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
경기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났지만.
팬들은 아직 지치지 않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챈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들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신과 러셀, 두 사람 모두에게 응원을 보냈다.
경기는 그렇게 최종 국면으로 나아갔다.
[대단합니다! 두 선수 모두 물러서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주먹이 오갑니다!]
[이쯤되면 자존심의 문제죠! 상대보다 먼저 무너질 수는 없는 겁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신과 러셀! 러셀과 신! 두 사람의 경기에는 언제나 벨트 이상의 것이 걸려 있습니다!!]
해설자들도 흥분해서 소리쳤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최고였고 그런 상황에서 이어지는 경기도 환상적이었다.
두 사람이 가진 기술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듯한 장이었다.
그만큼 치열했고, 누군가 주도권을 잡더라도 오래가지 못했다.
티파니 맥센은 그걸 보고 있었다.
고릴라 포지션.
데릭 비숍과 함께 쇼를 총괄하게 된 그녀는 묵묵히 여러 대의 카메라가 비추는 신의 모습을 보면서, 전율했다.
어렴풋이 빛을 느꼈다.
따스한 빛을.
두 사람이 이루고 싶었던 꿈이 지금 막 실현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록 결과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본디 희미한 장막 아래에 감춰져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지만.
그래도.
그 아래에서 희미하게 선을 그려내고 있는 빛을, 티파니는 분명히 보았다.
프로레슬링은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 * *
뻐억-!
다시 한 번 이어지는 롤링 소배트.
“크윽?!”
절로 신음이 나왔다.
러셀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나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 걸 느꼈다.
“거헉……!”
하지만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토록 고대해오던 경기.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내 경기를 통해서 뭔가를 느꼈으면 했다.
그렇기에 나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곧바로 지면을 박차고 일어섰다.
[Yeeeeeeeeeeeeeeeaaaahhhh!!]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반대편의 러셀도 이미 진즉에 한계를 넘어섰지만 나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나는 그 얼굴에 헤드벗을 날렸다.
허리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그대로 머리를 던졌다.
쩌억-!
뒤로 밀려나는 러셀.
나는 곧바로 그 팔을 잡고 당겼다.
내 뒤편으로 달려가, 그곳에 자리한 로프에 몸을 맡긴 뒤 돌아오는 러셀.
나는 팔을 펼치며 자세를 잡았다.
[Uoooooooohhhh……!]
팬들도 순간 놀랐으나.
러셀은 태클을 시도했고 나는 그대로 위로 뛰어오르면서 그것을 피해냈다.
내 밑을 그대로 빠져나간 러셀이 반대편 로프에 반동을 하고는 돌아왔다.
나는 그런 녀석을 들어올렸고.
어쩐지 쉽게 들려줬다 싶은 러셀은 내 머리를 겨드랑이 밑에 끼우며 토네이도 DDT를 사용하려고 들었다.
몸이 그대로 넘어가려는 순간.
“크하아아악!!”
나는 허리의 힘으로 버텨내고는 그대로 러셀을 들어 수플렉스를 먹였다.
콰앙-!!
[Waaaaaaaaaaaagggghhh……!!]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이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먹먹해지는 귀.
좁아지는 시야.
그러는 가운데 일어선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마찬가지로 오뚝이처럼 일어나 내게 덤벼오는 러셀을 발견했다.
무릎을 꿇고 일어서며 다시 롤링 소배트로 상황을 연결하고자 하는 러셀.
그 발을 쳐냈다.
그리고 헤드벗을 날렸다.
하지만 러셀은 옆으로 물러서며 피했고 곧바로 내 뒤로 돌아 들어와 허리를 붙잡고 그대로 힘껏 뽑아 들었다.
시야가 부웅 날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
콰앙-!!
다시 한 번 저먼.
“그헉……!!”
후두부가 짓이겨지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다시 일어섰다.
러셀은 계속해서 링 위를 크게 크게 사용하면서 내 뒤를 잡으려고 들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저먼 수플렉스.
히든 블레이드.
원 윙드 앤젤까지.
녀석의 기술은 등 뒤를 노리는 게 많았다. 그리고 나는 반대로 정면에 서서 사용하는 기술이 더 많은 편이었고.
