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
경기를 지켜보던 남자, 락콜드 스티비 스틴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도 불량 시대의 아이콘.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현재의 시대를 약간은 복잡한 기분으로 지켜보고 있는 남자.
은퇴 후, 프로레슬링이라는 ‘물건’으로부터 일부러 서너 발자국쯤 떨어진 채로 지내려 하는 그였지만.
전미가 열광하고 있는 현 시대는 그렇게 멀어지려고 해도 멀어질 수가 없이 알아서 정보가 쏙쏙 들어왔기에.
어쩔 수 없이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뒤를 이은 후배들이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낸 시대를.
그리고 말하자면.
오늘 경기는 그래도 어느 정도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몸이 근질근질거렸다.
‘또 이렇군.’
나이를 먹고.
몸은 늙었지만.
자신의 커리어를 끝장냈던 치명적인 목 부상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저기에서 신과 맞섰을 수도 있는데.
‘아니, 그건 좀 너무 나갔나.’
락콜드는 쓰게 웃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
아니, 신의 아이디어이리라.
그가 만들어낸 이 스팟은 환상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멋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아, 아아……!]
[연기 속에서 나타난 신이 랜스 오튼에게 환상적인 펀치를 날립니다!!]
[역사에 남을 만한 멋진 광경입니다! 팬들도 환호하고 있습니다! 신의 테마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집니다!!]
[당황했습니다! 오튼!!]
[그럴 만도 하죠! 분명 따돌렸다고 생각했던 신이 나타났습니다! 랜스 오튼을 지옥으로 처박아버리기 위해!]
‘입장’.
그리고.
‘테마’.
이 두 개는 프로레슬링에 있어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었다.
선수의 개성과 더불어 그 위상과 카리스마를 표현하는데 필수적인 장치.
녀석은 그걸 경기에 이용했다.
랜스 오튼이 자신의 테마를 틀어서 일단 팬들의 분노를 조성하고, 그것을 뒤덮듯 신의 테마가 이어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입장 연출에 사용되는 연기가 시야를 가리면서 순간적으로 기습을 하는 모습까지.
‘멋지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경사진 입장로의 아래쪽으로 굴러 떨어졌던 오튼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기에서 아마 일반적인 선수였더라면 순간 당황해 링 쪽으로 물러서거나하면서 시간을 끌었을 터였다.
하지만 오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분노를 느꼈다.
자신에게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를 순간 가로챈 신을 보고 열이 받았다.
그렇기에 그는 바로 일어섰다.
투지를 드러내며.
이빨을 세우며.
엎드려 있던 오튼이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연기를 등지고 앞으로 나온 신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콰앙-!!
두 사람이 충돌했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그 투지에 팬들이 환호했다.
치열함.
콜로세움의 투사들이 보이는 열기.
그게 두 사람에게서 느껴졌다.
돌진해오는 오튼을 받아낸 신은 그대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두 사람의 몸이 자욱한 연기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소리와 그림자.
퍼억!
빠악!!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팬들의 챈트가 쏟아졌다.
신뿐만 아니라 오튼에게도.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각본으로 야유를 받더라도 다음 순간 오튼이 보여주는 투지는 강렬했다.
이건 그런 싸움이었다.
두 사람 모두.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싸움.
둘의 싸움으로 인해 연기가 조금씩 걷히며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변질된 TLC 매치를 위해 준비된 테이블, 래더, 그리고 체어. 두 사람은 그 사이에서 서로 주먹질을 해댔다.
오튼이 신의 위에 올라탔고, 신은 허리를 써서 몇 번이고 안면을 노리고 날리는 펀치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티파니 맥센은 순간 크게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야말로 ‘운명’이 도왔다.
입장로 위를 채우던 연기가 거의 걷히고 바닥이 드러난 시점, 신은 머리 위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붙잡았다.
정말로 우연히도, 바로 그곳이 마지막으로 연기가 남아 있던 장소였다.
연기 속에서 무언가 나왔다.
[Uooooooooooooooooooohhhh!]
철제 의자.
그게 오튼의 이마에 꽂혔다.
쩌억-!!
놀라 굴러 떨어지는 오튼.
이것이 TLC 매치임을 확실하게 하는 일격.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에 가려져 있던 의자가 나왔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신은 그대로 다시 입장로 위를 나뒹굴고 있는 오튼에게 다가가 의자를 들었다.
그리고 내리쳤다.
쩌억!!
“크하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오튼.
철제 의자.
