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77화 (477/634)

477.

“2001년이었죠.”

티파니 맥센은 과거를 기억해냈다.

당시 락콜드 스티비 스틴과 더 팍이라는 두 아이콘을 보유했었던 WWF는 파격적인 각본을 하나 실행했다.

그게 바로 ‘인베이전’ 각본.

바트 맥센의 두 자식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면서 일어난 초대형 각본.

그 반역에 동참한 랙다운 소속의 선수들이 버닝콩을 습격했고 몇 달에 걸쳐서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배신과 배신이 연잇고.

선수들 간의 감정싸움도 치열해지면서 각본은 초반에는 잘 나갔지만, 결말에 이를수록 뭔가 꼬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자극적이기는 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한 각본.

그게 바로 인베이전이었다.

“실패했다고?”

거기에 케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인베이전 각본이 시행될 당시 반란군의 수장으로 나름대로 재미있게 자기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케인의 모습을 본 티파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그때 케인은 큰 역할을 맡았다는 기쁨으로 신이 나서 각본을 수행했었다.

결국, 그러다가 선수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끼면서 이후 회사를 나가게 되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금은 나름대로 이 일과 화해를 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느꼈다.

신이 힘을 써준 덕분이었다.

어쨌거나.

티파니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랙다운을 띄운다고 하는 각본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랬다.

인베이전은 당시 막 출범한 WWF의 새로운 위클리 쇼, 랙다운을 띄워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각본이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팬들은 버닝콩의 선수들에게 더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실패로 끝이 났다.

그렇게 평가를 했건만 케인은 전혀 다른 생각인 것 같아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인베이전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

“실패하지 않았어.”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래, 팬들은 좋아했잖아.”

케인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원래 계획과는 달라졌어도 인베이전 각본은 팬들의 기억에 크게 남았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 말에 티파니도 납득했다.

“맞는 말이네요.”

“근데, 그건 대체 왜?”

“…….”

“너, 설마.”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빠른 케인.

티파니는 빙긋 웃어 보였다.

“뭐야, 또 하려고?”

“신의 아이디어에요.”

“괜찮겠어? 아니, 어떻게 하려고?”

“전부 참여할 거예요.”

“전부?”

“왜 다른 사람 일처럼 말해요?”

“어, 어?”

“케인, 당신도 참여해요.”

그것도 무척 중요한 역할로 말이다.

“……?”

케인은 순간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세 단체가 동시에 대립한다고?”

그게 제대로 돌아갈까 싶었다.

단체와 단체 간의 대립이면 적어도 백 명 가까이 되는 선수들이 이번 각본에 참여하게 된다는 말일 텐데.

“괜찮을까?”

인물이 너무 많으면 이야기의 흐름이 자칫 미묘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이죠. 목적이 간단하니까요.”

“그놈의 목적, 목적…….”

황당한 나머지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는 케인.

거기에 티파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간단하잖아요?”

“뭐가?”

“목적이요.”

이 업계 전체의 위상을 올린다.

돈이 되는 일을 한다.

팬들을 즐겁게 한다.

그 정도는 쉽게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나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케인은 순간 얼이 빠졌다.

* * *

WWF, ACW, PWA의 삼파전.

그건 마치 얼마 전까지 이어졌고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월요일 밤의 전쟁’을 형상화한 것 같은 각본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협업’을 한다고 말은 했지만 결국 얼마 전까지 치열하게 대립한 단체.

그런 상황에서 각자 그리고 있는 그림은 다를 수밖에 없었고 협의점을 도출해내기 위해 심리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단체들 중 그 누구도 협업 자체를 포기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신 VS 랜스 오튼.

숀 시나 VS 러셀 오메가.

업계를 뒤흔든 두 초대형 매치 카드들이 각각 역대급으로 좋은 반응을 받으며 마무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후로 각자 단체로 돌아가 이어지는 대립이 다소 심심한 게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였다.

나도 PWA와 ACW를 오가며 쟈니 에이스와 대립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전에 랜스 오튼과 완전히 미친 경기를 만들어두었던 터라 그때만큼 반응이 올라오지는 않았다.

업계의 콜라보는 돈이 된다.

관계자들은 그렇게 인식했다.

그리고 10월 17일.

WWF 측의 주최로 인해 각 단체의 수장들이 모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ACW의 데릭 비숍.

WWF의 티파니 맥센 & 바트 맥센.

PWA의 할리 레이시 & 폴 헤이건.

거기에 내가 PWA 측의 일원으로 참가했지만 딱히 말은 안 하는 상황.

티파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착은 킹스 럼블에서 낼까요?”

“……글쎄요. 왜죠?”

