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
러셀 오메가.
WWF에서 ‘끔찍한 배신’을 당하고 이적해온 그는 이적 초기에는 당연하게도 팬들의 시험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패장이었다.
바트 맥센이 이미지를 조져놨다.
러셀이 WWF에서 쫓겨난 나머지 별수 없이 왔다는 인상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다가 러셀 본인이 거기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굴었기에, 솔직히 말해 초기에는 반응이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다양한 선수들과 대립하며, 또한 그 과정에서 멋진 경기를 만들어내면서.
러셀 하트는 점차 러셀 오메가가 되었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다.
코디 로스의 반대편에서, 지금껏 회사에 없던 새로운 얼굴로 떠올랐다.
그런 그는, 자신의 커리어 초창기부터 한 남자와 라이벌리를 쌓아왔다.
바로 신이었다.
[Waaaaaaaaaaaaaaaaaggghhhh!!]
그것을 알기에 ACW 팬들도 지금은 단체에 대한 것은 잊고 환호를 했다.
러셀은 심장을 펀칭 볼처럼 세차게 후려치는 감각을 느끼며 자리에 섰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입 앞에 가져다대고 천천히 말했다.
“생각해보면 너는 항상 그랬지.”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항상 거지같은 것은 까고 봤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지 못하는 WWF의 선택에 언제나 화가 나있었지.”
대부분의 팬들과 달리 러셀 오메가는 신을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걸 패러디하고 있을 뿐.
그걸 통해서 뒤에 서있는 남자가 엄니를 드러내는 걸 기다리고 있을 뿐.
왜냐면.
그렇게 해야.
바트 맥센이 저지른 죄처럼.
할리우드 로건과 ACW가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저지른 죄를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는 단순한 억측이자 망상에 불과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가 잘못되었지. 내가 경험해봐서 잘 아는 건데 말이야.”
러셀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 있는 남자들은 너를 쓰러뜨리지 못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아니야. 단지…… 누군가가 먼저 기회를 낚아채서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지.”
그는 옆으로 슬쩍 물러섰다.
그리고 다음 테마가 나왔다.
날카로운 메탈 음악이 파편처럼 쏟아졌고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코디 로스.
[Waaaaaaaaaaaaaaaaaaggghhhh!]
그가 링으로 달려 나왔다.
젊은 패기로 한 번 크게 당하고 쓰러졌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덤벼들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러셀 오메가는 링 위의 신이 당황하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내가 싸우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럴 때가 아니었다.
무르익지 않았다.
자신의 허리에는 ACW 월드 챔피언 벨트가 없었고, 이곳은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도 아니었다.
모든 건 그때를 위해.
러셀 오메가는 코디 로스의 건투를 기원하며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그가 나와서 한마디 거들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는 행동이었다.
하나는 신이 그렇게 까부는 걸 선수들이 겁먹거나 좌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코디 로스와 러셀 오메가가 ACW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소개될 수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그러했다.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팬들은 링 위로 올라와 다짜고짜 신을 덮친 코디에게 응원을 보냈다.
로건이 순간 당황해 뒤로 물러났고 코디는 귀신과도 같은 기세로 신의 위에 올라타 마구 주먹을 휘둘러댔다.
로건은 뒤늦게 얻어맞는 신을 구하기 위해 코디의 뒤쪽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그가 현재 별다른 고민 없이 넘겨짚고 있는 사실이 하나 존재했다.
코디는 혼자 왔을 거다.
그렇기에 로건은 딱히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고 팬들 역시도 똑같았다.
그렇게.
모두가 순간 그 존재에 대해 놓치고 있는 시점에서 더스티가 등장했다.
[Uoooooooooooooooooohhhh!!]
경악하는 팬들.
코디를 돕기 위해 링으로 들어온 더스티가 그대로 로건을 옆에서 덮쳤다.
뒤엉킨 두 사람이 링 밖으로 빠져나갔고 코디는 계속 신을 몰아붙였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팬들의 챈트가 쏟아지는 가운데.
신은 이내 자신을 덮쳐누르고 있는 코디를 밀어내고는 뒤로 빠져나왔다.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꿇은 신은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당한 모습이었다.
포마드 헤어는 헝글어졌고, 자랑스레 입었던 정장은 완전히 개판이 났다.
그런 상황에서 순간 코디의 기세에 놀란 듯 숨을 몰아쉬고 있던 신은 이윽고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미소를 지었다.
완벽하게 당했건만 그는 화를 내기보다도 도리어 즐겁다는 듯 씨익 웃으면서 코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발끈하는 코디.
