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
케인 맥센이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이유를 모르지만 팬들은 일단 ACW에 온 케인에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나는 케인 맥센의 악수를 받지 않았고 그대로 링을 내려갔다.
거기에 웃으며 돌아보는 케인.
입장로까지 물러나 어딘가 석연찮은 얼굴을 해보이는 나와 미소를 짓고 있는 케인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잭 더 할로윈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나쁘지 않은 엔딩이었다.
그렇기에 다음 날 이어진 쇼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청자가 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케인 맥센.
팬들의 리스펙트를 받는 업계인.
하지만 꽤 오랫동안 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무려 ACW의 페이퍼뷰를 통해 복귀를 했으니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트 맥센의 아들이었지만 몸을 아끼지 않는 스턴트로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는 남자.
[Here Comes The Money-!!]
[Waaaaaaaaaaaaaaaaaaaggghhh!]
그렇기에 환영을 받았다.
일단 그 목적은 알 수 없음에도 케인 맥센의 하드코어했던 범프를 기억하고 있는 ACW 팬들은 그를 반겨주었다.
특유의 백 스텝과 함께 신이 나 팬들과 호흡하며 링에 올라서는 케인.
그는 마이크를 쥐었고.
[내 생각대로 ACW는 멋진 단체군.]
[Yeeeeeeeeeeeeeeeeeeeaaahhh!]
[환영에 감사하오.]
허리를 숙이는 케인.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과 같은 과장된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어질 케인 맥센의 대사를 자연스럽게 잇기 위한 행위였다.
[나는 적대하는 단체의 왕자이지만 지금은 여기에 서 있지. 다들 그 이유가 궁금해서 여기 왔으리라 믿소.]
[Yeeeeeeeeeeeeaaahhh……!]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앞으로 내 파트너가 되어줄 인물부터 모셔볼까.]
케인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더 등장했다.
바로 데릭 비숍이었다.
[Boooooooooooooooooooooo-!]
그 등장에 팬들은 야유를 보냈지만, 비숍은 무시하고 웃으며 링에 올랐다.
그리고 케인과 악수를 나눴다.
뭔가 정치적인 움직임을 연상케 만드는 행동이었다. 거기에서 아주 약간 환호가 가라앉고 침묵이 찾아왔다.
[여러분! 소개합니다!]
비숍이 마이크를 들었다.
[ACW 새로운 경영자! 케인 맥센입니다!]
[Uoooooooooooooooohhhh……?!]
갑작스러운 이적 선포를 넘어선 ‘공동 경영’ 선포.
거기에 순간 당황하는 팬들.
정말로 WWF의 케인 맥센이 ACW에 돈을 쓴 것일까? 현실의 문제와 뒤엉킨 각본에 모두가 흥미를 느꼈다.
[감사합니다. 비숍, 정말 고마워요.]
가볍게 너스레를 떤 케인은 자신이 ACW로 이적해온 이유를 설명했다.
[너희 모두가 알고 있을 거야. WWF의 후계자는 티파니 맥센이 되었지.]
[Uooooooooohhh……!]
[안타까운 일이지. 아버지는 말년에 좀,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잘못된 선택을 했어. 내 여동생은 교활한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했고 말이야.]
케인 맥센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만큼 열 받는 일이 없지. 그래서 나는 ACW의 지분 절반을 구매했어.]
바로 그때였다.
팬들 사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Invasion! Invasion! Invasion!]
[Invasion! Invasion! Invasion!]
‘침공’.
그 말을 들은 케인이 웃었다.
[그래, 맞아. 이건 인베이전이야. 나는 WWF를 박살 낼 생각이라고. 후계자를 잘못 고른 그 안타까운 단체를.]
카메라를 보며 얼굴을 있는 대로 다 찌푸리는 케인.
‘확실히 천재로군.’
오래 쉬었는데도 감이 살았다.
맥센 패밀리의 유전병(?) 같은 거다.
아무리 하기 싫은 각본도 프로레슬링의 링 위에서라면 그 누구보다 멋지게 소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맞서야 했다.
시그널이 떨어졌다.
출격 신호였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Yeeeeeeeeeeeeeeeeeeeeaaahhh!]
환호를 쏟아내는 팬들.
나는 벨트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와 테마 속에 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링으로 올라갔다.
케인 맥센과 데릭 비숍은 화기애애하게 웃으면서 그런 나를 반겨주었다.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
마이크를 쥐고.
“일단, 좀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할 멍청이들을 위해서 요약을 하면.”
[Yeeeeeeeeeeeeeeeeeeaaaahhh!]
“당신이 여기 지분을 절반 사서 공동 경영자가 되었고 그래서 어제 내가 세리모니하는데 나와서 악수를 청한 건가? 같이 잘해보자고 말이야?”
