그가 자신을 올려다보자 숨을 몰아쉬던 더스티가 그대로 버럭 소리쳤다.
[이 바보 같은 자식!!]
여기에서 잠깐.
사실 코디와 반대로, 더스티는 분명 전설적인 선수기는 했으나 요즘 팬들이 알기에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환호가 나오는 것도 그를 진심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보낸다기보다는 일종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건상 그 캐릭터를 설명할 시간은 없었고, 그렇기에 우리는 아주 간단하게 각본을 구성했다.
더스티는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참교육으로 성장하는 아들.
뻔하디 뻔한 드라마지만.
[Waaaaaaaaaaaaaaaaagggghhhh!]
분명히 효과는 엄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