잠깐 벌어졌던 거리가 단숨에 다시 좁혀들었고 코디는 신과 뒤엉킨 채 링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신은 멱살을 붙잡히지 않고 그대로 링 아래로 빠져나가 도망쳤다.
[Boooo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하지만 신은 더스티에게 된통 당하고 있는 로건을 무시하고 그대로 활짝 웃으며 입장로 쪽으로 물러섰다.
“뭐야?! 코디! 좀 하잖아!!”
코디는 링 위를 점거한 채 분한 듯 도망치고 있는 신을 바라보았다.
더스티도 그가 도망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로건을 두들겨 패던 것을 멈추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니 신은 팔을 활짝 펼쳐 우아하게 인사를 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ACW 팬들을 열 받게 했다.
“PWA에서 보자고! 코디! 수요일이야! 늦지 않게 화요일까지 오라고!”
그리고 초대장을 날렸다.
[Boo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의 야유 속에서 그렇게 신은 마지막까지 손키스를 날리거나 하며 정말로 재수 없는 자식으로 굴었다.
반대편에서 실시간 방송을 보던 티파니 맥센조차 ‘저거 정말 재수 없네.’라고 말했을 정도로.
* * *
‘저게 나라고?’
바트 맥센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는 본디 다른 프로레슬링 쇼를 보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신이 떠난 뒤로는 계속해서 ACW와 PWA를 번갈아 보면서 그의 활약을 계속 인지했다.
그리고 그날 밤.
신이 자신의 정장 스타일이 바트 맥센을 패러디했음을 밝히자 본인으로서는 그렇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악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분명 자신이 ACW 링에 간다면 저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패배자들을 조롱하면서 자신이 업계의 지배자임을 공표하겠지. 저항이 있다면 가볍게 짓밟아 버리고.
하지만 저런 놈들에게는 시간을 쓰는 것조차 사치였다. 단지 바트는 그것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코디 로스는 애송이였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녀석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존재했다. 그리고 과시욕도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자신이 일정 수준 이상에 올랐다고 생각한다면 또 주제를 모르고 까불 게 분명했다.
그것을 잘 알았기에 바트 맥센은 왜 굳이 신이 그런 애송이인 코디 로스와 대립하는 걸까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내년을 위해서겠지.
팬들의 기억에 남는 새로운, 신선한 스타를 키워내야 티켓 파워가 강해지고 이쪽과 붙을 근거가 생기니까.
‘승부는 바로 그때가 될 테지.’
어렴풋한 예감이었다.
내년 4월.
똑같은 날짜의 똑같은 시간대에 개최되는 레슬 임페리움과 스타게이트.
결판은 거기에서 날 터였다.
바트 맥센은 그리 각오해두었다.
만약 이번에 자신의 모든 유산을 건 이 싸움에서조차 패배한다면,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고 넘겨주기로.
물론, 그렇게 각오를 해둔 만큼 바트는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왜냐면.
내년 레슬 임페리움에서 바트 맥센이 내걸 것은, 그가 지금껏 만든 작품들 중에서 최고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숀 시나 vs 더 팍.
현재의 최고와 과거의 최고.
거기에 맞서서.
신 vs 러셀 오메가.
그 대진이 이길 수 있을까?
바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으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WWF의 아이콘인 시나와 팍의 대진을 이길 수 없을 터였다.
아무래도 러셀이 부족했다.
신이 다른 곳에 낀다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테지만, 고집이 스스로를 망쳤다.
바트 맥센이 아닌 러셀 오메가를 택한 시점에서 신은 패배를 자초했다.
그 의지를 무너뜨릴 생각에.
바트는 즐거움을 느꼈다.
‘마음껏 발버둥 쳐봐라. 신.’
게다가 그 외에도 카드는 많았다.
페이퍼뷰는 한 경기로 끝나지 않으니까. 바트는 거기서도 자신이 있었다.
그야 물론.
현재 WWF에 소속된 이들은 대부분 ‘신’과의 대립을 통해 높은 모멘텀을 가진 선수로 성장해왔으니 말이다.
* * *
그리고 찾아온 수요일.
팬들의 관심은 과연 코디 로스가 신의 도발을 받아들이는가로 좁혀졌다.
월요일 밤의 나이트로, 그 마지막에 신이 한 말은 비록 마이크를 쓰지 않았지만 해설자들의 도움을 받아 확실히 팬들에게 전달되는 데 성공했다.
[신이 코디를 부르는군요!]
[모르겠습니다! 코디는 과연 어떻게 선택을 할까요! 전에 험한 꼴을 본 전적이 있어서 저는 솔직히 말해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코디가 선택할 부분이겠죠! 제기랄! 하지만 저는 코디가 저 건방진 신의 뺨을 때려주었으면 하네요!]
