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66화 (466/634)

466.

신의 등장 테마곡이 울려 퍼지자 경기장에는 팬들의 환호성이 빗발쳤다.

[Yeeeeeeeeeeeeeeeeeeaaahhh!]

데릭 비숍은 헛소리를 했다.

선수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두 사람의 대립을 막는다니. 그 소리를 받아들일 팬은 단 한 명도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신이 링에 그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우렁찬 환호를 보냈다.

신이 부디 저 헛소리를 끝내기를 기원하면서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글라스에 재킷 차림으로 링에 오른 신은 어깨에 메고 있던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머리 위로 들어보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거기에 쏟아지는 환호.

신이 단체의 간판인 월드 챔피언으로서 얼마나 벨트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는지가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물었다.

“데릭 비숍, 당신이 링에 나오면 환영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군.”

[Yeeeeeeeeeeeeeeeeeaaaahhhh!!]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선수들의 ‘안전’을 생각하겠다고? 제기랄, 대체 언제부터 그러셨다고?”

신은 눈썹을 찡그리고 물었다.

“잘 들어. 비숍. 나도 알고 있어. 내가 챔피언이기 때문에, 지금 이 업계는 예전과는 전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히트를 치고 있지.”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그래서 참 많이 변하긴 했어. 그 빌어먹을 ‘시청물 등급 위원회’가 사사건건 귀찮게 군다던데. ……사실 그게 아주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린아이들의 롤 모델이 된다는 건 언제나 영광스러운 일이니 말이야.”

그렇기에 이해했다.

자꾸 ‘높으신 분들’이 찾아와서 귀찮게 이래라 저래라 감을 놓을 때도.

회사에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면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각본을 쓸 수 없다고 말했을 때도.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

신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선을 넘었다고, 비숍. 서로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두 남자를 닥치게 만드는 건 정말로 선을 넘었어.”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마치 티키타카라도 치는 것처럼.

ACW 월드 챔피언과 경기장에 모인 관객들은 그렇게 쇼를 만들어나갔다.

거기에 데릭 비숍은 마치 샌드위치에서 잘려져 나간 식빵 귀퉁이처럼 입을 다문 채 구석에 서 있었다.

그러다 겨우.

신이 시선을 보내 말할 기회를 주자 천천히 앞으로 나와 자신을 변호했다.

“물론.”

그는 잔뜩 겁에 질렸다.

“알고는 있습니다. 신. 당신이 하는 말이 맞죠. 이 업계는 분명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이루어져 왔으니까요.”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Boooooooooooooooooooooo-!!]

“챔피언, 당신이 단 하루 쇼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수천만 달러의 수익이 발생한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거기다, 그런 챔피언이 지금 대립하는 랜스 오튼 역시도 분명히 시대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의 슈퍼 엘리트.

그렇게 상품성이 좋은 두 사람이 붙는 건 분명 이 업계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수 없는 이유는.

“당신과 오튼이 붙었을 때, 혹시나 ‘최악의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이 업계 전체에 엄청난 손해가 될 테니까요.”

비숍은 단호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현재 서로 선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대립을 진행 중이었다.

그게 시합이 되면 바로 넘을 게 자명했다. 누군가 심하게 다쳐서 은퇴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눈에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데릭 비숍은 이 시합을 허가해줄 수가 없는 것이었다.

[Boooooooooooooooooooooo-!]

“안타깝지만, 저는 회사의 총 책임자로서 당신을 보호할 의무가…….”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

“내가 얼마나 회사에 큰돈을 벌어다 주고, 얼마나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고.”

신은 말했다.

랜스 오튼은 분명 강한 상대였다.

신인 시절에 붙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분명히 좀 더 애를 먹을 터였다. 그렇기에 대립이 과열된 측면도 있다.

그래도 신은 싸울 생각이었다.

“그게, 내가 꿈에 그리던 월드 챔피언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Yeeeeeeeeeeeeeeeeeeaaahhh!!]

도전자를 쓰러뜨리고.

팬들의 사랑과 증오를 받으며.

시대를 견인한다.

그것이 챔피언의 역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응원이 빗발치는 가운데, 신은 벨트를 머리 위로 힘차게 들었다.

비숍은 말하지 못했다.

끄응, 하고 앓던 그는 몇 번이고 마이크를 쥐어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계속된 챈트에 당초 예상했던 시간을 훨씬 넘긴 뒤에야 겨우 마이크를 쥐고 말을 할 수가 있었다.

“이미 정해진 일입니다.”

“……?”

[Boooooooooooooooooooooo-!!]

