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
2011년 8월 21일, 일요일.
ACW에서 개최하는 여름 페이퍼뷰.
대시 앳 더 비치가 개최되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시작은 물론 폭죽.
[Waaaaaaaaaaaaaaaaaaaggghhh!]
그리고 팬들의 환호성.
이런 초대형 페이퍼뷰의 열기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십오만의 팬들이 운집했다.
과거에 비해 그다지 그 수치가 늘지는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여한 경기장의 사이즈 때문이었고.
이번 대시 앳 더 비치는 티켓 판매가 시작된 이후 5초가 채 지나지 않아서 전 좌석을 매진시켰다고 했던가.
새삼 챔피언의 대단함을 느꼈다.
저게 바로 시대의 아이콘.
그 존재만으로 회사와 업계를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인도하는 존재.
그게 바로 현재의 신이었다.
“참, 대단한 녀석이란 말이야.”
해설자들의 코멘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자리에 앉은 러셀이 피식 웃었다.
옆자리에 앉은 시나가 동의했다.
“맞아, 신은 정말 대단해.”
두 사람은 섬머 수플렉스에서 두 번째 경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실.
꽤나 의식하고 있었다.
신 VS 랜스 오튼을.
러셀은 당연히 준비된 드라마가 있는 시나와 자신의 대립이 훨씬 더 좋은 반응을 얻으리라고 확신했지만.
막상 까보니 마냥 그렇진 않았다.
신과 오튼은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변의 다른 캐릭터들을 적극 활용해서 대립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건 꽤나 현실적이고 또한 성공적으로 느껴졌다. 두 사람의 경기는 팬들에게서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렇다고 질 마음은 없었지만.’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다.
시간은 흘렀고.
이제는 확실히 그때 그 캠핑 버스에 있던 네 사람이 주도하는 시대였다.
그때와 달리 이제는 제대로 된 전용기를 하나쯤 구매해서 타고 다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본질은 같았다.
숀 시나.
러셀 오메가.
신.
랜스 오튼.
네 사람은 아직도 그때처럼 이 업계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영혼을 걸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기대와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면서 보기 시작한 페이퍼뷰.
오프닝 매치가 시작되었다.
영 덕스 VS 루차 브로스.
러셀의 눈이 빛났다.
“호오.”
“왜, 좀 눈에 들어?”
“저 자식들, 저렇게 잘했던가.”
“리더가 모르면 어떻게 해.”
시나가 피식 웃었다.
“아니, 아직 리더는 크로우거든.”
“그래?”
“응, 그래서 사실 저 친구들하고 딱히 대화를 해본 적은 없는데 말이야.”
러셀은 흥미를 가지고 말했다.
거기다 일반적인 매치가 아닌 점이 그들의 경기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바로 래더 매치였다.
메인이벤트를 광고라도 하듯 이번 대시 앳 더 비치는 야자수로 된 세트장 주변에 철제 접사다리와 철제 의자, 나무 테이블을 가득 두었는데.
그 영향인지 루차 브로스와 영 덕스의 경기 또한 래더 매치로 치러졌다.
[펜타곤 마스터! 어, 어어엇?!]
[몸을 그대로 던집니다!!]
콰앙-!!
[Yeeeeeeeeeeeeeeaaaahhhh!!]
“반했어?”
시나의 물음에 잠시 생각해보던 러셀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야.”
“왜? 잘하는데.”
“연계가 느슨해.”
러셀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프로레슬링은 정교한 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스포츠였다. 따라서 합이 어긋나면 바로 어색한 상황이 나왔다.
안 그래도 순간적인 임팩트를 보여주기 위해서 현실적인 부분을 다수 희생하는 게 프로레슬링의 무브인데.
그런 면을 현실적으로 잘 살리기 위해서는 두 선수의 합이 중요했다.
하지만 영 덕스와 루차 브로스는 연계가 느슨해 기술을 맞아주기 위해 기다리는 듯한 상황이 자주 나왔다.
그런 부분을 조금만 보완하면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을 보다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 경기는 어떻게 보자면 신의 도움을 받았기에 열릴 수 있던 경기였다.
그가 7월 페이퍼뷰에서 영 덕스와 루차 브로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이 경기는 열리지 못했겠지.
신은 자기 자신의 부킹뿐 아니라 주변 선수들까지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나 배우는군.’
러셀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쇼.
숀 시나는 수염을 기르고 벌크를 잔뜩 키운 드류 맥킨마이어의 모습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상대는 ACW의 강자, 부커 리.
두 사람은 TNT 챔피언십을 두고 대립하는 상태였는데……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워우.”
“왜?”
“드류가 언제 저렇게 컸지?”
WWF에서도 충분히 간판을 맡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다.
아마 지금까지도 바트 맥센이 계속 집권을 하고 있었다면 당장 드류는 영입 1순위가 되었을 터였다.
키는 2미터에 달하고.
체중은 130kg.
