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55화 (455/634)

455.

유럽에 이런 일화가 있다.

와일드 헌트.

말하자면 백귀야행.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수많은 망령과 귀신, 요정의 무리가 인간을 먹어치우기 위해 전 유럽을 배회한다는 일화.

여기서 좀 블랙 유머를 하자면 맑스 시절의 공산주의가 이것과 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때도 그 망령이 전 유럽을 떠돈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공산주의라.’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이 빌어먹을 테마 음악이 내 심장을 박살 내려는 속셈이었다. 조던과 바클리가 농구공처럼 두들겨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좋았다.

모두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무대.

나는 이 심장의 고동을 아군으로 삼았다. 마치 공포를 아군으로 삼듯이.

그리고 나아갔다.

철골 구조물 위로.

[Waaaaaaaaaaaaaaaaagggghhh!!]

테마의 인트로가 끝나며 웅장한 오케스트라 풍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 이어지는 보컬.

가사는 사실 좀 유치했지만, 아 빌어먹을 라틴어 가사라 누구도 알아먹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해적선의 선미로 나아갔다.

링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Now-! The Challenger In Here!]

불어오는 바람이 내가 입고 있는 검은색 가죽 재킷을 펄럭이게 만들었다.

탄환 재킷.

SIN.

[From California Los Angeles!!]

그래.

이 경기에서 나는 커리어 초창기부터 사용해온 검은 재킷을 입어서 경기가 갖는 의미를 더 크게 만들었다.

[The Alpha! The Breaker!]

여기에 남은 건 오직 신.

[SIIIIIIIIIIIIIIIIIINNNNNNNNNNNNN!]

순수한 나였다.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는 죽여줬고.

안전장치도 했으며 훈련 역시 받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심상치 않았다.

나는 거기에서 아까 머릿속에 떠올린 그 만화의 대사를 다시 생각했다.

폭풍의 왕.

망령의 무리.

와일드 헌트의 시작이다.

20만의 팬들이 날 바라보고.

러셀 오메가가 날 기다렸다.

그렇게 철골 구조물을 올라 앞으로 나아간 나는 팬들을 가만히 보았다.

분명히 커리어 초창기, 그렉 하트와의 대전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썼다.

하지만 그때와 비교를 하자면 연출은 훨씬 더 크게 강화되었다. 해적선에 올라탄 듯한 연출이라니 말이다.

나의 영웅.

나의 우상.

존 마이클스를 보며 동시에 프로레슬러가 되겠다고 꿈꾼 동양인 소년.

그는 한 번의 도전에서 실패했고.

기적으로 이곳에 돌아와.

또 다시 도전했다.

나는 나를 한 번 더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꿈을 향해.

전진해.

이곳에 도착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무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상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경기.

나는.

이곳에서 나는 자신의 비대한 자아와 영혼을 달래는 싸움을 해야 했다.

왜냐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인생이고.

온갖 복잡한 감정이 날 관통해도.

수십 번 꺾여도.

짓뭉개져도.

그 꿈을 잘라내는 것보단 나으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초대형 스크린으로 지금 카메라가 뭘 찍고 있는지가 드러났다.

바로 졸리 로저였다.

해적의 깃발.

그것도 내 졸리 로저라면 역시.

해골의 뒤에 역십자가 새겨졌다.

해적선 전체가 검은색으로 물들면서 선명하게 졸리 로저가 떠올랐다.

바로 그때가 타이밍이었다.

나는 허리에 감아둔 안전장치를 확인하고는.

몸을 던졌다.

[Uoooooooooooooooooohhhh!]

바람이 귀를 스쳤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역사에 남을 이 순간을 위해 최대한 멋지게 머리를 아래로 하고 떨어져 내렸다.

키기기기긱-!

몸에 감고 있던 강철 와이어가 진동했고 천천히 속도를 줄여 링 바로 앞의 아나운서 테이블 위에서 멈췄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나는 곧바로 와이어와 몸을 연결해 고정하고 있는 장치를 해제한 뒤 그대로 테이블 위에 떨어져 내렸다.

쿵-!!

2미터 정도의 높이.

무릎을 굽히며 최대한 충격을 줄인 나는 이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링 위에 서있는 러셀 오메가를 바라보았다.

“…….”

“…….”

[Yeeeeeeeeeeeeeeeeaaaahhhh!!]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묘한 상황이기는 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오그라들지.

편익의 천사와 플라잉 더치맨의 선장이 드디어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

하지만 팬들의 환호와 지지가 있기에 전혀 유치하게 보이지 않았다.

또한 비주얼적으로도 그랬다.

