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46화 (446/634)

446.

기타 파편이 흩날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픈 건 아니었다.

‘확실히 그렇군.’

러셀은 바닥에 쓰러지며 생각했다.

프로레슬링에서 사용되는 기타는 특수 제작된 물품으로 애초부터 잘 부서지도록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줄 같은 경우도 위험할 여지가 있어서 특수 제작한 고무줄을 사용했다.

그렇게, 러셀의 등을 후려치며 산산조각 난 기타 파편이 허공에 흩날렸고.

[Uoooooooooooooooohhhhh……!]

경악에 빠진 팬들의 목소리와 함께 로건은 박살난 기타를 바로 내던졌다.

모두 계획의 일부였다는 듯이.

그렇게 쓰러진 러셀의 앞으로 다가간 그는 바닥에 떨어진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Daddy’s Home.

아빠 왔다.

그렇게 중얼거린 로건은 이윽고 쓰러진 러셀의 등에 발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본디 자신의 소유물인 챔피언 벨트를 허공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드디어 그 본성을 드러낸 로건의 모습에 팬들은 링으로 쓰레기를 던졌다.

팝콘과 콜라를 필두로.

온갖 물건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로건은 그걸 마치 축복처럼 느꼈다.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고개를 든 사내는 잠시 냄새를 맡았다.

승리의 냄새를.

드디어 돌아왔다.

왕의 귀환이었다.

* * *

정규 방송이 끝난 뒤.

ACW에서는 계속해서 경기장의 상황을 수습하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

로건이 벨트를 들고 퇴장하자 링 안으로 난입하는 관객들마저 나오며 상황은 완전히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그건 각본 상의 문제일 뿐.

그로 인한 화제성을 느낀 직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nWo가 대박을 칠 때 같았다.

각본은 진짜로 받아들여졌고, 거기에 깊이 몰입한 팬들이 격하게 반응했다.

좋은 현상이었다.

로건은 ACW 월드 챔피언십을 가지고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왔고, 그걸 지켜보던 비숍이 비명을 질렀다.

“로건……!”

그래, 사실 이 모든 건 할리우드 로건의 완벽한 악역 연기 덕분이었다.

그가 ACW 팬들을 엿 먹이고 떠났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그것을 각본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거기에 실제로 ACW가 피해를 입었으므로 비숍은 순간 로건의 이름을 부르고도 쉽사리 최고였다고 솔직하게 칭찬을 건네지 못했다.

그 마음을 알고 있는 로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들었다.

Thumb Up.

엄지를 치켜드는 동작 하나로 비숍을 배려한 로건은 그대로 모니터링TV로 이어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모두 촬영 중이었다.

방송은 이미 끝났지만 다음 주 오프닝에서 사용할 장면이 흘러나왔다.

심판진의 부축을 받은 러셀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링에서 퇴장했다.

팬들은 그를 응원했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멋진 장면이었다.

위기의 영웅.

러셀 오메가.

그리고 모두를 엿 먹인 악당.

할리우드 로건.

두 사람의 관계는 환상적이었다.

심판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온 러셀은 연기를 끝내고 로건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로건.”

“……멋지게 해내자고.”

씨익 웃는 로건.

두 사람의 악수가 이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어쩐지 코끝이 찡한 것을 느낀 비숍이 지휘를 이어갔다.

“자자, 그럼 정리합시다!”

쇼가 끝났다는 안내 방송이 나갔고 팬들이 경기장에서 퇴장을 시작했다.

보안요원들이 각자 위치에서 그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고 있는 동안 로건과 러셀은 백스테이지로 퇴장했다.

러셀은 깊은 고양감을 느꼈다.

이미 다들 예상하던 배신이었다.

하지만 로건의 악역 연기가 너무나도 완벽했기 때문에 팬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엄청난 반응을 보내주었다.

러셀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신이 말한 대로군요.”

“뭐?”

“그 녀석의 말대로, 저는 당신을 뛰어넘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줄 수 있어 다행이군.”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러셀은 아주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지금까지의 행적이나 주변의 평가를 들어보자면 로건은 이처럼 손쉽게 잡을 해줄 만한 인물이 절대 아닌데.

무슨 바람이 든 걸까.

“저, 로건.”

“또 뭔가.”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내가 안 될 짓을 하고 있나?”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된 거 아닌가.”

고개를 끄덕인 로건은 러셀이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대강 이해했다.