수염에 긴 머리.
물론 단점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부커를 상대로 언더독 운영이라.”
“시나, 너도 그렇잖아.”
“나는 그렇게 생겼잖아.”
그리고 팬들이 그걸 더 좋아했다.
확실히 시나는 엄청난 근육질의 소유자였지만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185cm 정도.
그렇기에 상대를 위압하는 경기보다는 아슬아슬하게 끌고 가다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드류는 아니었다.
슬슬 팬들도 그렇게 인정하고 있으니 탑독 운영을 장착해도 좋지 않을까.
그래도.
좋은 선수가 되었다.
WWF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버려졌던 선수들이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 닦아 업계에서 나아가고 있었다.
“…….”
다음에 붙을 날이 오려나.
시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어지는 대시 앳 더 비치를 계속 지켜보았다.
멋진 경기와 경기가 이어졌고.
팬들의 반응도 계속 좋았다.
멋진 쇼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신과 랜스 오튼의 매치였다.
* * *
사실.
경기가 일어나기 며칠 전, 데릭 비숍이 뜬금없는 제안을 하나 해왔다.
미리 촬영한 영상으로 경기의 초반부를 넘기자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경기 초반부를 쉽게 넘기자고 말이다.
하지만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서 나는 그것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렇게 되면 영상을 내보내는 영상 팀 쪽에서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백스테이지 영상만으로 경기를 할 거라면 대체 뭐 하러 팬들이 비싼 표 값을 지불하러 여기 오겠는가.
기만이었다.
하지만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였기에 보여줄 수 있는 스타일도 존재했다.
“신 선수!”
그리고 그게 막 시작되려고 했다.
내 담당을 맡은 영상 쪽 막내 직원의 인도를 받아 나는 복도를 걸었다.
먼저 경기를 끝낸 다른 선수들이 내가 나가는 걸 보고는 나와서 이런저런 덕담을 한마디씩 건네주었다.
“신, 화끈하게 하라고.”
“잘해라. 인마.”
“오늘 제대로 안 하면 엉덩이 걷어 차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
결과적으로.
ACW의 선수들도 나를 인정했다.
로건과의 대립 이후, 내가 스타게이트에서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을 터였다.
나는 ACW에 산재한 로건의 영향력을 완전히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예 프로레슬링 업계 전체의 판도를 바꿔나가는 상황이었다.
‘좋아.’
나는 어깨에 걸친 벨트를 꾹 움켜쥐며 몸에 흐르는 긴장감을 진정시켰다.
아무리 내가 좋다고 말은 했어도.
그것을 잘 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라서 당연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주차장.
카메라가 스탠바이를 기다리는 가운데, 나 역시도 등장할 준비를 하고 벽 뒤에 서서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일단은 가죽 재킷을 벗었다.
모니터링 TV로 상황을 확인하자 이제 막 광고가 끝나고 링과 그 위에 서있는 아나운서의 모습이 나왔다.
땡땡땡-!
[이어지는 경기는, 오늘의 메인이벤트! ACW 월드 챔피언십 매치입니다!]
[Waaaaaaaaaaaaaaaaagggghhhh!]
[경기 방식은 TLC로 진행되며! 그 시작은 링이 아니라 경기장 안쪽의 주차장에서 이루어집니다!!]
“신.”
지시를 들은 직원이 신호를 주었다.
그가 주먹을 쥐는 걸 본 나는 곧바로 어깨에 벨트를 걸친 채 당당히 주차장으로 나갔다.
[W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분명 나를 보고 있으리라.
그렇게 카메라맨을 지나쳐서 주차장의 중심부로 향한 나는 그대로 반대편에 있는 오르막길을 바라보았다.
내 시점에서만 오르막길이지, 차가 내려오는 길목. 랜스 오튼은 바로 그곳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Uooooooooooooohhhh!!]
후드 티를 뒤집어쓰고 있는 놈의 뒤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번뜩였다.
우리는 경기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다양한 연출을 준비했다.
이건 그중 하나였다.
끼기긱-!!
오튼이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동안 놈의 뒤에 서있던 자동차가 움직였다.
그리고 내 뒤.
좌우.
빠아아아앙-!!
헤드라이트를 틀고는 세차게 경적을 울리며 나를 향해서 돌진해오는 트럭.
안에 전문 스턴트맨들이 타고 있는 트럭 네 대가 그렇게 주차장을 돌며 오튼과 나를 점점 포위했다.
빠져나갈 곳은 없다.
[Waaaaaaaaaaaaaaaaaagggghhh!]
여기가 우리의 링이다.
그걸 연출하기 위한 장치.
네 대의 트럭이 거의 폭이 없다 싶을 정도로 사면에서 우리를 에워쌌다.
오튼과 나는 이제 거의 코앞에 서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경기.
빠악-!
나는 다짜고짜 헤드벗을 날렸다.
“윽……!”
