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
7월 2주차.
‘올 인’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ACW의 페이퍼뷰.
그리고 거기에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랜스 오튼은 버닝콩에 출연했다.
링에 오르는 그에게 쏟아지는 챈트.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특유의 어슬렁대는 걸음으로 나타난 그는 마이크를 잡고 말을 시작했다.
[일단…… 일이니 링에 나와보기는 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진 않는군.]
[Uooooooooooooooooooohhhh!]
[신과 나는 경기를 가지기로 했으나 회사에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어. 참으로 웃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
[Booooooooooooooooooooooo-!]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군. 그래, 확실히 역겹고 더러우며 치사한 짓이야.]
[This Is Bull Sh-t!]
[This Is Bull Sh-t!]
[This Is Bull Sh-t!]
팬들이 마구 욕을 해댔다.
오튼은 피식 웃었다.
[다들 나와 생각이 같군.]
[Waaaaaaaaaaaaaaaaaaaggghhh!]
[걱정 마. 이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분명히 올 아웃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야. 기대해.]
[Yeeeeeeeeeeeeeeeeeeaaahhh!!]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페이퍼뷰에 대한 기대감을 조성한 채로 막을 내린 링 세그먼트.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수요일 밤의 PWA.
일요일의 올 아웃까지 4일 남은 상태에서 링에 오른 나는 마찬가지로 팬들의 환호 속에 메시지를 던졌다.
“그렇게 나오셔야지! 오튼! 제대로 한번 화끈하게 붙어보자고! 경기가 있느냐 없느냐는 아무 상관도 없어!!”
나는 벨트를 들고 소리쳤다.
“여기가 무슨 프로 야구 구단도 아니고! 경기를 정하는 건 단체가 아니야! 바로 팬들이 원하는가라고!!”
[Yeeeeeeeeeeeeeeeeeaaaahhh!!]
“와라! 오튼! 기다리고 있으마!!”
그렇게 내 세그먼트도 잘 끝났다.
세계적으로 생중계가 진행된 그 세그먼트는 ‘올 아웃’의 판매량을 촉진시키는 엄청난 효과를 낳았다.
경기는 뛰지 않지만 우리가 분명히 뭔가를 저지르겠다고 말한 것만으로도 톡톡히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랜스 오튼과 내가.
‘잘’ 해내는 것뿐이었다.
* * *
2011년 7월 17일.
일요일.
ACW의 7월 페이퍼뷰인 ‘올 아웃’이 개최되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Waaaaaaaaaaaaaaaaaggghhhh!]
역시 시작은 폭죽.
그리고 환호성과 함께였다.
“자! 시작해봅시다!”
팀 캡틴인 데릭 비숍이 자리에 앉아서 소리치자 오프닝 영상이 나가면서 본격적인 페이퍼뷰가 시작되었다.
페이퍼뷰.
모든 대립의 결말이 정해지는 자리.
코디 로스와 크리스 젠코의 오프닝 매치를 시작으로, 각각의 선수들이 좋은 분위기 속에 경기를 이어나갔다.
이제 다들 제대로 된 프로레슬링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아래에 있는 선수들이 성장하고 위에 있는 선수들은 이끌어주면서 팬들에게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자리.
거기에서 나와 랜스 오튼의 역할은.
과거 캐스켓-테이커와 트리플H가 그러했듯이. 지금 후배들이 실력을 보여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멋지게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것뿐이었다.
동시에.
후배들은 우리에게 진창 깨지고 얻어맞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스페셜함을 유지시켜주었다.
멋진 그림이었다.
하나의 완성된 구도였고.
그렇게.
쇼의 정확히 중반이 지나고.
“선배님! 링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같은 락커룸에서 대기하고 있던 영 덕스 형제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격려했다.
등을 툭툭 때리고.
“박살 내고 와.”
“옙!”
“옙!”
동시에 나가는 두 사람.
오랜 옛날의 펑크 가수 같은 스타일의 두 사람은, 롱 팬츠의 밑단에 술을 붙여놓는 스타일이 꽤 독특했는데.
어쨌든 제대로 된 각본과 기회만 주어진다면 분명 성공할 녀석들이었다.
‘주인공은 아마 되지 못하겠지만.’
나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공만이 프로레슬링의 전부는 아니었다. 주인공이 아니었음에도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나이가 되었던 테이커를 생각하자면 더.
여기에는 각자의 자리가 있다.
그리고 안 좋은 회사의 단점은 언제나 주인공을 과도하게 만들기 위해 다른 선수들을 갈아넣는다는 점이었다.
‘아니지.’
그렇게 생각해보자면 내가 영 덕스를 ‘주인공 감’이 아니라고 말한 것도 사실 좀 섣부른 판단이기는 했다.
시대는 저문 뒤에야 꽃을 피운다.
그렇기에 먼 미래에는 두 사람 중 하나가 그 시대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다는 이야기였다.
