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
더스티 로스가 그 분노를 터뜨렸다.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가 자신의 아들 코디 로스의 뺨을 후려친 아버지의 행동을 보고는 숨을 죽이며 링 위를 지켜보았다.
무대가 드디어 절정에 이르렀고.
드라마가 펼쳐졌다.
“지금 대체 뭘 하는 거냐?!”
더스티는 호통을 쳤다.
“너는 매번 기회를 달라면서 징징거리기만 했고, 그게 통하지 않자 남들을 방해하면서 애새끼처럼 굴었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코디.
그가 억울하다는 듯 뭐라고 호소했지만 더스티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더 몰아붙였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에 불과해! 넌 남자가 자신의 실수를 온전히 짊어질 수 있도록 하지 않았어! 오히려 그것을 조롱하는 행동을 했지!”
그렇기에 부커의 화를 돋궜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부커의 패배는 온전히 부커가 짊어져야 하는 몫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사과를 했으니.
안 그래도 심경이 불편한 상태였던 부커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그런 더스티의 의견에 동의한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요즘 시대에 다소 올드하다고 볼 수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더스티는 실제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과거의 남자가 설파하는 자신의 철학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어렸을 적 네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나? 작은 농장에서 짚단 더미 위로 몸을 던지며 너는 나를 따라서 프로레슬러가 되겠다고 이야기했지!”
더스티는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부터 꺼내며 그렇게 팬들을 사로잡았다.
노동자들의 영웅.
American Dream.
은퇴 후, 시골의 작은 농장에서 그렇게 키워온 아들은 결국 자신의 소망대로 프로레슬러가 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 이게 뭐냐? 넌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어. Hard Time을 겪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 회사에서 너를 완전히 애송이로 만들어놓았군!!”
Hard Time.
더스티 로스가 전성기 시절의 닉 플레어와 대립할 때 사용한 말이었다.
일명 Hard Time Promo.
거기에서 더스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Hard Time을 겪고 있다.
Hard Time이란 바로 무엇인가.
이 나라의 방직 노동자들이 직업을 잃고, 아이들이 네다섯이나 있는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식료품을 못 사는 것을 바로 Hard Time이라고 말한다.
30년이나 일한 노동자에게 퇴직금도 주지 않고 내쫓으면서, ‘어이! 컴퓨터! 저 사람 자리를 대체하라고!’라며 말하는 것을 Hard Time이라고 한다.
나, 더스티 로스는 그런 Hard Time을 겪고 있는 팬들과 하나다. 그러므로 닉 플레어, 고생을 모르는 금수저인 네놈을 꺾고 챔피언이 되고 말겠다!
그렇게 말한 전설적인 명 세그먼트.
[Waaaaaaaaaaaaaaagggghhhh!!]
거기에 코디가 반박했다.
아버지, 더스티 로스가 쥐고 있던 마이크를 빼앗고 분을 못 이겨 외쳤다.
[내가 Hard Time을 겪지 않았다고요?! 그래서 남자가 될 수 없다고요?! 그 회사는 지옥이나 다름없었어요!!]
바깥에 있던 직원 하나가 더스티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었고 그렇게 두 사람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폼은 죽어도 클래스는 영원하다.
그게 느껴지는 더스티의 카리스마.
그에 대해서 모르는 팬들이라도 빠져들게 만드는 아메리칸 드림의 순박하고 희망찬 이미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네가 그 회사에 들어간 것조차 손쉬운 일이었지! 모두 다 나로 인해서다! 전부 내가 잘못한 것이야! 코디!!]
그 희망과 꿈은 색이 바랬고.
나이를 먹은 그는 이제 흐르는 시대에 맞서 꿋꿋이 서있는 거목이 되었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게 잘못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Old Man! 젠장, 나는 절대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요!!]
[저놈을 봐라! 코디! 저놈을 봐!]
두 사람이 나를 돌아보았다.
팬들의 시선도 내게 꽂혔다.
‘각본에 없던 내용인데.’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침묵을 지켰다.
그 정도로 더스티의 말은 강렬했다.
[넌 저놈처럼 되었어야 했어! 저기에서 의기양양하게 서있는 저 ‘신’처럼 거만을 떨며 서있어야 했다고!!]
영광스러운 말이었다.
[네가 만약에 더스티처럼 되고 싶었다면!! 저놈처럼 아무것도 없이 이 업계에 들어와 Most Bastard Ever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가 됐어야 했다!!]
더스티는 그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코디의 뒷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지금 넌 뭐냐!! 존중도, 명예도, 신의도 없는, 그저 자기 감정에 따라서 움직이는 멍청이가 되었지!!]
[나는……!!]
[남자는 말로 정해지는 게 아니야!!]
더스티는 거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 남자의 행동이 그를 정하는 거지! 기회는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야!! 네 손으로 쟁취해내는 거지!!]