접이식으로 된 그것은 등받이와 앉는 부분에 쿠션이 없어, 접고 휘둘러서 면으로 타격하는 물건이었다.
그걸 냅다 등을 노리고 휘두르니.
쩌억!
퍼억!
콰앙!!
다양한 소리가 났고.
“크아아아악!!”
오튼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신은 봐주지 않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계속해서 그 이름을 외쳤다.
그걸 지켜보던 티파니 맥센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희미해지는 걸 느꼈다.
그야말로 운명이 그를 돕고 있다.
그렇게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위험한 경기를 한다고 하면 잠을 못 이루는 것도 옛날 일이고, 이제는 그래도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조금은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하지 않나 고민을 하던 찰나.
깨달았다.
신이 가장 빛나는 곳은 링 위.
그렇기에 그를 믿어야만 했다.
바닥에 누운 오튼을 실컷 두들겨 패던 신이 철제 의자를 번쩍 들어보였다.
[Yeeeeeeeeeeeeeeeeeeaaahhh!!]
팬들이 그에 호응했다.
그리스의 영웅이 자신의 검을 높이 치켜드는 장면 같다고 하면 오버일까.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프로레슬링이라는 드라마가 지금 연출하고 있는 신은 그러한 영웅이었고, 때로는 악이 될 수도 있는 존재였다.
전투는 계속되었다.
“크윽…….”
신은 고통스러워하는 오튼의 머리채를 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 뒤 단숨에 수플렉스를 써서 넘겨버렸다.
콰앙!
입장로 위에 꽂히는 오튼.
신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상대의 등을 봐주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했다.
다시금 철제 의자.
콰앙-!!
[Yeeeeeeeeeeeeeeeeeeeaaahhh!]
그리고 이어지는 핀 폴.
두 사람의 뒤로 물러나있던 심판이 달려와서 곧바로 카운트를 진행했다.
팬들이 다 함께 숫자를 셌다.
[1……!]
[2……!]
오튼이 어깨를 들며 빠져나왔다.
[Waaaaaaaaaaaaaagggghhhh!!]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거기에 환호를 보내는 팬들.
순간 숨을 몰아쉰 신은 그대로 쓰러진 오튼을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변의 물건을 확인했다.
입장로 좌우로 세워진 사다리.
바리게이트 쪽에 걸쳐진 테이블.
신은 테이블을 하나 들어 사다리 앞에 펼쳐두고는 오튼에게 다가갔다.
“후우.”
슬슬 체력적인 한계가 찾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오튼을 테이블 쪽으로 데려가서는 그 위에 눕혔다.
오튼 역시도 저항을 하려고 했지만 신은 그 안면을 두어 번 정도 세차게 후려쳐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오튼의 가슴 위에 접어둔 철제 의자를 놓고 그는 사다리 위로 올라갔다.
[Uoooooooooooooooohhhh……!]
기대하는 관객들.
차근차근 사다리를 올라 꼭대기에 선 신은 그대로 오튼을 돌아보았다.
무려 4미터 높이의 사다리.
“…….”
신은 심호흡을 했다.
그럴 때마다 사다리가 미친 듯이 좌우로 흔들렸다. 팬들의 환호도 커졌다.
하지만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높이의 공포감.
그것을 친구로 삼았다.
‘좋아.’
그대로 몸을 던졌다.
[Uooooooooooooooooohhhhh!!]
바로 그때였다.
신이 몸을 던진 바로 그 순간, 오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자신의 위에 있던 철제 의자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신의 안면을 노리고 정확하게 스윙했다.
쩌억-!!
투콰앙-!!
두 가지 소리가 이어졌다.
안면에 철제 의자를 맞으며 동시에 테이블 위로 추락한 신은 그대로 고통 속에서 링 바닥을 나뒹굴었다.
[………….]
팬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오튼 역시도 자신이 방금 한 행동을 공포스럽게 느끼는 듯 엉덩방아를 찧은 채 놀란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 범프를 보고 머리를 감싸 쥘 정도로 놀란 심판이 신에게 달려들었다.
“신, 신……!”
그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팬들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오튼도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4미터 위에서 추락하는 상대의 안면을 철제 의자로 격추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범프였다.
그렇기에 실수가 나왔다.
순간 의자가 비스듬히 돌아가 끄트머리가 신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허억, 허억…….”
드러누운 채 숨을 몰아쉬는 신.
카메라가 그 얼굴을 비췄고 순간 경기장를 지켜보던 팬들이 숨을 삼켰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피가 어찌나 많았는지 바닥에 뚝뚝 떨어질 정도.
