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41화 (441/634)

441.

러셀 오메가.

나의 개인적인 요청을 들어준 녀석은 그로서 레슬 임페리움 2010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ACW에 합류했다.

그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시점.

러셀 오메가는 ACW 내부에서 상품 판매량 1위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동시에 ACW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며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기존에도 WWF에서 10위권 내에 드는 상품성을 가졌던 러셀이었지만, 이제는 그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적 직후 발매된 티셔츠가 어찌나 많이 팔렸는지 하트 패밀리의 재정 문제를 크게 완화시켰을 정도였다.

사실 이 부분은 아이러니하지만 바트 맥센의 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영감이 저지른 스크류잡으로 인해 러셀은 단숨에 프로레슬링 팬들의 지지를 등에 업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오래 몸을 담아온 단체에게 배신을 당한 비운의 스타가 됨으로써 말이다.

그에 반면, 골수 ACW 팬들은 러셀을 단체에서 쫓겨나서 갈 곳이 없으니 여기 온 선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회사 사람들도 그랬고.’

하지만 그들의 편견과는 달리, 러셀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배신을 당하고 회사에서 쫓겨나듯이 나왔다. 긍지로 여겼던 자신의 ‘이름’마저도 놈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단 하나.

가장 중요한 건 남아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를 기억했다.

전생에는 패배자였던 러셀 오메가가 다시 패배자가 되었지만, 얌전히 포기하지 않기로 선언한 바로 그 순간을.

왜 계속해서 싸우는가.

그걸 말하는 순간을.

[모든 것이 눈이 녹는 것처럼 사라졌지만 이 몸만큼은 그대로더군. 지금까지 꿈을 키워온 이 몸만은 말이야.]

아마 슈타이너를 이긴 뒤였을 거다.

팬들의 반응이 점점 올라오던 때, 러셀 오메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이 레슬링 업계의 최후에 서있는 그런 남자가 되고 말겠어. 그렇기에 내 이름은 러셀 오메가인 거다.]

팬들은 거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알파와 오메가.

라이벌 간의 마지막 승부……는 절대로 아닐 테지 누군가 죽거나 불구가 되어서 이 링을 떠나지 않는 한.

그럼에도.

아마 내년 스타게이트는 나와 녀석의 커리어에서 가장 크고 멋진 시합이 될 것 같다고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맞춰, 러셀 오메가는 이어진 ACW 선수들의 시험을 통과하며 그들과 융화되기 시작했다.

녀석은 크로우와의 대립을 통해 전설적인 선수의 인정을 받았고 ACW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대시 앳 더 비치에서는 기어코 ACW 월드 챔피언까지 따냈다.

WWF에서의 커리어가 존재한다고 한들, 가파른 상승세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솔직히 말해서 관계자들을 무척이나 놀라게 만들었다.

그럴 법도 했다.

업계에서는 보통 악역보다는 선역이 더 큰 상품성을 지니고 푸시를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러셀은 커리어의 대부분 악역으로 지내면서 상품성 자체는 위상에 비해서 많이 낮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러셀 오메가의 상품성은 현재 예전의 할리우드 로건을 넘어설 정도였다.

“그게 왜일까요?”

데릭 비숍이 물었다.

갑자기 또 불러서 뭔가 싶더라니.

‘러셀이 왜 인기가 좋은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해와서 차근차근 녀석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나가던 참이었다.

“예?”

“어, 사실 저번 주주 회의에서 여기에 대해 썩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해서 말입니다. 좀 알려주시면…….”

비숍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거기에서 나는 황당해 생각했다.

‘이 양반. 역시 알콜 의존증 같은데.’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회사의 헤드가 그런 것도 모르고 윗선에 앉아있다니.

이제는 감을 잃었다.

nWo와 함께 WWF의 뒤를 바싹 추격할 때만 하더라도 영민하고 패기가 넘치는 젊은 실권자였는데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바트 맥센처럼 방해는 하지 않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주주들의 지지를 위해 비숍에게 설명을 좀 해주자.

하지만 거기에 앞서서.

“회사에 분석팀도 없습니까?”

“있기는 한데. 음.”

“……?”

“거기 팀장으로 지금 앉아 있는 사람이 로건의 친척의 친구입니다.”

“기절하시겠군.”

도대체 얼마나 썩어빠진 거야?

회사가 돌아가는 꼴을 보자면 당장에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당장 잘라요. 그리고 제대로 된 팀장을 앉혀서 보고 받고. 회사 재정도 다시 안정화되었을 것 아닙니까?”

나는 그렇게 조언했다.

제대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지금 내가 러셀에 대해 말하는 바는 정황적 근거에 따른 예측에 불과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모든 건 ‘러셀 오메가는 어떤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가?’에서 시작되었다.

“어, 선역과 비교했을 때보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악역을 선호하는 마니아 팬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소수라서 이 인기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죠.”

