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
2011년 4월 4일, 월요일.
ACW 나이트로.
스타게이트의 애프터 쇼가 열렸다.
오프닝 영상이 끝난 후, 방송 화면이 경기장의 전경을 비췄다.
땡땡땡-!
링 벨이 울리며 링 위의 아나운서가 새로운 챔피언을 소개했다.
[Ladies And Gentlemen~! Please Welcome! Your Neeeeeeeeeeewww!! ACW World Champiooooooon!!]
[Waaaaaaaaaaaaaaaaaaggghhh!]
[SIIIIIIIIIIIIIIIIIIINNNNNN!!]
링 아나운서가 입장로를 가리켰다.
조명이 꺼지며 연기가 분사되었다.
파이로 장치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테마.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챈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에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걸친 채, 천천히 입장로를 따라 나왔다.
[Yeeeeeeeeeeeeeeeeaaaahhhh!!]
환호를 보내는 팬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ACW 팬이건, PWA 팬이건 가리지 않고 모두가 지금 이때를 고대해왔다.
신이 프로레슬링 업계의 정상에 올라서서 챔피언 벨트를 손에 쥐는 모습을.
물론, 그는 커리어 내내 꾸준히 위상을 상승시켜왔다. 동시에 테이커 같은 전설적인 선수를 쓰러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월드 챔피언은 달랐다.
확실히 한 단체의 최강자라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 벨트를 허리에 둘러본 레슬러는 반세기가 넘는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6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다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월드 챔피언이었다.
그런 벨트를 손에 넣고.
링에 오른 신은 감격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에서 좀 이해력이 빠른 팬들은 신의 그런 행동이 각본이 아님을 눈치채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고, 그것은 지난 밤 스타게이트에서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팬들은 소리쳤다.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Thank You! SIN! Thank You! SIN! Thank You! SIN! Thank You! SIN! Thank You! SIN! Thank You! SIN!]
온갖 챈트가 쏟아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신은 마이크를 쥐었고 단숨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들 날 엿 먹이는군.”
[Yeeeeeeeeeeeeeeeeeeaaaahhhh!!]
이건 각본이 아니었다.
한 소년이.
남자가 되어.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른 현실의 드라마였다.
신은 인터뷰에서 항상 이야기했다.
자신은 존 마이클스와 같은 레슬러들을 보고 자랐으며, 언젠가 그들처럼 링 위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그리고 결국 그 꿈이 이루어졌다.
신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잠시 꾹 참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하나 확실히 해두자고.”
[Waaaaaaaaaaaggghhhh!]
“이대로 괜찮은 거야? ACW 팬들. 다른 단체 출신인 내가 챔피언이 됐는데.”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그건 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이 시점에서 야유가 좀 나와 주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려고 했는데. 팬들은 신을 챔피언으로서 환영했다.
“그래,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지.”
그는 어이가 없어 웃으며 말했다.
“이 벨트에 도전하는 데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어. ‘월드’ 챔피언이니까. 자격만 증명한다면 누구나 가능하지.”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물론, 쉽게 내어줄 생각은 없어. 나는 챔피언이고. 지금 이 바닥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라는 말이니까.”
신은 벨트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를 향해 환호가 쏟아졌다.
어제의 경기.
그리고 그전까지 이어진 대립을 본 팬들은 지금 이 순간 챔피언이 신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경기를 통해 증명했다.
자기 자신이 월드 챔피언이라는 위치에 서있을 만한 자격이 있음을 말이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다시금 이어지는 음악.
벨트를 어깨에 걸친 신은 팬들의 환호 속에 고릴라 포지션으로 퇴장했다.
그렇게 커튼을 걷고 들어선 그는 깽깽이 발을 짚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끄응…….”
어제 러셀과의 경기에서 막바지에 발목을 살짝 삐끗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도 다음 페이퍼뷰까지는 어떻게든 낫겠지 싶었지만, 향후 일정이 많은 상황에서 피곤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러자니 고릴라 포지션에 있던 바쿠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신, 괜찮냐?”
“죽을 맛인데요.”
“크하하하, 그렇게 앓는 소리를 내는 걸 보면 아직 쌩쌩하구먼. 그래.”
“어깨나 빌려주십쇼.”
“그래, 그래.”
