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64화 (464/634)

464.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Uoo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로 내가 오튼의 도발에 응해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내 테마 음악이 나오자 곧바로 커튼을 걷고 링으로 나갔다.

거만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허리에는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휘감았고, 오른손에는 슬레지 해머를 들어 어깨에 걸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링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검은색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

그리고 언제든지 싸울 수 있도록 아래에는 경기용 롱 팬츠까지 입었다.

그렇게 초장부터 싸우겠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나를 보고 팬들은 자연히 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루어진.

Face To Face.

[Uoooooooooohhhh……!]

오튼은 미소를 지었고.

나 역시도 웃었다.

사실 굉장히 묘한 상황이었다.

난 지금 나이트로에 난입한 녀석에게 R.K.O.를 얻어맞는 굴욕을 당했다.

솔직히 지금 당장 슬레지 해머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릴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내가 WWF에 와서는 오히려 오튼과 웃으며 마주보다니.

대체 뭔가 싶겠지.

오튼이 마이크를 들었다.

“일단, 축하한다.”

[Yeeeeeeeeeeeeeeeeeeaaaahhh!!]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여기에서 솔직히 나도 생각하지 못한 반응이 나왔는데.

팬들은 내게 박수를 보냈다.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박수와 함께 쏟아지는 챈트.

나에게는 자격이 있다.

WWF 팬들이 직접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것을 듣고 나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감격과 감사를 느꼈다.

사실, 내가 WWF 월드 챔피언십을 반쯤 모욕하듯이 내팽개치고 떠나 좋은 소리를 못 듣겠지 싶었는데.

놀랍게도 이들은 날 환영해줄 뿐만 아니라 자격이 있다고도 말해주었다.

거기에 정말로 놀라 가만히 서있자니 오튼이 순발력 있게 말을 이어갔다.

“이거 또 우는 거 아냐?”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

“네가 준비한 작전이었군.”

나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분위기는 훈훈했다.

대립이 시작된다고 보기에는 어딘가 훈훈하다(?) 싶을 정도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건 랜스 오튼의 이어진 한마디로 인해서 완전히 박살이 났다.

“우리 벨트는 마음에 안 드셨나?”

“…….”

“작년 레슬 임페리움에서 월드 챔피언십을 던지고 WWF를 나갈 때는 언제고, 아주 신수가 훤해지셨는데.”

“그런 내 행동이 너와 이 회사의 명예에 큰 실추가 되었다면 사과하지.”

나는 일부러 예의를 갖춰 말했다.

순간 경기장에 흐르는 긴장감.

[Oooooooooooooohhhh……!]

팬들도 그것을 느낀 듯했고 오튼은 내게 좀 더 바싹 다가서서는 마치 위협이라도 하듯이 턱을 들어 올렸다.

물론 나도 그런 녀석에게 맞서서 어깨에 짊어진 해머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물었다.

“그게 이유였나? 내가 벨트를 던지고 나간 게 그리 열 받는 일이었어?”

“아니, 이해해.”

돌연 씨익 웃는 오튼.

“그럴 만했어. 사실 우리 모두 거기에 대해서는 열이 받았지. 바트 맥센이 러셀을 속여 타이틀을 빼앗았으니까. 그 순간 가치가 훼손된 거야.”

그리고 녀석은 듣는 이쪽이 다 의아할 정도로 내 그런 끔찍한 배신에 대한 변호를 해주기 시작했다.

항복하지도 않은 러셀이 항복을 했다면서 심판이 링 벨을 울리고 타이틀은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다음이야. 나는 의문을 느꼈어. 왜 너일까? 왜 너만 바트 맥센의 그런 끔찍한 배신에 대해서 항의를 할 수 있는 걸까. 답은 간단해.”

내가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오튼은 그렇게 설명했다.

“너는 PWA 소속이지만 온갖 단체를 다니면서 원하는 대로 경기를 치르고 네 가치를 올려 나가고 있지.”

그렇다면.

“내가 못할 건 뭐 있겠어?”

“……그래, 그 말이 맞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턴이 넘어왔다.

일단 나는 오튼을 ‘칭찬’했다.

“랜스 오튼, 너는 확실히 좋은 플레이어야. 여기에서 많은 걸 이뤄냈지.”

월드 타이틀도 여러 번 차지했고.

스테이블에 소속되어서 브랜드를 지배하거나 반대로 스테이블을 창립해서 리더로서 후배들을 이끌기도 했다.

심지어는 내가 떠난 뒤 주인을 잃은 WWF 월드 타이틀을 가지고 치러졌던 ‘통합 타이틀’의 첫 주인이기도 했다.

바로 그것이 지금 숀 시나가 보유하고 있는 WWF 월드 챔피언십이었다.

“그리고 그런 네가.”

나는 여기에서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오튼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누군가에게는 할 일만 하는 기계적인 선수라고 인식될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러면서 이 정도의 업적을 이뤄낸 게 정말 대단하다 싶을 정도였다.

