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79화 (479/634)

479.

[바트 맥센은 유능한 사업가였어.]

데이브 렐처가 그렇게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이 강한 프로레슬링 전문지의 발매인이 한 평가.

하지만 막상 바트 맥센이 현역일 때는 죽어라 깠던 그였기에 상대하고 있는 기자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 양반이 현역으로 있을 때나 그렇게 좀 좋은 말을 해주지 그러셨어?]

[아니, 현역에서 물러나니까 새삼 느꼈을 뿐이야. 바트 맥센이 이 업계에 이바지한 바가 많은 인물이라고.]

[그래?]

[안 좋은 일도 많았지만, 공격적인 확장을 통해서 WWF라는 거대한 단체를 만들고 프로레슬링을 전 세계적인 문화로 만든 건 분명한 사실이지.]

[그래, 그 말이 맞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 받았지. 자살한 사업가도 수두룩하고 말이야.]

[비아냥거리지 말고. 난 단지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잖아. 바트 맥센의 회사로 이 비즈니스가 커졌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티파니를 보니 든 생각이야.]

[티파니? 왜?]

[이걸 어디서부터 말할까.]

[내부 평가는 좋은 것 같던데.]

[그건, 그렇지.]

[그런데 왜? 선수 복지부터 시작해서 많은 점을 개선했다고 하더만.]

[바로 그게, 바트 맥센이 만들어둔 탄탄한 제국 덕이 아닐까 싶어서.]

[……뭐, 틀린 말은 아니군.]

[여기서 청취자 분들께 내 말이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첨언을 해두자면, 나는 바트 맥센의 사업 방식을 옹호하는 게 절대로 아니야.]

단지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이 업계를 키워냈고, 다양한 사람들이 거기에 꿈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탄탄하게 만들어진 업계 아래에서 수많은 선수들이 재능을 뽐내는 사회가 되고 있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프로레슬링은 일반적인 스포츠와는 그 궤를 달리 했다. 절대 ‘생활 체육’으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크게 보자고. 복싱, 아마 레슬링, 농구, 미식축구, 야구. 죄다 아마추어 리그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어.]

그리고 거기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취미나 몸의 단련을 위해서 배우는 경우도 많았고 말이다.

[프로레슬링은 그렇지 않지. 위험을 연출하는 종목이라서 교과 과목에 넣을 수도 없어. 그런데도 말이지.]

렐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

자신의 방 안.

온갖 종이와 자료들로 어지러운 곳에서 그는 잠시 먹먹한 감정을 느꼈다.

[렐처?]

“…….”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아니, 잠시만.”

목소리가 잠겼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순간이…… 마치 꿈을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업계 외부에서 업계를 관측하며 살아온 지 수십 년. 데이브 렐처는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꿈의 시대.

드리밍 에라.

“신은 정말 멋진 놈이야.”

[……???]

“이야기가 좀 샜군. 어쨌든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이번 각본은 대박을 낼 수밖에 없을 거야. 업계는 예전과 비교해서 수십 배는 커졌으니까.”

[글쎄, 난 걱정도 좀 되는데.]

“왜?”

[배가 커졌잖아. 조종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괜찮다고 봐.”

[또 왜?]

“신이 있으니까.”

[그냥 SIN News Letter로 바꾸지 그래. 당신 발매하는 매거진 이름을.]

“그리고 시나도 있지.”

[얼씨구.]

“러셀, 오튼, 그뿐이겠어? 지금 리그에 참가하는 놈들은 다 업계 전체를 통틀어서 환상적인 라인업이라고.”

[그렇게 안 보이던 놈들이었는데.]

“인정해. 하지만 성장했지.”

그게 누구의 덕인지.

누구를 보았기에 이렇게 됐는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기대되는구만. 다음 주 쇼가.”

정말로 그랬다.

데이브 렐처는 씨익 웃었다.

그야말로 꿈과 같은 나날이었다.

* * *

2011년 11월 7일.

월요일.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폭죽과 함께 시작되는 위클리 쇼.

버닝콩.

경기장은 긴장감에 휩싸인 채였다.

오프닝 영상 직전 나온 인트로와 함께 팬들이 경기장에 들어올 때부터 가득했던 보안요원들 때문이었다.

언제 ACW가 쳐들어올지 모른다.

거기에 대비한 방책.

덕분인지 쇼가 시작한 이후에도 한동안 경기장의 분위기는 영 어색했다.

선수들이 나와 경기를 치르고 계속해서 대립을 진행했지만, 팬들의 의식은 어딘가 먼 곳에 가 있는 듯했다.