“WWF 측과도 말을 해뒀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신 VS 랜스 오튼. ACW 월드 챔피언십 매치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팬들의 야유가 한층 더 강해졌다.

하지만 데릭 비숍은 확고했다.

두 사람의 대립 양상이 너무나도 치열한 탓에 혹시나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경기는 허가해줄 수 없다.

황당한 사건이었다.

고용주가 선수의 안전을 고려해 시합을 못하게 막다니.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고 그렇기에 팬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다들 느꼈다.

신과 랜스 오튼.

두 선수가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가진 존재감과 위상을. 그리고 그 경기가 얼마나 치열할 것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이로써 확실히 정해졌다.

그 경기는 없을 것이며, 회사 측에서 두 사람의 대립을 억지로 종료시켰다.

[Booooooooooooooooooooooo-!]

야유를 감내하며 서있는 비숍.

거기에 길게 한숨을 내쉰 신은 그대로 뒤로 돌아서는 척을 하다가.

다짜고짜 슈퍼 킥을 날렸다.

쫘악-!

거기에 맞아 넘어가는 비숍.

[Yeeeeeeeeeeeeeeeeeaaahhhh!!]

순간적으로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고 비숍은 그대로 바닥에 뻗어버렸다.

“…….”

그걸 잠시 열이 잔뜩 오른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신은 이내 뒤로 돌아섰다.

결국 이 세그먼트를 통해.

신과 랜스 오튼의 경기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은 훨씬 더 높아지게 되었다.

* * *

각본은 그렇게 팬들의 기대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7월 1주차의 버닝콩.

쇼에 출연한 오튼은 백스테이지 세그먼트에서 바트 맥센에게 신을 상대하지 말라는 통보를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되었네.]

[보스, 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개소리고 나발이고. 정해진 일이야. 너희 두 사람의 경기는 열리지 않아.]

[빌어먹을……! 선수가 싸우겠다는데 그걸 말리는 회사가 어디있냐고요!]

[상황이 그렇게 되었어.]

바트 맥센도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들의 위치를 생각해.]

[그럼 저기 ACW에서 그 개자식이 벨트를 들고 서있는데 있으라고요?]

[…….]

[아니지. 두려운 거 아닙니까?]

오튼은 바트에게 불쑥 달려들었다.

[내가 그 자식을 이기지 못할까 두려운 게 아니냐고요! 대답해보십쇼!]

바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테이블을 힘껏 내리친 오튼은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듯 바트를 노려보며 그대로 사무실을 나갔다.

팬들은 거기에 환호를 보냈다.

집에서 생방송을 보고 있던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시대.

단체와 단체가 협력하고 그 선수들이 대립한다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었을 각본이었다.

그게 퍽이나 흥미로웠다.

누구의 말마따나 ‘단체의 시대’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

팬들은 이전까지 나와 랜스 오튼이 대립을 진행해서 결국 멋진 경기를 보여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하지만 두 회사의 대처로 인해 두 사람의 경기가 열릴지조차 불투명해졌고 팬들은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답답함.

그리고 신과 오튼이라면 분명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기대감이 그러했다.

녀석과 나는 상대와 대립을 하는 동시에, 각각 자신의 단체와도 대립하는 묘한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여기서는 협력하는 게 맞겠지.

단체라는 거대한 존재와 맞서 이기려면 오튼과 내가 어떤 식으로든 손을 잡고 이 난관을 헤쳐가야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물론.

“오튼하고 제가 ‘올 인’에 등장해서 깽판을 치는 게 맞는 그림 같은데요.”

7월 1주차의 버닝콩이 끝나고 이어진 화상 회의. 나는 컴퓨터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의견을 말했다.

올 인.

ACW의 7월 페이퍼뷰.

8월의 대시 앳 더 비치까지 한 걸음을 남겨두고 개최되는 페이퍼뷰로 판매량은 그냥저냥 평범하게 나왔지만.

아무래도 여기에서 나와 오튼이 빠지면 예상 판매량에 미치지 못할 테니 적어도 쇼에 출연은 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반대되는 위치의 WWF 7월 페이퍼뷰에서는 시나와 러셀의 1차전이 열릴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경쟁 구도는 좀 줄어들어서 이제 더 이상 같은 시간에 페이퍼뷰를 개최하는 전면전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일정이 얼추 맞는 만큼 나는 ACW 월드 챔피언으로서 단체를 도와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경기는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거기에 오튼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의해.]

[그렇다면 확실히 두 사람이 페이퍼뷰에 참가할 거라는 암시를 줘야지.]

[그리고 두 사람이 깽판을 칠 수 있도록 경기도 하나 구성하고 말이야.]

아이디어가 척척 나왔다.

[누구로 하지?]

