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
선수와 선수 간의 대립을 설정할 때 가장 처음으로 설정해야 하는 것은 바로 두 선수가 취할 포지션이었다.
러셀과 나처럼 라이벌로 갈 건지.
아니면 내가 레전드들과 대립할 때 그랬듯 도전자의 입장이 될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원한 관계를 부각 시켜서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 건지.
다양한 방식이 존재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코디와 내 대립 구도는 무척이나 전형적이었다.
그렇기에 디테일에 변주를 줘서 자칫 너무 뻔해질 수 있는 대립을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노력했다.
할리우드 로건과 더스티 로스라는 거물들의 존재가 그것을 도와주었다.
두 사람의 합류로 인해 코디와 내가 가지는 대립의 상징성이 커진 것이다.
최고의 악당, 할리우드 로건이 차세대의 기수로서 밀어주는 게 나였고.
그 반대되는 위치에는 더스티 로스가 아들인 코디를 도울 예정이었다.
그런 식으로 틀이 잡힌 우리의 대립은 ACW의 링 위에서 시작되었다.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팬들이 그의 이름을 외쳤다.
다이너마이트에서 좋은 경기를 선보인 코디는 이전까지의 야유가 다 뭐였냐는 듯이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그 뒤에는 더스티가 함께였다.
그는 남자로서 시련을 넘은 코디를 인정했고, 그 호소를 받아들여서 매니저로서 이곳에 남는 길을 택했다.
그런 상황에서 코디는 감격이라도 한 건지 고개를 들어 조명이 빼곡하게 들어찬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를 이어 천천히.
자신이 지금껏 이곳에서 보고 느낀 바를 팬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나를 의심하고 있지.]
[Uoooooooooohhhh……!]
[WWF에서는 제대로 된 기회를 잡지 못했으니 아버지의 영향력이 더 큰 이곳에 온 것이 아니냐고 말이야.]
코디는 그렇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팬들 대부분이 느꼈던 자신에 대한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맞아.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코디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직접 와서, 여기 내 뒤에 있는 올드 맨에게 설교를 듣자니. 내가 얼마나 멍청했는지 알겠더군.]
그는 ACW로 이적해온 자신의 입장을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것은 호소력을 가졌다.
[당신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다만, 나는 반드시 증명해내고 말 거야.]
코디 로스라는 남자가 누구인지를.
그것이 아버지에게 배운 바였다.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팬들은 그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더스티의 시련을 견뎌내고 자신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코디의 캐릭터가 잘 먹혀들고 있었다.
[부커!]
그런 식으로 팬들의 응원을 듣던 코디는 입장로 쪽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Uoooooooooooooooohhhhh!]
[지난번에는 내가 당신에게 신세를 졌지. 그리고 이제, 그것을 갚아줄 기회가 찾아왔다고 자신하겠어.]
코디는 그렇게 부커를 불러냈다.
그리고 얼마 뒤, 부커는 자신의 테마곡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다.
[Can You Dig It! Su-ka-!!]
[Yeeeeeeeeeeeeeeeeaaaaahhhh!]
팬들은 크게 환호를 보냈다.
이전과 달리 부커는 코디를 무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며 천천히 링으로 올라왔다.
그 역시도 코디가 더스티와의 경기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더 이상 그를 무시하지 않고 투지가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게 뭔가를 갚아주겠다고?]
[그래, 당신에게는 빚이 있으니까.]
코디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지난 경기에서 내가 된통 당한 게 있잖아. 오늘 밤, 이곳 산타 모니카에서 다시 한 번 붙어보는 게 어때?]
[Wa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부커 역시도 딱히 코디를 무시하거나 얕보지 않고 그 말을 받아쳤다.
[또 빚이 생길 텐데.]
[오,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이자까지 쳐서 확실하게 갚아줄 테니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코디.
그렇게 오늘의 메인이벤트 경기가 성사되었다.
* * *
코디 로스 vs 부커 리.
싱글 매치.
땡땡땡-!
링 벨이 울리면서 서로에게 달려든 두 사람은 곧바로 락 업으로 붙었다.
“끄그극……!”
“끄으응!”
자신보다 더 큰 부커에게 지지 않고 제대로 맞서서 싸우기 시작한 코디.
팬들의 반응도 환상적이었다.
‘제대론데?’
경기에 난입하기 위해 멀찍이서 그걸 지켜보던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부커와 같은 거물과 맞선 코디는 거기에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멋진 반응을 얻고 있는 상황이었다.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Booker! Booker! Booker! Booker! Booker! Booker! Booker! Booker!]
안타깝구먼.
