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
‘미국의 역사에 남는다고.’
건방진 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시나는 어쩐지 신의 야망을 표현하는 데 그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없었다.
그의 성공은 개척 정신의 일환.
캐스켓-테이커로부터 질리게 들은 말이었다. 그렇기에 신이 이 업계에서 큰 존재감을 가졌다 말했다.
프로레슬링은 프로파간다를 통해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콘텐츠였다.
선과 정의의 영웅, 캡틴 로건이 나타나 동양이나 중동의 악당을 물리치며 미국의 정의를 세상에 보여준다.
바로 그게 프로레슬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점차 변화했다.
락콜드의 시대에는 노동자와 기업가의 싸움을 보여주며 다시 크게 떴다.
시대에 따라 프로레슬링은 변했다.
그 가운데에서 신은 이전까지 업계에 없었던 남자로서, 바로 이곳에 자신의 시대를 만들었다.
신은 그 시대를 뭐라고 부를까.
그렇다면.
시나는 과연 뭐라고 부를까.
지금 프로레슬링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유례가 없는 큰 호황기를 누렸다.
WWF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시나였다.
숀 시나의 상품 판매량은 거대한 기업 하나를 훨씬 더 크게 성장시켰고.
그런 가운데 시나는 자신이 내거는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Never Give Up.
절대 포기하지 마.
Rise Above Hate.
증오를 넘어서.
Hustle, Loyalty, Respect.
투지, 충성, 존중.
그 모든 게, 인간 숀 시나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어려운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
이혼 가정의 아이들.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들.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
그들에게 시나는 앞선 말들과 행동으로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물론, 그걸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다.
2006 원 데이 스탠드.
그곳에서 시나는 자신이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수많은 야유를 받았다.
그래서 꺾여 넘어지려고 할 때, 그는 자신을 믿어주는 팬들의 지지를 받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인간 숀 시나를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자 계속해서 싸워왔다.
이제는 다들 그것을 이해해주었다.
악당으로서 시나를 부정해도, 패배라는 과정을 통해 그것을 띄워주거나.
같은 선역이라면 시나는 대단한 선수라고 해주며 그를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립 상대는 아니었다.
더 팍.
과거의 아이콘.
그는 내내 시나를 짓밟고 뭉갰다.
1년 내내.
경기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도 그것은 바뀌지 않았다. 팍은 특유의 캐릭터를 통해 시나를 짓밟고 뭉갰다.
이런 식이었다.
2011년 3월 12일, 월요일.
링에 오른 더 팍은 자신의 전매특허인 ‘콘서트’를 열었다. 팍이 상대와 대립할 때 흔히 쓰는 방식이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며 상대방을 모욕하는 말을 쏟아내는 콘서트.
팍의 연주와 함께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팬들은 큰 호응을 보냈다.
그리고 나온 가사는 충격적이었다.
[시나는 불알 두 쪽이 없지. 하지만 우리는 춤을 추지 클리블랜드 Pock.]
[Pock! Pock! Pock! Pock! Pock! Pock! Pock! Pock! Pock! Pock!]
여기서 팍이 말하는 클리블랜드는 그 날 버닝콩이 개최된 도시를 뜻했다.
그리고 보통 쓰이는 Rock이라는 단어를 Pock으로 바꾼 센스가 돋보였다.
문제는 그가 그렇게 센스 있게 얻어낸 팬들의 호응을 시나를 묻어버리기 위해서 썼다는 점이었다.
콘서트는 계속되었다.
[팍은 한 여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재능을 가졌지. 그녀는 팍을 원해. 다들 들어봐. 팍은 시나의 엄마를 황홀하게 만들어주고 떠났지. 하지만 우리는 춤을 추지. 클리브랜드 팍.]
[Uooooooooooooooooohhhhhh!]
[자자자, 그럼 여기서 이야기를 해봅시다. 오늘 밤은 Real Grown Man들이 많이 왔죠. 진짜 남자들 말입니다. 그런데, 혹시 이중에서 숀 시나의 팬들도 있나요? 어떻습니까?]
[Boo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몇몇 남자들은 시나의 팬임을 자랑스럽게 밝혔다.
[오, 오. 정말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가 여기에서 시나를 응원하는 어른 팬들에게 노래를 선물하겠습니다.]
시작되는 연주.
[다 컸는데 시나나 빠는 놈들 너희는 죽을 때까지 Pie를 먹지 못하겠지.]
[Uoooooooooooohhhh……!]
여기서 말하는 Pie는 ‘여자’였다.
[너희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티셔츠나 입는 놈들이지. Let’s Pock~.]
그 세그먼트를 들었을 때.
시나는 어느 때보다 분노했다.
자신의 팬들, 그리고 시나라는 캐릭터를 모욕하는 더 팍의 세그먼트.