심판이 순간 진짜로 당황해 주머니에서 거즈를 꺼내 찢어진 이마를 덮고 지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순간 내저었다.
안쪽에서 의료요원들을 불렀다.
두 손을 들어 머리 위에서 엑스자로 교차하는 사인을 보내려고 했다.
그 뜻은 간단했다.
‘실제 상황.’
‘경기 중단.’
의료진이 달려 나와 지혈을 실시하면서 순간적으로 경기장이 웅성거렸다.
오튼은 움직이지 못했다.
‘이걸 어쩌지?’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피는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신의 이마에 덮인 수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런 상황.
팬들은 걱정하고.
해설자들은 수습하고.
관계자들은 냉정히 보고.
레슬러들은 안타까워하고.
그렇게.
모두가.
이 경기가 그런 식으로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리라 의심치 않던 순간.
신은 눈을 떴다.
“…….”
그는 오튼을 바라보았다.
숨을 몰아쉬며 있던 오튼과 시선이 마주쳤고 신은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Show Must Go On.
통증은 심했고.
정신은 없었지만.
일은 할 수 있다.
오히려 이걸 연출로 삼아야 자신들이 말한 이야기가 맞는 게 된다.
프로레슬러는 쓰러지지 않는다.
“…….”
오튼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신의 머리를 후려친 철제 의자를 손에 쥔 그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신의 상태를 살피고 있던 심판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내저었다.
“랜스, 이 이상은…….”
“비켜.”
“안 된다고. 출혈이 심해.”
“지혈했잖아.”
“아주 잠깐이야. 또 터질 수 있어.”
“그거면 됐어.”
오튼은 심판을 밀어냈다.
그런 태도에 순간적으로 크게 당황한 심판은 이내 이어폰으로 고릴라 포지션에서 들려오는 통신을 들었다.
[……행시켜.]
“예?”
[진행시켜.]
“아니, 안 됩니다!”
[이 경기를 이대로 끝냈다가는 신이나 오튼이 자네를 가만 안 둘 텐데?]
데릭 비숍은 의외로 지금 링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 말이 맞았다.
결국 그는 이 경기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사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신의 곁으로 다가간 오튼.
그는 영리하게도 신을 공격하는 대신 조롱을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태를 확인했다.
“좀 어때?”
“어, 일단 피는 멎었습니다.”
“그 정도면 됐어.”
오튼은 신의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 침을 뱉었다.
퉤.
[Boooooooooooooooooooo-!!]
거기에서 나오는 야유.
악당의 행동으로.
쇼는 다시 시작되었다.
“머저리 같은 자식아. 이걸로 끝낼 거야? 어? 고작 이걸로 끝낼 거냐고.”
오튼은 신의 머리에 가해진 충격을 생각해 턱을 힘껏 잡는 척하고 있을 뿐 쥐고 흔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거기에 침묵하는 신.
하지만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리고 오튼은 철제 의자를 들고 링 위로 올라가 팬들의 분노를 끌어냈다.
“이거 원! 이제 내가 챔피언인가?!”
[Boooooooooooooooooooooo-!!]
“어? 뭐라고? 패배자 단체의 쓰레기 새끼들이 챔피언 벨트를 약탈당하게 되니까 발버둥치는 게 웃긴데!!”
바로 그때였다.
[Yeeeeeeeeeeeeeeeeeaaahhhh!]
들려오는 환호.
옆을 돌아본 오튼은 바닥에 쓰러져 있던 신이 일어서는 것을 확인했다.
훤히 벌어진 상처에 지혈용 가루를 마구잡이로 뿌려댄 상태였다.
그것을 발견한 오튼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얼마 전 카인의 집에서 발견한 하얀 가루로 농담을 친 것이 생각났기에.
그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을 남겨두었다.
신이 천천히 링으로 올라왔다.
철제 의자를 손에 쥔 오튼과는 별개로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았고 거기에서 순간 팬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오튼은 원래 정해두었던 대로 의자로 바닥을 쾅쾅 두들기면서 그와 자신의 차이를 명백히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천천히 오른손을 든 신이 그대로 손가락을 튕기자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
사각의 링 전체를 감싸고 있는 로프 아래에서 힘차게 불길이 치솟았다.
푸화아아아아악-!!
거기에 다시 할 말을 잃은 팬들.
오튼도 순간 깜짝 놀랐고.
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잊은 적 없지?”
“…….”
“I’m ‘Man On Fire’.”
불길 속의 남자.
온갖 위험을 즐기는 사나이.
그게 바로 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