경기력도 준수했고.

뛰어난 외모에 마이크워크 스킬도 겸비한 녀석은 분명 이 시대에서 큰 존재감을 가진 레슬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가지 실수를 했지.”

그렇게 말한 나는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슬레지 해머를 감싸고 내질렀다.

퍼억-!

“끄흑?!”

무릎을 꿇는 오튼.

[Uoo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놀라 일어선 가운데 나는 다시 마이크를 쥐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에게 덤볐다는 거야.”

그리고 공격을 다시 이어갔다.

슬레지 해머를 든 나는 무릎을 꿇은 오튼의 안면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빠악-!

오튼의 몸이 그대로 넘어갔다.

충격에 빠진 팬들.

방금까지 오튼을 칭찬하던 내가 돌연 슬레지 해머를 썼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그냥 링에 튀어나온 못이나 박으려고 들고 나온 게 아니었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들고 나왔지.

나는 쓰러진 오튼을 앞에 두고 마이크를 다시 들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이해해. 오튼. 네가 어떤 생각으로 WWF에서 나와서 나를 공격했는지. 하지만 넌 선택을 잘못했어.”

나는 위협적으로 이야기했다.

“너와 나는 말마따나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운 적도 있지. 그리고 그게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거야. 너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날 공격했지만.”

이제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과거의 오튼이 상대하던 내가 아니었다. 나는 놈보다 훨씬 위대해졌다.

“나는 매순간 진화해왔어. 작년에 발매된 게임에서는 능력치가 94였지만 지금은 99쯤 되겠지. 그리고 너는? 안타깝지만 내년에는 87쯤 될 거야.”

지난번에 했던 레슬링 게임을 토대로 즉석에서 대사를 짜낸 순간이었다.

“…….”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오튼이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퍽!

그 복부를 짓밟았다.

‘이 자식이 또 보차를.’

평소에는 잘하던 놈이 꼭 나하고만 대립하면 이런 실수를 하려고 든다.

[Boooooooooooooo……!]

그러자니 터져 나오는 야유.

팬들도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내 챔피언 등극을 축하해줄 때의 훈훈했던 분위기는 조금 전 나의 스톰핑으로 완전히 날아가고 말았다.

나는 계속 말했다.

“기회를 한 번 더 주겠어. 네가 정말 나처럼 되고 싶다면 확실하게 각오를 해두고 오는 게 좋을 거야.”

왜냐면 오튼이 내 경고를 무시하고 다시 덤벼들었을 때 이어질 경기는.

분명히 꽤나 잔혹할 테니까.

* * *

물론, 물러설 오튼이 아니었다.

내 경고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확실히 자신이 각오를 끝마쳐두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

6월 3주차.

이번에는 PWA였다.

드류 맥킨마이어와의 경기를 마치고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온 나는 광고가 나가는 동안 잠시 땀을 식혔다.

그러자니 내 옆으로 다가와 스포츠 드링크를 바쿠가 상황을 전해주었다.

“오늘도 고생 많았다! 이제 광고 끝나면 바로 세그먼트 나갈 거다.”

“보셨어요?”

“물론 봤지.”

“어떠셨죠?”

“죽여줬지.”

척하면 척이었다.

드류와의 경기 이후 오늘 쇼의 메인이벤트에서는 오튼과 나의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를 내보낼 예정이었다.

영상은 미리 촬영을 해뒀고, 퀄리티도 대립의 치열함을 화려하게 더해줄 만큼 잘 나와서 반응이 기대됐다.

신, 그리고 랜스 오튼.

사람에 따라서 생각은 다를 테지만, 이 두 사람은 분명히 시대의 주역이라고 봐도 무방한 선수들이었다.

트리플H나 테이커 같은 레전드 선수들도 아니었고, 코디 로스나 드류 맥킨마이어 같은 신인들도 아니었다.

정확히 시대의 중심에 서있는, 신체적인 능력과 위상이 정점에 다다른 지금이 최전성기인 선수들.

그런 녀석과 나의 대립.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얼 목적으로 두고 하면 좋을까.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는데.

오튼과 나는 이 대립이 끝났을 때 두 사람 다 위상이 상승해야만 했다.

마치 러셀과 나처럼 말이다.

거의 1년 내내 이어졌던 러셀과 나의 대립도 최종적으로 러셀을 ACW의 영웅으로 만들고 나는 첫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끝이 났다.

이번에는 그보다 좀 더 짧게 8월의 대시 앳 더 비치까지 이어지는 대립이었지만 시간은 충분했다.

아무렴.

오튼과 나는 지금까지 우리 둘의 싸움이 어떤 건지 확실히 보여줬으니까.

‘하드코어.’

그게 우리 둘의 싸움이었다.

……솔직히 실제로는 좀 느긋한 성격의 오튼과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식으로 엮인 건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그런 하드코어한 방식은 분명히 우리 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싸움이었다.