데릭 비숍이 눈썹을 찡그렸다.

상대 단체의 페이퍼뷰에서 이 거대한 대립의 끝을 맺는다니. 당연히 그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을 터였다.

상대가 그렇게 나오자 티파니는 의외로 쿨하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면 그쪽에서 하셔도 되고요.”

“…….”

“나눠서 해도 되고.”

티파니는 빙긋 웃었다.

“중요한 건, 각본을 통해 선수들의 매력이 더 널리 알려지는 거니까요.”

“그러, 시다면.”

“물론 지금 당장 정할 문제는 따로 있긴 하죠. 1월 이전에 11월에도 한 번 페이퍼뷰를 해야 하는 시점이니까.”

그사이의 12월 페이퍼뷰는 각 단체에서 자유롭게 실시하는 것으로.

말인즉슨.

11월 초에 전쟁 각본이 시작해.

11월 말에 1차 결착을 낸다.

그리고 12월은 각자 한 달 동안 내부 정비를 거쳐서 선수를 선발하고.

1월에 다시 대립해서.

1월 말에 경기를 해서 끝낸다.

결과적으로 팬들의 반응을 모아 업계 전체가 승리하는 방향을 추구한다.

“일단 러프한 생각은 그렇고 기초적인 각본도 하나 짜와 봤는데 괜찮으시면 이 자리에서 확인해주시겠어요?”

그 말에 헤이건이 손을 들었다.

“저희는 11월에 단체 내에서 스테이블을 하나 출범시킬까 했었는데.”

“…….”

티파니가 날 슬쩍 돌아보았다.

나는 당황해 시선을 피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사실 헤이건도 진짜 그런 각본이 기획되고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

티파니도 그걸 확인하기 위해 내 얼굴을 보면서 슬쩍 떠본 것이었다.

헤이건은 단지 미끼를 던졌을 뿐.

그렇기에 티파니도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생각을 하는 상황.

바로 그때였다.

“그럼 빠져도 좋네.”

바트 맥센이 끼어들었다.

“우리는 신만 있으면 돼.”

“……?”

“ACW 월드 챔피언이 전쟁 각본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없을 테니까.”

어.

맞는 말이기는 한데.

“아뇨, 안 그럴 거예요.”

티파니가 그런 바트를 제지했다.

“…….”

또 단체 간의 기 싸움으로 이어지려고 한 상황을 티파니가 잘 끊어냈다.

바트는 그런 미적지근한 대응이 뭔가 좀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티파니는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깔끔한 대립도 좋기는 하지만, 이건 질척함이 필요하다고요. 거대한 전쟁이니 만큼 팬들도 항상 제3자의 존재를 기대하고 있을 거란 말이죠.”

그 말이 맞았다.

그러므로.

PWA는 앞선 두 단체보다는 크기가 훨씬 작았지만 그렇기에 대립의 ‘조커’로서 활용될 가치가 충분했다.

거기에 헤이건이 씨익 웃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할리.”

“……글쎄.”

할리가 눈썹을 찡그렸고.

나를 돌아보았다.

아니, 왜 이 시점에서 또.

회의실에 자리한 거물들 모두가 나를 제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티파니는 웃었고.

비숍은 눈치를 살폈으며.

헤이건은 내게 투표권을 넘겼다.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물론 지금 안건인 이 ‘전쟁 각본’이 애초에 내가 제안한 거기는 했지만.

그건 이제 프로레슬링 업계의 최고 권력자가 되신 마님의 품에 안겨서 애교를 부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마님 본인도.

그렇다면.

“일단 각본부터 들어본 다음에 결정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8월 페이퍼뷰가 잘 먹혔으니 이번 각본도 팬들의 수요는 분명히 있을 것 같고요.”

“흐음.”

“물론, 준비는 되어있죠.”

티파니가 다시금 웃어 보였다.

그리고 설명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업계에서 물러나있던 ‘케인 맥센’을 통해서 시작될 예정이었다.

* * *

그래도 생각보다는 일이 잘 풀렸다.

티파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각 단체의 수장들이 신을 신뢰하기 때문인지 그가 한마디를 얹자 다들 협조적으로 나와 주었다.

하지만 바트 맥센은 그런 티파니의 생각에 딱히 동의하지 않는 듯, 회의 때 한 이야기로 잔소리를 시작했다.

널찍한 차량 안.

나란히 앉은 채 공항으로 돌아가며 티파니는 잔소리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자선 단체라도 만들 셈이냐?”

“……뭐가요?”

“ACW에는 싸움의 최종전을 넘기고, PWA에는 부킹 권한을 넘기고, 결국 우리가 받아온 건 기초 각본뿐.”

바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남 좋은 일만 한 셈이었다.