오튼이 뒤로 물러섰고, 나는 그대로 어깨에 걸치고 있던 벨트를 트럭에 잘 걸쳐둔 뒤 녀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퍼억!
안면에 날리는 해머링.
단숨에 ‘로프’에 팔을 걸치는 오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로프는 탄력이 있는 로프가 아니라 트럭의 짐칸.
나는 놈의 복부를 걷어찼다.
콰앙-!
“크억!!”
비명과 함께 무너지는 오튼.
이 트럭이라는 존재가 경기를 좀 더 스트리트 파이트에 맞게 만들어줬다.
나는 그대로 오튼의 머리를 붙잡고는 트럭 짐칸에 처박으려 들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힘을 아껴두고 있던 오튼은 순간적으로 내 머리를 붙잡고 반격했다.
콰앙-!
머리가 짐칸 모서리에 부딪혔다.
순간 아찔해지는 시야.
몸이 그대로 미끄러졌다.
하지만 직후.
오튼이 내 머리를 걷어차려고 했다.
콰앙!!
아슬아슬하게 몸을 옆으로 돌려 빠져나온 나는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일어나 오튼과 다시 마주보고 섰다.
이번에는 녀석이 먼저 달려들었다.
트럭 짐칸을 등지고 서있던 나는 그대로 허리를 숙이며 날아드는 펀치를 피하고, 오튼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대로 힘껏 들어 올렸다.
“으헉……?!”
다소 꼴사나운 비명과 함께 들어 올려진 오튼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백 바디 드롭.
온 더 트렁크.
투콰앙-!!
[Waaaaaaaaaaaggghhh……!!]
호쾌한 소리와 함께 팬들의 환호성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트럭 짐칸 위에는 매트를 하나 깔아두고 그 위를 천으로 덮어둔 상태였으나 분명히 엄청나게 아플 터였다.
“크하악!!”
그 예상대로 오튼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기다렸다.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서는 오튼.
나는 곧바로 범프를 선보였다.
트럭 뒤쪽의 타이어에 발을 디디고.
그 위로 뛰어 짐칸을 다시 딛고.
일어선 오튼에게 몸을 날렸다.
다이빙 크로스 바디.
“끄흐윽?!”
다시 한 번 비명과 함께 날 받아준 오튼이 그대로 짐칸 위를 나뒹굴었다.
그런데.
이 자식, 상태는 괜찮나?
나는 일부러 더 소리가 크게 나도록 짐칸의 벽을 발로 차면서 물었다.
콰앙!
“괜찮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하지만 날 원망하는 눈이었다.
……이거 끝나고 뭐라도 사야겠군.
그런 생각과는 정반대로 나는 옆에서 집히는 물건을 들고 힘껏 휘둘렀다.
트럭 짐칸인 만큼 실어 둘 수 있는 물건들이 내 손에 마구 딸려 나왔다.
일단 나무판자.
콰직!
일부러 톱으로 살짝 흠을 내둔 판자는 오튼의 등에 꽂히자마자 박살 났다.
다음으로 공구 상자.
나는 그것을 들어 충격으로 몸을 일으켜 세운 오튼의 이마를 냅다 후려갈겼다.
빠악!
[Waaaaaaaaaaggghhhh!!]
들려오는 환호가 점차 커졌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대로 오튼의 위에 올라타 이마에 펀치를 날려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초장부터 화끈한 경기였다.
백 바디 드롭이라는 큰 기술을 허용한 오튼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나는 그렇게 녀석을 한껏 요리하고는 곧바로 트럭 위에서 핀 폴을 했다.
그러자니 카메라 바깥쪽에 서있던 심판이 달려와 카운트를 시작했다.
“1!”
“2!”
팔을 들어 벗어나는 오튼.
그걸로 좀 정신을 차린 것일까.
놈이 반격을 해왔다.
공구 상자가 턱에 꽂혔다.
허리가 순간 뒤로 꺾였다.
뻐억!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공격.
놈은 아예 공구 상자를 열어 내 위에 탈탈 털어서 내게 충격을 주었다.
효과는 충분했다.
“……!”
못이나 장도리 같은 날카로운 물건은 미리 빼두었지만 망치처럼 무거운 물건은 또 한가득 했던 터라.
순간적으로 격통이 몰려왔다.
마치 펀치를 여러 발 맞는 듯했다.
“크윽!”
그리고 일어선 오튼은 텅 빈 공구 상자의 끝을 들고 내 등에 휘둘렀다.
“이 새끼가……!”
퍼억!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Uooooooooooooooohhhhh!!]
그렇게 연이은 충격.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돌려 등으로 공격을 받아내던 나는 앞으로 손을 뻗어 빠져나가려다 뭔가를 붙잡았다.
묵직한 감각.
그리고 오튼의 공격이 멎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든 나는 내가 손에 쥔 물건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씨익 웃으며 녀석을 돌아보았다.
뭔고 하니.
바로 슬레지 해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