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
코디는 저항하지 못했다.
나는 여유롭게 놈을 제압하고 링 위에서 실컷 두들겨 패 굴욕을 주었다.
더스티는 로건이 상대를 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ACW 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당연했다.
요새 좀 안 보여서 좋다 싶었던 로건과 내가 ACW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들로서는 불쾌한 일일 테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와 로건이 이 업계를 지배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뭉쳐서 행패를 부리는데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실컷 두 사람을 짓밟은 우리는 링을 빠져나와 ACW와 쓰러진 두 사람을 끝까지 조롱하면서 퇴장했다.
[패배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라고! ACW! 너희들은 이 업계에서 영원히 뒤쳐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크하하하! 바로 여기에 있는 이 남자가 앞으로 이 업계를 지배할 거라고! 친구들! 늦기 전에 따르란 말이야!]
[Boo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은 거의 우리를 죽이겠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7월 3주차의 위클리 쇼가 막을 내린 뒤, 나와 코디는 뜻밖의 좋은 소식을 하나 접하게 되었다.
‘코디 로스’라는 이름이 인터넷 실검 순위에 오르고, 새로 개설한 SNS 계정의 팔로워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말인즉슨, 코디 로스가 선수로서 모멘텀을 얻기 시작했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대립은 준비했고 그런 가운데 코디도 내게 몇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직접 녀석에게 자신의 캐릭터에 관해서 질문을 던진 것이었지만.
“PWA에는 안 쳐들어 갈 것 같습니다.”
“왜?”
“한 번 안 좋은 상황을 겪어 봤으니까요. 오히려 ACW에서 신이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거 나쁘지 않군. 더 말해봐.”
“그래도 아예 가만히만 있는 건 좀 그러니…… 신과 로건이 무슨 방법으로 ACW에서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는 건지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정답이었다.
개연성이라고 하자.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존재하는 드라마였지만 분명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현실의 규칙을 따라야 팬들을 더 몰입하게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여기서 과거 ACW를 좀 더 까보자.
“혹시 전에 ‘로버트 캅’이라는 영화 개봉했던 거 기억나냐? 그 머핀지 던핀지 하는 놈이 나와 로봇된 거.”
“아, 예. 그거 재밌었죠. 던피 내장이 쏟아지는 게 제대로 멋졌습니다.”
“그때 ACW에서 로버트 캅이 나타나 nWo의 계략에 당해 철창에 갇힌 크로우를 구해주는 각본을 썼었잖아?”
그것도 페이퍼뷰에서.
영화 홍보의 일환이었지만, 최악이었다. 크로우 본인도 하면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티를 팍팍 냈었더랬지.
코디도 쓰게 웃었다.
“죽어라 욕을 먹었죠.”
“왜 그랬다고 생각해?”
“영화 주인공이 갑자기 나와서 선수를 구해줬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그래,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로버트 캅이나 크로우나 모두 각본상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크나큰 차이가 있단 말이야.”
말하자면.
“영화 안에서만 존재하는 로버트 캅과 달리, 크로우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존재하는 얼터 에고 같은 거지.”
다들 그랬다.
신도.
‘코디 로스’도.
‘숀 시나’도.
러셀 오메가도.
링에 올라 싸우는 남자들은 다들 그런 식으로 자기 자아의 일부를 들어내 레슬링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바로 그게 현대의 프로레슬링이 추구하는 캐릭터 메이킹의 방식이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프로레슬링을 하나의 판타지 영화로 생각하고 봤다면.
‘그래서 회계사나 치과 의사, 아니면 광대 같은 캐릭터가 나온 건데.’
이제는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은 프로레슬링을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펼치는 어떤 규칙을 가진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
요는 간단했다.
그런 식으로 프로레슬링이 점차 현실과 융합되는 길을 택했기에 현실의 규칙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해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코디.
“그러면 대체 이유가 뭡니까?”
“…….”
나는 미소를 지었다.
“선배님이 그런 부분을 생각 안 하실 리도 없고. ‘신’은 무슨 이유로 여기 ACW에 나올 수 있었던 거죠?”
“그게 또 재미있는 지점이지.”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고.
사실, 지금껏 나와 PWA는 계속 다른 단체를 습격하는 각본을 수행하면서 선수들의 모멘텀을 상승시켜왔다.
펑크와 고를 시작으로.
대니얼, AK, 쟈니.
드류와 핀에 이르기까지.
팬들은 그런 식으로 단체와 단체 간의 퓨드에 주목했으나,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영 말이 안 되는 각본이었다.