“돈이 될 거예요.”

“그런 문제가 아니야.”

바트는 눈썹을 찡그렸다.

협업?

그래, 좋다.

분명히 돈이 되겠지.

하지만 문제는.

“중요한 권리를 모두 다 넘겨줬는데 대체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거다.”

“글쎄요. 왜 그랬을까요.”

티파니는 미소를 지었고 뭔가 있음을 느낀 바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생각이냐?”

그렇게 티파니 맥센이 온갖 권한을 다 넘겨주고 얼핏 ACW와 PWA 측에만 좋은 그림을 만들어준 이유.

간단했다.

“저는 봄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레슬 임페리움.

4월에 개최되는 프로레슬링의 역사를 통틀어 최고로 거대한 페이퍼뷰.

그곳에서 신 VS 숀 시나의 일전을 그리기 위해 잠시 숙여준 것뿐이었다.

“이거야말로 돈이 되겠죠?”

“…….”

바트 맥센은 대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그건, 지금 이 각본을 다 내어주더라도 아깝지 않을 대립이었다.

* * *

2011년 10월 30일.

‘잭 더 할로윈’이 개최되었다.

할로윈 데이에 맞춘 콘셉트로 ACW에서 전 세계에 제공하는 페이퍼뷰.

각 대립의 끝을 보기 위해 수많은 팬들이 페이퍼뷰를 구매하고 시청했다.

나 역시도 쟈니 에이스와 싸웠다.

PWA에서 넘어와서는 자신에게도 분명히 도전할 자격이 있다면서 나와 싸우기를 자청한 남자, 쟈니 에이스.

그를 통해 턴 힐을 한 쟈니는 나와의 대립에서 그동안 감춰두고 있던 자신의 배드애스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를 넘어서는 건 불가능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는 계속되었다.

랜스 오튼과의 쿨한 대립 이후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성원을 받았다.

옛날의 하드코어한 정취를 찾던 팬들에게 내가 정확히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는 그들의 영웅이 되었다.

“야…… 이거.”

쟈니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엄청난데?”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그나마 일반 경기임에도 이런 식으로 반응이 나오는 건 쟈니가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워주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맞서서 싸우는 그 하이플라잉 무브에 감탄한 팬들이 환호를 보냈고 덕분에 좋은 경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슬슬 끝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쟈니를 일으켜 세운 나는 그대로 반대편 로프로 내던졌다.

이 기술을 받을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았지만 나는 현재의 쟈니라면 분명 그 정도 급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마지막 피니시 무브.

안티크라이스트.

[U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놀라 일어섰고.

쟈니를 들어 올리며 뒤로 회전한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잡은 뒤 떨어졌다.

투-콰앙-!!

그리고 이어지는 핀 폴.

[1……!]

[2……!]

[3……!!]

땡땡땡-!

[Yeeeeeeeeeeeeeeeeeaaaahhhh!]

링 안에 휘몰아치는 환호.

‘악역’ 쟈니 에이스로부터 타이틀을 멋지게 방어해낸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신.”

타이틀을 가져다주는 심판.

이제는 그게 익숙해졌다.

거대한 황금 플레이트를 가진 벨트.

그걸 받아든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코너 로프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벨트를 번쩍 들어올렸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런 내게 쏟아지는 환호.

나는 오늘도.

이 벨트의 가치를 지켜냈다.

챔피언임에 자긍심을 느꼈다.

앞으로 그 어떤 선수가 덤벼오더라도 쉽게 벨트를 가져갈 수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Here Comes The Money-!!]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를 의심했다.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Uoooooooooooooohhhh……?!]

놀란 그들이 입장로 쪽을 돌아보았고 초대형 스크린에서 케인 맥센을 상징하는 달러 표시가 나타났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건.

진짜로 케인 맥센이었다.

“뭐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케인 맥센.

WWF를 지배하는 맥센 패밀리의 일원인 그가 ACW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링으로 올라오는 케인.

어처구니가 없어져 로프에서 내려와 있자니 내 앞으로 다가온 그가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

“왜 이렇게 된 거지?”

아니, 각본 몰입 좀 깨지 마요.

나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았다.

케인 맥센.

현재도 랙다운의 총괄 프로듀서 직을 맡고 있는 그였지만 방송에 출연하는 건 사실상 무척 오랜만이었다.

그렇기에 팬들은 이런 상황에 분명 흥미를 느끼고 다음 방송을 보겠지.

그걸 노린 엔딩이었지만.

케인은 진심으로 당황한 듯했다.

설마 자신이 티파니가 후계로 내정된 것에 불만을 가지고 ACW로 넘어오게 될 줄은 몰랐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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