[Waaaaaaaaaaaaaaaaaagggghhh!]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Dusty!]
[지금 이 소리를 들어라! 이 반응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정하는 거다! 내가 이 입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라!]
하지만 코디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가 누구라고 말했지만 보여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WWF에서 겪은 실패로 인해 주눅이 든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더스티 로스가 보기에는 그건 절대로 Hard Time이 아니었다.
진정한 Hard Time이란.
“시련이다! 코디! 오직 시련만이 남자를 성장시키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공포가!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그런 것들을 바로 Hard Time이라고 부른다!!”
더스티는 숨을 몰아쉬었다.
걸걸하고 강렬한 목소리.
그런 식으로 코디의 말문을 막히게 한 더스티는 자신의 결론을 내놓았다.
[너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다 하마.]
의아해하는 코디.
그 앞에서 더스티는.
[7월 ACW 다이너마이트, 너와 나는 싱글 매치를 가진다. 그리고 패배자는 이 링을 떠나는 것으로 하지.]
[Uooooooooooooooohhhhhh!!]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갑작스레 정해진 경기.
하지만.
전설적인 더스티 로스의 경기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동시에.
그 전설이라는 타이틀을 빼놓고 보더라도 늙은 아버지가 부족한 아들을 교육한다는 각본은 분명히 강렬했다.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잇지 못하는 코디 로스. 그 앞에서 더스티는 마지막으로 코디에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것은 과거, 더스티 로스의 전성기 시절 숙적이었던 닉 플레어가 언제나 도전자에게 하고는 했던 말이었다.
[To Be The Man, You Gotta Beat The Man!!]
남자가 되려면 남자를 꺾어야 한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이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냈다.
코디는 그렇게 시험대에 올랐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두 사람의 싸움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 * *
그렇게 위클리 쇼가 종료되었다.
완전히 지쳐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더스티는 쇼를 지켜보던 ACW 선수들로부터 존경심이 서린 칭찬을 받았다.
“여전하군요. 더스티.”
“최고였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60대 초반 노인은 그렇게 단 한 번의 세그먼트로 자기 자신이 왜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지를 증명했다.
하지만 더스티는 겸손을 보였다.
“다 저 친구 덕이지.”
나를 돌아보는 더스티.
거기에 마찬가지로 날 돌아본 선수들의 시선은…… 딱히 곱지 못했다.
아무래도 계속해서 나에 대한 적대감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쓰게 웃은 나는 곧이어 옆으로 다가오는 코디의 존재를 느끼고 돌아봤다.
“선배님.”
“고생했다. 코디.”
“가, 감사합니다.”
“사실 이제 시작이지만.”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로서 코디는 시험대에 올랐다.
녀석은 이후 다이너마이트에서 아버지인 더스티와 경기를 가지며 팬들에게 자신의 성장을 보여줘야만 했다.
문제는 하나.
바로 더스티의 체력 상태였다.
‘괜찮으려나.’
코디는 그렇다 쳐도.
아까 세그먼트에서 단순한 연기만으로도 숨을 씩씩 몰아쉬는 것을 보자면 딱히 좋은 상태로는 안 보이는데.
그래도 본인이 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줘서 경기를 하게 되었지만.
‘확인을 좀 해봐야겠군.’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스티에게 인사를 마친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나와 함께 대립을 진행하는 인원들도 같이 저녁을 먹자면서 경기장을 빠져나와 근처의 다이닝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의 레전드, 더스티 님은 팬케이크를 무려 열다섯 장을 주문했다.
“일을 했더니 배가 고프군!”
껄껄 웃으며 팬케이크와 소시지가 담긴 접시를 받아든 그가 버터와 메이플 시럽을 잔뜩 뿌려서 먹기 시작했다.
반대로 샐러드와 단백질 드링크라는 식단을 택한 나는 단숨에 음식을 해치우는 더스티를 보며 슬쩍 물었다.
“더스티, 괜찮겠습니까?”
“내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
뻔히 읽히고 있었나.
“확실히 나는 두툼한 뱃살과 큰 엉덩이를 가졌지. 젊었을 적에는 매일 같이 베이컨 두 덩이씩을 먹었다네.”
“그, 그렇군요.”
근데 그거 참 많이도 말씀하신다.
두툼한 뱃살과 큰 엉덩이.
마치 저쪽 로키 산맥 근처에 있는 포크 밸리 농가의 캐치프레이즈 같군.
“그래도 싸워서 이겼지.”
더스티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더 이상 그때의 더스티가 아니었다.
세월은 30년 가까이 흐른 데다, 당시 30대였던 남자는 이제 60대였다.
그럼에도.
더스티가 그러겠다고 말하자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것을 느꼈다.
‘신기하단 말이야.’