대체 어느 누가, 다른 단체의 선수가 링에 올라와서 자기 단체의 선수들을 습격하는데 그걸 가만히 두겠는가?
이게 현실이었다면 당장 경찰을 불러서 내쫓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게 현실을 벗어난 각본인가?
그래서 몰입을 깨뜨렸는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팬들은 무의식적으로 이 일에 관여한 누군가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터였다.
그리고.
이번에 코디와의 대립에서 그걸 설명함으로써, 나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현실성을 증대시킬 생각이었다.
동시에.
바트 맥센도 좀 까줘야겠지.
* * *
7월 4주차 월요일.
여름의 열기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에서 또 다시 ACW의 위클리 쇼, 월요일 밤의 나이트로가 시작되었다.
오프닝 영상이 나간 뒤, 분노한 코디 로스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저께 미리 촬영을 해둔 백스테이지 세그먼트 영상이었다.
[Waaaaaaaaaaaaaaaaaagggghhh!]
환호를 보내는 팬들.
그동안 왠지는 몰라도 줄곧 조용하게 지냈었던 코디가 행동에 들어갔다.
녀석은 복도를 씩씩 거리며 걸은 뒤 나이트로 단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비숍! 계십니까! 코디입니다!]
[코디?]
[할 말이 있습니다! 더 이상 피하지 말고 나오시죠! 연락도 안 받고 이게 대체 뭐하자는 짓입니까?]
[자, 잠깐 기다리게!]
비숍이 만류했으나 코디는 문고리를 잡고 힘을 주더니 그대로 뜯어냈다.
……아 물론, 연출이었다.
[코디?!]
[도망치실 순 없습니다.]
코디가 안에 들어가자 당황한 얼굴로 서있던 비숍이 벽 쪽으로 물러났다.
코디는 그를 몰아붙였다.
[대체 뭡니까?]
[무, 무슨 소린가?]
[신과 로건 말입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이 회사에 자유자재로 출입할 수가 있는 거죠?! 대답 좀 해보십쇼!]
[로건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어! 그가 자기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막겠는가?!]
[뭐라고요?]
[로건은 우리와 아직 계약이 끝나지 않았어. 그런 녀석이 돌아온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막는다는 말인가?]
[해고해야죠!]
[해고해? ‘로건’을? 웃기는 소리 하지 말게나. 그렇게 영향력이 큰 놈을 FA로 내보내준다면 다른 단체에게만 좋은 일을 해주는 것 아니겠나?]
[제기랄…….]
코디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로건이 FA로 풀려나 자칫 WWF에 가버리기라도 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그 영향력으로 인해 ACW는 완전히 수세로 몰리게 되겠지.
[그럼 신이라도……!]
바로 그때였다.
화면 바깥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코디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다.
퍼억!
[Booooooooooooooooooooooo-!]
그 정체가 나인 것을 알아본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화면 속의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코디를 박살 냈다.
사무실 안의 온갖 도구들을 사용해 녀석을 두들겨 패고는 숨을 몰아쉬며 포마드 헤어를 쓸어 올렸다.
[이 자식,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이 친구와 일을 하게 해주지 않는다면 회사에 나오지 않겠다고 했거든. 비숍도 어쩔 수 없는 거지.]
내 뒤에서 나타난 로건이 낄낄거리며 웃었고, 우리는 바닥을 나뒹구는 코디를 조롱하며 야유를 끌어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야유하는 ACW 팬들.
[그럼, 갈까요.]
[그러세나. 신.]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로건.
화면이 페이드 아웃되었다.
관객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화면이 경기장 전체를 비추기 시작했고, 그런 가운데 조명이 꺼지며 한 남자의 테마 음악이 울려 퍼졌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바로 내 테마였다.
[Boooooooooooooooooooooo-!!]
야유 소리가 더 커졌고.
그런 가운데 입장로 주변에서 분사된 연기가 선수들이 등장하는 커튼을 가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적정한 순간까지 이르렀을 때.
나는 커튼을 걷고 나갔다.
연기 속을 헤치며, 등 뒤를 따르는 로건의 존재감을 느끼며 나아간 나는 이내 팬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Boooooooooooooooooooooo-!!]
다들 날 혐오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무대는 내 것인데.
“다들 표정이 왜 그래?! 얼굴 좀 펴! 너희 그 못생긴 얼굴들이 더 못생기게 보이잖아! 멍청한 ACW 팬들아!”
“크하하하하하!”
로건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당당하게 링에 올랐다.
정장에 어깨에 걸친 코트.
로건이 내 뒤에 섰다.