그것이 지난 1년 내내 ACW로부터 WWF가 바싹 추격을 당하는 데도 영화나 찍고 있던 남자의 발언이었다.
바트 맥센은 그걸 그냥 놔두었고.
시나는 그걸 용납하지 못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팍은 완전히 이 시대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걸 그냥 가만히 놔두시다니요?”
팍은 계속해서 지금 이 시대가 자신이 레슬러로 활동하던 시절에 비했을 때 훨씬 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게 과거의 선수가 할 말인가?
대체 그것이 프로레슬링 업계, 아니, 이 WWF에 어떤 기여를 한단 말인가?
시나는 1년 내내 그렇게 당해왔다.
안 그래도 시나를 부정하고 깎아내리고 싶어 하던 안티 팬들은 그것을 빌미로 현재의 WWF를 깎아내렸다.
거기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시나도 링에 나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더 팍을 깎아내렸다.
바로 ‘랩’이었다.
“팍은 돌아와서는 절대로 다시, 여기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놈은 결국 여기를 떠나버렸지.”
[Yeeeeeeeeeeeeeeeeeaaaahhh!!]
그때만큼은 야유가 나오지 않았다.
“너는 팬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결코 여기 매주 나오지는 못하지. 하지만 난 매주 여기에 나온다고, 팍.”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넌 5년 만에 이 업계를 떠났지만 나는 10년 동안, 그리고 20년 넘어서까지 계속해서 여기에서 싸울 거다.”
팍도 거기에 반응했다.
영화 촬영장에서 찍은 영상을 초대형 스크린에 재생시키는 방식을 통해서 시나의 메시지에 응답했다.
“시나! WWF는 내 집이고! 나는 너를 위해 이 업계를 최고로 만들었다! 하지만 너는 오색찬란한 등신 티셔츠나 입고 ‘유캥씨미!’나 하고 있지!”
그는 계속해서 시나를 조롱했다.
이 시대를 폄하했다.
시나는 그와 대립을 하며 처음으로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고, 팍 역시도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시나는 팍이 결국 말로는 모두를 사랑한다고 해도 이 업계를 떠나버린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디스했다.
두 사람은 결국 레슬 임페리움이 열리기 직전, 링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시나는 흥분해 말했다.
“넌 내 모토를 구리다고 했어. 하지만, 그게 내가 여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야!!”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 누구? 시나나 빨아대는 아직 덜 자란 어른들?!”
“그래, 내 관객은 아이들이야. 수많은 아이들이 시나의 이름을 외치며 네가 조롱한 오색찬란 티셔츠를 입지.”
시나는 열변을 토했다.
“난 그게 자랑스러워! 지금 지구상 어딘가에서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난 그걸 위해서 10년 동안이나 여기에서 싸워온 거야!!”
[Waaaaaaaaaaaaaaagggghhhh!!]
“그런데 넌 어떻지?! 팍! 너는 할리우드로 떠났어! 너는 나를 이기면 다시 할리우드로 가서 영화를 찍겠지!!”
시나는 팍에게 다가섰다.
“그 벨트는 네 집안 창고 어딘가에 넣어둔 채로! 하지만 나는 달라! 나는 똑같아! 내가 널 이겨도 바뀌는 건 없다! 나는 다시 이곳에 온다! 팬들에게 내가 주장하는 가치를 전하기 위해!”
그게 숀 시나였다.
Eat, Sleep, Be Shawn Cena.
Eat, Sleep, Be Shawn Cena.
Eat, Sleep, Be Shawn Cena.
그는 변하지 않는다.
“나를 부정하는 팬들이 많은 건 알아! 하지만 그 사람들도 프로레슬링에 대한 내 진심은 알아줄 거다!!”
그러므로.
“나는 널 반드시 쓰러뜨릴 거다!!”
시나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 * *
링 세그먼트는 팍이 마지막까지 시나를 조롱하면서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렇게 레슬 임페리움 직전의 마지막 위클리 쇼가 대망의 막을 내렸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팍은 바트 맥센의 부름을 받고 잠시 그와 만났다.
경기장 안의 사무실.
바트 맥센은 불편한 표정이었다.
최근 들어 팍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서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 개인적인 부탁이란 바로, 시나와의 대립을 방해하지 말란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ACW와의 마지막 결전에서 팍의 스타성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바트로서는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시나는 아무리 열이 받는다 해도 분명히 팬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해서 쇼에 참여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한숨이 느는 것은 너무 열이 받은 시나가 혹시라도 팍에게 ‘슛’을 걸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러셀 오메가를 배신한 이후로, 바트 맥센에게는 부쩍 선수들이 통제를 벗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늘었다.
“……시나는 먼저 갔네.”
“그렇군요.”
“자네가 원하는 대로 되었나?”
