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
“우리 좀 솔직해지자고.”
러셀이 그렇게 말을 꺼냈다.
“너는, 여기 이 벨트를 원하고 있잖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회는 손쉽게 가질 수 있는 게 결코 아니지.”
[Boooooooooooooooo……!]
“너는 증명을 해야 해. 신. 네가 이 벨트에 도전할 자격이 있는지를. 아니면 로건처럼 날 열 받게 만들거나.”
“말인즉슨…….”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널 두들겨 패주면 앞서 언급된 그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는 거잖아. 안 그래?”
러셀을 열 받게 만들면서 내가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
그 말을 들은 러셀은.
의외로 씨익 웃을 뿐이었다.
“이제야 좀 본모습이 나오시는군.”
“뭐?”
“벨트에 대한 열망 말이야. 솔직히, 바트 맥센의 패러디 같은 짓을 할 때는 네가 좀 맛이 갔나 싶었는데.”
러셀은 왼쪽 어깨에 걸치고 있던 벨트를 그대로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Boooooooooooooooooooo-!!]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아무리 그래도 PWA에서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치켜든 것은 선을 많이 넘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러셀은 개의치 않았다.
“말은 장난처럼 해도, 네게서 이 벨트를 원한다는 욕망이 느껴지는데.”
[Boooooooooooooooooooooo-!]
“내 말이 틀렸나? 이제 네 커리어에서 남아있는 건 결국, 유서 깊은 단체의 월드 챔피언십 하나뿐이잖아.”
“그건 맞는 말이군.”
“그렇지?”
“그러니까 그건 아니고. 저기 있는 WWF 월드 챔피언 벨트도 아니지.”
[Uoooooooooooooooohhhh!]
내 통렬한 디스에 관객들이 통쾌함을 느낀 듯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러셀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신포도 일화인가? 난 왜 나는 그것이 네가 갖지 못한 물건에 대한 열등감으로 느껴지는지 모르겠군.”
“아니, 아니. 들어봐. 러셀.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야. 네가 허리에 차고 있는 그 벨트는 사실 가짜라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왜냐면 진짜 벨트의 소유자는 아직 ‘할리우드 로건’이거든. 네가 아니라.”
왜냐고?
이번 스타게이트에서 로건은 확실하게 잭 제럿을 핀해서 벨트를 따냈다.
그리고 단체를 떠났지.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핀을 해 벨트를 따냈다는 결과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잭 제럿과 ACW는 무슨 독재 국가의 지배자들인 양 다시 벨트를 가지고 와서 챔피언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하하호호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너희 단체의 팬들이 등신이라고 하는 거야. 왜냐고? 그렇게 만들어진 챔피언을 좋다고 떠받드니까! 진짜 챔피언은 로건인데!”
[Yeeeeeeeeeeeeeeeeeaaaahhhh!]
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거기에 순간 벙쪄 서있던 러셀은 이내 한껏 진지해진 얼굴로 말을 했다.
“그래서 놈과 함께하는 거였군.”
“맞아, 너희 팬들과 회사에서 애써 외면하고 있는 사실을 알리는 거지.”
“심성이 배배 꼬였군.”
“열이 받거든.”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디 로스가 순수성에 대해서 말했지. 그런데 말이야. 러셀. 언제부턴가 그게 전부 사라진 것 같지 않아?”
나는 이야기했다.
‘밀리언 달러맨’을 기억하는가?
“그는 부자였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밀리안 달러맨’ 체드 디비아시.
80년대 활동했던 레전드인 그는 부자 악역 캐릭터로서 팬들의 야유를 받아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팬들에게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없는 살림에 리무진을 렌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하겠지만.
그래서 그건 실제가 되었다.
밀리언 달러맨은 그 배역을 연기하는 남자가 아닌 정말 이 세계에 존재하는 재수 없는 악역이 되었다.
여기 신과 러셀 오메가가 서로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고 서있는 것처럼 밀리언 달러맨도 실존하는 선수였다.
그게 프로레슬링이었다.
가짜를 진짜로.
진짜를 가짜로.
그를 통해 팬들이 일상에서 겪을 수 없는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러셀 하트는 WWF에서 끔찍한 배신을 겪은 뒤 쫓겨났고, ACW는 팬들 다 보는 앞에서 헛짓거리나 했잖아.”
이게 프로레슬링인가?
아니다.
팬들은 점점 지쳐갔다.
이 업계의 추악한 일면에.
나는 거기에 반발했다.
“난 그걸 되찾고 말 거야. 이 업계가 잃어버린, 프로레슬링만 생각하면 되는 그때를 되찾고 말 거라고.”
나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두 거대 회사가 벌이는 역겨운 싸움질을 나는 기어코 박살 내고 말겠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여기 이 PWA가 그렇지. 모두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나는 여기 소속된 선수들을 무척 좋아하고 있어.”