마이크를 쥔 나는 확실히 지금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다들 내가 링에 나와서 놀랐을 거야. 이 더러운 링을 내 발로 밟아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알라고들.”
[Boooooooooooooooooooooo-!]
“닥쳐. 머저리 같은 새끼들. 너희는 멍청이들이야. 여기나 저기 WWF나 프로레슬링 팬들은 모두 등신들이지.”
나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또박또박.
한 단어, 한 단어 힘을 주어서 말했다. 거기에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다들 정말로 열이 받았다.
심상치 않을 정도였다.
그 큰 소리는 마치 괴물의 울음처럼 가만히 있는 내 심장을 쥐어짜냈다.
인간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낸 저주에 가까운 야유는 그렇게 개인의 발목을 붙잡고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이렇게 살았다.
동양인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받으며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렇기에 익숙했다.
‘이쯤이야.’
링 위로 쓰레기가 쏟아져 내렸다.
팬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네가 뭔데 우리를 등신 쓰레기라고 부르냐! 너는 결국 WWF를 나와서 우리에게 기생하려고 드는 게 아니냐!’
‘그를 위해서 ACW를 조진 빌어먹을 로건까지 끌어들인 네놈은 결국 권력을 추구하는 그 하수인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들을 하시겠지.
아니 뭐, 굳이 이렇게 깊이 생각은 안 하더라도 ACW를 이용하면서 이곳을 먹겠다고 선언한 내가 싫겠지.
혐오스럽겠지.
하지만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고?
“너희는 화낼 상대를 잘못 택했거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엄한 사람을 붙잡고 있지. 뭐, 이해는 한다만.”
[Boooooooooooooooooooo-!!]
“너희는 등신들이니까!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기를 먹을 생각인데. 그런 날 막을 생각이라면 방법이 잘못됐어. 친구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링 위에서 날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해. 코디의 생각은 정확했어. 비숍처럼 자신의 이득을 위해 명예도 신의도 져버리는 놈을 공격하는 게 맞아.”
나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현상보다 원인을 관측하라는 말이 있지. 태풍을 막는 건 불가능해. 만들어지는 곳을 조지는 게 아닌 이상.”
이런 이야기였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해나갔다.
“내가 멋진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이건 이 업계의 페어리테일이야. 모두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지.”
바트 맥센은 러셀 하트를 끔찍한 방법으로 배신하며 WWF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바트 맥센은 오히려 그런 사건을 이용해 자신을 악당으로 만들면서 자기 회사의 크기를 불려나갔다.
우습게도.
모두가 거기에 속아주었다.
팬들은 ‘악당’ 바트 맥센과 ‘영웅’인 더 팍의 스토리를 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WWF를 지지했다.
“난 그걸 똑같이 하고 있을 뿐이야. 이곳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를 데려와서, 너희들을 조롱하면서 한 남자를 패러디하고 있지.”
그게 누구겠는가.
바로 바트 맥센이었다.
The Boss.
이 업계의 지배자.
정장 차림으로 링에 올라 악당으로 얻어터지지만 언제나 승리하는 남자.
물론, 미묘하게 달랐다.
바트 맥센은 자신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악역이라는 틀 속에 감춰 이득을 봤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식으로 이득을 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바트 맥센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그런 행동을 했고, 나는 반대로 ACW를 되살리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었다.
조롱이었다.
나는 지금껏 각본 속에 바트 맥센을 조롱하는 디테일을 숨겨둔 것이었다.
“악당은 여기에 있고, 동쪽에서 온 카우보이는 나타나지 않았지. 이때 너희라면 어떻게 할 텐가. ACW 팬들.”
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두가 그 정도로 열이 받았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했다.
나는 악당이라는 사실을.
거기에서 돌연 소름이 돋았다.
다들 원하고 있다.
모두가 그걸 바라고 있다.
악당이 쓰러지기를.
누군가.
정의로운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레슬링 업계에 산재한 『원죄』를 지워주기를.
‘참.’
아이러닉한 상황이었다.
나는 스스로 악당이 되어, 지금 이곳의 팬들이 그럴 의지가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전율을 느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팬들은 나를 받아들여줬다.
모두가, 그렇기에 나는 사실 그들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결국 올바른 길을 택할 것을 믿는, 이 업계의 『원죄』였다.
자, 그럼 이제 질문할 때였다.
대체 누가 있겠는가.
누가 감히 내게 맞서겠는가.
러셀 하트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고 프로레슬링 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악당을 패러디하고 있는 이 나를.
바로 그때.
한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날카로운 기타 리프 소리.
나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