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
[Waaaaaaaaaaaaaaaaagggghhh!!]
환호가 쏟아졌다.
백스테이지 세그먼트가 끝나고, 나와 오튼은 마치 계속 싸움을 이어왔다는 듯 자연스럽게 링으로 나아갔다.
상황은 치열했다.
오튼이 휘두른 주먹에 맞고 나가떨어진 나는 그대로 링까지 이어지는 긴 입장로를 나뒹굴며 쓰러졌다.
오튼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마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고 나는 악에 받쳐서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그대로 충돌.
바리게이트로 밀려난 오튼이 그대로 힘껏 내 등을 후려쳤고 나는 강한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니 날 들어 올리는 오튼.
그대로 몸이 다시 내동댕이쳐졌다.
콰직!
철로 된 입장로 바닥에 낙법을 치는 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끄응……!”
나는 곧바로 일어섰다.
달려드는 오튼.
그걸 피해내려고 했으나 오튼의 속도가 워낙 빨랐던 터라 불가능했다.
녀석이 나를 들이받았고 우리는 등 뒤에 있던 초대형 스크린에 충돌했다.
콰지지직!!
[Uoooooooooooooooooohhhhh!!]
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스크린의 일부가 박살나면서 마구잡이로 불꽃이 튀어 올랐고 오튼과 나는 그대로 그 뒤쪽의 공간에 처박혔다.
고릴라 포지션과 벽 하나를 두고 이어진 빈 공간. 거기에 뻗은 나는 고통으로 숨이 쉬어지질 않는 걸 느꼈다.
“크윽……!”
“윽……!!”
자동으로 신음이 나왔다.
나와 오튼은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고, 바닥에 누운 채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 있던 누군가가 내 곁으로 달려왔다.
바로 그렉 하트였다.
“신! ……제기랄, 닥터!”
내 상태를 확인한 그가 버럭 외쳤고 다른 직원과 보안 요원들도 가까이 다가와 나와 오튼의 상태를 확인했다.
방송은 바로 거기까지였다.
나는 바닥을 나뒹구는 우리의 모습을 다가와 촬영하던 카메라가 멀어지는 것에서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쇼는 계속 이어졌다.
이런 상태에서 끝을 내고 오튼과 내가 일어서서 나가면 바로 그 순간 무대의 집중은 깨지고 말 테니까.
“빨리!!”
그렉이 다시 외쳤고 이어서 구급 요원들이 다가와 나와 오튼을 살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내 이름을 외쳤다.
구급 요원들은 오튼과 나를 각각 들것에 실었고 그대로 뒤로 퇴장했다.
바로 거기까지가 각본이었다.
백스테이지.
“끄응.”
들것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오튼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불만을 쏟아냈다.
먼저 오튼부터.
“좀 살살 좀 하지 그랬냐?”
“너야말로.”
“아파 죽겠네. 진짜, 으.”
“오튼, 인마. 그래도 상대가 너니까 이런 거 믿고 맡길 수 있는 거지.”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걸 또 기뻐하는 오튼.
‘참 다루기 쉬운 놈이야.’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상대가 녀석이라서 나도 안심했다.
물론, 우리는 최대한 안전하게 이번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를 진행했었다.
유리는 설탕으로 제작한 특수품이고 이마에 바른 피는 모조리 가짜였다.
초대형 스크린에서 튀어오른 불꽃이나 스파크도 모두 연출의 일환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픔이 가시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맨바닥에 낙법을 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오튼이 다시 앓는 소리를 냈다.
“근데, 왜 너랑 대립하면 꼭 이렇게 거친 양상을 띄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거야.”
“뭐?”
“오랜 전통이지. 너랑 처음 대립했을 때도 ‘압정’ 스팟을 했었잖아?”
“아, 그거.”
오튼이 한숨을 내쉬었다.
“요새도 가끔 꿈에 나오던데.”
“하하.”
“너 설마,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위험하고 잔인하게 갈 생각은 아니지?”
“물론 아니지.”
나는 단언했다.
프로레슬링은 폭력성과 유혈을 연출하는 게 분명 커다란 특징이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사실 그렇게 하는 게 힘들었다.
“이제 메이저 스포츠니까?”
“……그래?”
“아마 그렇지 않을까.”
세 시간짜리 방송이 케이블 시청률 1위를 가볍게 달성하는데 그걸 메이저라고 보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그러므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압정 스팟 같은 범프는 할 수 없겠지.
우리를 적대적인 스탠스로 보는 이들에게 먹잇감만 던져주는 꼴이었다.
거기다.
“아프잖냐.”
그렇게 할 이유도 없었다.
이미 오튼과 나는 그런 식으로 선을 넘지 않더라도 충분히 위상을 쌓았다.
물론 팬들이 우리 두 사람의 싸움에 바라는 하드코어함이 있는 만큼 평범한 경기는 치를 수가 없을 테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팬들의 기대감을 더 높이면서 더 큰 페이퍼뷰에서 맞붙기 위해서라도.