그런 식으로 떡밥을 던지고.
PWA에서는 굳이 팬들을 기다리게 만들 이유가 없다는 판단 아래에 오프닝에서부터 코디를 등장시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코디는 아예 오프닝을 끊어냈다.
웅장한 해적 스타일의 음악과 각 선수들이 활약하는 장면이 담긴 퀄리티 높은 PWA의 오프닝 영상.
그 중심에 있는 건 신이었다.
그리고 TV 앞에 모인 팬들이 오늘도 어떤 경기가 펼쳐질까 기대하며 팝콘을 뜯고 건포도를 그 안에 뿌린 가운데, 목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그만! 그만! 이 멍청한 영상 끊어!]
화면이 순간 끊어졌다.
치이이이이익-!
방송 사고다.
모두가 순간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퀄리티 높은 연출이었다. 그리고 화면은 곧바로 PWA 경기장 외부에 설치되어있는 송출용 트럭으로 연결되었다.
코디 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Uooooooooooooooooooohhhhh!]
[내가 왔다! 신! 널 박살 내기 위해! 약속대로 이 PWA에 도착했다고!!]
당황한 듯 굳어져 있는 직원들.
그들은 언제 코디가 수틀리면 자신들을 공격할지 몰라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에서.
방송은 계속 이어졌다.
[고민을 좀 했지! 과연 너는 날 초대해놓고 또 겁쟁이처럼 보안요원들의 뒤에 숨을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나와의 싸움에 응할 것인가!]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로 코디의 행동 하나하나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결론이 나오더군! 네가 또 도망쳐서 다수의 손을 빌려 나를 짓밟으면 그건 너만 손해라고 말이야!]
[Uooooooooooooooohhhhh!!]
[그러니까 간다! 신! 내가 그 링 위로 올라서 너를 만나주겠어! 그러니까 목 잘 씻고 기다리라는 말이다!]
패기롭게 외친 코디가 돌아섰다.
카메라가 그 모습을 촬영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 거침없이 링으로 전진하는 코디 로스. 하지만 거기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
모두가 길을 비켜주었다.
PWA에 소속된 선수들 모두가 불쾌한 듯 코디를 바라보았지만, 딱히 시비는 걸지 않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렇게.
코디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의문을 느끼며 천천히 링을 향해 전진했다.
그리고 그는 고릴라 포지션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사내와 만났다.
바로 할리우드 로건이었다.
[너……!]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뭐?]
[오는 길은 편안했겠지? 모두 보스가 지시한 대로야. 자네를 안전하게 링까지 인도하라고 지시를 했거든.]
[하, 쟈니 에이스는 죽었나?]
[오늘만 참아달라고 부탁했지.]
윙크를 하는 로건.
완벽히 통제되는 것 같은 상황.
그 가운데, 코디는 깨름칙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링을 향해 들어섰다.
PWA는 그를 철저하게 환영했다.
입장로 커튼을 걷고 나서자 코디의 테마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팬들은 일어서서 그에게 환호했다.
[Waaaaaaaaaaaaaaaaggghhhh!!]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코디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이건 이질적이었다.
조롱에 가까운 환호였다.
‘어차피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이기는 건 신이니 네 패배에 박수를 쳐주마.’
그런 식의 반응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링에 오른 코디는 자신을 따라 링으로 올라온 로건을 돌아보았다.
nWo 시절의 악당으로서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이제는 신의 충실한 개가 된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떤가? PWA는.]
[존나 오만하군.]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고맙군. 최고의 선수들을 길러내는 최고의 장소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우리는 소수 정예야. ‘황야의 8인’인 동시에 미스터 그린베레지. 그리고 그 정점에 서있는 게 바로 신이고.]
[그래서, 그 잘난 자랑은 됐고. 신을 불러와. 녀석하고 말할 테니까.]
[모든 일은 순서가 있지.]
그렇게 말한 로건은 젊은 선수로서의 패기를 보여주는 코디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가 이어질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걸세.]
[……뭐야?]
코디가 의아해한 순간.
쿠쿵-쿵쿠쿵-!
이 PWA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분류되는 이의 테마 음악이 울려 퍼졌다.
바로 드류 맥킨마이어였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자기 국가에 소속된 검투사의 등장에 PWA 팬들이 가식 없는 진짜 환호를 보내며 그를 맞이했다.
푸른 조명 아래에 노 슬리브 코트를 입은 그가 천천히 링으로 나왔다.
거의 2미터에 달하는 키.
부츠를 신고도 18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코디와 차이가 컸다.
로건으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은 드류는 코디를 보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너와 내가 붙는다.]
바로 지금 당장.
그렇게 코디의 시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