녀석과 나는 둘 다 선명한 복근에 터질 듯한 근육질의 소유자로 마치 신화 속의 등장인물처럼 느껴질 터.

우린 그걸 연출했다.

동시에 속으로도 상대방과 싸워 이길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 상태였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음악은 계속 이어졌고 천천히 링으로 올라가서 러셀과 마주 보고 섰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드디어 이때가 왔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나는 러셀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때, 좀.”

“……괜찮아.”

“떠는 거 같은데.”

“너야말로.”

지지 않고 받아치는 러셀.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었고 뒤를 이어 러셀과 내가 각자의 코너로 물러서자 링 아나운서와 심판의 손에 의해서 이 경기의 소개가 이어졌다.

[이어질 경기는! 오늘의 메인이벤트! ACW 월드 챔피언십입니다!]

[Waaaaaaaaaaaaaaaaaggghhh!!]

이 경기는 그래야 마땅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소개.

[먼저 도전자를 소개하겠습니다!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러스 출신! 195센티미터에 120kg……!]

다소 과장된 소개가 이어지고.

[He Is The Alpha! The Breaker!!]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SIIIIIIIIIIIIIIIIIIIIIIIIIIIIINNNNNNNN!!]

그리고 팔을 번쩍 들었다.

[Yeeeeeeeeeeeeeeeeeaaaahhhh!!]

관객들이 아닌 러셀을 보고.

거기에 러셀도 허리에 차고 있던 챔피언 벨트를 풀며 준비를 했다.

[그 상대는 ACW 월드 챔피언! Best Bout Machine! The Omega!]

앞으로 나선 러셀이 내 앞으로 바싹 다가서서 벨트를 머리 위로 들었다.

[Russell-! Ooooooooomegaaaa!]

[Waaaaaaaaaaaaaaaaaagggghhh!]

환호는 비등비등했다.

관객들은 이 경기를 순수한 선의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판단했고, 그렇기에 우리 둘 모두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렇게 소개가 끝난 뒤.

러셀과 내가 다시 각 코너로 물러섰고, ACW 월드 챔피언십 벨트를 건네받은 심판이 그것을 정중하게 양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팬들의 챈트가 이어졌다.

20만에 달하는 팬들이 그 누구 하나 빠짐없이 우리의 이름을 외쳤다.

나는 문득 어떤 순간을 기억해냈다.

그래, 분명히.

러셀과 나의 첫 경기.

고작 수백 명이 모인 경기장.

당시 GCW는 상황이 안 좋았고 프로레슬링 업계도 한풀 꺾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기까지 왔다.

나는 미소를 지었고.

러셀 역시 웃었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땡땡땡-!

하지만.

오늘 이기는 건 단 한 사람.

그런 각오 속에 링 벨이 울렸고, 나는 곧바로 쏜살처럼 달려 나가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온 러셀과 충돌했다.

쿵-!!

자, 뭐 있겠는가.

우리는 락 업으로 시작했다.

“끄응……!”

“끄그극!”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 봐줄 마음이 없었다.

프로레슬링은 어디까지나 상대를 배려하면서 경기를 연출하는 스포츠……였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었다.

러셀과 나는 싸우기로 했다.

녀석의 힘에 순간적으로 밀려난 나는 이어 곧바로 팔에 큰 힘을 주었다.

그리고 밀어냈다.

[Uoooooooooooooooooohhhhh!!]

충돌 직후에는 내가 좀 밀렸지만 이내 조금씩 러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거기에 점차 밀려나던 러셀은 방향을 틀어 내 힘을 분산시키려고 했다.

마치 소가 뿔을 맞대고 맞붙는 듯한 형상. 바로 그것이 우리의 의도였다.

고대로부터 힘을 겨루는 건 언제나 스포츠의 한 요소로 각광을 받았고.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우리 두 사람의 락 업은 치열하게 잘 이어졌다.

애초에 상대방을 잘 알다 보니 힘을 조절하면서 흐름이 끊길 리가 없었다.

[Uoooooooooooooohhhh……!]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경기를 이어가는 러셀과 나.

그리고 락 업은 자연스레 체인 레슬링으로 이어지며 우리는 이 시대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공방을 보였다.

서로 슬쩍 물러선 상태에서.

팔을 뻗으며 내가 러셀이 들어오기를 유도했다. 그리고 거기에 녀석이 응하면서 링 안은 한순간 요란해졌다.

쿵-!

링 바닥이 울렸고.

나는 녀석의 머리를 겨드랑이 아래로 넣어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러셀이 몸을 회전시키며 그대로 빠져나갔다.

