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
나와 코디는 그렇게 딱 원하던 수준의 반응을 얻은 채 대립을 끝마쳤다.
이제 남은 건 그 결과.
다시 말해 경기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해야만 했다.
코디 로스와 나의 싸움은 과연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에 부합하고 있는가.
프로레슬링의 순수성.
우리의 각본은 그걸 보여주었는가?
애초에.
그 순수성이란 무엇인가?
각본에서는 투쟁과 인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코디와 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업계에 몸을 담그고 있는 선수로서 거기 한마디 정도는 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표현을 했다.
‘투쟁과 인정’이라는 형태로.
처음에는 단순히 아버지가 공격을 당했기 때문에 내게 덤벼들었던 코디.
하지만 ACW의 선배, 부커-리와 아버지 더스티 로스의 훈계로 녀석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들과 싸워 인정을 받으며 한 사람의 선수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후 PWA에 소속된 선수들과 싸워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차근차근 링에서의 위상을 키워왔다.
전형적인.
동시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코디는 어느 샌가 신에 대한 복수심보다도 싸우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 감정이 마지막 계약식 세그먼트에서 놈이 한 말로 여실히 드러났다.
‘자기가 더 이상 패배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말겠다 말했었지.’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나는 이 일에 대한 내 순수성을 증명하겠다면서 코디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코디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단지 싸우자고 말했다.
경기는 그런 상황에서 성사되었다.
“말하자면.”
경기 직전.
한창 페이퍼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난 옆에 앉은 코디에게 말했다.
원래 경기 직전에는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상대 선수와는 되도록 만남을 자제하는 나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코디에게 해둘 말이 있었다.
“이번 대립은…… 그래, 바트 맥센에게 내가 보내는 메시지인 셈이야.”
“메시, 지요?”
“그래, 녀석은 자신이 생각하는 선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너 같은 이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홀대했지.”
분명히 지금도 코디 로스에게는 재능이 없다면서 폄하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이 맞았어. 너는 훌륭한 재능을 지녔다. 앞으로도 잘만 하면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재목이야.”
“…….”
“그러니까. ……인마.”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던 코디 로스가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감정 과잉이군.
“제기랄, 울지 말라고.”
“가, 감사합니다.”
“……그 마음은 아는데.”
그래도 누가 우는 건 질색이었다.
“아직은 아니잖아.”
나는 쓰게 웃었다.
그래, 코디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의 경기가 끝난 뒤여야 했다.
내가 녀석을 선수로서 인정하고.
놈 역시도 나를 인정하고.
그렇게.
우리는 훌륭하게 선수를 키워낸다.
안타깝게도 현 시대의 프로레슬링은 과거의 인물들로 인해 순수성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다.
바트 맥센.
그리고 할리우드 로건.
두 늙은이들이 탐욕을 부리면서 프로레슬링이라는 스포츠를 모욕했지.
나는 거기에 대항하기 위해 코디 로스를 ‘순수한’ 방식으로 키워냈고 그로 인해서 나 자신에게 긍지를 느꼈다.
업계는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
한 선수가 다른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고, 위로 올라서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경기도 그렇게 될 터였다.
* * *
2010 대시 앳 더 비치.
여름이 가장 뜨거울 시기에 개최된 ACW의 대형 페이퍼뷰. 거대한 돔 경기장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다.
그 숫자는 무려 15만.
할리우드 로건의 탈단 이후 빠르게 태세를 정비한 ACW의 저력이 빛났다.
뿐만 아니라 반 WWF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나를 믿어준 것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힘을 보태줌으로써 이 업계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했다.
그러므로 나는 보여줘야만 했다.
그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코디 로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콰콰콰콰쾅-!
입장로 주변으로 폭죽이 터져 오르며 스피디한 메탈 음악이 흘러나왔다.
[Adrenaline, In My Soul-!]
[Waaaaaaaaaaaaaaaaagggghhh!!]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려한 조명과 불꽃.
플로리다의 야자수를 형상화해 입간판으로 만들어둔 멋들어진 세트장.
커튼을 걷고 나간 코디는 팬들의 성원에 응답하며 더스티 로스를 대동한 채 천천히 링을 향해서 나아갔다.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그의 테마는 팬들의 성원을 받아 링으로 나아가 자신의 왕국을 세우겠다는 코디의 의지가 형상화된 노래였다.