저 경기를 망쳐야만 한다니.
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팬들은 코디를 인정하게 되었고 그의 성장을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 말처럼 코디는 꽤 잘 싸웠다.
락 업 이후, 로스 패밀리 특유의 브롤링을 이용해 부커를 계속 공격했다.
물론 부커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기세 좋게 들어오는 코디의 펀치를 받아내고는 그대로 반격에 들어갔다.
경기의 분위기는 좋았다.
두 사람의 포지션 덕분이었다.
부커와 코디는 말하자면 지금 링 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셈이었다.
코디는 눈앞의 전설을 뛰어넘겠다고 말했고 그걸 부커가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의 경기가 성사되고 이어졌다.
팬들은 대부분 코디가 전설을 극복한 뒤 승리하는 그림을 원하고 있을 테고, 각본은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
모멘텀이란 게 그랬다.
코디는 상승세를 탔고 앞으로 나와 대립을 하는 동안 분명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선수가 될 터였다.
그게 바로 부킹이었다.
한 선수를 위로 띄워주는 것.
[정말로 놀랍습니다! 코디 로스!]
[부커-리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사이드 슬램으로 코디를 공격합니다!]
콰앙-!
코디가 나가떨어졌다.
부커에게 흐름이 넘어갔다.
코디를 메친 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양손을 위로 번쩍 들었다.
[Waaaaaaaaaaaaaaaaaagggghhh!]
환호를 보내는 팬들.
그렇게 분위기를 가져온 부커는 바닥에 쓰러진 코디를 일으켜 세워 그대로 공격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특유의 쫄깃한 몸의 탄력을 바탕으로 한 그의 경기는 몇몇 기술은 독보적인 수준에 가까울 정도였다.
시그니처 무브 하나하나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할렘 사이드 킥.
옆에서 접근해 그대로 다리를 반월처럼 들어 올리며 상대방의 안면을 걷어차는 부커 특유의 호쾌한 무브.
쩌억-!
거기에 맞아서 넘어간 코디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허우적댔다.
부커가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Come on! Kid!’
[Yeeeeeeeeeeeeeeeeeaaaahhhh!]
자신을 꺾고 넘어가라.
그런 식으로 도발하는 부커의 모습에 코디는 이를 악 물고 일어났다.
그리고 멋진 스팟이 나왔다.
기술이 들어간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도발에 눈을 부라리며 벌떡 일어나 부커의 앞에 선 코디는 팬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아주 좋은 그림이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팬들의 응원이 이어졌고.
코디는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흥분을 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전 같았더라면 부커의 말에 발끈했을 코디인데, 이제는 그와 정반대로 침착하게 자신의 싸움을 이어갔다.
퍼억!
순간 밀려나는 부커.
기세 좋게 연타를 날린 코디는 부커의 손을 잡고 반대편으로 잡아당겼다.
로프 반동.
이후 드롭킥.
콰앙!
멋지게 부커를 넘어뜨린 코디는 곧장 바닥을 한 바퀴 구르며 일어나 로프를 밟고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갔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다이빙 크로스 바디!]
자리에서 일어난 부커를 깔끔한 동작과 함께 뛰어올라서 덮치는 코디.
콰앙!!
두 사람이 링 위를 나뒹굴었다.
부커는 강한 공격을 맞고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나 코디는 아니었다.
벌떡 일어난 그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있는 부커의 위에 올라타 공격했다.
마운트 상태에서 이어지는 펀치.
몸을 비틀며 저항하던 부커는 이내 코디를 밀어내고 옆으로 굴러갔다.
그리고 로프를 붙잡고 일어섰다.
하지만 코디는 그런 식으로 안일하게 밀어내는 것에 당해주지 않았다.
부커가 로프를 붙잡고 일어선 순간.
코디는 그 옆의 다른 로프로 달려들어 그걸 밟고 옆으로 몸을 휘둘렀다.
채찍처럼 순간 휘어진 코디의 오른발이 부커의 안면을 힘껏 후려쳤다.
쫘악-!
디재스터 킥.
거기에 부커가 다시 쓰러졌고 코디는 바닥에 낙법을 치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안전하게 주저앉았다.
그리고 잠깐 숨을 골랐다.
허억, 허억…….
쓰러진 부커와 기회를 잡은 코디.
팬들의 환호성이 빗발쳤다.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다들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코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리고 포효했다.
그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코디는 인즉슨, 첫 싸움에서 기회를 얻게 된 아킬레우스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검을 들어 상대방의 머리를 쳐내기만 하면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는 기회를 쟁취해냈다.
