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51화 (451/634)

451.

2011년 2월.

결전까지 약 2개월이 남은 시점.

ACW와 WWF는 각자의 초대형 페이퍼뷰를 향해 계속 쇼를 이어나갔다.

스타게이트.

그리고 레슬 임페리움.

업계는 천천히 끓는 냄비 같았다.

아직은 조용했지만 때가 되면 전 세계에 엄청난 열기를 불러올 것 같았다.

업계 관계자들부터 팬들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꼈다.

이번에 펼쳐질 두 단체의 대결은 분명히 이후 프로레슬링 업계의 흐름까지도 바꿔놓을 만큼 거대하다고.

일단 두 단체에서 각각의 메인이벤트로서 내밀고 있는 카드가 그러했다.

WWF 측은 더 팍(C) VS 숀 시나.

ACW 측은 러셀 오메가(C) VS 신.

단체의 최고 타이틀을 걸고 펼치는 경기. 동시에 역사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순위권에 들만한 대진이었다.

즉.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 간의 대결이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채도가 낮은 방에 이어지는 목소리.

바트 맥센은 눈앞에 앉은 여성을 바라보며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러는 편이 좋아. 괜히 길게 가져갔다가 서로 손해만 보게 될 테니까.”

“…….”

“그리고 옅어지겠지.”

서로에 대한 분노가.

“재미있는 말씀이시네요.”

거기에 티파니 맥센이 대답했다.

“신에게 분노를 느끼신다고요.”

“그야 물론이지. 내가 놈에게 얼마나 굽혀줬는데 그걸 버리고 떠나? 그 누구도 받지 못했던 호의인 것을.”

“…….”

“꼭, 잘근잘근 밟아줄 생각이다.”

바트 맥센은 차갑게 이야기했다.

탁하게 가라앉은 분노가 느껴졌다.

마치 빙산이 뒤엉킨 바다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감정을 가라앉힌 듯했다.

티파니는 쓰게 웃었다.

얼핏 봐도 감정적인 인간으로 느껴지는 바트 맥센이지만, 사실은 그나마도 많이 참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신에게 정말로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런 부분은 역시 닮았구나.’

문득 혈연의 진함을 느낀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거기에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무슨 말이냐?”

“저는 이 회사에 소속되었던 선수들을 가족처럼 생각해왔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께 항상 분노를 느껴왔죠.”

“나라고 아니었겠느냐? 나 역시 선수들을 항상 내 가족처럼 생각했다.”

“말만 그러시잖아요.”

티파니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정말로 가족처럼 생각한다면 그 선수들이 혹사로 점점 망가져 가고 있는데 그걸 가만히 놔둘 수 있을까.

“인정하세요.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한들, 아버지는 이 업계와 선수들에게 정말 쓰레기 같은 짓을 해왔어요.”

“……삶이란 게 원래 그렇다지만.”

바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건 패배자의 논리다. 티파니.”

“뭐라고요?”

“그래서, 내가 키워낸 모두가 그러더냐? 아니다. 당장 지금만 보더라도 시나나 팍은 내가 아니었더라면 평생 맛보지 못했을 부를 거머쥐었지.”

자신은 악마가 아니다.

바트는 그렇게 스스로를 변호했다.

“나는 단지 이 비즈니스에 꿈을 가진 이들에게 기회를 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그걸 잡지 못한 많은 이들이 모여서 바트 맥센을 욕할 뿐이라고.

티파니는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선수들이 돈 좀 벌었다 싶으면 다 그 회사에 학을 떼고 나가버리는 거군요.”

“……열정이 식은 게지.”

“정말로요? 그렇다면 왜 로건 같은 남자가 ACW로 선수 복귀를 했죠?”

“돈이 필요했으니까 그런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티파니는 눈썹을 찡그렸다.

로건 본인도 그렇고, 그 딸인 브리 로건까지 지금 미국 컨트리 음악계에서 얼마나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변명은 그쯤 해두시죠.”

“…….”

“저는 이 업계를 아버지께 잘 이어받아 앞으로 더 성장시킬 생각이에요. 그리고 그걸 위해 할 일이 있죠.”

바로 썩은 관행을 끊어내는 거였다.

과거 프로레슬러들에게는 WWF에서 뛴다는 것 이외에는 대체재가 없었다.

그래서 싫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이 회사와 일하는 수밖에 없었고, 바트 맥센은 바로 그 점을 이용했다.

선수들을 속이고, 혹사하게 만들고, 이 업계가 질려서 떠나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떠나지 않는 자들은 프로레슬링에 눈이 먼 바보거나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왜 브룩 레스너가 UFD로 갔겠어요? 팍이 왜 영화계로 갔을까요?”

“…….”

“모두 당신이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프로레슬링은 위대한 선수들을 낳고도 발전하지 못한 채 도태되었던 거죠.”

프로레슬러들이 엄청나게 고생을 한다는 사실은 업계에 들어오려는 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정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재능 있는 선수라도 ‘이 정도 재능이면 다른 곳을 찾지.’라면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뿐이겠는가.