거기에, 레슬링 패밀리의 후계자로서 더스티 로스의 말을 형상화한 가사까지도 추가가 된 상태였다.
[Hard Times Breed Better Men!]
어려운 시간은 더 나은 남자를 길러낸다.
더럽게 올드한 말이었다.
요즘 시대에는 통용되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려운 시간, 시련이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다짐과 함께 링에 오르는 코디 로스. 그 모습을 카메라는 멀리서 관객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촬영했다.
[Waaaaaaaaaaaaaaaaagggghhhh!]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팬들에게 야유를 받던 코디가 이제는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가 되었으니까.
“후우.”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코디의 음악이 끝나고.
‘불길한’ 북 소리가 이어졌다.
쿵-쿵-쿵-쿵-쿵-쿵-쿵-쿵-!
빠밤-! 빠밤-! 빠밤-! 빠밤-!
쿵-쿵-쿵-쿵-쿵-쿵-쿵-쿵-!
빠밤-! 빠밤-! 빠밤-! 빠밤-!
[Waaaaaaaaaaaaaaaagggghhhh!!]
[Booooooooooooooooooooooo-!]
환호와 야유가 나뉘었다.
나를 두려워하는 이들.
나를 환영하는 이들.
이 드넓은 경기장의 팬들은 그렇게 제각기 나뉜 반응을 보여주었고, 나는 로건을 대동한 채 링으로 나아갔다.
연기가 자욱한 입장로 위.
지면으로부터 불꽃이 덩어리져 분사되었고 나는 천천히 그 중심에 섰다.
그리고 기다렸다.
불꽃이 연기를 잡아먹었다.
이내 관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말인즉슨.
반대로 그들은 연기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내 모습을 보았다는 말이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Boooooooooooooooooooooo-!]
검은 롱 팬츠 스타일의 경기복.
선명하게 드러난 복근. 금방이라도 힘을 쓰기 위해 준비가 된 흉근까지.
그리고 어깨 위에 걸친 코드와 포마드 헤어, 파일럿 선글라스가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었다.
나는 천천히 링을 향해서 나아갔다.
웅장한 보컬이 내 존재를 띄워주었고, 그런 가운데 링에 오른 나는 코디를 지나쳐 로프를 밟고 올라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음악 속에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
‘좋아. 바로 이거지.’
나는 몸이 근질근질한 것을 느끼며 로프에서 내려와 코디를 바라보았다.
내 바로 옆에서 더스티를 보호하듯 서있던 녀석을 지나쳐 박수를 보내고 있는 로건에게로 돌아갔다.
“오늘, 잘 부탁합니다.”
“그래, 맡겨두겠네.”
코트를 벗어서 맡기고.
로건과 더스티가 각각 링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땡땡땡-!!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고.
나와 코디는 일단 링을 크게 돌면서 팬들이 우리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가벼운 탐색전.
그리고 이내 내가 한쪽 팔을 앞으로 쭉 뻗자 코디가 거기에 응해 다가왔다.
락 업으로 이어지려는 분위기.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코디에게 바싹 다가섰다.
허리를 펴고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은 채 다가서는 날 보고 팬들은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코디 역시도 눈썹을 찡그렸다.
락 업으로 이어지려는 분위기였는데 돌연 내가 이런 식으로 굴었으니까.
하지만 할 게 있었다.
나는 코디에게 손을 내밀었다.
“……?”
[Uoooooooooooooooohhhhh!]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악수를 청했다.
경기가 시작한 뒤.
마인드 게임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하지만 나는 순수했다.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았지만.
코디 역시도 그랬다.
어이가 없다는 듯 서있던 녀석이 이내 내 손을 힘껏 후려치며 다가섰다.
쫘악-!
관객들은 다시 경악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펀치.
거기에 얼굴을 맞은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코디는 곧바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어지는 추격타를 피해낸 나는 자연스럽게 코디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락 업.
가볍게 힘을 겨루고.
우리는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후우……!”
하지만 가볍게 심호흡을 한 나는 그대로 코디를 반대편으로 몰아붙였다.
“크윽?!”
“뭐야, 고작 이거냐?”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코디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나는 무시하고 놈을 코너까지 밀어 넣었다.