그리고 결국 놈은 뒤를 잡아냈다.
“윽……?!”
원하지 않게 목말을 태워진 나는 그대로 지면으로부터 높이 치솟았다.
절체절명의 상황.
러셀이 어깨 위에 있던 내 다리 한쪽을 뒤로 빼내면서 중심을 잃게 했다.
상반신이 앞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머지 다리도 뒤로 빼서 아예 놈의 뒤쪽으로 빠져나왔다.
지면에 착지.
돌아보는 러셀.
그 안면에 꽂히는.
슈퍼 킥.
쫘악-!!
땀이 튀었다.
놈의 안면에 가득하던 땀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아니, 땀은 그대로에 몸이 충격으로 뒤로 밀려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막 힘을 짜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돌아온 힘을 모조리 짜내서 중심을 잡았다.
뿌득!
발목 쪽에서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러셀을 바라보았다.
로프 쪽으로 밀려난 녀석이 거기에 반동을 하고는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크-아……!”
나는 그걸 들었다.
옆으로 허리를 숙여 놈의 어깨와 다리 사이에 손을 넣고 힘껏 뽑아 들었다.
번쩍 들리는 러셀.
마지막 순간까지, 녀석은 지면을 박차면서 나의 이 마지막 기술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걸 받아내.
뒤로 몸을 돌린 나는.
그대로 정지했다.
역십자.
지면을 비추는 조명.
떨어져 내리는 땀.
이 경기의 마지막 순간.
‘고맙다. 러셀.’
나는 그대로 녀석을 내리찍었다.
투-콰앙-!!!
순간 이어지는 호쾌한 소리.
지면에 거꾸로 꽂힌 러셀이 튕겨 오르며 우리는 그대로 지면을 나뒹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허억, 허억.
들리는 건 내 숨소리.
그리고 떨리는 지면.
정신을 차린 나는 그대로 러셀을 향해 다가가, 놈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파앙-!
‘1…….’
파앙-!
‘2…….’
파앙-!!
‘3…….’
그렇게 세 번.
힘차게 지면이 내리쳐졌고 나는 그제야 온몸을 태우고 있던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땡땡땡-!!
[Wa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
그와 함께 내 테마 음악이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났다.
나의 승리였다.
그걸 실감한 나는 발목이 시큰거리는 통증이 뒤늦게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러셀은 말이 없었고.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한계를 넘어서 내 모든 걸 쥐어 짜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러셀의 위에 엎어져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자니 이내, 누군가 다가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말을 걸어왔다.
“신……! 신!!”
심판이었다.
그 품에는.
ACW 월드 챔피언 벨트가 있었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팬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그랬지.’
이제 이 벨트가 내 것이다.
지난번과 달리, 진짜로.
“…….”
그러자 신기하게도 몸이 움직였다.
러셀의 위에서 천천히 일어난 나는 잠시 옆으로 떨어져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벨트를 안아들었다.
검은색 가죽에 거대한 황금색 플레이트를 가진, ACW 월드 챔피언 벨트.
그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 빌어먹을.
진짜 안 울려고 했는데.
이거 진짜 뭐 안 울려고 하면 눈물이 나오냐. 왜. 대체 왜 이런 거야?
나는 천천히 벨트를 쥐고 일어섰다.
“신.”
그리고 뒤를 이어, 러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돌아본 나는 울면서도 순간 웃음이 터지는 것을 느꼈다.
놈은 무릎을 꿇은 채 다가왔다.
“괜찮냐?”
“그럴 리가 있겠냐.”
녀석 역시도 울고 있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팬들이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을 외쳤고, 나는 러셀을 팔을 잡고 부축해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러자니 녀석은 내 손에서 벨트를 가져가 그대로 허리에 감아주었다.
‘이런, 제기랄.’
다시는 안 풀고 싶은 기분이었다.
“잘 어울리는데.”
“고맙다.”
나는 씨익 웃었다.
그러자니 러셀이 손을 뻗어왔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팬들이 환호를 보내는 가운데.
나는 다시 어이가 없어져 웃고는 그대로 러셀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악수 대신.