바쿠는 신이 나서 신을 부축했다.
이후, 총괄자인 데릭 비숍과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경기장을 떠나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이동했다.
월드 챔피언.
그것은 단체의 얼굴이라는 뜻이었으며, 그렇기에 스케줄도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서 몇 배는 더 바빴다.
그렇기에 바쿠가 옆에서 보조를 해주며 이후로 일주일은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정말 바쁘게 보낼 예정이었다.
일단 뉴욕으로 건너가 코난 롭라이언의 쇼에 출연하고, 이후로도 계속 다양한 스케줄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바쿠는 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널 처음 봤을 때는 정말 몸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애송이였는데 말이야.”
“절 테스트해주셨죠.”
“그래, 그리고 솔직히 좀 의심했다.”
“이제는 어떻습니까?”
“넌 그 의심을 걷어냈지.”
“…….”
“넌 이 업계의 규격이 되었어. 바로 네가 이 업계의 The Man이다. 신.”
그건 정말 최고의 칭찬이었다.
바쿠.
GCW 선수 총괄.
동시에.
이 업계의 위대한 선배 중 하나.
그런 그에게 이런 극찬을 듣다니.
나는 뺨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많이 가르쳐주신 덕분이죠.”
“크하하, 내가 가르친 건 사람을 시멘트 바닥에 내리꽂는 방법뿐이었지.”
“어, 그건.”
“네 첫 안티크라이스트잖냐.”
바쿠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일반인을 상대로…….”
“범죄자였지.”
바쿠는 생생히 기억하는 듯했다.
나도 대충 기억은 났다.
러셀, 바쿠와 함께 윌마트에 뭘 사러 가서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강도들이 일가족을 위협해 바로 도와줬었지.
나와 러셀이 한 사람씩 맡고 바쿠가 나머지를 맡아 그때 나는 상대에게 실수(?)로 일본의 전설적인 선수, 호쿠토 아키나의 노던 라이츠 밤을 사용했다.
……무려 아스팔트 바닥 위에.
그리고 그 도와준 가족의 가장이 어디 잡지 팀장이어서 GCW를 되살리는데 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런 적도 있었지.’
나는 피식 웃었다.
그때 나는 막 회귀한 20대 초반이었고, 주머니에 고작 30센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되었다.
ACW 월드 챔피언.
드디어 내 꿈을 이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커리어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바트 맥센과의 싸움도.
결착을 낼 때였다.
* * *
대결로부터 일주일 뒤.
바트 맥센은 편지를 받았다.
고풍스러운 연출이었다.
하지만 바트 맥센은 페이퍼 나이프와 같은 물건을 혐오하는 인간이었다.
권력은 형태가 없기에 아름답다.
그렇기에 바트 맥센은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를 꼴사납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내용물은 더 가관이었다.
“파티를 열겠다고.”
티파니 맥센이 WWF 내에서 의결권을 가진 대주주들에게 보내는 초대장.
날짜는 4월 30일.
장소는 뉴욕.
그게 시사하는 바는 간단했다.
잠시 고민하던 바트 맥센은 머릿속으로 그 두 사람의 꿍꿍이를 떠올렸다.
이를 통해서, 이후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붙을 건지를 시험하자는 거겠지.
거기에 응하느냐 마느냐.
물어볼 것도 없었다.
바트 맥센은 곧바로 아들인 케인 맥센에게 전화를 걸어 명령을 내렸다.
성이 텅 빈 지금, 그가 유일하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신하에게.
“파티에 좀 참석해줘야겠다.”
전란의 결과를 알아오라고.
그렇게 파발마를 보내고 왕은 자신의 성에 앉아서 결과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전화를 끊고 바트 맥센은 사무실 안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틀었다.
한 남자가 나왔다.
가장 싫어하는.
정말로 싫어하는.
그런 레슬러였다.
[이제는 단체 간의 벽이 무너지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ACW의 월드 챔피언이지만. 확실하게 ‘월드 와이드’한 남자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싫은 것은.
그 어깨에 가장 증오하는 단체의 월드 타이틀이 걸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트 맥센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겼다네. 신.”
바트 맥센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분명히 이겼다.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ACW 월드 챔피언이 된 신은 부커-리에 맞서서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다.