“누가 진통제 남용으로 인한 심장 마비로 죽어도, 아버지는 그 죽음을 조롱하면서 드라마에 써먹었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선을 넘어도 한참은 넘었어요. 바트. 이제 그 벌을 받을 시간이에요.”

“……아직은 아니지.”

바트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가 죽기 전까지 아니야.”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는 그 모습에 티파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그럴 만하기는 했다.

더 팍.

그리고 숀 시나.

과거와 현재의 두 아이콘.

그 대결은 ‘Once In A Lifetime’이라는 부제를 내걸고 크게 홍보되었다.

‘인생에 단 한 번.’

그렇기에 전문가들 대부분은 신과 러셀 오메가의 대결이 두 사람의 싸움에 미치지 못하리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티파니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근거 또한 존재했다.

더 팍이 대단하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과거의 인물. 또한 현재에는 영화계에서만 그 명성이 클 뿐이었다.

하지만.

신과 러셀, 그리고 숀 시나와 같은 스타들이 만들어온 현 시대는…….

분명히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뜨거운 남자들의 시대였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요새 ACW는 보세요?”

“전혀.”

“한 번쯤은 시간을 내서 봐주세요.”

이유도 모른 채로 지지 말고.

그렇게 말을 맺은 티파니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

바트 맥센은 그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었다.

만약, 아주 만에 하나.

자신이 패배할 경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를 리 없다.

왜냐면, 신이 회사를 떠난 뒤 그가 출연하는 쇼만큼은 계속 챙겨 봤으니까.

ACW, 그리고 PWA를 가리지 않고 누비며 계속 싸우고 있는 그 남자를.

그리고 확실히.

신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 *

러셀 오메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 벨트에 도전하고 싶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라.’

거기에 대한 내 답은 간단했다.

‘좋아.’

어디 해보자고.

그리하여 스타게이트까지 약 두 달.

ACW는 월드 타이틀의 도전자를 가려내기 위한 토너먼트를 시작했다.

8강부터 시작한 나는 차례차례 선수들을 쓰러뜨리며 위로 올라갔다.

매주 한 사람씩.

2월 2주차에 8강.

2월 3주차에 4강.

그리고 2월 4주차에는 ACW의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와 결승에서 만나 결승 경기를 펼치게 되었다.

바로 크로우였다.

물론, ACW 위클리 쇼에서 펼쳐진 경기인 만큼 분명 팬들은 나보다 크로우에게 더 큰 환호를 보내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임한 경기였지만.

어째서일까.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생각보다 나에 대한 응원도 컸다.

크로우의 뒤를 이어 링에 오른 나는 예상을 좀 빗나간 반응에 피식 웃으며 천천히 경기를 준비했다.

어깨에 걸치고 있던 코트를 벗고 반대편의 크로우를 바라보자 그 역시도 좀 놀란 듯 웃으며 날 보았다.

‘이 영감이.’

각본을 슬쩍 벗어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도 놀라기는 했다.

분명 반응이 이런 식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시작도 전에 이렇게 큰 반응이 나오다니.

일단, 나를 지지하는 PWA 팬들이 ACW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매했다.

티파니가 말하기를, 얼마 전부터 급격하게 ACW 위클리 쇼의 암표 값이 상승했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게 이런 뜻이었군.’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팬들이 내가 러셀 오메가에게 도전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덕분에 의욕이 샘솟았다.

땡땡땡-!

링 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고, 크로우와 나는 팬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 속에 곧바로 락 업으로 맞붙었다.

쿵-!

[Waaaaaaaaaaaaaaaaagggghhh!!]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팬들이 원하고 있다.

그 사실을 느낀 것만으로도 몸에 아드레날린이 돌았다.

나는 곧바로 크로우를 반대편으로 힘껏 밀어냈다.

콰앙-!

나가떨어지는 크로우.

[Waaaaaaaaaaaaaaaggghhhh!]

그와 나는 서로 엇비슷한 키였으나.

나는 육체적으로 이제 막 전성기를 지나고 있는 상태였고, 노련함과 육체적인 힘이 정확히 균형을 이뤘다.

그러므로 그 기세를 활용해 초장부터 크로우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서는 크로우와 체인 레슬링을 벌이며 팬들에게 지금 우리의 상황이 어떤지를 전달했다.

처음에는 잠시 크로우가 주도권을 가지고 나를 몰아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우득-!

손목을 잡힌 채 팔이 꺾였고 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크로우에게 끌려갔다.

그대로 팔을 잡아당기며 계속 충격을 주는 크로우.

“큭……!”

잠시 버텨내던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그대로 앞으로 몸을 내던졌다.

깔끔한 텀블링.

쿵!

링 바닥에 착지하며 꺾인 팔을 푼 나는 그대로 크로우에게 주먹을 날렸다.

빠악!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크로우.

그 뒤쪽으로 돌아 들어간 나는 허리를 잡아 메치며 바로 공세에 들어갔다.