“이상한가? 내가 잡을 해주는 게.”

“그, 그런 말은 아니었습니다.”

“아니긴 뭘. 표정에 다 쓰여있구먼.”

로건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내가 욕심을 좀 부리기는 했지.”

“…….”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했어. 그러지 않았더라면 nWo는, 그리고 할리우드 로건은 이 업계에 절대로 한 획을 긋지 못했을 걸세. 안 그런가?”

“그건…….”

“욕심은 부리라고 있는 거야. 러셀, 자네도 욕심을 부릴 줄을 몰라서 결국 그렇게 된 것 아니겠는가?”

“WWF에서 말입니까.”

“그래. 바트 맥센은 반대로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악당으로 살아남은 거지. 그리고 펜을 쥘 권리를 지녔어.”

역사에 기록하는 건 바트였다.

“나는 남이 내 인생에 대해 기록하는 걸 원하지 않아. 그러니까 욕심을 부려서라도 그 권리를 빼앗아온 거지. 뭐, 그것도 마지막에 다 망쳤지만.”

“스타게이트에서…….”

“맞네.”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난, 그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네. 또 다시 바트 맥센의 밑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

“그쪽에서도 제안이 왔어.”

“ACW를 나온 직후 말입니까?”

“그래, 나보고 영웅으로 돌아오라더군. 캡틴 로건으로서 말이네. 하지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싶어서.”

그렇게 돌아가봤자 결국 또 다시 바트 맥센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될 뿐.

그렇기에.

로건은 악당으로 죽기로 결정했다.

그게 자신이 생각한 커리어의 끝.

“갈 때가 되면 바트 맥센을 엿 먹이면서 가는 게 우리 의무 아니겠나.”

“……그렇군요.”

그제야 로건의 속내를 이해하게 된 러셀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은 간단했다.

“제가 이어받겠습니다.”

그는 결의에 찬 눈으로 이야기했다.

로건의 말을 듣자니, 자신이 확실히 욕심을 부려야 할 때임을 실감했다.

“그리고 바트 맥센을 제대로 엿 먹여드리죠.”

“……솔직히 말해서.”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로건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 그렉 하트 놈의 조카에게 마지막으로 잡을 해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하하, 그러고 보니 저희 삼촌하고 사이가 영 껄끄럽다고 하셨죠.”

“그래, 그 친구는 너무 깐깐해.”

한숨을 내쉬는 로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 러셀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 * *

실제 러셀과 로건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과는 달리, 각본 상으로는 최악의 관계로 치닫게 되었다.

로건은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훔쳤고, 그렇게 2010년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찾아온 2011년.

1월 1주차의 위클리 쇼.

ACW와 WWF는 각각 작년의 베스트 영상을 편집해 내보내는 형식으로 첫 위클리 쇼의 방영을 끝마쳤다.

연초의 휴식을 겸하는 동시에 새로 유입된 팬들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일종의 총집편이었다.

개중에서 WWF의 쇼는 ACW와 비교했을 때 꽤 박한 평가를 받았는데.

지난 1년간의 스토리 요약 총집편에서 신과 러셀 하트, 두 선수의 존재를 철저할 정도로 배제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스탈린 시절에 숙청당한 측근들 같았다. 그건 각본 밖에서의 개입을 느끼게 했고 팬들을 불쾌하게 했다.

반면.

ACW는 그대로 모두 보여주었다.

2010년 4월 스타게이트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모조리 각본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거리낄 것은 없었다.

물론, 비싼 표값을 치르고 와준 팬들을 앞에 두고서 그러한 졸전을 펼친 것은 사죄해 마땅할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로건은 정말로 미움받는 악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팬들은 로건이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강탈해간 사건에 분노하면서도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왜냐면 러셀 오메가가 그 벨트를 다시 가져오리라 굳게 믿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의 흐름 속에서.

2011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스타게이트 vs 레슬 임페리움.

ACW vs WWF.

신 vs 바트 맥센.

신 vs 러셀 오메가.

그 최종 결전까지 약 4개월.

나이트로의 오프닝은 12월의 페이퍼뷰였던 이블-선의 마지막 부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 어어?!]

콰지익-!

러셀 오메가의 등에 꽂히는 기타.

[Booooooooooooooooooooooo-!]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로건 저 개자식이 또 뒤통수를 쳤습니다! 우리 모두가 속았어요!]