우리는 그 역겨운 단체들과는 다르게 제대로 된 경쟁을 하고 있으니까.
[Waaaaaaaaaaaaaaaaaagggghhh!]
팬들은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들 역시 느끼는 것이었다.
프로레슬링이 지금 이 성장세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반드시 사라져야만 했다.
과거의 유산이 나쁜 건 아니다.
캐스켓-테이커.
그렉 하트.
존 마이클스.
트리플 H.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선수들의 유산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역겨운 부분은 확실하게 도려내고 넘어가야만 했다.
“……말인즉슨 너는 지금 로건과 내가 싸우기를 종용하고 있는 거군.”
“아니. 종용하지는 않았어. 네가 원한다면 그냥 그렇게 챔피언 벨트를 가지고 살아가도 아무 문제는 없겠지.”
하지만.
“내가 이걸 말해버린 이상, 누군가는 분명 내 말이 옳다고 생각하겠지.”
챔피언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절대적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가 확실히 챔피언이라고 인정을 받아야만 진짜 챔피언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말해버렸다.
ACW에 얽힌 추악한 진실을.
그로서 러셀 오메가의 벨트는 점점 가치를 잃고 퇴색되고 말 터였다.
실실 웃고 있자니 날아드는 펀치.
빠악!
[Uooooooooooooooooohhhhhh!]
거기에 순간 바닥을 나뒹군 나는 앞에 서있는 러셀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반격은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러셀은 이미 충분히 대미지를 입은 상태니까.
“…….”
무슨 사자라도 죽일 눈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던 러셀이 그대로 마이크를 던지고 링에서 퇴장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그런 놈에게 이어지는 야유.
나는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서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소리쳤다.
“뭣들 하냐~ 챔피언께서 나가시는데 멋지게 자기 음악 틀어드려야지!”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러자 나오는 음악.
팬들 모두가 웃는 가운데, 러셀 오메가는 본전도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 * *
내 말에 틀린 건 없었다.
확실히 ACW 월드 챔피언의 소유자는 할리우드 로건이었다. 그가 나가고 잭 제럿이 다시 이어가기는 했지만.
그건 확실하게 챔피언을 넘겨받은 게 아니었으므로 무효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내가 한 말.
프로레슬링 업계가 순수성을 잃어버렸다는 말은 다른 의미로 커다란 파장을 낳고 업계 전역을 들끓게 했다.
일단, WWF 측의 선수 몇몇이 거기에 대해서 SNS에 의견을 게시했다.
나를 욕하는 이들도 많았고 반대로 응원하는 글도 많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나는 응원하는 글이 좀 걱정되는 것을 느꼈다.
대표적으로 사모아 고가 다음과 같은 식으로 SNS에 글을 남겼는데.
[계속 나아가라 형제여. 너와 이 업계를 위해 나도 오늘 싸울 것이다.]
C.M. 펑크도 나를 응원했다.
[신이 한 말이 틀리지는 않았지. 러셀 하트를 그런 식으로 떠나보낸 여기 이 회사는 분명히 구린 부분이 있음.]
이러니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바트한테 깨지겠군.’
그래서인지 곧바로 다음 날, 펑크의 SNS 게시글이 삭제되고 그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I Wanna Kill Him.]
피식 웃은 나는 이렇게 답장했다.
[Use A Double Barrel.]
더블 배럴 샷건.
WWF에서 잘해나가고 있는 놈들이 날 응원해줌으로 인해 부킹에 불이익을 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랜스 오튼 같은 경우에는 그런 내 메시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그 자식을 다시 만나면 곧바로 안면에 펀치를 꽂을 것이다. 그 개자식은 업계의 모두를 모욕했다.]
그걸 본 나는 쓰게 웃었다.
최근 들어 다시 악역으로서 잔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녀석은 기가 막히게 케이페이브를 지켰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트위티를 밑으로 내리자니 그런 오튼의 의견에 팬들이 의견을 달았는데.
오튼 이 미친놈이 거기에 발끈하면서 키보드 배틀을 붙어버린 것이었다.
[넌 신이랑 같이 여행도 다닌 친구인데 응원은 못 해줄망정 왜 그럼?]
┗[그 자식이 WWF를 떠난 시점부터 우리 관계는 끝났음. 나는 신을 증오하고 WWF 챔피언으로서 놈의 단체를 언젠가 박살 내줄 생각임.]
[니 R.K.O. 구림.]
┗[그럼 안 보면 되겠네.]
┗[응~ 안 봐~ 신이 최고임~.]
┗[그러던가.]
“…….”
너무 찌질하잖니. 오식아.
나는 황당해 말을 잇질 못했다.
녀석은 아예 다음 날 아침, 트위티 계정을 일시적으로 정지시켰다.
그런 식으로 자잘한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하나는 확실했다.