“그래, 맞아. 신.”
케인이 악수를 청해왔다.
“너와는 좋은 경기를 했지. 과거 헬 인 어 셀에서 말이야. 앞으로도 그만큼 터프하게 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여기 정신병자는 그걸 동의했고? 당신, 얼마 전까지 WWF랑 협력하면서 나와 오튼을 조지려고 하지 않았어?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야?”
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확실히 그랬다.
내가 오튼과 대립할 때만 하더라도 WWF 측과 협력했던 비숍이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꿔버리다니.
거기에 피식 웃은 비숍은.
“결국 비즈니스 아니겠습니까.”
찌질한 악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뭐?”
“애초에 그쪽과 발을 맞춘 건 오튼과 당신 때문이었죠. 솔직히 말해서 정말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마음, 아주 잘 이해해.”
케인이 비숍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저렇게 쿵짝이 잘 맞는 건지 모르겠다.
“선수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단체의 수장으로서 충분히 불쾌하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난 그렇게 두지 않겠어. 신.”
[Booooooooooooooooooooo-!]
팬들 사이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제야 그들은 상황을 이해했다.
티파니가 차기 회장이 된 후 케인은 WWF를 떠나서 ACW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못다 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비숍과 손을 잡았다.
“뭐 어쩌시려고?”
“난 WWF를 칠 거다.”
“뭐……?”
“협조해. 네 힘이 필요하니까.”
“싫다면?”
“이 말을 들려주지.”
케인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외쳤다.
“You’re Fired-!!”
[Booooooooooooooooooooooo-!]
넌 해고다.
그 말에 쏟아지는 야유.
나는 황당해 말을 잇지 못했다.
상황이 변했다.
케인 맥센은 ACW의 선수들을 군사로 삼아 WWF를 침공할 생각이었다.
완전히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백스테이지의 선수들도 잘 들으라고. 앞으로 나와 비숍의 명령은 절대적이야. 이 규칙을 어기는 놈은 그 누구라도 당장 짐 싸서 나갈 준비해.”
케인은 마치 예전부터 이곳이 자신의 안방이었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팬들로서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야유가 쏟아졌지만.
케인은 무시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텐가? 챔피언.”
“…….”
“너와 티파니의 관계는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생각할 시간을 주지.”
그리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NEW INVASION.
바로 그것이 다음 날 발매된 스포츠 신문 대부분의 1면을 장식한 문구였다.
나와 케인의 얼굴, 거기에 티파니의 모습까지도 나온 신문에는 새로운 인베이전 각본에 대한 설명과 함께 2001년과의 대비점이 잘 설명되었다.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아주 좋군.’
시청률은 ACW 나이트로에 몰렸다.
팬들은 단체가 단체가 맞붙고 배신과 배신이 난무하는 드라마를 기대하면서 우리에게 호응을 보내주었다.
내가 기대한 대로 되었다.
어린애처럼 심장이 뛰었다.
나는 과거의 인베이전을 떠올렸다.
랙다운과 버닝콩이 정면으로 맞붙었던 과거의 인베이전은 분명히 태도 불량 시대를 총 정리하는 장이었다.
랙다운의 테이커.
버닝콩의 락콜드.
이후, 락콜드가 배신을 하며 랙다운 측에 붙었고 바트 맥센은 WWF를 구원하기 위한 인물로 더 팍을 데려왔다.
한마디로 올스타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의 그 올스타전을 재현해서, 나는 지금 이 시대를 시험받고 싶었다.
나는 업계가 위대한 선배들의 어깨를 딛고 위로 더 올라섰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한 번 더 인베이전 각본을 써서 그 반응이 어떤지 보고 싶었다.
어쨌든 WWF와 ACW 간의 전면전은 지금껏 전혀 없던 상황이었으니 분명히 큰 호응을 얻으리라 생각됐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목요일로 시간대를 옮긴 ACW 썬더.
그곳에서 케인은 WWF 침공에 대한 자신의 야욕을 조금 더 크게 드러냈다.
[너희가 결과를 보여주면 나는 보답할 거다! 난 너희가 WWF의 선수들에 비해서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관이었다.
ACW의 선수들이 링 밖에 있고 케인 맥센이 그렇게 일장연설을 이어나갔다.
[보여주자! 과연 어디가 더 우월한 단체인지 세상에 알려주자는 말이다!]
[Bo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은 케인에게 큰 야유를 보냈다.
링 아래에 모여 있던 ACW의 선수들은 대부분이 탐탁찮다는 반응이었다.
그럴 법도 했다.
지금까지 WWF에 소속되었던 남자가 갑자기 ACW로 와서는 전쟁에 동참하라면서 강요를 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다. 누군가는 이걸 기회로 느꼈다.