“영상 나갑니다!”

광고가 끝나고 팀장의 외침과 함께 백스테이지 세그먼트가 시작되었다.

[Wa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영상에는 오늘의 경기를 마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내 모습이 나왔다.

드류 맥킨마이어의 위상을 위해 확실히 지친 연기를 하면서 나는 그대로 짐을 챙겨서 락커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복도를 걸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렉 하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Waaaaaaaaaaaaaaaaaagggghhh!]

은퇴 후에도 팬들의 리스펙트를 받는 레전드.

[어, 신 퇴근하냐?]

[예, 일이 있어서요.]

[고생 많았다. 오늘 무슨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군.]

[하, 그 녀석이요?]

[그래.]

[경고를 해뒀으니 괜찮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밑밥을 깔았다.

그런 식으로 지나가듯이 그렉과 이야기를 나눈 나는 주차장에 도착해 트럭에 짐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

헤드라이트가 전방을 비췄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Uooooooooooooooooooohhhhh!]

바로 랜스 오튼이었다.

후드 티에 청바지.

그 손에는 내가 지난주 사용했던 것과 같은 슬레지 해머가 들린 채였다.

화면은 운전석 앉아 놀란 나와 잔혹하게 웃는 오튼을 번갈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직후, 녀석이 달려들었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랜스 오튼! 랜스 오튼!!]

[랜스 오튼이 PWA에 왔습니다!!]

[신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해설.

슬레지 해머를 휘두른 오튼이 자동차의 유리창을 박살냈다.

뻐억-!

순간 튀는 파편.

이후 나는 자동차의 액셀을 밟아 그대로 주차장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끼기기기기기기기긱-!!

하지만 차는 헛돌았다.

[타이어에 펑크가 났군요!]

[오튼 이 빌어먹게 똑똑한 놈! 신을 확실히 상대할 수 있도록 모두 준비를 해둔 상태였어요!]

[Apex Predator!]

바닥에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옆으로 돈 트럭이 그대로 옆에 주차되어있던 다른 차량과 충돌했다.

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뒤로 물러서 있던 오튼이 다가와 잠금 장치를 해제하고 앞문을 열었다.

[Get Your A-s Up!]

그리고 녀석이 날 끌어냈다.

갑작스러운 습격을 당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질질 끌려 나온 나는 그대로 오튼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Parking Lot Spot.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는 오랜 업계의 전통이었고 언제나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좋게 말하자면 클리셰였지만.

나쁘게 말하면 질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오튼과 내가 가진 위상,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아이디어를 내 준비한 장치들이 모조리 빛을 발했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은 큰 환호를 보냈고.

오튼은 나를 옆에 있는 세단과 충돌한 트럭으로 힘껏 던졌다.

쿠웅-!

본네트 위를 굴러가 옆에 있는 차로 넘어간 나는 겨우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자니 오튼은 본네트를 밟고 뛰어올라 자동차 사이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프론트 드롭킥.

콰앙-!

자신은 안전하게 본네트 위에 낙법을 치면서 상대방을 밀어 차내는 킥.

거기에 맞아 나가떨어진 나는 바닥을 굴렀고 검표용으로 설치된 작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뭐야, 신. 도망이라니.]

오튼은 여유를 갖고 이야기했다.

특유의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웃으며 다가오는 녀석은 확실히 다른 선수들과 구분되는 개성을 지녔다.

[날 조지면서 했던 말과 다르잖아.]

[큭…….]

[이거 꽤 재미있는데. 남의 단체에 와서 싸우고 싶은 놈과 싸우면서 훼방 놓는 거 말이야. 마음에 들어.]

오튼이 내 머리통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은 검표소의 커다란 유리창. 녀석은 그대로 순간 이를 악물고는 나를 내던졌다.

하지만 나도 반격을 했다.

녀석이 나를 내던지려는 순간, 동시에 나는 녀석의 머리통을 붙잡았고.

우리 두 사람은 한데 뒤엉켜 유리창을 깨부수며 그 안으로 나가떨어졌다.

와장창-!!

[Yeeeeeeeeeeeeeeeeeeeaaahhh!!]

순간 이어지는 환호.

내가 드디어 반격을 가했다.

이 PWA에서 그 언제 어느 때라도 압도적인 환호만을 받았던 내가 드디어 오튼에게 맞서 반격을 시작했다.

카메라가 유리창 너머를 비추며 피를 흘리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고.

오튼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일어나 싸움을 이어나갔다.

나는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정말 해보자 이거지!!]

이마에서 (가짜)피를 흘리는 모습은 확실히 프로레슬링에서 폭력의 경계로 아슬아슬하게 넘어간 모습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게.

오튼과 나의 대립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치열한 모습이었다.

[Waaaaaaaaaaaaaaaaaagggghhh!]

팬들의 환호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그렇게 계속 싸움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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