내 말은 큰 화제가 되었다.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로건은 ACW에서 수상한 정황을 보였고, 러셀 오메가는 거기에 직접 그를 조지기 위해 찾아왔다가 불편한 진실만 듣고는 자기 단체로 돌아갔다.
팬들은 큰 흥미를 느끼겠지.
그전까지 쉬쉬하면서 지나간 사건들이 재조명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주.
11월 3주차의 위클리 쇼.
그 시작은 바로 러셀 오메가가 회사의 부사장인 데릭 비숍을 찾아가서 한 가지를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로건과 싸우게 해주십시오.”
[Uo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그랬다.
이 상황의 가장 좋은 해결법은 바로 러셀이 로건을 쓰러뜨리며 ACW의 진정한 챔피언으로 우뚝 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숍은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왭니까?”
“그 남자는 너무 위험해.”
“링에서 총이라도 쏜답니까? 반드시 박살을 내줄 테니 시켜주세요.”
“신이 한 말이라면 신경 쓰지 말게나. 어차피 2류 단체의 2류 선수에 불과한 놈 아닌가. 그런 식으로 남의 관심을 끌어야만 살 수 있는 놈이지.”
“그렇지 않습니다.”
“…….”
“팬들 모두가 그놈의 말을 부정하건 긍정하건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챔피언십의 가치를 훼손시킨 선수로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습니다.”
러셀의 논리는 명확했다.
그렇기에 팬들도 그를 응원했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그들은 기대하는 것이었다.
러셀 오메가가 할리우드 로건을 꺾고 다시금 이 단체에 ACW 월드 챔피언십의 가치를 가져다줄 것임을.
하지만.
기세는 정말로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그럴 시기는 아니었다.
“크리스 젠코와의 경기가 잡혀 있지 않나. 일단 그것부터 끝을 내고…….”
“그래, 그렇게 해야지.”
러셀의 말을 끊는 누군가.
거기에 순간 의아해 돌아본 러셀과 함께 이동한 카메라가 할리우드 로건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Bo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할리우드 로건은 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완벽하게 ACW의 적이 되었다.
“여긴 어쩐 일이지?”
하지만 러셀은 의외로 침착하게 그의 등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로건이 그 사실을 가볍게 지적했다.
“날 찾아서 PWA까지 오더니. 의외로 침착하게 서있군. 러셀 오메가.”
“어차피 독 안에 든 쥐니까.”
러셀은 로건의 곁으로 다가섰다.
“한판 붙어보자고. 로건. 내 어깨에 있는 이 벨트를 걸고서 말이야.”
“……그리고 미안하지만, 나는 신의 의견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네.”
“뭐?”
순간 놀라는 러셀.
팬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신은 마치 자신이 로건을 시켜서 러셀의 어그로를 끌었다는 듯이 말했지만 로건은 그 사실을 부정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챔피언은 자네야. 그리고 나는 안타깝게도 싸우기에는 나이가 많지.”
“무슨 꿍꿍이야?”
“말했듯이 나는 단지 자네에게 조금 더 쉬운 길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여기에 왔을 뿐이라네.”
“로건…….”
“조용히 하게나. 비숍.”
뒤쪽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는 비숍을 제지한 뒤, 로건은 넉살 좋게 러셀의 어깨에 팔을 두르려고 했다.
비록 러셀이 물러나 그건 실현되지 않았지만, 로건은 확실하게 말했다.
자신에게 적의는 없다고.
“신과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러셀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팬들 역시도 그랬다.
뭔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다.
할리우드 로건은 반드시 그럴 남자였다. 때문에 신뢰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로건은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그 친구도 나를 이용하지 않았나. 완전히 정이 떨어져 버려서.”
“…….”
[Booooooooooooooooooooooo-!]
“지난주에는 내가 좀 실례했네. 잭 스웨어, 그 멍청한 놈이 얼굴을 치는데 순간적으로 크게 흥분해서.”
그런 식으로 너스레를 떠는 로건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 꿍꿍이는 미지수였다.
자신은 정리했다고 말하는 신과의 관계 역시도 그랬다. 할리우드 로건은 절대로 신뢰할 수 없는 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안면을 차서 내쫓기에는 상황이 조금 일렀다.
그렇기에.
“자네와 내가 손을 잡는다면 정말로 세상을 자네 걸로 할 수 있다네.”
로건의 그런 제의가 러셀에게는 딱히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에게도 썼던 말이군.”
가볍게 로건의 가슴을 어깨로 밀어낸 그가 곧바로 사무실을 떠났다.
카메라는 그런 러셀을 음흉한 미소와 함께 돌아보는 로건의 모습을 잠시 동안 팬들에게 계속 보여주었다.
그 본심이 드러나는 건 언제인가.
팬들은 눈 한 번 깜빡이지 못한 채 그런 로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