눈앞에서 팬케이크를 우적대고 있는 사내가 특유의 ‘바이오닉 엘보우’를 날리는 광경이 무척 기대가 됐다.
“물론, 이번에 할 경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 녀석이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도록 돕는 거지만 말이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코디가 그렇게 의지를 보였다.
“괜찮겠냐?”
“예, 선배님.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한테 이렇게 좋은 각본을 제안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좋은 아버지를 둔 덕이지.”
“예, 저는 로스 패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활짝 웃는 코디.
좀 마음이 놓였다.
내가 생각했을 때, 좋은 각본은 선수의 현실과 맞닿은 부분이 있으면서 동시에 거기 과몰입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코디는 확실히 선을 잘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100% 몰입해서 선을 넘는 짓 역시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자신과 동떨어진 기믹이라서 연기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상황은 무척 좋았다.
‘믿고 맡겨두면 되겠군.’
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이번 주 일요일의 페이퍼뷰.
ACW 다이너마이트.
그 결과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 * *
결론부터 말하면, 더스티 로스가 아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그 한 주 동안 미국 전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서민들의 영웅이었던 아메리칸 드림이 Hard Time에 대해서 이야기한 세그먼트는 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또한 그 이야기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네는 인생의 충고였던 만큼, 다이너마이트의 판매를 촉진시켰다.
그 두 사람이 경기를 갖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경기를 더스티의 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했다.
레이거노믹스가 한창이던 80년대에는 쇼의 길이가 짧아 긴 세그먼트 대신 경기 위주로 쇼가 이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팬들에게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단체에서는 입장 직전에 인터뷰를 넣는 식으로 대응했다.
오늘도 그런 식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Yeeeeeeeeeeeeeeeeeaaaahhhh!]
폭죽이 터져 오르며 5만 명이 운집한 경기장에 오프닝 뮤직이 나갔다.
팬들이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고 카메라가 경기장의 전경을 크게 잡았다.
입장로 세트장은 거대한 주먹이 다이너마이트를 쥔 모습으로 오늘 페이퍼뷰가 가진 특별함을 더해주었다.
그것은 무척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가 업계의 크기를 키우고 팬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온 모습.
그 연출적인 화려함.
그렇게 오프닝 매치가 시작되었다.
나는 ACW 측의 배려로 고릴라 포지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게 좀 웃긴데.
오프닝 매치부터 링에 나서는 선수들은 마치 코리아의 옛 이야기처럼 내 얼굴을 꼭 한 번씩 노려보고 나갔다.
여기서 말하는 코리아의 옛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엄마가 옛날에 식료품을 아끼면서 말씀해주셨는데.
한 ‘선비’가 어찌나 짠돌이인지 밥을 먹을 때 천장에 생선을 걸어두고 밥을 먹고 한 번 보고를 반복했단다.
대충 그런 기분이었다.
다들 나를 생선처럼 보고 나갔다.
문제는 그러고 나서 대충대충 하지 않고 내가 보란 듯이 최선을 다해 페이퍼뷰 경기를 치렀다는 점이었다.
그전까지 그들의 경기를 매주 봐온 나라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각 경기가 멋진 퀄리티를 자랑했다.
팬들의 열기는 점점 고조되어갔고.
그런 상황에서 쇼의 중반.
더스티 로스와 코디 로스의 경기에 앞서 선수들 간의 인터뷰가 나갔다.
먼저 코디 로스가 나왔다.
[Booooooooooooooooooooo-!!]
롱 팬츠 형태의 경기복을 입은 그에게 쏟아지는 팬들의 야유. 코디 역시도 다소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코디! 오늘 아버지인 더스티와 경기를 갖게 되었는데요! 더군다나 패자는 은퇴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인터뷰어가 마이크를 넘겼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코디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 상황이 이렇게 된 건지. 제 아버지는 분명 위대한 선수였죠. 그래서 솔직히 경기에서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Boooooooooooooooooooooo-!!]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주 내내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어렵습니다.]
[That's That Hard, Son?]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코디의 옆에서 더스티가 등장했다.
[Yeeeeeeeeeeeeeeeeeeaaahhhh!]
팬들은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냈다.
그렇게 나타난 더스티 로스의 모습이 과거와 거의 같았기 때문이었다.
검은색에 노란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경기복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촌스러웠지만, 그때도 촌스러운 옷이었다.
하지만 그게 더스티였다.
머리에는 똑같이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두건을 두른 그가 묻자 한숨을 내쉰 코디가 화면 밖으로 나갔다.
인터뷰어가 물었다.
[어떠십니까? 더스티.]
[아주 좋다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야. 팬들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군! 아메리칸 드림은 지금 꿈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라고 말이야! 크하하!!]
[Yeeeeeeeeeeeeeeeeeaaaahhhh!]
그 짧은 인터뷰만으로도 더스티 로스는 팬들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았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이어서 코디의 입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