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76화 (476/634)

476.

한 가지 고백을 하겠다.

나는 편지를 쓰듯이 생각했다.

김준호는 사실 좀 겁쟁이였다.

동시에 좀 찌질하지.

누구나 다 그렇듯이.

따라서 나는 죽음으로부터 돌아오고 전생을 아는 상황이 돼서야 움직였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은 김준호에게 가하는 비판이었다.

나는 겁쟁이였다.

그렇기에 한 번의 삶을 낭비했다.

하지만, 정말로 감사하게도.

특별한 일을 겪어 다시 돌아왔고.

이번에는.

내가 내 삶을 만들어냈다.

부모님께서는 다행히도 건강하셨고.

사랑하는 사람도 직접 정했다.

그리고.

프로레슬링을 했다.

누군가 정해준 내가 아니라.

내가 직접 그들과 부딪히며 만들어낸 가상의 내가 되어서, 팬들을 기쁘게 만들고 한 경지를 이루어냈다.

감사한다.

내 인생에 감사한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나 자신에게도.

비판과는 별개로.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사랑했다.

‘존나 카리스마 있어.’

나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직접 구입한 전용기 안.

비행기가 슬슬 착륙을 시작했다.

덜커덩-!

약간의 부유감 이후, 충격.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천사들의 도시.

내 고향.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나는 얼굴을 거의 덮다시피 하는 선글라스에 캡 모자를 대충 눌러써서 정체를 감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Uooooooooooooooooooohhhhh!]

사람들은 날 알아보았다.

게이트를 나오자 공항 안에 있던 수많은 인파들이 나에게 환호를 보냈다.

‘이거 안 되겠군.’

아무리 그래도 동양인에 피지컬이 이 정도로 큰 남자는 드문 편이니까.

선글라스에 캡 모자를 눌러쓴 정도로는 정체를 감추는 게 불가능했다.

……물론 내부에서 내 스케줄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간 탓도 컸다.

하지만 그걸 막을 수는 없고.

공항 경비원들이 몰려들어서 팬들을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아주 잠깐 동안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 이름을 외치며 사인을 부탁하고 있는 수많은 각기각색의 사람들.

“…….”

이내 그들 곁으로 다가간 나는 눈에 보이는 사람부터 사인을 해주었다.

“신! 정말 팬이에요!!”

“당신은 제 멘토에요!”

“여기, 제 번호……!”

“신! 어떻게 그렇게 키가 커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가와서 하나씩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그 모두에게 일일이 답변을 해주었다.

그리고 사인을 해주고.

나는 이 사람들이 정말 별처럼 많이 느껴졌지만 이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

하지만 별이라는 점은 같았다.

나는 닿을 수 없는 존재니까.

얼핏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나는 분명 이들 앞에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사인을 해주고 있던 나는 이내 누군가가 어깨를 잡는 걸 느꼈다.

바쿠였다.

“슬슬 끝내, 가자고.”

“……조금만 더요.”

“공항에서 요청했어. 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바쿠.

눈썹을 찡그린 나는 가장 뒤쪽에 서있는 키가 작은 소년 하나를 발견했다.

옆에는 여동생으로 보이는 더 작은 소녀의 손을 꽉 쥐고, 인파 너머에서 곤란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래서 별이라는 거지.’

닿는 것조차 은총이니까.

운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팬들을 지나쳐 공항 앞에 주차되어있는 밴에 도착해 안에 올라탔다.

그러자니 나를 따라온 바쿠가 갑자기 운전수에게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이봐, 트렁크 좀 열어봐.”

“예? 아, 옙.”

덜컹.

뭔가 싶어 돌아보았다.

팬들이 공항 밖으로 나오는데 지체하고 있다니 바쿠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직후.

“신, 이거 해둬라.”

그가 내게 내민 물건을 본 나는 잠깐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웃었다.

내 DVD와 사인펜.

“보셨습니까?”

“그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눈이더군.”

“……거 참, 드라마틱하네요.”

나는 사인을 했다.

그 DVD를 받아든 바쿠는 운전수에게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공항으로 돌아갔다.

“끄응.”

나는 앓는 소리를 냈다.

역시, 성미가 찌질하단 말이야.

이래놓고도 또 나를 만나지 못한 수많은 팬들이 원망하는 것을 생각하다니.