오프닝에서 케인이 그렇게 말한 뒤.
백스테이지 세그먼트에서 각각의 선수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기회가 필요하던 시점이었어. 우리 같은 놈들이 뭔가를 보여주려면 이런 큰 사건이 필요한 법이지.]
지금 이 인베이전이 남들처럼 몸값을 불릴 기회라고 말하는 선수들.
[케인이 타이틀에 오백만 달러를 걸었어. 그쪽 선수들을 잡으면 백만 달러씩 준다고 했지. 숀 시나나 랜스 오튼 같은 거물은 추가금을 준다고 했고.]
그리고 돈 자체를 쫓는 선수들.
[해고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지금의 안정을 바라는 선수들.
[WWF 놈들 마음에 안 들었어. 기왕 무대가 마련됐으니 박살을 내주지.]
WWF를 그냥 싫어하는 선수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케인 맥센 그놈은 마음에 안 들지만. 동료들이 싸운다면 나도 가세해야지. 숫자에서 밀리면 안 되니까.]
동료애를 발휘하는 선수들.
그렇게 ACW 선수들이 제각기 다른 이유로 조금씩 참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상황이 어딘가 묘해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이어진 WWF의 위클리 쇼, 금요일 밤의 랙다운.
쇼는 바트 맥센과 티파니 맥센의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로부터 시작되었다.
[티파니, 너도 알고 있겠지만…….]
[예, 확실히 케인의 메시지는 들었어요. 바트. 놀랍지도 않네요. ACW로 가서 다시 인베이전을 시도하다니.]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티파니.
[저는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것이 WWF였다.
업계의 1위 단체로서 확실하게 왕의 자격이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겠다.
티파니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링에 올랐다.
[Wa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은 그녀에게 환호를 보냈다.
케인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티파니 맥센은 말하자면 지난 인베이전에서 바트 맥센의 입장이 되었다.
하지만 하나가 달랐다.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고 수비를 해야 하는 건 같았지만, 티파니는 아직까지 회장도 아니었고 선수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ACW 측에서 일어난 일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형제인 케인 맥센이 그쪽 지분을 구매해서 WWF를 침공한다는 사실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티파니는 그걸 이렇게 말했다.
[관심을 끌려는 수작이죠. 그게 아니라면 굳이 방송에서 떠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물론, 저는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단호히 대응할 겁니다.]
티파니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입장로를 통해 검은 셔츠와 바지를 입은 보안요원들이 나와서 섰다.
[여기 이 요원들은 테러에 대한 특수한 교육을 받은 이들입니다. 거기다 테이저를 지참할 예정이기도 하죠.]
[Uoooooooooooooooooooohhhh!!]
티파니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자신의 말에 따라 많은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ACW와는 정반대로 티파니는 선수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했다.
사모아 고가 링에 나왔다.
우-어! 우-어! 우-어! 우-어! 우-어!
[Yeeeeeeeeeeeeeeeeeaaahhhh!!]
팬들이 큰 환호를 보냈다.
언제 어느 때나 특유의 파괴적인 스타일과 안하무인의 태도를 고수하는 사모안 디스트럭션 머신, 사모아 고.
경기력, 마이크워크, 흉악한 외모까지 포함해 프로레슬러로서 거의 완전체에 가까운 그가 링에 올라왔다.
[Well, Well, Well……!]
그리고 티파니와 마주 보았다.
[이거 정말로 믿음직스럽군. 저기 테이저를 든 보안 요원들이 지켜주다니 두 발 딱 뻗고 잘 수 있겠어.]
[……무슨 불만이라도?]
[아니, 없어. 단지 티파니 당신은 내가 처음 만난 PWA 시절과 전혀 변한 게 없군. 그게 좀 놀라워서 말이야.]
고가 다짜고짜 시비를 걸었다.
[아무리 회장 일가라고 한들 역겨운 가족 싸움에 선수들을 말려들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건 아니라고.]
[알아요. 그래서 지금 보안요원들을 고용해 ACW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거잖아요.]
[어디 한번 잘 해보셔.]
비아냥거리는 고.
그 앞에서 티파니는 침착했다.
[안 되면 제가 케인하고 직접 이야기를 해서 담판을 지을 생각이에요.]
하지만 확실히 호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케인과 비교를 했을 때, 어딘가 좀 부족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각 쇼는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빠진 게 있다.
나, 그리고 PWA였다.
일주일 동안 이어진 방송을 모두 시청하자 솔직히 좀 몸이 근질근질했다.
당장에라도 링으로 올라가서 이 싸움에 참전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ACW 월드 챔피언.
동시에 PWA의 캡틴.
마지막으로 티파니 맥센의 연인.
이처럼 세 단체 모두와 애매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나는 일단 이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일단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