그러는 한편 다른 방송사에서 방영되고 있는 ACW 나이트로는 뜬금없이 ‘총집편’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뭔가를 암시하는 방송.

그리고 일이 벌어진 건 아무런 일도 없이 두 시간 반이 흘러가고 버닝콩의 메인이벤트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태그 팀 매치였다.

각각 대립을 하고 있는 숀 시나와 C.M. 펑크가 팀을 이뤄서 셰무스와 랜스 오튼을 상대하는 경기.

[Waaaaaaaaaaaaaaaaggghhhh!!]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어느덧 메인 이벤터들이 링으로 나오자 팬들은 순간 경기에 몰입했다.

시나와 펑크는 서로 기싸움을 벌이면서도 착실하게 셰무스와 오튼을 상대하면서 멋진 경기를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 건 경기가 시작하고 약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갑자기 노이즈가 들려왔다.

순간 이어진 소음에 경기를 하던 선수들이 놀라 입장로를 돌아보았고.

초대형 스크린에 흑백의 노이즈가 낀 채 계속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경기를 이어갈 수가 없어진 터라 심판이 링 아래로 내려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아아, 들리나?]

케인 맥센이 모습을 드러냈다.

[Uoo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어두운 공간을 배경으로 둔 채 있던 케인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경기장 안이었다.

[정말로 멋진 쇼였어. 다들 치열하게 싸워서 상대를 부정하고 자신을 증명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

어디론가 이동하는 케인.

[Uoooooooooooooooohhhhhh?!]

팬들이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퍼억!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빠악!

누군가 누군가를 잔혹하게 폭행하는 소리. 그와 함께 비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케인은 침착했다.

셔츠에 바지를 입은 그는 젠틀한 마피아 보스 같은 모습으로 계속 걸었다.

[그런데 말이야. 티파니. 너는…… 역시 부족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어. 정말 우리 떡대들을 테이저 같은 걸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마침내.

[Uoooooooooooooooooooohhh!!]

그가 경기장의 ‘입구’로 이동했다.

테이저로 무장한 보안요원들이 지면을 나뒹굴었고 ACW의 거친 사내들이 그것을 정리하고 있었다.

[크하아아아!!]

[한번 싸워보자고!]

그들이 가진 거라고는 주먹 두 짝과 불알 두 짝씩뿐. 그런 상황에서 케인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고!]

[전쟁이다! 이 새끼들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팬들이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ACW 선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대한 광경이었다.

20명 가까운 인원.

개중에 크로우나 러셀 오메가 같은 최중요 선수들은 빠진 상태였지만, 크리스 젠코 같은 베테랑이나 코디 로스 같은 신인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경기장에 소란이 빚어졌다.

[ACW! ACW! ACW! ACW! ACW! ACW! ACW! ACW! ACW! ACW!]

이곳을 찾은 ‘ACW’의 팬들이 챈트를 보냈고, 케인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그대로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싸움이었다.

퍼억!

[우어어어어어!!]

돌진하는 잭 스웨어.

2미터 가까운 풀 체력의 거구를 상대할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선수랄 것도 없었다.

백스테이지에 있던 직원들은 그 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치이이익!!

카메라가 깨지며 경기장의 초대형 스크린에 다시 한 번 노이즈가 발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화면이 복구되었지만, 그곳은 이미 ACW 선수들이 점령한 뒤.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뭐 하는 거야, 등신아!]

빠악!

몇몇 직원들이 재수 없게 붙잡혀 박살이 나고, 백스테이지에 설치해둔 온갖 기자재들이 무너져 내렸다.

습격은 락커룸으로 이어졌다.

[어……?]

경기를 마치고 쉬던 선수들이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 직후 달려든 젠코가 그들을 공격했다.

뻐억!

샤워 타월을 걸치고 있던 선수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 자리에 쓰러졌다.

거기에 이어지는 린치.

영 덕스가 선수들을 짓밟았고 화면은 곧장 다른 곳으로 전환되어 루차 브로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젠장!]

[막아!!]

WWF 측에서도 어떻게든 바리게이트를 세워 그 공격을 막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말했듯.

이 떡대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으랏차차차!!!]

스탠 슈타이너가 특유의 괴력을 발휘해 바리게이트를 단숨에 걷어냈고 그 사이로 루차 브로스가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

완전히 혼돈 그 자체였다.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WWF 선수들은 습격자들에게 저항하려고 했다.

사모아 고가 좋은 예시였다.

[우어어어어!!]

화면 밖에서 나타난 그가 루차 브로스를 공격했고 단숨에 제압했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경기장의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지금 이 상황에서 그는 WWF의 거의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는 바로 옆에 있던 스탠 슈타이너와 맞붙었고 두 사람은 온갖 기자재들로 가득한 백스테이지를 오가며 치열하게 접전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직후.