단지 내가 ‘지금’ 이 시대의 사람이라서 그 기준에 맞추어서 생각할 뿐.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라는 남자도 그랬듯이.
“후.”
가볍게 웃은 나는 그대로 모니터링TV로 이어지는 경기를 지켜보았다.
오늘 올 아웃은 좀 특별했다.
[장관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몇 번이고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게 다 링에 ‘무단’으로 난입하는 걸 막기 위해섭니다.]
해설자들이 다시 설명했다.
경기장 안.
입장로 앞과 링 주변에는 사람들의 시야가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의 보안 요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검은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경봉까지 찬 덩치들. 하지만 미묘하게 선수들보다는 키가 작았다.
‘너무 크면 또 이상하니까.’
입장이 시작되었다.
[Super Kick! Partyyyyyyyyyy-!!]
‘슈퍼 킥 파티’.
인디 시절부터 이어져온 영 덕스의 캐치프레이즈와도 같은 단어.
말 그대로 영 덕스는 온갖 상황에 타격기를 써야할 때면 둘이서 함께 슈퍼 킥을 날리는 ‘파티’로 유명했다.
현 시대에서는 주로 내가 슈퍼 킥의 사용자인 만큼 원래는 ACW 측에서 봉인을 시키려고 했다지만.
내가 사용을 허락했다.
슈퍼 킥 파티는 영 덕스가 인디 시절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게 해주었던 무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Waaaaggghhh!]
팬들의 반응은 놀랄 정도로 없었다.
‘슬프군.’
아무래도 두 선수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외양도 그다지 강해 보이지는 않아서 기대감이 없는 것이겠지.
그런 식으로 봤을 때, 루차 브로스는 좀 더 나았다.
[Ahhhhh-! Ah!]
[Ahhhhh-! Ah!]
[Ahhhhh-! Ah!]
마치 내 초기 테마곡처럼 성스럽게 이어지는 외침. 그 이후는 좀 달랐다.
랩.
멕시코에서 쓰는 스페인어로 남자가 랩을 쏟아내는 스타일의 입장 테마.
그리고 나온 루차 브로스는.
키는 영 벅스와 비슷했지만 두 가지 부분에서 확실히 큰 이목을 끌었다.
일단 몸의 문신과 잘 잡힌 근육.
그리고.
‘루차도르’임을 각인시키는 마스크.
그게 좀 특이했다.
펜타곤 마스터는 입 부분에 해골 모양의 페인팅을 해서 쓰고 있는 해골 마스크와 자연히 연결되게 했고.
루차 페닉스는 보다 화려한, 상어를 연상케 하는 푸른색 마스크를 썼다.
그 모습이 ‘미스테리’한 카리스마를 가지면서 팬들에게 어필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건.
레이 미스테리우스의 유산이었다.
158cm라는 초단신으로 프로레슬링 업계의 거물로 남았던 전설의 사나이.
‘그곳에서는 잘 계시죠. 레이.’
나는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WWF와 계약이 만료된 뒤로 멕시코로 돌아갔다는데 잘 지내셨으면 한다.
어쨌거나.
땡땡땡-!!
[경기 시작됩니다!!]
[Waaaaaggghhh!!]
탐색전부터 시작해 두 팀은 천천히 피치를 올려나가며 경기를 만들어갔다.
‘그래.’
그거면 된다.
15분.
충분한 시간이었다.
프로레슬러는 15분이 주어지면 영웅도, 악인도 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므로 천천히.
천천히 간다.
프로레슬링을 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네 사람 다 실력은 충분했으니까.
[콰앙!]
[아아! 시작됩니다!]
[허리케인라나!]
[당황하는 닉 잭시! 펜타곤 마스터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Uoooooooooooooooohhhh……!]
그리고 조금씩 반응이 나왔다.
처음에는 저게 대체 뭐하는 건지 싶었던 팬들은 펜타곤 마스터와 닉 잭시의 싸움에 순간적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래.
아무리 체격이 작고 평범한 모습을 했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반대로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선수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링 위에서 붕붕 날아다니는 모습은 분명히 경기장을 찾아온 팬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마련이었고.
그건.
시청자들에게까지도 전해졌다.
그렇기에 프로레슬링은 언제나 관객들과 쌍방으로 소통하는 스포츠였다.
주도권은 펜타곤 마스터가 잡았다.
닉 잭시와 한손 깍지를 낀 채 턴버클을 밟고 올라간 그가 로프를 내달리며 그대로 힘껏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다시.
아니. 반대로.
[허리케인라나!!]
투콰앙-!
해설자는 잘못 말했지만.
리버스 허리케인라나.
펜타곤 마스터가 쓰는 말인 스페인어로 하면 우라칸라나 인베르티다.
상대의 뒤쪽으로 목말을 타듯이 올라타 그대로 뒤로 넘기면서 수직으로 지면에 꽂아버리는 위험한 기술.