그렇기에 팬들도 성원을 보내주었고 코디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부커의 뒤로 가 상반신을 젖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뒤로 젖혀진 머리를 자신의 겨드랑이 아래에 끼우고, 부커의 몸을 그대로 단단히 고정해 붙잡았다.
이어서 회전.
부커의 전면부가 바닥과 충돌했다.
투콰앙-!
크로스 로스.
코디 로스의 피니시 무브가 터진 순간, 관객석의 팬들은 모두 일어섰다.
나도 그걸 지켜보았다.
코디가 부커의 위를 덮고, 핀 폴이 이어지는 순간, 내 옆에 서있던 로건이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가세나. 신.”
“…….”
슬슬 그럴 때이기는 했다.
[2……!]
[3……!!]
땡땡땡-!
링 벨이 울림과 동시에 코디 로스의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신?”
“시, 신 선수 지금 나가셔야죠?”
“아니, 잠깐만 기다려.”
나는 손을 뻗어서 제지했다.
“내 신호에 움직이라고 해.”
그 말에 내 옆에 서있던 직원이 고릴라 포지션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물론 내 말대로 되었다.
나는 지하의 모니터링TV를 통해서 경기장의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코디는 감격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쥐었고, 링 위로 올라온 더스티가 그를 안으며 승리를 축하해주었다.
[Waaaaaaaaaaaaaaaggghhhhh!!]
거기에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
모두가 행복해하는 상황.
소년은 남자가 되었고.
남자는 꿈을 향해 나아갔다.
자리에 드러누운 부커의 앞에 주저앉은 코디는 힘든 싸움이었다는 듯 숨을 몰아쉬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바로 그때였다.
모두가 안심했다.
이야기는 완성되었다.
“가죠.”
나는 싱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기는 순간에는 팬들이 가장 기뻐할지언정, 가장 충격적인 습격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그래서 로건의 제안에도 기다린 것이었다. ACW 팬들이 나에게 더 거대한 야유를 보내는 순간까지 말이다.
철컹-!
경기장의 조명이 모조리 꺼졌다.
[Uoooooooooooooooooohhhhh!!]
팬들이 놀라 소리쳤고, 나와 로건은 준비해둔 대로 링 아래에 설치된 비밀 통로를 통해서 위로 올라갔다.
쿵쿵.
바닥이 울렸다.
코디가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나는 가까이 다가가 녀석의 뺨을 쓰다듬고는 천천히 그 뒤에 섰다.
완벽한 난입이었다.
철컹!
그리고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Uoooooooooooooooooohhhhhh!]
ACW의 팬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내가 돌아왔다.
코디 로스를 박살 내기 위해서.
녀석은 경기를 통해 체력이 확실하게 빠진 상태였고, 나는 이것을 일부러 노릴 정도로 나쁜 자식이었다.
코디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넥타이를 가볍게 끌렀다.
“최악의 순간이지, 안 그래?”
“코, 코디!”
잠깐 그와 떨어져 있던 더스티가 코디를 지키기 위해서 달려들었지만.
거기에는 우리 영감이 나섰다.
퍼억!
로건의 펀치로 시작되는 싸움.
더스티는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고 로건은 그것을 따라 링 아래로 내려가며 자연스레 카메라에서 빠졌다.
남은 건 셋뿐이었다.
나와 코디, 그리고 내 등장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는 부커-리까지.
“신…….”
“부커, 많이 약해졌군요.”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로프에 몸을 기대고 서있는 부커를 향해 나섰다.
스텝을 밟고, 곧바로 슈퍼 킥.
쩌억!!
부커는 그대로 링 밖으로 넘어갔다.
남은 건 두 명이었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
“좀 어때. 코디?”
나와.
“이 개자식이…….”
코디 로스였다.
“좀 뭐라도 이뤘군. 그래서 한번 가볍게 짓밟아줄까 해서 여기 왔지.”
“크윽!”
코디가 일어섰다.
하지만 녀석은 조금 전 경기의 영향으로 인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렇기에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나는 손조차 쓰지 않았다.
코디의 안면에 헤드벗.
쫘악!
녀석이 엉덩방아를 찧었고, 나는 여유롭게 ACW 팬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Booooooooooooooooooooo-!!]
다들 나를 증오해 야유를 보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모두가 보란 듯이 머리 위로 양손을 펼쳐 들어 올리고는 그대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코디 따위는 손을 쓰지 않아도 처리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분명 그런 내 행동은 ACW 팬들에게는 무척 재수 없게 느껴질 터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 업계에서 최고인 것을.
쩌억!
이런 식으로 코디를 마구 짓밟아대더라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