뻐억!!

어디선가 튀어나온 케인 맥센이 고의 등에 대고 알류미늄 파이프를 휘둘렀다.

[Booooooooooooooooooooooo-!!]

[가자고! 스탠!]

언제 저렇게 융화된 것일까.

케인이 선수들을 선동했다.

그리고 모두가 모여들었다.

[박살 내버려!]

[다 죽여!]

[링으로 간다!!]

선수들을 이끌고 링을 향해 걷기 시작한 케인. 어디서 누가 가져온 것인지 ACW의 깃발이 뒤에서 흩날렸다.

그리고 도착한 고릴라 포지션.

[티파니!!]

[케, 케인!]

[티파니 어디 있어?!]

티파니는 자리에 없었다.

대신 바트 맥센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중으로, 케인은 이를 악물며 그에게 다가가 곧바로 멱살을 잡고 올렸다.

[어디 있냐고!]

[이, 이러지 마. 케인! 이런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빌어먹을 아버지!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평화주의자가 되셨어?! 어?!]

케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건 전쟁이야! ACW와 WWF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봐봐! 팬들도 좋아하겠지! 이게 당신의 방식이라고! 우리가 당신에게 배운 거야!!]

케인은 바트를 벽에 몰아붙였다.

그리고 이내 ACW의 직원용 티셔츠를 입은 사내가 WWF의 고릴라 포지션을 점거하고 멋대로 음악을 틀었다.

ACW의 테마.

경쾌한 메탈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며 습격에 참가한 ACW의 선수들이 WWF의 링에 등장했다.

그건 놀라운 광경이었다.

ACW에서도 그들의 습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마치 실제로 벌어지는 일처럼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Boooooooooooooooooooooooo-!]

그 수장은 케인 맥센.

그가 앞장서서 링으로 나오자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고 링 위의 선수들은 당황해 대응할 준비를 시작했다.

철제 의자를 드는 랜스 오튼.

시나는 주먹을 들었고 펑크와 셰무스도 제각기 무기를 찾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숫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달려드는 코디 로스.

그가 과거, 자신의 리더였던 랜스 오튼을 그대로 들이받아서 덮쳤다.

레갈리아.

그 스테이블의 이름은 이미 까마득한 과거.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아들, 코디 로스였다.

콰앙!

물론 오튼은 철제 의자를 들고 휘둘러서 간단하게 코디 로스를 제압했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코디가 발목을 잡고 늘어지자 오튼은 뒤이어 달려드는 선수들에게 휩쓸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잔혹한 린치.

거기에는 WWF의 아이콘인 숀 시나라고 하더라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에게 달려든 선수는 무려 여섯 명.

[Uoooooooooooooooooohhhh……!]

관객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참담한 광경이었다.

선수들이 마구잡이로 뒤엉켜 링을 장악하고 WWF에 마지막으로 남은 선수들을 잔혹하게 유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나와 오튼마저 링에 쓰러졌고, 케인 맥센이 마이크를 들고 씨익 웃었다.

ACW 선수들이 링을 장악했다.

링 아래와 위에서 제각기 숨을 몰아쉬면서 웃는 그들.

[별것도 아니군!]

케인이 환하게 웃었다.

[다들 봤겠지! ACW! 케인 맥센! 이 업계에서 최고가 누군지 말이야!!]

[Boooooo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바로 그때였다.

테마 하나가 이어졌다.

‘Queendom’.

티파니 맥센이 링으로 나왔다.

그 뒤를 쫓아 허겁지겁 나오는 보안요원들의 모습에서 그녀가 지금껏 어디에 있었는지가 밝혀졌다.

티파니는 가장 먼저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케인의 습격이 이어지자 곧바로 몸을 숨겼지만.

형제인 케인 맥센이 링을 장악하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나온 것이었다.

[비겁하고 치졸한 인간!!]

겁도 없이 선수들의 사이를 지나 케인의 앞에 선 그녀는 마이크를 손에 쥐고 잔뜩 열이 받아 소리쳤다.

[명예도 긍지도 없는 더러운 놈! 어떻게 당신이 우리에게 이럴 수 있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케인!!]

[이게 우리가 배운 거야. 티파니.]

그 직후였다.

뻐억-!!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케인 맥센이 티파니 맥센을 공격했다.

팬들은 순간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링 위의 선수들도 대부분이 놀란 가운데 케인은 턱을 움켜쥐고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티파니에게 소리쳤다.

[이게 우리가 배운 거라고!!]

확실히 그건.

아무리 각본이라고 하더라도.

집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를 제대로 열이 받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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