[Yeeeeeeeeeeeeeeeaaaah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더군다나 닉 잭시는 몸이 작은 만큼 유연해 그 기술을 맞고 튕겨져 올라 일어서며 그대로 링 밖으로 나갔다.
다음 기술로 이어나가기 위한 어색하지 않은, 동시에 프로레슬링이 가진 판타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셀링.
펜타곤 마스터가 태그를 했고 루차 페닉스가 로프를 잡고 뛰어 링으로 나오지 않고 그대로 맹렬하게 달렸다.
로프 위를 성큼, 성큼, 성큼.
거의 서커스 수준.
그리고 탑 로프를 밟고 도약.
문설트.
[Uoooooooooooooooooohhhhh!!]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멋지군.’
나도 박수를 보냈다.
나는 절대 하지 못했을 무브였다.
내 체중에 키로 저렇게 밟으면 아무리 심지에 철심을 박은 로프라고 하더라도 푹푹 꺼져버리고 말 테니까.
아니. 정확히는 그 반발력으로 인해서 몸이 튕겨져 나갈 거란 말이지만.
어쨌거나.
링 밖으로 몸을 내던진 루차 페닉스와 펜타곤 마스터는 루차도르가 무엇인지를 세상에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영 덕스도 뒤지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터지는 슈퍼 킥.
쫘악!
순간 서로 반대편으로 밀려나는 루차 페닉스와 닉 잭시.
그리고 동생인 맷 잭시가 태그를 하면서 로프를 밟고 링으로 난입했다.
이어지는 반격.
[Uooooooooooooooohhhh!!]
거기에 루차 페닉스가 당했다.
주도권이 넘어갔고 영 덕스는 루차 브로스보다 더 끈끈한 팀워크를 보이면서 승리를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그렇게 이어지는 싸움.
입장 때만 하더라도 이 경기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관객들은 이제 확실하게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멋지군.’
나는 미소를 지었다.
* * *
[Waaaaaaaaaaaaaaaaaagggghhh!]
팬들의 환호가 점점 올라오더니.
경기장의 분위기는 환상적이었다.
‘꽤 괜찮은데?’
닉 잭시는 생각했다.
기회를 받았고 거기에 따라 자신은 최선을 다해 경기를 했을 뿐이었지만.
어쨌거나 반응은 좋았다.
이거 이대로면 혹시라도 신이 경기를 망치기 위해서 나올 때 야유를 받을 수도 있겠지 싶을 정도였다.
신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이 정도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선수라는 게 증명되어서 기쁜 것이었다.
펜타곤 마스터도.
루차 페닉스도.
맷 잭시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바로 태그 팀 레슬링이라고.
쫘악!
쫘악!
동시에 터지는 슈퍼 킥.
[Waaaaaaaaaaaaaagggghhhh!!]
좌우에서 확실하게 포지션을 잡고서 킥을 차는 영 덕스. 거기에 맞은 루차 브로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무반응을 여기까지 끌어올린 상태에서 두 팀의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아직 결말이 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서 이제 신이 나오고 경기를 망치는 각본으로 이어질 예정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닉 잭시는 카메라와 팬들이 보이지 않게 맷 잭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이 등불로 삼아 여기까지 오게 해주었던 ‘태그 팀 레슬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것만으로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허억, 허억…….”
“크윽…….”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멋진 경기에 박수를 보내는 팬들.
펜타곤 마스터와 루차 페닉스도 자신들의 성과를 듣고는 몰래 웃었다.
하지만 그건 거기까지였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갑자기 경기장의 조명이 뒤바뀌면서 한 남자의 테마 음악이 울려퍼지자.
[Uooooooohhhh……!!]
[Waaaaaaaaaaaaaaaaaagggghhh!]
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가라는 듯이 큰 환호성을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기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 덕스, 루차 브로스 모두.
바로 이게 아이콘임을 깨달았다.
그 환호성이 어찌나 큰지 실제로 링이 덜덜 떨린다 싶을 정도였다. 네 사람 모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아직 통증에 대한 셀링을 해야만 하는 시점이었지만 일어서고 말았다.
왜냐면.
지금 이 ‘아이콘’의 등장은 눈으로 확실히 봐둘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입장로를 통해 나오는 신.
연기와 불꽃 사이를 걸어 나오는 특유의 연출은 과거 캐스켓-테이커가 이랬을까 싶을 정도의 카리스마였다.
근육질의 몸매.
선글라스와 재킷, 롱 팬츠까지 확실하게 갖춰 입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그리고.
왼쪽 어깨에 월드 챔피언 벨트.
오른쪽 어깨에 슬레지 해머.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성 속에 링으로 나온 신이 천천히 걸어왔고 당황하던 보안 요원들이 그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앞에 서있던 남자의 안면에 헤드벗을 꽂아넣었다.
빠악-!!
바로 이게.
챔피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