내가 말하는 건, 녀석을 애초부터 선역으로 인식하는 팬들을 말했다.

바로 외국인 팬들이었다.

“그 녀석은 악역일 때도 반미 감정이 극심한 지역에서는 환호를 받았죠.”

“어디요?”

“미국 빼고 다른 모든 나라요.”

“…….”

“그래도 사실, 이게 정말 어쩔 수 없는 문제죠. 프로레슬링에서 쇼비니즘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니까.”

쇼비니즘.

쉽게 말해 ‘국뽕’이었다.

그런 요소를 외국 팬들은 ‘쟤들이 뭣하냐.’라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라면 괜찮았다.

하지만 공화당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바트 맥센은 때로는 그런 요소를 과하게 넣었다.

시나가 미국의 국기에 대고 경례를 하면 반대되는 위치에서 러셀이 구닥다리라면서 욕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게 미국에서는 시나가 선역, 러셀이 악역이 되는 현상을 낳았지만.

그 외의 나라에서는 반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러셀은 외국 팬들에게 어필하는 점이 많은 레슬러였다.

거기에 바트 맥센으로부터 실제 배신을 당한 드라마까지 합쳐지면서 많은 팬들이 러셀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ACW는 버텨낼 수 있었다.

거의 멸망하기 직전까지 몰렸던 전생과 달리 러셀 오메가가 데려온 팬들로 인해 WWF에 대항할 힘을 얻었다.

“문제는, 그런 러셀과 반대로 ACW의 내부 사정이 꽤 나쁘다는 겁니다.”

“예……?”

“아, ‘이야기’적으로 말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도 로건의 친척의 친구가 분석 쪽을 총괄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싶었지만.

“모두 로건 때문이죠.”

“그렇죠. 그 양반이 욕심만 좀 덜 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비숍.”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군.

“그게 잘 나갈 때는 불만 없이 따르던 게 당신 아닙니까? 단체의 총책임자로서 영 실망스러운 발언이군요.”

“하, 하지만 로건이 백스테이지에서 가진 영향력 때문에 제가 뭘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걸 만들어준 것도 당신이죠.”

비숍은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로건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회사 공금을 빼돌리고, 자기 사람을 앉히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몸부림친 것은 결국 그였으니까.

그것이 결국 팬들에게 제공되는 상품, 다시 말해 ‘스토리’가 망가진다는 최악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는 바트 맥센이 더 나았다. 그 양반은 그런 망가짐을 어떻게든 이야기적으로 잘 수습해냈으니까.

난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저는 맨 처음 할리우드 로건을 다시 링으로 데리고 온 겁니다.”

책임을 지게 해야 하니까.

그 양반이 ACW에서 몇 년 동안 만들어온 이야기를 끝내고 러셀을 중심으로 한 새 시대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이번 각본의 목적이었다.

팬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 새로이 ACW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떠오른 남자, 러셀 오메가의 확실한 계승식.

그게 성립될 수만 있다면 ACW는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리라.

비숍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신. 말인즉슨 로건과 러셀이 경기를 가지게 된다는 뜻인가요?”

“그래야겠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단.”

흥분을 금치 못하는 비숍의 앞에서 나는 쓰게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시간이 워낙 많이 있는 만큼, 천천히 공을 들여 대립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이번 대립은 그만큼 중요했으니까.

‘그 시작은…….’

일단 로건과 나의 분열부터였다.

* * *

그렇게 대시 앳 더 비치가 끝난 이후, 나는 PWA에서 전혀 다른 내용의 새로운 각본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코디와 나의 대립에 희생(?)을 치러야만 했던 다른 선수들이 불만을 가지면서 내게 덤벼온다는 내용의 각본.

하지만 그마저도 개성이 넘치는 우리 PWA 선수들은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고 제각각 다른 면모를 보였다.

예를 들자면 이러했다.

쟈니 에이스는,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이 PWA의 간판스타인 만큼 나에게 가장 강한 분노를 표출한 선수였다.

“네놈이 바깥에서 하고 다니는 헛짓거리에 대체 왜 여기 있는 선수들이 피해를 봐야만 하는 거냐?!”

“알~았어. 자기야. 그만해. 내가 미안했어. 우리 다시 잘 해보자고. 응?”

“이 새끼가 그래도……!”

그런 식으로 싸움이 번졌고.

반대로 드류 맥킨마이어 같은 경우에는 나에게 호전적인 면모를 보였다.

“대시 앳 더 비치에서의 경기는 잘 봤다고. 신. 나를 이긴 코디 로스를 제압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더군.”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야.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만 아는 법이지. 나와도 한번 붙어보자고! 바로 오늘 밤!!”

[Yeeeeeeeeeeeeeeeeeeaaaahhhh!]

팬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9월 내내.