놈의 손을 후려쳤다.
[Uoooooooooooooooooohhhhh?!]
순간 놀라는 관객들.
하지만 러셀은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내가 GCW를 떠날 때도 이런 식으로 러셀이 내 손을 후려쳤다.
그리고 날 끌어안았지.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나는 러셀을 끌어안았다.
[Yeeeeeeeeeeeeeeeeeeaaaahhh!!]
팬들이 환호했다.
말은 필요 없었다.
오늘 이 스타게이트에서 우리는 정말 역사에 남을 경기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포옹이 이어진 뒤 러셀은 스포트라이트를 돌리듯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그대로 링에서 퇴장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링의 정중앙에 서서 벨트를 풀어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새로운 챔피언의 등극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어지는 폭죽 세리모니.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내 이름을 외치는 팬들.
정말로 환상적인 밤이었다.
다시금 벨트를 끌어안고서 계획에도 없는 눈물을 펑펑 흘리던 나는 링에서 내려가 바리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가장 앞좌석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계시던 두 분을 먼저 찾아갔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준호야!”
“엄마……!”
“아이고! 너 뭐 됐냐?!”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이상하게 그런 유치한 말이 나왔다.
원래는 좀 더 쿨한 세리모니를 펼치며 끝까지 내 카리스마를 팬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제기랄, 다 틀렸다.
프로레슬링은 하나도 모르면서 아들의 경기를 가슴 졸여 지켜보던 두 분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확 풀어졌다.
“준호야.”
“예, 아버지.”
아버지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인 듯 두꺼운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뒷목을 두터운 손으로 감싸 쥔 그분께서 평소 자주 볼 수 없던 미소와 함께 내게 말했다.
“많이 아프냐.”
“전혀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내 인생의 목표 중 하나였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것. 그게 달성된 듯해서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최고로군.’
환상적인 밤이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챈트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나는 벨트를 어깨에 걸친 채로 천천히 입장로를 통해 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릴라 포지션 앞에서 다시 한 번 벨트를 번쩍 들어 올리며, 2011 스타게이트의 그 장엄한 끝을 알렸다.
커튼을 걷고 들어가자 티파니가 마중을 나와 있어서, 나는 손을 뻗었다.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정말, 내 모든 걸 불태운 쇼였다.
* * *
비슷한 시기.
레슬 임페리움도 그 막을 내렸다.
땡땡땡-!!
[시나가 타이틀을 따냅니다!!]
[엄청난 싸움이었습니다! 아이콘 VS 아이콘! 세기의 싸움! 시나가 자신이 믿는 게 옳았음을 다시 증명해냅니다!]
[Waa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시나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
팍이라는 과거의 아이콘에 맞서서 자신이 내세우는 가치가 옳음을 팬들의 앞에서 증명을 해내야만 했고.
그걸 훌륭하게 이루어냈다.
팬들은 시나를 믿어주었다.
더 팍의 성인 지향적인 디스는 처음에는 큰 자극이 되었지만, 시나는 거기에 맞서서 팬들을 멋지게 설득했다.
숀 시나의 삶은 계속된다.
그는 WWF 월드 챔피언이었다.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팬들의 환호 속에 챔피언 벨트를 받아든 시나는 더 팍과 악수를 나눴다.
격렬한 경기를 거치며 그는 팍의 진심을 이해했고 쓰게 웃으면서 물었다.
“설마 지금껏 일부러 그런 겁니까?”
“글쎄, 어떻게 생각하나?”
“한 방 먹었군요.”
“그래, 시나. 이제 자네의 시대야.”
두 사람은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팍 쪽에서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승부는 어떻게 될 것 같나?”
“……글쎄요.”
시나는 잠시 눈썹을 찡그렸다.
그가 말하는 ‘승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바로 스타게이트와 레슬 임페리움의 정면 대결. 그 승자가 궁금한 거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팬들은 어디를 선택했을까.
숀 시나 VS 더 팍일까.
아니면.
신 VS 러셀 오메가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붙어보고 싶다.’
결과를 알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신은 훌륭하게 ACW 월드 챔피언십을 따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신과 붙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