여기에서 슬슬 ‘외부의 방해’가 하나쯤 들어오는 게 맞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보통 여기에서 그 역할은 한 단체의 수장이 맡게 되기 마련이었다.
이 경우에는 데릭 비숍이었다.
* * *
신과 오튼의 거친 싸움은 프로레슬링을 즐겨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스포츠의 본질을 느끼게 만들었다.
프로레슬링은 연출이었지만.
그들의 고통은 진짜였고.
따라서 이 스포츠가 지향하고 있는 투쟁의 가치가 진짜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신과 오튼은 링 위에서 그렇게 대립을 진행하면서 팬들에게 반응을 얻었고 그게 이후의 ‘스토리’를 정했으므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신이 이기는 게 맞지.’
티파니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 상승세는 여전했다.
과연 누구에게 패배할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다음으로 그에게서 벨트를 받아가게 될 선수는, 시간이 흘러 신의 집권기를 팬들이 질려할 때쯤에야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면 역반응에 가까운 반응을 감수하고서라도 억지로 가져오던가.
그 정도로 신은 잘 해나갔다.
모든 지표가 탑을 찍었고 텔레비전을 켜면 누구라도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그의 얼굴을 보게 될 정도였다.
뿐만이랴.
옥외 광고판이나.
신문의 1면.
곳곳에서 그의 흔적이 보였다.
밀린 광고만 스무 개가 넘었고 영화나 드라마의 개런티는 정말 높아져 오히려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콘의 시간은 그만큼 비쌌다.
신을 2시간짜리 영화에 출연시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했다.
오히려 그가 프로레슬링을 정말 사랑하기에 지금 위클리 쇼에 출연하는 값이 싸게 느껴질 정도였다.
언젠가 그가 이렇게 말했다.
미국 내에서 동양인, 그것도 남성은 단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신은 당당하게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우상이자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보여주었던 개척정신과 카리스마, 실력에 모든 사람들이 열광했다.
어려운 길이었지만 그는 해냈다.
그리고 신과 비슷하게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남자가 한 명 더 존재했다.
바로 숀 시나였다.
2011년 6월 27일.
7월 중순에 개최될 WWF 페이퍼뷰인 ‘저지먼트’까지 2주가 남은 상황.
신과 오튼처럼 러셀과 시나 역시 대립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딱히 물리적인 충돌을 빚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척 치열했다.
충격적인 시퀀스도 여럿 나왔다.
가장 먼저, 현재 WWF의 간판스타이자 전체 이용가 시대의 아이콘인 숀 시나가 ACW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허리에 경쟁 단체의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 벨트를 휘감은 채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마벨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가 D.C 코믹스의 코믹북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존재했다.
ACW로 러셀을 직접 찾아온 시나는 확실하게 그때 먼저 손을 내밀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먼저 사과를 했다.
[Boooooooooooooooooooooo-!!]
ACW 팬들은 거기에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시나는 그런 팬들의 반응을 꿋꿋하게 이겨내면서 악수를 청했다.
거기에 침묵하던 러셀은 그것을 받는 대신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했다.
[지금 뭐하자는 거냐?]
[Yeeeeeeeeeeeeeeeeeaaaahhhh!!]
[말했잖아. 그때 네가 겪은 배신에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장난해?]
[장난이 아니야. 러셀.]
시나가 다시 이야기했다.
[네가 겪은 일은 정말 유감이야. 러셀. 나는 당시 비겁한 행동을 했어.]
[날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시나.
거기에.
[……그렇게 나오시겠다.]
러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그는 진실을 이야기했다.
숀 시나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기고 있는, 아주 짜증나는 진실을 말이다.
시나는 사실 항의를 했었다.
[‘실제로’는 그랬잖아?]
러셀은 그렇게 현실을 끌어들였다.
바트 맥센의 끔찍한 배신 이후로 시나는 거기에 크게 반발하며 회사를 나가는 행동조차 불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숨기고 지금 이 자리에서 러셀에게 사과를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팬들 때문이지.]
러셀은 순간 당황한 시나의 앞에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넌 나를 도우려고 했어. 하지만 네가 그렇게 회사를 나간다면 널 등불로 삼은 팬들은 어떻게 될까? 바로 그 책임감이 널 회사에 남도록 했지.]
바로 그게 진실이었다.
시나는 러셀을 도우려고 했으나 팬들을 위해서 그러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걸 시나의 입으로 말했더라면 변명처럼 느껴졌을 터였다. 그렇기에 각본은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영리한데.’
티파니 맥센은 미소를 지었다.
시나의 캐릭터를 지켜주면서 진실을 알리는 아주 멋진 전개 방식이었다.
신이 개입하지 않은 각본이었지만 두 사람은 충분히 잘 해주고 있었다.