쓰러진 러셀을 앞에 두고 챔피언 벨트를 강탈해 링을 빠져나가는 로건.

그리고 본격적인 쇼가 시작되었다.

치지익-!

시청자들이 보는 TV 스크린이 흑백으로 변하면서 기타 연주가 나왔다.

[Boooooooooooooooooooooo-!!]

그와 함께 시작되는 야유.

하지만 이 남자는 우매하며 연약한 대중들의 반응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담력의 소유자였다.

할리우드 로건.

흑백 화면 속.

프레임은 늦어졌고.

조명은 튀었다.

그리고 화면에는 마치 검은 얼룩 같은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쇼를 뒤바꿀 정도로 거대한 악당.

할리우드 로건.

허리에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두른 그가 입장로로 모습을 드러냈다.

Voodoo Child.

핸드릭스의 유려한 연주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었다.

선글라스에 두건, 그리고 민소매 셔츠. 검은 바지 차림의 로건은 이전의 그 악랄하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능청스러운 양아치.

그리고 ACW의 왕.

하지만 그 주변의 nWo 플레이어들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었다.

케빈 대시는 부상으로 은퇴했고.

스카티 홀은 알코올 문제로 나갔다.

그럼에도 그는 최강이었다.

최악의 악당.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로 강력했던 영웅에서 타락한 마왕이 된 남자.

그것이 할리우드 로건.

[Booo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계속 이어졌다.

연주도 계속되었다.

링 바로 앞까지 입장로를 걸어나온 로건은 그대로 허리에 두르고 있던 벨트를 풀고 기타처럼 쥐었다.

그리고 능청스럽게 연주를 했다.

“크하하하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로건의 모습은 그야말로 러셀 오메가가 넘어서야 할 산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링으로 올라가는 로건.

팬들의 야유는 그때까지도 계속되었고, 그럼에도 지금 이 링은 로건의 것이었다.

치지익-!

화면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로건은 허리에서 풀어낸 벨트를 어깨에 걸치고 마이크를 받아 잡았다.

[You Su-k! You Su-k! You Su-k! You Su-k! You Su-k! You Su-k!]

팬들은 큰 야유를 보냈다.

그런 상황에서 로건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팬들이 진정하길 기다렸다.

HollyWood라고 쓰인 검은 두건.

흰색 테가 인상적인 선글라스.

왼쪽 귀에는 화려한 링 귀걸이.

흰색과 검은색의 투톤 수염.

허리의 빅 버클 벨트까지.

로건은 자신의 화려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과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Daddy’s Home. Baby.”

[Booooooooooooooooooooooo-!]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링 안으로 쓰레기가 날아들었다.

꺼져라. 로건.

꺼져라.

너 같은 놈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WWF로 가서 바트 맥센의 똥구멍이나 핥으면서 시간을 보내라.

배신의 대가는 잔혹했다.

팬들은 더 이상 로건이라는 남자를 자신들의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슬슬 인정들 하지 그런가. 신의 말이 맞았어. 그래, 이 벨트는 내 거야.”

목적을 이룬 그는 팬들에게 솔직한 자신의 심정과 목적을 털어놓았다.

그랬다.

러셀의 앞에서는 분명히 신과는 분명 끝났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니었다.

“그 친구가 참 영리해. 그리고 내게 용기도 주었어. 또, 그 말이 맞아. 날 대체할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지.”

[Booooooooooooooooooooooo-!]

“물론, 여기에 대한 반발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네. 형제들. 따라서 나는 그 멍청한 애송이…… 아, 러셀 오메가 그 개자식을 말하는 건데.”

로건은 씨익 웃었다.

“그놈을 지금껏 곁에서 지켜봤지. 그리고 결론이 나왔어. 놈으론 안 돼.”

로건은 영악한 미소를 지었다.

“실력적으로도, 단체의 얼굴로서의 힘도 모든 게 나한테 한참은 밀리지.”

지금까지 선수들과 경기를 주선한 것도 모두가 러셀 오메가의 경기 스타일을 보기 위한 그의 계략이었다.

“받아들이게나. 형제들. 나는 이 단체의 영원한 챔피언이고. 이제 내 친구를 불러 축배를 좀 들어야겠네.”

로건이 입장로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의 흑막.

로건을 부추기고 러셀로부터 벨트를 빼앗도록 만든 남자.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그 음악이 울려 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