그들에게 내 존재는 무엇일까.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은 뭘까.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오튼이 한 말 때문이리라.

그날.

여름의 가장 뜨거운 밤.

녀석은 나와의 경기에서 패배했고 링에서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시나와 싸우러 가.’라고.

하지만.

글쎄다.

아직 하나가 남았다.

숀 시나와의 싸움.

그걸 위해 할 게 하나가 남았다.

내가 만들어온.

바꿔온.

이 삶.

그 모든 게 과연 옳았는지.

나는 그걸 먼저 확인해야만 했다.

바로 그때였다.

“신 선수.”

운전수가 날 불렀다.

생각을 아주 잠깐 했는데 싶었는데.

벌써 방송국에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오늘 스케줄이 마침 그런 것이었다.

과거의 아이콘과 현재의 아이콘이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한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

그리고 나.

분명 시청률 한번 봐줄 만하겠군.

* * *

인터뷰는 무탈하게 진행되었다.

쇼가 시작되고, 방송 측에서 준비한 대로 나와 락콜드가 각각 음악에 따라서 입장하고 얼굴을 마주한 뒤 앉았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

스킨헤드에 입 주변의 수염.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의 소유자.

그는 프로레슬링이라는 콘텐츠에 정확히 들어맞는 모습을 가진 선수였다.

거기에 카리스마와 의지.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고 해보자는 주의로 인해 아이콘의 반열에 올랐다.

인터뷰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고 나와 락콜드는 서로를 칭찬하면서 나쁘지 않게 이야기를 진행해나갔다.

문제는 중반에 발생했다.

“자, 그럼. 다음으로 두 선수가 자신이 느끼는 다른 선수들을 짧게 표현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질문이 이어졌다.

“캡틴 로건.”

“Greatest Of All TIme.”

“Greatest Of All TIme.”

우리 둘 다 똑같은 대답을 내놨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인물이라고 한들, 그는 이 프로레슬링을 만들어낸 남자.

거기에 선역과 악역, 두 번으로 아이콘을 해냈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가장 위대한 프로레슬러라고 생각했다.

락콜드도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고.

“캐스켓-테이커.”

“Mentor.”

“Devotion.”

여기서부터 조금 갈렸다.

나는 테이커를 멘토라고, 락콜드는 헌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했다.

“그렉 하트.”

“Master.”

“The Wrestling.”

여기서도 좀 달랐다.

나는 그렉 하트를 스승.

테이커는 레슬링 그 자체라고 말했다.

같은 선수를 상대해왔지만 그와 나 사이의 세대 차이가 이런 견해의 변화를 불러왔다.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존 마이클스.”

“Idol.”

“Savior.”

우상과 은인.

나는 존 마이클스를 우상으로.

그에게서 타이틀을 받아 아이콘이 된 락콜드는 은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바트 맥센.

나는 입을 다물었고.

락콜드는 선구자라고 표현했다.

진행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

“……역시 이렇게 표현해야겠군요.”

나는 쓰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Ex-Wife.”

이 정도면 적당하리라.

거기에 락콜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답변이군, 신.”

“…….”

“하지만 뭔가 방송적인 재미는 떨어져. 팬들이 이 방송을 보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는 진행자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한 남자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러셀 오메가.”

“Rival.”

“사모아 고.”

“Brutal.”

“코디 로스.”

“Press.”

“C.M. 펑크.”

“Outsider.”

계속 되는 질문과 답변.

거기에 진행자가 순간 놀라 바깥의 신호를 확인했다.

하지만 PD는 이편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는지 그대로 진행을 시켰다.

나는 쓰게 웃었다.

현 시대의 레슬러들.

락콜드는 그걸 물어보았다.

과거의 전설들에 비해.

우리는 나아지고 있는가.

그 이후는 잘 따라오고 있는가.

프로레슬링은 나아가고 있는가.

‘개척’하고 있는가.

“랜스 오튼.”

“Bastard.”

“드류 맥킨마이어.”

“Power.”

“대니얼 라이언.”

“Tough.”

“AK 스타일스.”

“……The Wrestling.”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기에 기가 차다는 듯 웃는 락콜드.

그는 더없이 행복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 은퇴 후 직업은 사냥꾼. 맥주 회사 CEO.”

“…….”

“그전에는 프로레슬링의 아이콘.”

그가 ‘신’에게 말했다.