러셀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런 시나를 역겹다고 디스했다.
[내 예상대로군. 시나. 너는 정말로 올바른 놈이야. 팬들을 핑계로 안 삼다니. 넌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
[그게 구역질이 나. 언제나 그랬어. 이상을 위해 행동하는 슈퍼 히어로.]
그렇기에 그는 현실의 문제에 집착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러셀과 같은 사람들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러셀은 그게 항상 불만이었다.
[내가 등신처럼 보이나? 돈을 위해서 WWF를 떠나려다가 뒤통수를 맞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바로 내가?]
[그건…….]
[엿이나 쳐먹어. 시나. 사람을 그딴 식으로 동정하지 마. 여기서도 네 그 위선자 짓은 전혀 변하질 않는군.]
[Uooooooooooooooohhhhh!!]
[내가 네 사과를 받기를 원하나?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세상에는 네 가 말하는 Never Give Up으로 풀리지 않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거든.]
러셀은 선을 그었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손을 들어 반대편에 서있는 숀 시나와 가볍게 선을 그었다.
[다시 말하지. 이곳은 ACW야. 시나. 어린애들 장난질은 네 단체로 돌아가서 장난감 벨트를 가지고 해.]
거기에서 시나가 발끈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까지 자신을 그런 식으로 디스하는 더 팍에게 맞서서 계속해서 싸움을 해왔던 그였다.
그런데 러셀이 그걸 다시 무시했다.
자신이 내세우는 구호와 팬들, 지금까지 이어져온 커리어를 ‘어린애들 장난’이라면서 무시하고 헐뜯었다.
[그 말 취소해.]
대립은 그런 식으로 격화되었다.
‘현실’의 문제로 WWF를 떠났다 돌아가게 된 러셀은 아직도 자신이 내세우는 그 ‘꿈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시나를 보면서 크게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그 위선을 격파하려 했고 시나는 자신이 내세우던 슬로건을 디스 당하자 참지 못하고 엄니를 드러냈다.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대립.
신과 오튼의 대립도 그렇고.
‘정말로 새로운 시대가 왔어.’
그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번 시대의 주역들은, 과거의 선수들로부터 제대로 된 잡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특히나 대단했다.
더 팍.
브룩 레스너.
이 두 사람은 원래, 트리플H와 캐스켓-테이커의 이후로 WWF라는 회사를 책임져야만 했을 남자들이었지만.
두 사람 다 각자의 이유로 인해 회사를 떠났고 완전히 공백이 발생했다.
그렇기에 신과 러셀, 시나와 오튼은 자신보다 두 단계 더 윗세대,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이들과 싸워야 했다.
어려운 싸움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견뎌낸 대가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이제 슬슬 바트 맥센이 물러난다는 정보가 나가면서 보다 본격적으로 그들의 대립이 심화될 터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쉬운 길은 절대로 아니겠지만 프로레슬링 업계는 앞으로 더 나아가겠지.
티파니 맥센은 미소를 지었다.
* * *
2011년 7월이 되면서 미국 전체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바트 맥센의 은퇴였다.
그는 서서히 회장직을 내려놓고 딸인 티파니 맥센에게 물려줄 것이라 발표했으며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업계 내부의 관계자들은 이로서 계속 이어져온 두 사람의 알력다툼이 완전히 막을 내렸음을 알았다.
주가가 순간적으로 크게 휘청거릴 수도 있는 거대한 사건이었지만 WWF라는 회사는 굳건하게 버텨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찌되었든, 그와는 별개로 WWF와 ACW는 합작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그게 그 시간대의 시청률을 완전히 갈퀴로 쓸어 담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싸우던 두 단체의 팬들은, 그 단체의 탑 레벨 선수들 간에 대립이 벌어지자 거의 매일매일 프로레슬링을 시청하게 되었다.
월요일에는 버닝콩이나 나이트로.
화요일에는 전날 같은 시간에 방영했던 위클리 쇼에서 보지 못한 방송.
수요일에는 PWA.
그리고 교묘하게 ACW의 썬더가 목요일로 시간을 옮기면서 두 단체 간의 협력이 이루어지는 걸 보여주었고.
금요일 밤에는 랙다운.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재방송이나 특별 편성 방송, 거기에 리얼리티 쇼의 런칭 또한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상황은 정말로 좋았지만.
막상 쇼에서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 간의 사이는 정말로 좋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대해, ACW의 부사장인 데릭 비숍은 링에 나아가 다음과 같은 정책을 한 가지 내놨다.
[신과 랜스 오튼의 안전을 위해 두 사람의 경기를 승인하지 않겠습니다.]
[Booooo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그림을 권력자가 내놓았다. 현실에서도 응당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과 프로레슬링의 다른 점은.
보통 그런 말을 한 권력자들의 결말은 좋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신의 테마곡이 울려 퍼졌고 링 위에 서있던 데릭 비숍은 실제로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