그 대립이 점차 심화되었고, 봄의 향취가 절정에 달하는 시점이 찾아왔다.
결과는 알 수 없었다.
4월 30일, 밤.
뉴욕의 맨해튼.
불이 꺼지지 않는 그 도시에 도착한 케인 맥센은 불편한 연미복으로 온몸을 감싼 채 바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간의 기대감.
그리고 다수의 불안감.
‘과연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기를.
케인 맥센은 원하고 있을까.
프로레슬링의 관계자들과.
팬들.
모두가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그런 고민 속에 도착한 연회장.
뉴욕 맨하튼 안에서 가장 거대한 호텔의 최상층을 통째로 빌린 호화 파티.
로비에 도착하고 케인은 생각보다 스산한 분위기에 놀라며 안내를 받았다.
최상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케인 맥센은 복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트 맥센에 이은 제2주주, 티파니 맥센이 주주들을 초대해 레슬 임페리움의 성공을 축하하는 명목의 파티.
거기에 참가한다는 의미는 간단했다.
앞으로 어느 쪽에 붙겠다.
바트 맥센이 중심이 된 기존파와, 티파니 맥센을 중심으로 구성된 개혁파.
그 사이의 선택.
싸움은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티파니 맥센은 이기지 못했다.
신은 패배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파티에서 의결권을 가진 주주들 중 90퍼센트 이상을 설득해내야만 했다. 그래야 바트 맥센으로부터 승리를 챙겨올 수가 있었다.
‘뭐지?’
케인 맥센은 의아함을 느끼며 걸었다.
오늘 그는 아버지의 대리인으로 파티에 참석해 결과를 전달할 예정이었다.
주주들은 누구를 선택했는가.
티파니 맥센인가?
아니면 바트 맥센인가.
하지만 복도도 그렇고.
로비에도 아무도 없었다.
“이곳입니다.”
그런 가운데 문이 열렸고.
케인 맥센의 눈이 크게 뜨였다.
“…….”
순간 오감에 느껴지는 전율.
“이, 건…….”
모던 재즈가 마치 호수 위의 파문처럼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는 파티장.
그곳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케인 맥센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전부?’
그 많은 주주들 전부가 이 파티에 모조리 다 참석을 했다고? 대체 어떻게?
무슨 이유로?
“드디어 왔군.”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본 케인 맥센은 의외의 인물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터너?”
“그래요. 케인. 만나서 반갑군요.”
체드 터너.
ACW의 위에 있는 터너 브로드 캐스팅의 수장인 그가 이 파티에 참석했다.
케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신이 여기를 왜…….”
“비즈니스 문제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체드 터너는 적국의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가 대체 여기를 왜?
“초대는 확실히 받았습니다.”
“어, 음.”
“기왕이면 패배한 바트 맥센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 되었군요.”
피식 웃는 터너.
“여기 모인 이들 모두가 앞으로 티파니 맥센을 왕으로 모시게 될 겁니다.”
그래, 티파니.
터너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케인은 그대로 파티장을 두리번거렸다.
얼마 가지 않아 찾아냈다.
파티장 중앙.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티파니 맥센. 여동생.
케인 맥센이 그 곁으로 다가가자 티파니는 곧장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검은 드레스.
은빛의 장식.
“티파니.”
“아, 케인. 왔어요?”
깜짝 놀랄 정도로 성숙한 모습을 보이던 여동생은, 또 그렇게 짓궂게 웃는 모습을 보자니 영락없이 그랬다.
하지만 확실히 놀라웠다.
“사람이 많은데.”
“그러게요. 생각대로 왔어요.”
“……생각대로?”
“예, 생각대로.”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티파니.
그들은 졌다.
확실히 말해두자.
WWF에는 더 팍과 숀 시나만 있지는 않았다. 그 외에도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아직 건재하게 왕국을 지탱했다.
트리플H, 그리고 캐스켓-테이커.
사모아 고, C.M. 펑크.
그 외에도.
정말 수많은 스타들이 중심이 되어서 레슬 임페리움의 평균 시청률은 ACW를 아슬아슬한 차이로 따돌리고 이겼다.
하지만.
“졌다고요?”
티파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안타깝게도 여기 와주신 주주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바트 맥센이 승리했다면 지금 이곳에 모여있는 주주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케인은 깊은 의문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