쾅-!

링 바닥에 낙법을 취한 뒤 일어서는 러셀. 순간 가볍게 혀를 찬 나는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러셀이 날 잡았다.

팔과 팔이 뒤엉킨 상태에서 내 몸을 타고 올라 그대로 매달리는 러셀.

그 무게에 넘어간 내 양 어깨가 땅에 닿았고 심판이 카운트를 셌다.

[1……!]

몸을 튕겨내며 빠져나왔다.

뒤로 구르며 몸을 일으켜 세운 나는 그대로 자리에 앉은 러셀을 향해 내달리며 무릎을 힘껏 치켜들었다.

[Uooohhh……!]

스팅어.

회피.

몸을 비틀면서 피해낸 러셀은 바닥에 낙법을 친 나를 그대로 눌러버렸다.

다시금 이어지는 카운트.

[1……!]

몸을 튕겨 다시 빠져나왔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윽?!”

나는 그대로 다리를 들어 러셀의 목에 휘감고는 반대편으로 넘겨버렸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넘기는 반동을 이용해서 러셀의 위에 올라탄 나는 곧장 주먹을 날렸다.

빠악-!

코를 후려치는 강타.

러셀이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기회다 싶었던 나는 녀석의 옆으로 몸을 날리며 헤드록을 걸었다.

쿵-!

깔끔하게 들어가는 기술.

헤드록.

일견 별것 아닌 기술처럼 느껴졌지만, 사실 그게 가진 의미는 대단했다.

상대방의 머리를 붙잡는다는 건, 다른 기술로 얼마든지 파생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일단 러셀을 일으켜 세웠다.

분위기는…… 고요했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팬들은 잠시 오오, 하고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숨을 죽인 채 우리 두 사람의 전초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슬슬 보여줄 때였다.

녀석과 내가 도대체 어떤 감정으로 지금 이 경기에 임하고 있는지를.

나는 헤드록을 건 채 러셀과 함께 일어섰다. 하지만 직후 녀석이 다리에 힘을 줘서 나를 로프로 밀어냈다.

등이 로프에 닿았다.

그로서 이루어지는 로프 브레이크.

“신!”

가까이 다가온 심판이 선언했고, 나는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서브미션을 풀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진이 빠졌는지 좀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내게 기대어 선 러셀.

나는 곧장 녀석과 자리를 바꿨다.

그리고 로프에 기대어 선 러셀의 가슴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찹을 날렸다.

충격에 대비해 목을 움츠리는 러셀.

하지만 그게 포인트였다.

찹을 때리려던 동작에서 우뚝 멈춰선 나는 실실 웃으며 겁을 먹은 러셀의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Uooooooooooooooooooohhhhh!]

그제야 터져 나오는 반응.

나는 참으로 알기 쉽게 러셀 오메가를 도발하면서 팬들이 이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도록 조금의 틈을 주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채 날 보는 러셀.

나는 곧바로 그 팔을 잡아당겨 반대편으로 던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깔끔한 로프 반동 후, 돌아오는 러셀. 나는 타이밍에 맞춰 뛰어올랐다.

드롭 킥.

퍼억-!

하지만 직후.

나는 느꼈다.

러셀은 일부러 넘어졌다.

콰앙-!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먼저 일어나 쓰러져 있는 러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뭐하냐?”

“…….”

순간 불쾌감을 느꼈다.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피식 웃은 러셀이 핸드스프링으로 벌떡 일어났다.

[Uoooooooooooooooooohhhhh!!]

다시금 터져 나오는 환호성.

분위기는 잠시 묘해졌다.

내게서 돌아서있던 러셀은 가슴을 노리고 걷어찬 드롭킥이 별거 아니었다는 듯이 손으로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천천히 날 돌아보았다.

“뭐하자는 거야?”

내가 어이가 없어 물었다.

그러자니 러셀이 되물었다.

“너야말로 뭐야? 왜 찹을 치려다가 말아? 대체 지금 뭐 하자는 건데?”

“네가 하도 멍청하게 있어서 말이야. 좀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했지.”

“하, 이 자식이…….”

녀석과 나는 그렇게 링 위에서 초장부터 기 싸움을 벌이며 경기의 분위기를 서서히 덥혀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쯤 분위기를 잡았으면.

이제 슬슬 올려갈 때였다.

러셀이 내게 해머링을 날렸다.

퍼억-!

나도 그대로 돌려주었다.

빠악!

이어지는 펀치와 펀치.

난타전.

[Yeeeeeeeeeeeeeeeeaaaahhhh!]

팬들의 환호와 함께 경기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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