“그럼요.”
팍은 미소를 지었다.
“놈은 부족한 게 가장 큰 매력이고, 그것을 정말로 멋지게 표현했네요.”
팍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시나가 부족한 선수라니. 더 팍 정도의 선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
하지만 모두가 팍의 의도대로였다.
그는 일부러 시나의 개인적인 부분과 시대까지 조롱하면서 분명 회사 측에서 듣기에 불편한 논리를 썼다.
시나는 만들어진 아이콘이다.
그게 항상 팬들의 비판점이었다.
분명 시나는 그랬다. 그는 아이콘답지 않게 자신을 증오하는 팬들을 항상 보유했고, 그게 언제나 큰 약점이었다.
그리고 팍은 그걸 정면으로 지적하면서 시나가 그런 비판적인 논리를 넘어설 수 있도록 판을 짠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모독의 수위가 세지면서 팬들을 사랑하는 시나의 심기를 크게 건드리기는 했지만.
그 모든 것은 더 팍이 숀 시나라는 남자를 밀어주기 위한 큰 그림이었다.
왜냐면.
‘약속을 했으니까.’
봐주지 않기로.
작년 레슬 임페리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배신’을 도우면서 팍은 신과 약속을 했다.
절대로 봐주지 않기로.
그리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 * *
4월 1주차, 월요일.
월요일 밤의 나이트로.
러셀 오메가와 나는 대립을 거쳐 오면서 마지막으로 링 위에서 만났다.
경기 계약식은 생략했다.
대신 우리는, 좀 더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이 대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팬들에게 설명할 생각이었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먼저 입장하는 러셀.
링 위에서 마이크를 쥔 그에게 팬들은 챈트로 환영의 메시지를 보냈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드디어 마지막 위클리 쇼로군. 오래도 기다렸지. 턱이 빠져라 기다렸던 결전이 드디어 일주일 남았어.]
실제로 그랬다.
팬들의 기대감도 컸고, 그 때문인지 페이퍼뷰의 판매량 또한 이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큰 규모라고 들었다.
1년.
고작 1년 만에 ACW는 다시 팬들의 기대를 받는 단체로 위상을 복구했다.
[긴 말은 필요 없지. 나와, 신.]
[Yeeeeeeeeeeeeeeeeeaaaahhhh!!]
러셀이 입장로 쪽을 돌아보았고, 그와 함께 내 테마 음악이 흘러 나왔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나는 지체하지 않고 나아갔다.
입장로를 걸어 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러셀과 잠시.
서로를 마주보았다.
Face To Face.
[Uooooooooooooooohhhh……!]
팬들의 목소리는 심상치 않았다.
우리는 단지 서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을 뿐인데도, 그런 반응이 나왔다.
나는 러셀을 바라보았다.
내 투지를 담아.
녀석 역시도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의지를 담아.
그렇게 이어진 페이스 투 페이스 끝에, 러셀 오메가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녀석은.
그때와 똑같이 말했다.
“‘윌리’가 지켜보고 있겠는데.”
“…….”
거기에서.
팬들의 반응은 사실 미묘했다.
모두가 윌리를 잊었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그에 관해 확인을 시키지 않았다. 해설진에게도 여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모든 건 우리만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내 영혼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프로레슬링은 현실의 드라마다.
우리는 그것을 연기하며 팬들이 믿고 즐길 수 있는 선한 가치를 말한다.
그래.
바로 그거다.
현실의 풍파에 영혼이라는 이름의 바위는 깎이고,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던 인간이 텔레비전을 켠다.
그리고 내가 이기는 것을 본다.
이 업계의 패배자.
이 업계 자체가 거부하는 남자.
그런 남자가 승리하는 드라마를 보며 잠시 대리만족을 느껴준다면, 그리고 혹시라도 용기를 얻는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할 말은 심플해. 러셀.”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냥 평범했다.
아니.
이렇게 된 마당에 뭘 말하겠는가?
우리는 10년 동안 서로에게 계속 말해왔는데.
“I'm Gonna Kick Your Ass.”
[Yeeeeeeeeeeeeeeeeeaaaahhh!!]
거기에 러셀 오메가가 웃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너를 이긴다.
그리고 그 어깨에 걸쳐져 있는 최강의 상징, 프로레슬링 업계의 모든 것.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따낸다.
내가 할 말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티파니 맥센이 내게 말했었다.
그녀는 우리가 항상 꿈꾸던 시대.
다시 말해 프로레슬링이 다시 부흥하고, 산재한 문제점들이 사라져 훨씬 더 나아진 시대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그걸.
이렇게 부르고 싶었다.
Dreaming Era.
인간이, 꿈을 꾸는 시대.
나.
인간 김준호가.
프로레슬링의 신을 꿈꾸는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