[신, 어떻게 할까?]

“…….”

잠시 고민하던 나는.

“영 덕스와 루차 브로스를 붙이죠.”

[태그 팀 매치로?]

“예.”

[흐음…….]

“두 팀 다 경기 없잖습니까.”

[아니, 하지만 역시 위상이 좀 좋은 친구들을 붙이는 게 너와 오튼이 상승하는 효과가 나지 않겠나?]

[마침 젠코도 부상에서 복귀한 상황이고 그편이 더 나을 것 같은데.]

“그건 제가 링 위의 네 사람을 제압하는 걸로 효과가 충분할 테고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네 사람의 위상이 저해되면 안 되니까 저는 경기가 충분히 진행된 후에 링에 난입할 생각이었다.

슬레지 해머를 들고.

네 사람은 신인이었다.

영 덕스는 인디에서 꽤나 이름값을 날리던 형제 태그 팀이었고.

루차 브로스는 멕시코의 루차 오버그라운드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진출한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각자 지닌 단점들로 인해 큰 기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나는 우리가 굳이 누군가의 경기를 망쳐야 한다면 좀 더 기회를 줄 수 있는 쪽으로 가고 싶었다.

영 덕스.

키는 180이 안 되고 체중도 둘 다 100kg을 넘기지 못하는 작은 체격.

루차 브로스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둘 다 경기는 기가 막히게 할 줄 아는 놈들이었으므로, 경기를 시켜만 준다면 잘 살리리라.

“15분을 주죠.”

[15분? 너무 긴데.]

“아뇨, 링 위의 사내들이 너덜너덜하게 찢겨지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합니다. 15분으로 해주세요.”

[오튼과 자네는?]

“저희는 10분이면 충분하죠.”

[흐음…….]

고민에 빠진 각본 팀장.

하지만 나는 끝까지 그들의 경기를 15분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

영 덕스.

형인 맷 잭시와 동생인 닉 잭시로 이루어진 친형제 태그 팀.

나이도 85년생과 87년생으로 젊은 그들은 폄하 받기 쉬운 ‘태그 팀 레슬링’에 대한 철학을 가진 팀이었다.

그렇기에 인디 시절 온갖 화려한 하이 플라잉 레슬링으로 주목을 받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메이저 단체라고 할 수 있는 ACW로 이적해온 뒤로는 딱히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줄곧 방치가 되었다.

반응이 안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부에서는 두 사람의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푸시를 취소하고 계속해서 방치를 해두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이어지다 보니 두 사람은 어느새 의욕도 잃고 하루하루 연봉만 축내며 시간을 보냈다.

루차 브로스도 마찬가지였다.

형제 태그 팀인 그들은 멕시코에서 직접 스카웃을 받아서 건너왔지만.

영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탓에 연일 패배하는 각본을 수행 중이었다.

그런 두 팀은, 올 인을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상상도 못한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이 리그의 최고 거물에게서.

바로 신이었다.

“닉, 맷.”

“아, 선배님.”

“오셨습니까.”

락커룸에 있던 형제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스포츠백을 짊어진 신이 다가와 루차 브로스까지도 불렀다.

“펜트, 페닉스.”

펜타곤 마스터.

그리고 루차 페닉스.

가면을 벗고 있던 두 사람이 다가왔고, 어느덧 신의 뒤쪽에 두 사람의 전담 통역사가 다가온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넷 다 의아해하는 도중.

신은 웃으며 말했다.

“너희 경기가 잡혔다.”

“예?”

“오, 오늘요?”

“아니 ‘올 인’에서.”

“어…….”

“그것도 십오분이야.”

“Son quince minutos.”

옆에 있던 통역가가 번역을 해주자 루차 브로스의 안색도 밝아졌다.

“asombroso!”

“¿cómo?”

“어떻게 그렇게 됐냐는데요.”

“너희가 잘해서지.”

신은 펜타곤의 어깨를 툭 쳤다.

“거기에 내가 좀 끼기로 했다. 나와 오튼이 난입할 경기가 필요한데. 너희가 그 역할을 좀 맡아줘야겠어.”

“여, 영광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소리치는 영 덕스.

거기에 피식 웃은 신은 네 사람이 의욕을 느낄 만한 이야기를 좀 해주고는 그대로 잠시 락커룸을 나왔다.

그리고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점잔 빼는 게 재주는 아니구나.

그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녀석들이 자신을 락커룸의 존경할 수 있는 선배로 생각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역시 테이커는 대단한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라 과거, 그 문제 많던 락커룸을 완벽하게 통솔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신은 이내 피식 웃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서는 잘 지내죠? 테이커.’

물론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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