[Waaaaaaaaaaaaaaaagggghhh!!]

반응은 환상적이었다.

누군가 지금 이 광경을 본다면 나를 ACW 최고의 스타로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허나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런 반응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최선을 보여줘야만 했다.

2월 한 달 내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러셀 오메가와 싸우기에 걸맞은 레슬러임을 오늘 역시 증명해내야만 했다.

크로우.

분명히 만만찮은 상대였다.

그를 상대로 반응을 가져오는 건 대다수의 선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Yeeeeeeeeeeeeeeaaaahhhh!!]

그게 가능한 소수에 속했다.

쩌억-!

방심한 순간 터지는 헤드벗.

연이은 공격을 버텨내지 못한 크로우가 무릎을 꿇었다. 뒤이어 나는 녀석을 다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드롭킥.

퍼억!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안면을 걷어차는 킥. 크로우가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Uoooooooooooooooooohhhh!!]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로 내달려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간 나는 크로우가 일어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사일 드롭킥.

퍼억!!

다시 한 번 나가떨어지는 크로우.

나는 속도를 더 높였다.

쾅!

측면 낙법으로 떨어진 반동을 이용해 곧바로 벌떡 일어났다.

이어 쓰러진 크로우의 머리를 겨드랑이 아래에 끼우고 그대로 뽑아들었다.

[Uooooooooooooohhhhh!!]

내 힘에 놀라는 관객들.

버티컬 수플렉스.

상대방을 지면으로부터 거꾸로 들어 올려 ‘유지’한 뒤 쓰러지는 수플렉스.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내던지는 스냅 수플렉스와 달리 버티고 서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멋진 기술이었다.

그리고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을 버텨내면서 팬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Uoooooooooooooohhhhh……!]

나는 100kg이 넘는 크로우를 잡고서 버텨내다 이내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콰앙-!!

최전성기.

그러한 표현으로 모든 설명이 됐다.

지금 이 시기가 내 커리어에서 가장 지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였다.

정확히는, 그 상승세를 탔다.

러셀 오메가.

내 커리어 사상 최대의 숙적.

무려 1년을 지체한 경기였다.

그렇기에 나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ACW 팬들조차 지금은 내 편이었다.

그 기세에 올라타 나는 크로우를 계속 몰아붙이며 승리를 향해 전진했다.

물론, 결승전인 만큼 크로우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경기 내용이 일방적이라면 나조차도 역반응이 나올 터였다.

따라서 크로우는 내가 보이는 상승세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반격했다.

그렇게 점점 격렬해지는 경기.

팬들의 반응도 점차 올라왔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크로우는 어떻게든 경기를 끝내려는 나를 붙잡고 계속해서 반격을 가했다.

퍼억!

“큭?!”

내 복부를 힘껏 걷어찬 크로우가 뒤로 물러나 로프 반동을 하고 뛰어올랐다.

크로우의 팔이 내 머리를 휘감았다.

점프 후 떨어지는 충격까지 더한.

DDT.

투콰앙-!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건 좀, 큰데.’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 틈을 타 내 밑으로 돌아 들어간 크로우는 그대로 다리를 잡고 들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스콜피온 데스락.

그 준비 자세를 본 팬들이 열광했고, 크로우는 바로 기술사용에 들어갔다.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걸 그냥 걸려줄 수는 없었다.

왜냐면 이 스콜피온 데스락은 나 역시 사용하는 샤프 슈터와 동형기니까.

나는 곧바로 무릎을 접었다 펴며 기술이 들어가기 전에 크로우를 밀어냈다.

“큭……!”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크로우.

직후, 핸드스프링으로 벌떡 일어난 나는 이쪽이 자세를 잡기 전에 다시 달려들고 있는 크로우를 바라보았다.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온몸의 근육에 혈액이 흐르며 그 어떤 순간보다도 빠르게 생각을 실현했다.

슈퍼 킥.

쫘악-!!

[Uooooooooooooooooooohhhh!!]

거의 코앞까지 달려든 크로우에게 반쯤 억지로 킥을 차 넣은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지려고 했다.

‘아니, 지……!’

하지만 그 상태에서 바닥에 손을 대고 텀블링을 하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자, 무릎을 꿇은 크로우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슈퍼 킥에 맞아 순간 정신줄을 놓은 그에게 나는 곧바로 몸을 내던졌다.

무릎을 세우며 꽂아 넣었다.

스팅거.

쩌억-!!

순간 울려 퍼지는 호쾌한 타격음.

크로우와 나는 링을 뒤엉켜 나뒹굴었다. 나는 곧바로 핀 폴로 이어나갔다.

팬들은 모두 일어선 상태였다.

[1……!]

[2……!!]

[3……!!]

땡땡땡-!!

[Waaaaaaaaaaaaaaaaaaaggghhh!!]

경기장이 떠나갈 듯 이어지는 환호.

그로써 결정되었다.

신 VS 러셀 오메가.

In Star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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