나는 그런 식으로 PWA의 슈퍼스타들과 겨루면서 ‘어째서인지’ 되도록 조용하게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말하는 ‘어째서인지’는 팬들과 할리우드 로건, 그리고 ACW의 선수들의 시점에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코디를 쓰러뜨린 내가 더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사이 ACW에서는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와 점점 세대교체를 해나갔다.

가장 먼저, WWF에서 넘어온 크리스 젠코가 러셀에게 잡을 해주면서 더더욱 그를 돋보일 수 있게 도와주었고.

태그 팀으로 데뷔한 영 덕스라던가.

그 외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새로 모습을 드러내며 기존 ACW 선수들로부터 단체를 이어받을 준비를 해나갔다.

그리고 나에게서 아쉽게 패배한 코디 로스는 그 후로 어떻게 되었냐면.

ACW의 2선 챔피언십인 TNT 챔피언 벨트를 따내며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팬들 모두에게! 그리고 나의 아버지 더스티 로스에게! 이 벨트의 값어치를 더욱 더 높이는 코디 로스가 될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약속하겠어!!”

[Yeeeeeeeeeeeeeeeeaaaahhh!!]

9월 말의 페이퍼뷰에서 승리한 녀석은 거의 월드 챔피언을 따내기라도 한 것처럼 크게 감동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 순수한 모습을 본 팬들은 ACW에 대한 코디의 진심을 느꼈고, 그를 거트 엔젤이 습격하며 대립이 시작되었다.

대충 그런 식이었다.

경기를 통해 대립이 끝나고.

선수의 위상이 상승하고.

다시 대립이 시작되고.

마치 아이들이 좋아하는 나무 블록을 가지고 멋진 성을 쌓아가는 것처럼.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우리가 지닌 프로페셔널함을 섞어서 쉽사리 무너지지 않도록 끈끈함을 더해나갔다.

그렇게 찾아온 10월.

슬슬 로건이 불만을 표했다.

쇼가 시작된 뒤, 락커룸에서 부츠 끈을 매고 있던 내 곁으로 다가온 그가 다짜고짜 험한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애들 장난질이라도 하자는 건가?”

“뭐요?”

“그게 아니라면 뭐지, 신? 너는 지난 한 달 동안 여기 이 똥통에서 도저히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군.”

“……이봐, 로건.”

나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입조심 하라고. 내 집을 나쁘게 말한다면 당신이라고 해도 용서 못 해.”

“으, 으음.”

로건은 금방 꼬리를 내렸다.

사실, 각본 외적으로 보자면 로건이 나를 돋보이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굴욕적인 장면을 자처한 것이었다.

이어서, 그는 금방 또 온순하게 태도가 뒤바뀌어 나를 띄워주기 시작했다.

“이봐, 보스.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말은, 자네가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The World Is All Yours라고 말한 내 꼴이 대체 뭐가 되냐는 거야.”

“거 참, 참을성도 없으시네.”

나는 피식 웃었다.

“걱정 마세요.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거니까.”

“그렇지?”

“아무렴요. 오늘은 핀 발로 그 빌어먹을 놈을 참교육해줘야 할 시간이죠.”

“그것도 말인데…….”

“네?”

“좀 더 쉬운 방법이 있잖은가.”

로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그런 놈들을 진심을 다해 상대해줄 필요가 없다네. 원한다면 내가 몇 가지 방법을 가르쳐줄 수도 있지.”

이거 완전 악마로군.

그렇게 생각하자니 내 뒤에 선 로건이 기분 나쁘게 계속 말을 속삭였다.

“굳이 그렇게 해줄 필요가 없어. 자네는 좀 더 영리한 선수가 아닌가.”

“…….”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신.”

“그건 제가 결정하죠.”

나는 내 어깨를 붙잡고 있는 로건의 손을 떨쳐내고는 곧장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내 모습을 로건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면서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는 끝이 났다.

그런 식으로 로건과 내가 가지고 있는 프로레슬링에 대한 견해 차이를 보여주면서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팬들 역시도 거기에 대해서 나름대로 추론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토리를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각본은 계속해서 전개되었다.

나는 ACW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로건을 무시했다. 그로 인해서 우리 둘의 사이에는 점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로건은 점점 링 위에서도 내게 불만을 표시했다. 대놓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딱히 시선이 곱지는 못했다.

내가 상대 선수와의 대결에서 어렵사리 승리하면 다가와 내가 뭐랬냐, 쉬운 길을 찾아라, 그런 식으로 말했다.

거기에 짜증이 난 내가 쓰러진 상대를 부축해 링으로 돌아가면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로건은 야유를 받고.

분명히 화가 날 터였다.

내가 답답하게 느껴지겠지.

The World Is All Yours.

세상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겠다며 패기롭게 자신을 끌어들였던 신이 이제는 전혀 다른 짓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ACW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내 대척점에 서있는 남자.

러셀 오메가를 만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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