“한 시대의 찬탈자.”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최초로,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목 부상을 안은 채 링에 돌아가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그가 물었다.

“이 락콜드 스티비 스틴이 그렇게 느끼게 한 남자, 신은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숀 시나를.”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이 영감이.’

다 꿰뚫어 보고 있군.

당연한 흐름이자 수순이었다.

러셀은 시나에게 패배했고.

오튼은 나에게 패배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였다.

나와 숀 시나.

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Greatest Of All Time.”

거기에 피식 웃는 락콜드.

뭔가를 확인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가 진행자에게 주도권을 돌려주었다.

그 뒤로는 평범했다.

나와 락콜드는 계속 서로의 시대를 칭찬하면서 인터뷰를 이어나갔고 꽤나 재미있는 방송을 뽑으며 마무리를 했다.

분명히 다들 느낄 터였다.

이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락콜드가 내게 던졌던 선수들에 대한 질문.

혹시나 각본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방송국 측에서 안 하려고 했던 현재의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쁘지 않은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락콜드는 의문을 느끼는 듯했다.

“다른 건 이해한다.”

촬영이 끝난 뒤.

어슬렁어슬렁 내 쪽으로 걸어온 그는 인사도 않고 다짜고짜 말을 꺼냈다.

“하지만 너라면 너 스스로를 GOAT라고 표현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케이페이브 인터뷰는 아니었죠?”

말하자면 나는 링 위의 SIN이 아니라 그걸 연기하는 김준호의 감정으로 락콜드의 질문에 답변을 한 셈이었다.

“그랬을 거다, 아마.”

“그래서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준호 킴은 그렇게 생각하는군.”

“예, 아직은 그렇죠.”

“왜?”

“…….”

인터뷰가 계속 이어지는군.

“너는 말했듯, 내가 선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질 정도로 위대한 레슬러다.”

락콜드는 그렇게 날 띄워주었다.

“너는 PWA에 소속된 선수이지만 ACW 월드 챔피언십을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고, 거기에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

반면.

“숀 시나가 ACW 월드 타이틀을 차지한다면 분명 큰 역반응이 나올 거다.”

“그렇겠죠.”

“그래서 사실 나는 네가 그런 답변을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겠지.

“너는 시나보다 더 나은 선수야.”

지금 프로레슬링 업계는 삼파전이 계속 이어졌으나 각각의 단체들이 서로 상황에 따라 협력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WWF의 아이콘, 숀 시나.

ACW의 아이콘, 러셀 오메가.

그리고.

그 사이에 있기에 가장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내가 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락콜드는 그렇게 평가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글쎄요.”

문득 아까의 일이 생각났다.

공항에서.

나는 남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을 해주었지만, 사실 그들이 정말로 바라는 일은 그 이상일 터였다.

‘그렇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빌어먹을 슈퍼 히어로가 아니고, 나 스스로 가진 꿈과 의지를 위해서 행동하는 그런 남자였다.

시나는 달랐다.

녀석은 언제나 전 세계를 통틀어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금이 순위를 다투었고.

그 빡센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스타를 만나고 싶은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위시메이커 재단의 활동도 가장 많이 참여한 모범적인 남자였다.

우리 두 사람은 새로운 시대를, 다시 말해 이전까지 없었던 프로레슬링으로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는 영역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지만.

그 방식은 달랐다.

나는 나 자신을 표현한다.

하지만 반대로.

시나는 이상을 표현했다.

“그러니까 GOAT라고 할 수 있죠.”

역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마치 위선처럼 느껴졌으니까.

거부감이 드니까.

절대적인 선(善)의 존재란 그러했다.

슈퍼 히어로 무비도 아니고 그런 상황을 팬들이 현실감이 없다고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현실이었다.

시나는 실제로 보여주었다.

언제나.

모든 대립마다.

어떤 팬들은 그를 부정했지만.

그는 이 사회에서 소외된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시나를 넘어서야만 했다.

그가 날 넘어서는 게 아니라.

“준비는 해둘 생각입니다.”

“호오…… 어떻게?”

“전쟁을 해야죠.”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슬슬 11월이 다가오기도 했고.

이제 모든 선수들이 함께 협력하게 된 시점에서 나는, 한 방법을 통해 내가 만들어온 역사가 어떤지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PWA VS WWF VS ACW.

배신과 모략이 난무하는 전쟁.

시나와의 결전은 그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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