녀석이 지금까지 상대한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 그가 바로 나였다.
여기에 있는, 바로 나.
쫘악-!!
“크허억!!”
코디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날카로운 찹.
녀석의 가슴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후려친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았다.
고통 속에 숨조차 쉬지 못하는 코디를 두고 관객들이 불안한 듯 보았다.
그리고 나는 몸을 ‘휘둘렀’다.
쩌억!
마치 채찍처럼.
근육질의 몸이 뒤로 휙 날아오르며 코너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코디의 뒤통수에 그대로 킥을 차넣었다.
축구 영웅의 이름을 담아.
그 이름하야 펠레 킥.
[Uoooooooooooooooohhhhh!!]
코디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쿠웅!
그 옆에 누운 상태에서 놈의 머리통을 겨드랑이 아래에 끼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코디를 뽑아들었다.
버티컬 수플렉스.
지면에서 거꾸로 코디의 몸을 들어 올린 나는 그대로 힘을 과시하듯 버티고 서있다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투콰앙-!!
[Wa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가 쏟아졌다.
팬들 모두가 경악했다.
이 정도의 차이라니.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코디와 어깨 위쪽을 맞대고 누운 상태에서 나는 하반신에 힘을 주었다.
몸을 둥글게 말아 녀석의 방향으로 구르며 그대로 상반신을 다시 뽑았다.
콰앙!
이번에는 ‘스냅’ 수플렉스로.
뽑아든 상태에서 잠시 버틴 뒤에 넘기는 버티컬과 달리 허리에 반동을 줘서 곧바로 넘겨버리는 수플렉스.
“끄흑……!”
코디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반대로 나는 가볍게 일어섰다.
깃털처럼 가뿐하게.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런 내 압도적인 무력에 환호하는 팬들과 반대로 할 말을 잃은 팬들이 지금 이 링의 스토리를 보여주었다.
아직 코디는 부족하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핀 폴도 않고 가만히 코너에 기대어 섰다.
가까이 다가온 로건이 입을 열었다.
“어떤가?”
“뭐, 별거 아니네요.”
“크하하하! 역시 자네로군!”
복싱의 세컨드처럼 내 어깨를 주무르며 웃는 로건. 그것을 본 ACW 팬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야유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이내 정신을 차린 코디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코디, 코디!!”
링 바깥에서 바닥을 쿵쿵 두드리며 코디를 독려하는 더스티. 거기에 팬들도 코디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Cody!]
한 선수를 믿는다.
그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코디는 증명했다.
자신이 그럴 만한 선수라는 걸.
“후우.”
자리에서 일어서는 코디.
그대로 주먹을 쥔 녀석을 본 난 피식 웃으며 다시 그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악수를 건네지 않았다.
코디가 주먹을 날렸다.
퍼억!
그걸 정면으로 받아낸 나는 곧바로 헤드벗으로 응수했다.
빠악!
코디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Uooooooooooooooooohhhhh!!]
나는 공격을 이어나갔다.
다시 한 번 헤드벗.
빠악!
한쪽 무릎을 꿇으며 무너지는 코디의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내리쳤다.
콰앙!
무너져 내리는 코디.
나는 그 앞에서 도발을 했다.
“고작 이거냐?!”
녀석의 능력에 대한 실망감.
말은 그렇게 한 주제에 정작 본 경기에서는 영 힘을 쓰지 못하는, 눈앞의 코디 로즈에 대한 불쾌감.
“이것밖에 안 되냐고!!”
나는 그렇게 녀석을 조롱했다.
그러자니,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있던 코디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벌떡 일어서는 코디.
녀석이 그대로 태클을 걸어왔다.
다소 밀려나며 버텨낸 나는 그대로 코디를 후려치기 위해 팔을 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크아악!”
녀석이 내 다리를 잡고 들었다.
쿠웅!
[Uooooooooooooooohhhhh!]
관객들이 놀라 소리쳤다.
“제길……!”
이건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등을 눌렀는데도 억지로 잡고서 뽑았으니까.
그리고 위로 올라온 코디는 이를 악물며 내 얼굴에 힘껏 펀치를 날렸다.
빠악-!!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나는 얕보았지만 코디 역시 여기까지 아득바득 기어 올라온 선수였다.
그렇게 반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